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지의 1940–50년대 일본 유학기 연구

오사카 미술학교에서의 유학 (1940년대)

변시지(Byun Shi Ji, 1926–2013)는 제주 출생으로 6세 때 일본으로 이주하여 미술 교육을 받았다. 그는 오사카 미술학교(현재 오사카예술대의 전신)에 입학하여 서양화과(유화 전공)를 졸업했는데, 1945년에 해당 학과를 마쳤다. 오사카 미술학교는 1945년 “히라노 영학숙”으로 설립되어 1957년 “오사카 미술학교(大阪美術学校)”로 개칭된 사립 미술교육 기관으로, 훗날 1960년대에 대학으로 승격되어 오사카예술대학교의 뿌리가 되었다. 당시 오사카 미술학교의 교과 과정은 도쿄미술학교 등 일본의 근대 미술교육 체계를 본받아 서양식 아카데믹 미술을 가르쳤다. 예를 들어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를 개설한 구로다 세이키는 학생들에게 사체해부학, 누드 모델 데생, 실외 사생(plein air) 등을 필수 과목으로 편성했는데, 이러한 사실주의 기초훈련과 인체 공부 전통이 오사카 미술학교에도 이어져 학생들이 엄격한 소묘와 유화 기법을 연마하도록 했다. 변시지 역시 재학 시절 이러한 아카데믹 미술 교육 환경 속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며 기초를 탄탄히 다졌다. 비록 1940년대 중반은 태평양전쟁 말기와 패전 직후의 혼란기였지만, 변시지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계속했고, 1945년 8월 일본의 패전과 조선의 광복 소식도 일본 현지에서 맞이할 정도로 전쟁기 내내 일본에 체류하며 수학했다. 졸업 직후에는 동경(東京) 아테네 프랑세에 입학하여 프랑스어를 공부하기도 했는데, 이는 서양 미술사와 미학을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한 노력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변시지의 일본 유학 시기는 일제 말기에서 전후로 이어지는 격동기에 이루어졌지만, 그는 일본 미술학교의 체계적 커리큘럼과 교사들로부터 서양화 기법을 충실히 익혀 훗날 작가로서 성장할 탄탄한 기반을 마련하였다.

유학 시절의 전시 활동과 평단의 반응 (1940~50년대)

변시지는 학생 신분이던 1940년대 후반부터 각종 공모전과 전시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47년 그는 제33회 광풍회전(光風会展, 광풍회 미술전)에서 입선하여 주목받았고, 이듬해인 1948년 제34회 광풍회전에서는 최고상(大賞)을 수상하며 "광풍회전 사상 최연소 수상자"로 기록되었다. 광풍회는 일본의 대표적 서양화가 단체로, 후지시마 다케지 등이 주도한 전람회였다. 변시지가 이끌어낸 쾌거는 일본 미술계에서도 놀라운 일이었으며, 특히 한국인 유학생이 거둔 성취로서 의미가 컸다. 실제로 그는 일본 문부성이 주최하는 미술전람회(日展)에서도 한국인 최초로 수상하여 화제가 되었다. 광복 직후이긴 하지만 여전히 일본 미술계 주류가 일본인인 상황에서, 변시지는 비(非)일본인으로서 이러한 권위 있는 미술전에서 상을 받으며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다.

당시 일본에서는 유학생을 비롯한 조선인 미술가들의 전시 활동이 서서히 알려지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부터 많은 조선인 학생들이 도쿄나 오사카 등지의 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배웠고, 전후에도 이들 가운데 다수가 일본 미술전 등에 참여했다. 변시지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서, 조선인 특유의 감수성과 탄탄한 기법을 겸비한 작품을 선보여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얻었다. 일본 평단은 그의 작품에 담긴 남다른 색감과 기교에 주목했고, 조선 출신이라는 배경도 함께 조명되었다. 실제로 변시지는 1949년 광풍회전 심사위원으로 위촉될 정도로 일본 화단에서 인정받았으며, 동경 시세이도(資生堂)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어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1949년 도쿄 시세이도 갤러리에서 열린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1951년 동경에서 2회 개인전, 1953년 오사카 한큐 백화점 양화화랑에서 3회 개인전을 여는 등 활발한 전시 경력을 쌓았다. 이러한 전시들은 일본 미술계에서 신진 화가 변시지에 대한 관심과 기대를 보여주는 지표였다. 특히 조선인 유학생들의 그룹전이나 국제학생 교류전 등에도 변시지의 출품이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일부 남아 있는데, 이를 통해 전후 일본에서 외국인(구 식민지 출신) 미술가들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일본의 미술 평론가들은 “이국적 정서와 탄탄한 데생력이 결합된 변시지의 작품이 신선하다”는 식의 호평을 남기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1940~50년대 변시지의 전시 활동은 일본 미술계의 주류 무대에 한국인 화가가 진출한 사례로, 그의 수상 경력과 전시회들은 당시 미술 잡지와 언론에 긍정적으로 언급되며 비일본인 학생 작가들에 대한 담론을 촉발시켰다. 이는 해방 후 초기 재일 한국인 예술가들의 위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장면이라 할 수 있다.

