⟪邊時志 – 시대의 경계에 선 이름⟫
📚 예술과 풍토 – 동서양 미학의 관점에서 예술을 탐구하는 통합 교육 자료
《예술과 풍토》는 화가 변시지의 예술 철학과 미학적 통찰이 집약된 비평적 저작입니다.
본 자료는 《예술과 풍토, 열화당: 변시지》원문을 바탕으로, 전공자 및 예술교육 현장에서 활용하기 쉽도록 35개 주제로 체계화하고, 각 주제마다 다음의 삼중 구조를 통해 동서양 미학 비교와 통합적 이해를 도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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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군의 질문 – 서양 미학의 관점에서 예술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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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양의 질문 – 동양 미학은 같은 주제에 대해 어떤 접근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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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지의 통합 답변 – 양자의 질문를 연결해 현대적 해석으로 제시
추상과 재현, 감각과 이성, 기술과 정신, 예술과 비예술, 감상과 체험 등 예술학 전공의 주요 개념을 개념 중심이 아닌 ‘질문 중심’으로 접근함으로써, 학생들이 비판적 사고와 자기 해석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구성하였습니다.
1. 아름다움의 발견과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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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美)에 대한 생각은 사람에 따라 지역에 따라 시대에 따라 다르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서로 상반되거나 모순되어 보일 만큼 다양한 차이를 드러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차이를 무시하고 우리가 마주치게 되는 아름다움의 근원에 대해서는 일단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삼라만상 속에서 발견하는 아름다움과 창조하는 아름다움이 그것입니다.발견하는, 즉 찾아지는 아름다움과 창조하는, 즉 만들어지는 아름다움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사람들은 삼라만상의 대자연 속에 막연히 아름다움이 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하나의 풍경, 한 개의 이름 없는 풀꽃은 그것이 풍경이고 꽃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것 나름의 선과 형태와 색채의 어울림이 그럴싸해서 아름다운 것입니다. 회화나 조각, 음악과 문학에 묘사되는 아름다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사물이 제 나름대로 아름답다는 것은 아름다움의 종류에서보다는 아름다움의 의미에 의해서일 것입니다. 슬픈 모습이 슬프게, 애잔한 미소가 애잔하게 조각되거나, 명랑하고 인간미 넘치는 개성 있는 인물을 묘사한 소설 속에서 우리는 그 나름의 개성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감상하는 쪽과 제작하는 쪽 모두가 어떤 의미에서는 아름다움에 다 같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름다움의 창조와 발견은 궁극적으로 동일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술과 풍토, 변시지> |
🧭 시군
“플라톤은 예술을 '이상적인 것의 모방'이라고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을 통해 감정을 정화시킨다고 했어요. 그럼 예술가가 느끼는 아름다움은 이미 있는 어떤 ‘완벽한 질서’를 찾아낸 걸까요?”
🍃 지양
“동양에서는 눈에 보이는 모습보다 ‘기운’이나 ‘느낌’을 표현하는 걸 중요하게 여겨요. 그렇다면 예술이란, 바깥에서 찾는 게 아니라 순간의 감동을 직접 만들어내는 행위일까요?”
🌿 시지의 대답
발견과 창조는 서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입니다. 예술가는 자연이나 사회, 자기 안에서 어떤 감동을 먼저 ‘발견’하고, 그걸 자신만의 방식으로 ‘창조’해 세상에 보여 줍니다. 발견과 창조는 결국 같은 길의 앞뒤에 놓인 걸음입니다.
👥 대상별 조언
🎓 학생에게
“노을을 보고 마음이 움직였다면, 이미 ‘발견’한 거예요. 그 느낌을 그림이나 글로 표현하면 ‘창조’가 됩니다. 느낀 것을 표현해 보는 두 단계를 꼭 경험해 보세요.”
👥 일반인에게
“들꽃이나 여행지 풍경을 보고 감동받을 때, 우리는 아름다움을 발견한 거예요. 그 느낌을 누군가와 나누거나 사진으로 남기면, 감동이 창조로 이어집니다.”
🖼️ 컬렉터에게
“작품을 모으는 건 발견의 시작일 뿐입니다. 작품을 어떻게 배치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컬렉션 자체가 또 하나의 예술이 됩니다.”
🎨 화가 지망생에게
“대상의 본질을 먼저 발견하고, 거기에 나만의 언어를 입히세요. 변시지 화백이 제주에서 ‘빛’ 대신 ‘바람’을 표현한 것처럼, 자신만의 감각으로 바꿔 표현해 보세요.”
🌀 변시지의 사례
도쿄 시절엔 ‘빛’을 좇았던 변시지 화백은 제주에 와서 ‘형태 없는 바람’을 발견했고, 황토색과 먹색으로 자신만의 표현을 창조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발견 → 창조 → 또 다른 발견의 과정을 잘 보여 줍니다.
