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색영가 - 변시지의 독백 에세이

황색영가 - 변시지의 독백 에세이

 

황색영가

黃色靈歌 - 변시지의 독백 에세이

🌾 프롤로그 ― 붓을 든 순간

내가 처음 이 섬에 발을 디딘 것은 가을이었다. 황금빛 억새가 바람에 일렁이는 모습을 보며, 나는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화 한 점을 그릴 생각이었다. 얼마나 순진했던가.
팔레트에 황토색 물감을 짜내는 순간, 손끝이 떨렸다. 그것은 설렘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 마치 이 색깔 속에 무언가 무거운 것이 숨어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첫 붓질을 하자마자 나는 알았다. 이것은 단순한 풍경화가 아니라는 것을. 내가 그리는 것은 색깔이 아니라 기억이고, 풍경이 아니라 증언이라는 것을.
바람이 불었다. 억새가 흔들렸다. 그리고 나는 들었다. 이 섬의 비밀을 간직한 바람의 속삭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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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부. 바람이 가르쳐준 것들

바람의 첫 번째 교훈

"화가여, 너는 나를 그릴 수 있겠느냐?"
바람이 내게 묻는 것 같았다. 캔버스 앞에 서서 붓을 들고 있는 나에게, 억새밭을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이 도전장을 내미는 것 같았다.
나는 시도해보았다. 붓끝으로 바람의 방향을 따라가며, 역동적인 선들로 그 움직임을 포착하려 했다. 하지만 바람은 내 붓보다 빨랐다. 내가 한 획을 긋는 사이, 바람은 이미 저 멀리 사라져버렸다.
"바보 같은 놈이로구나."
바람이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그것은 바람이 아니라 내 안의 목소리였다. 바람을 그리려 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바람은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는 것인데.
그날부터 나는 바람을 그리는 대신 바람이 지나간 흔적을 그리기 시작했다. 휘어진 억새, 흩날리는 낙엽, 물결치는 들판. 바람은 부재 속에서만 존재했다.

억새가 들려준 합창

억새밭에 서면 온 세상이 음악이 된다. 수만 개의 억새가 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소리는 마치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연주 같다. 나는 그 소리에 매혹되어 매일 같은 시간에 그곳에 갔다.
어느 날, 붓에 은색 물감을 묻혀 억새의 빛깔을 그리려 하는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물감이 캔버스에 닿는 순간, 억새들의 합창 속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의 웃음소리. 여인의 흐느낌. 남자의 거친 숨소리. 그리고... 비명.
나는 붓을 놓고 뒤로 물러섰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것은 단순한 착각이 아니었다. 억새들이 품고 있는 것은 바람의 소리만이 아니라 이 섬에 묻힌 수많은 영혼들의 목소리였다.

돌담이 간직한 비밀

이 섬의 돌담들은 모두 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 무표정하면서도 슬픈, 견고하면서도 부서질 것 같은 그런 표정. 나는 돌담의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붓 대신 팔레트 나이프를 사용했다.
거친 터치로 돌의 표면을 그려내는 동안, 나는 이상한 환상에 사로잡혔다. 마치 내가 그리는 것이 돌이 아니라 살갗 같았다. 상처 입은 살갗, 굳은살이 박인 손바닥, 세월에 패인 주름살.
돌담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바람이 돌담의 틈새를 스쳐 지나갈 때마다, 나는 들을 수 있었다. 낮고 깊은 신음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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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부. 황토가 삼킨 것들

어머니 같은 땅

황토를 그리는 일은 내게 가장 어려운 과제였다. 어떤 노란색을 써야 할까? 레몬 옐로우는 너무 밝고, 번트 시에나는 너무 어둡다. 나는 수십 가지 노란색을 섞어가며 이 땅의 색깔을 찾으려 애썼다.
어느 날, 비가 온 뒤 맨발로 황토밭을 걸어보았다. 발가락 사이로 스며드는 진흙의 촉감이 이상하게 따뜻했다. 마치 어머니의 품 같았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 땅의 색깔은 물감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는 것이라는 걸.

굶주린 아이들의 그림자

아이들을 그리고 싶었지만 그릴 수 없었다. 이 들판에서 뛰어놀았을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하면서도, 정작 캔버스에는 그들의 형체를 담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그림자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그들의 그림자만을 그렸다. 햇빛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 돌멩이를 줍는 아이의 그림자, 허기진 배를 움켜쥔 작은 손의 그림자. 그림자는 형체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었다.