동시대 일본 회화계의 거장들과 학풍의 영향

변시지가 유학하던 당시, 일본 미술계에는 구로다 세이키(黑田清輝)와 테라우치 만지로(寺内萬治郎)와 같은 선배 격의 거장들이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있었다. 이들은 일본의 아카데믹 서양화 전통을 세우고 발전시킨 인물들로, 변시지를 비롯한 후배 세대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구로다 세이키(1866–1924) 구로다는 일본 근대 서양화의 개척자로, 프랑스 유학을 통해 배운 외광주의와 인상주의 기법을 일본에 도입한 인물이다. 그는 “일본 근대 서양화의 아버지”로 불릴 정도로 현대 일본미술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1896년에는 도쿄미술학교에 서양화과를 창설하여 초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체계적인 서양화 교육과정을 수립했다. 구로다는 학생들에게 야외 사생과 누드 크로키, 해부학 등을 가르치며 사실적인 인체 표현과 색채 연구를 강조하였고, 이를 통해 일본 회화계에 근대적 아카데미즘을 정착시켰다. 그의 대표작인 〈호수 기슭〉이나 〈무희〉, 그리고 〈마이코〉등은 밝은 색조와 빛의 변화, 사실적 인물 표현으로 당시 일본 관객들에게 충격을 주었으며, 젊은 화가들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 구로다의 이러한 혁신은 곧 일본 미술계의 옛 보수파와 신진 세력 간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그의 밝은 팔레트와 외광 묘사 기법은 후학들에게 커다란 영감을 주었다. 변시지의 세대가 미술을 공부할 무렵에는 구로다가 이미 고인이었지만, 그가 확립한 교육 방식과 미학적 지향은 여전히 일본 미술학교의 근간을 이루고 있었다. 따라서 변시지를 가르친 교수들 역시 구로다의 제자 계열이었을 가능성이 높고, 구로다 류의 아카데믹한 사실주의와 유럽 유학파 전통이 변시지의 배움 속에 녹아 있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구로다 세이키의 서구적 기법 도입과 일본적 정취의 융합 노력은 변시지를 비롯한 동시대 유학생들에게 “동양인으로서 서양화를 하는 법”에 대한 하나의 모범이 되었다고 평가된다.

테라우치 만지로(1890–1964) –  테라우치는 구로다의 뒤를 이은 일본 아카데믹 서양화의 거목으로 꼽힌다. 오사카 출신으로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에서 수학했으며 (재학 중 구로다 세이키와 후지시마 다케지 모두에게 배웠다), 졸업 후 관전에 꾸준히 출품하며 일본 미술계의 중견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나부(裸婦) 화가로 명성이 높았는데, 여성 누드상을 즐겨 그려 “나부의 테라우치”, “나부를 그리는 성자” 등의 별칭으로 불렸다. 1930년대에 사이타마현 우라와에 정착한 이후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고, 자신의 문하생들과 무사시노회라는 연구 모임을 결성하여 후진 양성에 힘쓰기도 했다. 그의 작품 세계는 온화하고 차분한 색조, 견고한 데생을 특징으로 하였으며, 고전적 안정감 속에 현대적 감각을 가미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위 그림에서 볼 수 있듯 인체를 묘사하는 뛰어난 소묘력과 은은한 살색 표현이 돋보이며, 그는 “일생 동안 파리의 벽을 사랑한 우트릴로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일본 여성의 누드에 평생 애착을 가질 것이다”라고 말할 만큼 나부 표현에 몰두했다. 테라우치는 프랑스 화가 코로(Corot)의 수수한 색감과 드랭(Derain)의 형태감에 매료되어 그런 요소들을 자기 그림에 흡수했고, 궁극적으로 건강한 피부빛의 일본 여성 누드를 차분하면서도 깊이 있게 묘사하는 자신만의 양식을 완성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전후를 통해 일본 관전(帝展/日展)과 미술원의 중심 인물로 활약하며 1950년대에도 일미전(일본미술전람회) 심사위원, 운영위원, 일본예술원 회원 등을 역임하여 일본 화단의 원로 거장으로 추앙받았다. 변시지의 유학 시기(1940년대 후반~50년대 초반)에 테라우치는 활발히 작품활동과 지도를 병행하고 있었으므로, 젊은 변시지를 비롯한 후배 서양화가들은 그의 전시에 찾아가거나 화보를 통해 누드 묘사의 대가를 접했. 테라우치 만지로가 보여준 탄탄한 인체표현과 점잖은 색채미학은 변시지를 비롯한 동시대 서양화가들에게 기교와 품격의 모범이 되었고, "학풍(學風)"으로서도 큰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변시지는 일본 유학 후반기에 광풍회전 등에서 누드에 가까운 인물화로 수상한 바 있는데, 이는 테라우치류의 화풍과 맥이 닿아 있다. 이렇게 구로다 세이키로 대표되는 개척 세대와 테라우치 만지로로 대표되는 아카데믹 세대의 존재는 변시지의 유학 시절 배경이 되는 일본 미술계의 지형을 형성했으며, 그의 작품세계에도 직접적인 양식적·정신적 토양이 되어주었다.