2. 아름다움의 지각과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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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대에 걸쳐 아름다움은 감성적 또는 직관적으로 파악되는 정신의 가치이다. 따라서 아름다움이란 아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어떠한 세밀한 해설도 그것은 아름다움의 조건이지 아름다움 그 자체는 아니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는 아름다움 자체를 느끼기보다 그것에 대해 해설하거나 그것에 대한 이야기에 더 흥미를 느낀다. 아름다움의 본질은 감동이 없이는 이룰 수 없는 곳에 있다. 해설이나 설명이나 분석이나 평가는 추궁하면 할수록 아름다움의 본질로부터 멀어진다. 아름다움은 인지의 대상이 아니라 감각의 대상이다. <예술과 풍토, 변시지> |
🧭 시군
“칸트는 아름다움을 ‘이해관계 없는 기쁨’이라고 했고, 예술을 ‘자유로운 놀이’로 설명했어요. 그럼 우리는 어떻게 그런 아름다움을 진짜 ‘느끼는’ 걸까요?”
🍃 지양
“동양에서는 고요히 바라보거나 자연과 하나 되는 느낌을 중요하게 여겨요. 그렇다면 아름다움은 머리로 생각하기보다, 마음으로 조용히 느끼는 게 핵심일까요?”
🌿 시지의 대답
아름다움은 머리로 분석하기보다 마음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서양은 ‘이해관계 없는 기쁨’, 동양은 ‘자연과 하나 되는 감응’을 말합니다. 결국 공통점은 **"느끼는 순간"**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해설이나 설명은 그 뒤에 오는 것이어야 합니다.
👥 대상별 조언
🎓 학생에게
“노을을 보며 ‘왜 아름답지?’ 생각하기 전에 그냥 바라보고 느껴보세요. 감동은 분석보다 먼저 오고, 그게 바로 진짜 예술 경험이에요.”
👥 일반인에게
“햇살, 미소, 음악처럼 우리 일상엔 이유 없이 마음을 울리는 순간들이 있어요. 그걸 느끼는 것이 바로 아름다움을 체험하는 겁니다. 설명은 그 다음입니다.”
🖼️ 컬렉터에게
“작품을 볼 때 지식도 중요하지만, 눈앞에서 느껴지는 감동이 먼저입니다. 좋은 컬렉션은 머리보다 마음이 먼저 반응한 작품으로 만들어집니다.”
🎨 화가 지망생에게
“창작할 때 대상의 구조를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그 대상이 주는 감정을 몸으로 느껴야 합니다. 선, 색, 여백 모두 마음이 깨어 있을 때 살아 움직입니다.”
🌀 변시지의 사례
변시지 화백은 제주 ‘폭풍의 바다’에서 바람, 흙, 물결의 기운을 단순한 색과 선으로 표현했습니다. 겉모습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의 감정과 자연의 에너지를 담은 것입니다. 그의 인물화 또한 배경의 침묵과 여백을 통해 인물의 내면을 느끼게 만듭니다.
3. 모나리자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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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가 그리는 자연은 풍경이나 정물은 물론 인간과 동물 모두를 포함한다. 자연을 사생한다는 것은 단순한 색채나 형태의 시각적 성질을 본뜨는 것이 아니라, 묘사하고자 하는 대상의 본질적 의미나 아름다움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형태의 아름다움과 자연물의 의미를 동시에 관조한다는 것은 아는 것과 보는 것에 관여한다. 벽에 걸린 모나리자의 손이 매혹적인 것은 그것이 아름다운 부인의 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대상에 관한 지식은 많으므로 그 대상을 직접 보고 느낄 때는 연상이 따른다. 그래서 그 지식에서 오는 흥미가 보충되는 경우가 많다. 모나리자의 '미소'에 관한 한두 가지 일화가 있다. 그녀를 그릴 때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항상 웃기는 제스처를 해 보였다는 얘기가 있고, 또 그림을 그리는 동안은 악사를 불러서 연주함으로써 그녀를 즐겁게 해주었다는 얘기도 있다. 그림을 보는 사람은 이와 같은 정보로써 그림을 보는 이상의 흥미를 느낄 수 있지만, 그러나 이는 진실로 그림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며 작품의 본질과도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석조 건물은 무한한 중량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우리 눈에 보이게 되는 것은 그것이 돌이라는 선입감 때문일까. 그렇다면 딱딱하고 차가운 대리석의 나체상은 어째서 어떠한 지식으로 인하여 부드러운 육체로 보이는 것일까. 그것은 선의 방향이나 표면의 넓이 등에 의한 시각적 성질 때문일 것이다.석조 건물의 돌은 물론 눈에 보이는 중량이지 현재 손에서 경험한 것과 같은 중량은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시각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떠한 돌의 중량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석조 건물의 중량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벼운 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근원으로 하여 대건축의 중량을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형태의 아름다움과 자연물의 의미를 동시에 관조한다는 것은 아는 것과 보는 것에 관여한다. 벽에 걸린 모나리자의 손이 매혹적인 것은 그것이 아름다운 부인의 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과 풍토, 변시지> |
🧭 시군
“다빈치는 손의 구조와 빛을 아주 정밀하게 묘사했죠. 그럼 정말 ‘손의 아름다움’이란 완벽한 외형을 재현했을 때만 생기는 걸까요?”