씨앗이 되는 죽음

이 섬에서 가장 충격적인 발견은 죽음과 생명이 하나라는 것이었다. 무덤가에 핀 들꽃들, 폐허 위에 돋아난 새싹들, 그을린 땅에서 자라나는 푸른 잎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다른 시작이었다.
결국 나는 새로운 기법을 개발했다. 물감이 마르기 전에 다른 색을 덧입히는 것이다. 황토색 위에 검은색을, 검은색 위에 다시 초록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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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부. 그릴 수 없는 얼굴들

부재의 초상화

나는 결코 얼굴을 그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아니, 그릴 수 없었다. 어떤 표정으로 그 순간의 공포를 담아야 하는가? 어떤 눈빛으로 마지막 순간의 절망을 그려야 하는가?
대신 나는 부재를 그렸다. 빈 집, 빈 배, 빈 공간... 부재야말로 가장 강력한 존재의 증명이었다. 그들이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그들의 존재를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켰다.

침묵하는 증언자들

이 섬의 모든 사물들이 증언자였다. 돌멩이 하나, 풀잎 하나도 그날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그리면서 깨달았다. 진정한 증언은 말이 아니라 침묵 속에 있다는 것을.

바람 속의 합창

밤이면 바람이 달라졌다. 낮의 바람이 생명의 숨결이었다면, 밤의 바람은 영혼의 속삭임이었다. 나는 그 속삭임을 들으며 그림을 그렸다. 촛불을 켜고, 바람 소리를 들으며, 어둠 속에서 붓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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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부. 황혼 속의 깨달음

저녁 하늘의 가르침

이 섬의 저녁 하늘은 특별했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노란색으로 물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석양의 색이 아니라 이 섬만의 고유한 빛이었다.
나는 그 색깔을 포착하기 위해 몇 달을 매달렸다. 카드뮴 옐로우에 버밀리언을 조금, 거기에 번트 시에나를 한 방울. 하지만 아무리 섞어도 그 색은 나오지 않았다.

순환하는 시간

이 섬에서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원이었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끊임없이 순환했다. 죽은 자들은 흙이 되어 새로운 생명을 키웠고, 새로운 생명들은 다시 죽어서 흙이 되었다.

황색의 의미

마침내 나는 황색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그것은 단순한 색깔이 아니라 이 섬의 영혼이었다. 태양의 색이자 땅의 색, 생명의 색이자 죽음의 색, 희망의 색이자 절망의 색.
황색은 모든 것을 포용했다. 기쁨과 슬픔, 분노와 평온, 사랑과 증오. 그 안에서 모든 감정이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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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필로그 ― 붓을 놓는 순간

이제 나는 알고 있다. 내가 그린 것은 그림이 아니라 기도였다는 것을. 죽은 자들을 위한 진혼곡이었다는 것을.
황색영가. 이 제목은 내가 지은 것이 아니다. 바람이, 억새가, 돌담이, 황토가 함께 지어준 제목이다. 나는 단지 그들의 속삭임을 듣고 캔버스에 옮겼을 뿐이다.
붓을 놓는 지금도 노래는 계속된다. 바람이 부는 한, 억새가 흔들리는 한, 이 섬의 영가는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나는 그 영원한 합창의 한 소절을 담당했을 뿐이다.
바람아, 고맙다. 네가 가르쳐준 것들을 나는 평생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흙이 되어 네 품에 안길 때, 너는 나의 마지막 붓질까지도 기억해 주길 바란다.
황색영가는 끝나지 않는다. 영원히.
작가 후기
이 에세이를 쓰는 동안 나는 정말로 붓을 든 화가가 된 기분이었다. 한 화가의 숨결이 시대의 바람을 만나면, 그림은 더 이상 사물의 모사나 장식이 아니다. 그것은 증언도, 심문도 아니다. 그것은 바람처럼 지나가며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는 어떤 것이다. 시지의 손끝에서 나온 선들은 사라짐으로써 남았고, 남음으로써 흐름이 되었다. 그가 남긴 것은 형태가 아니라 태도였다. 삶을 향한 태도, 기억을 붙드는 태도, 사라짐을 통해 남게 하는 태도다. 변시지라는 화가를 통해 제주의 아픔을 그려내면서, 예술가의 책임과 사명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진정한 예술은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진실을 증언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