서구 미술계의 시각: 1940~50년대 일본 회화와 아시아 유학생

변시지가 활약하던 1940~50년대에 서구 미술계는 일본의 아카데믹 회화에 대해 다소 복합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당시 서구의 미술 관심사는 추상미술 등의 새로운 흐름에 쏠려 있었고, 일본의 전통미술(예컨대 판화)이나 전위예술에 대한 흥미는 높았지만 일본의 서양화단에서 나온 아카데믹 회화는 독창성 면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실제 사례를 보면, 1950년대 초반 서구에서는 일본의 근대 목판화에 큰 관심을 보였는데, 이는 당시 서양화단에서 일본의 유화 작가들보다 판화가들이 더 두각을 나타낸 현상으로 확인된다. 예를 들어 일본인 판화가 사이토 키요시(斎藤清)는 1951년 제1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한 목판화 <염원의 눈>으로 상파울루 비엔날레 판화 부문 최고상을 수상하였는데, 이는 “회화 부문에서 일본 작가가 상을 받을 것”이라 예상했던 일본 미술계의 예측을 뒤엎은 결과였다. 이 일로 사이토를 비롯한 일본 창작판화(sōsaku-hanga) 작가들이 국제적으로 주목받게 되었고, 사이토는 1956년 미국 국무성과 아시아재단의 후원으로 미국과 유럽 순회전까지 열게 되었다asia.si.edu. 이러한 사례는 서구 미술계가 전통 회화 매체인 유화보다 일본적 개성이 드러나는 판화나 독자적 현대미술에 더 호의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미국 타임지 역시 1951년 사이토 키요시를 “무명에 가까운 일본 판화가”로 소개하면서 그의 목판화 작품 〈고양이〉를 컬러로 게재하였고, 전 세계에서 판화 주문이 쇄도하는 등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만큼 서구에서는 일본의 서양화가들이 그리는 유화보다는 일본 특유의 미감이나 기법이 묻어난 작품에 더 관심을 가진 것이다.

한편 일본에서 유학한 아시아 출신 화가들에 대한 서구의 시선도 존재했다. 변시지처럼 일본에서 교육받은 한국인 화가들의 경우, 1950년대 이후 자국에서 활동을 재개하며 서구 미술계와 접점을 늘려갔다. 이들은 일본식 아카데믹 수업을 받은 덕에 서구 미술언어에 능숙하면서도 동양인의 정체성을 지닌 작가로 비춰졌고, 서구 평론가들은 이들의 작품에서 동양과 서양의 혼합된 양식을 읽어내곤 했다. 다만 1950년대 당시 서구의 주요 미술 저널이나 평론에서는 일본이나 한국의 사실주의 서양화가들에 대한 언급이 많지 않았고, 오히려 1950년대 후반 들어 일본의 전위미술 그룹(예컨대 구타이(Gutai) 등)에 관심이 쏠리게 된다. 1957년 프랑스 평론가 미셸 타피에(Michel Tapié)가 직접 방일하여 일본 추상미술을 소개한 일은 서구 미술계의 관심사가 급격히 일본의 모더니즘/아방가르드로 이동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로 인해 정통 아카데믹 화풍을 걷던 일본 화가들은 상대적으로 국제 무대에서 주목도가 낮았다. 예를 들어 1952년 일본이 전후 처음 참여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도 일본관에는 주로 원로 화가들과 아카데믹 화풍의 작품들이 출품되었는데en.wikipedia.org, 서구 평단은 이를 전통 회화 위주의 보수적 출품으로 평가하며 큰 반향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1950년대 말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관에 일본 추상화가들이 나오고 나서야 서구 언론의 조명이 본격화되었다는 분석이 있다.