🍃 지양
“동양에서는 겉모습보다 기운과 느낌을 담는 걸 더 중요하게 여겨요. 그렇다면 진짜 아름다운 손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을 표현했을 때 완성되는 건 아닐까요?”
🌿 시지의 대답
서양은 손의 형태와 빛으로 아름다움을 찾고, 동양은 선 하나에 생명과 감정을 담습니다. 결국 손의 아름다움은 **‘정확함’과 ‘느낌’**이 함께 할 때 완성됩니다. 보는 것과 느끼는 것이 만나는 그 지점에 진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 대상별 조언
🎓 학생에게
“손을 그릴 때 뼈와 근육을 먼저 공부하고, 그 다음엔 눈을 감고 친구의 손이 주는 따뜻함을 떠올리며 다시 그려보세요. 형태와 감정이 함께 담긴 손이 나올 거예요.”
👥 일반인에게
“누군가의 손을 잡았던 기억이 있다면, 그 감촉과 감정이 함께 떠오르죠. 그림 속 손도 마찬가지예요—그저 보는 게 아니라 느껴야 합니다.”
🖼️ 컬렉터에게
“좋은 초상화는 손의 정확한 구조와 함께, 그 안에 스며든 감정과 숨결까지 담아냅니다. 손끝의 생명감을 읽을 줄 아는 안목이 컬렉션의 깊이를 결정합니다.”
🎨 화가 지망생에게
“손의 구조를 먼저 파악한 후, 단 한 줄의 선으로 기운과 감정을 담아보세요. 변시지 화백도 인물화에서 손의 윤곽보다 바람과 노동의 떨림을 먼저 그렸습니다.”
🌀 변시지의 사례
변시지 화백은 여인의 손을 정밀하게 묘사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거친 붓질과 황토 번짐만으로 노동, 바람, 삶의 기운을 표현했죠. 손은 단순한 형태가 아니라, 살아 있는 이야기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서양의 외형적 정확성과 동양의 내면적 기운을 연결한 실험이었습니다.
4. 미적 감각 또는 감각적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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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나 고야 혹은 르누아르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늘 그 형태와 색채에 감추어진 부드러움 속에 빠져들곤 한다. 수목이나 암석이나 금속 따위의 사물마저도 명주나 꽃잎을 손으로 만졌을 때처럼 그 느낌은 부드럽고 유연하다.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것처럼 확실한 감각은 없다. 그러나 이렇게 '그려져' 있는 수목이나 땅이나 암석에서 실물보다 더 부드러운 촉감과 유연성을 느끼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미적 감각 또는 감각적 미야말로 사물과 예술을 잇는 기본적 정서이다. <예술과 풍토, 변시지> |
🧭 시군
“칸트는 미를 ‘이해관계 없이 느끼는 기쁨’이라고 하고, 영국 철학자들은 감각을 훈련해야 진짜 아름다움을 알 수 있다고 했어요. 그럼 미적 감각은 결국 ‘세련된 감각 능력’을 뜻하는 걸까요?”
🍃 지양
“동양에서는 눈앞 자극보다 마음에 스며드는 기운과 여운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렇다면 진짜 아름다움을 느끼는 능력은 눈이나 귀보다, 마음이 열릴 때 완성되는 것 아닐까요?”
🌿 시지의 대답
서양은 감각을 섬세하게 훈련해 미를 느낀다고 보고, 동양은 마음의 울림으로 감응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결국 둘 다 말하는 건 같아요. 감각이 문을 열고, 마음이 그 안에 방을 만드는 것—이 두 과정이 함께 할 때 진짜 미적 감각이 생깁니다.
👥 대상별 조언
🎓 학생에게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때 눈을 감고 ‘이 소리가 무슨 색일까?’ 상상해 보세요. 서로 다른 감각이 겹치는 경험이 감각의 힘을 키워줍니다.”
👥 일반인에게
“카페에서 커피 향을 맡으며 창밖 풍경을 보면 편안해지죠? 그 순간이 ‘감각적 미’입니다. 설명 없이도 몸이 먼저 알고, 마음이 따라옵니다.”
🖼️ 컬렉터에게
“작품을 고를 때 눈으로만 보지 말고, 색이 불러오는 냄새, 촉감, 분위기를 함께 느껴보세요. 작품은 감각 전체를 울릴 때 진짜 공간을 만듭니다.”
🎨 화가 지망생에게
“붓을 들기 전, 대상이 주는 온도, 냄새, 습도를 몸에 저장해 두세요. 그림을 그릴 때 그 느낌을 손끝에 옮기면 화면에 ‘살아 있는 감각’이 남습니다.”
🌀 변시지의 사례
변시지 화백은 제주 시절에 화려한 색을 버리고 황토색과 먹색만 사용했습니다. 이로써 시각 자극을 줄이고, 바람, 냄새, 흙의 촉감을 더 잘 느끼게 만들었죠. 그의 그림은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몸과 마음 전체로 느끼는 감각의 예술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