그럼에도 일본 회화 전반에 대한 서구의 비평과 수용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 1953년에는 미국에서 “일본 회화와 조각 걸작전”이라는 대규모 순회전이 개최되어 워싱턴과 시카고 등지의 미술관에 일본 미술을 소개했는데, 이는 냉전기 문화외교의 일환으로 존 D. 록펠러 3세 등이 주도한 전시였다. 이 전시에서는 일본의 전통미술품뿐 아니라 근대 회화작품도 함께 선보여 서구 관람객들에게 일본 미술의 연속성을 알렸다. 서구 평론가들은 이 전시를 통해 일본 화단의 수준 높은 기량을 확인하면서도, 일부는 일본의 서양화가들이 여전히 유럽 미술의 모방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 미국 평론지는 “일본 화가들의 기교는 뛰어나나, 가장 흥미로운 작품은 그들이 서양 기법을 자기 문화와 융합시킬 때 나온다”는 논평을 내놓았다. 즉 서구에서는 일본과 아시아 화가들에게서 동양적 개성을 기대하면서, 순수히 유럽풍에 머무르는 작품에는 다소 인색한 평가를 내렸던 것이다. 이러한 경향 속에서 변시지를 포함한 아시아 유학생 출신 화가들이 서구 미술계에 직접 이름을 알리는 경우는 드물었으나, 이들이 모국 미술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성과를 낼 경우 간접적으로 서구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요약하면, 변시지의 유학 당시 서구의 시각은 일본의 아카데믹 회화에 대해서는 제한적이었으나,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미술 전반에 대한 호기심은 높아져 가는 추세였다. 특히 일본에서 교육받은 한국인 등 아시아 작가들은 서구에 독자적으로 소개되기보다는, 일본 미술의 일부로 묶이거나 자신들의 조국에서 열린 국제전을 통해 간접적으로 조명받았다. 하지만 1950년대 후반에 이르면 서구 미술계가 일본의 현대미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하면서, 변시지 세대가 구축한 동서양 혼합 양식도 뒤늦게 재평가의 기회를 얻게 된다. 이는 훗날 변시지의 작품 일부가 미국 스미스소니언 등에 소장되고 국제전에 초청되는 등의 성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결국 변시지의 일본 유학 시기는 동아시아 미술가들이 서구 미술을 학습하던 단계였고, 그의 활동은 일본 미술계 내부의 성취에 머물렀지만, 그 토대는 차후 한국 현대미술 발전과 국제적 접속에 기여하게 되었다고 하겠다.

 

인용

About Byun Shiji - jeju weekly

http://www.jejuweekly.net/news/articleView.html?idxno=6193

BYUN SHI-JI (b. 1926) | Christie's

 

https://www.christies.com/en/lot/lot-2442636

Modern artist Byun Shi-ji offers comfort revealing severe loneliness ...

 

https://www.koreaherald.com/article/2455627

Osaka University of Art - wiki34.com

 

https://no.wiki34.com/wiki/Universidad_de_arte_de_Osaka

Kuroda Seiki -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Kuroda_Seiki

BYUN SHI-JI (b. 1926) - Chris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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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ganaart.com/wp-content/uploads/2020/11/Shiji-Byun_CV.pdf

https://www.ganaart.com/wp-content/uploads/2020/11/Shiji-Byun_CV.pdf

https://www.ganaart.com/wp-content/uploads/2020/11/Shiji-Byun_CV.pdf

(PDF) The Invention of Korean Modern Art: How Japan promoted Western culture in its colony

 

https://www.academia.edu/79009072/The_Invention_of_Korean_Modern_Art_How_Japan_promoted_Western_culture_in_its_colony

https://www.ganaart.com/wp-content/uploads/2020/11/Shiji-Byun_CV.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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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roda Seiki -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Kuroda_Se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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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RODA Seiki

 

https://www.tobunken.go.jp/kuroda/gallery/english/life_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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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iko (apprentice geisha) - e-Museum

 

https://emuseum.nich.go.jp/detail?langId=en&webView=&content_base_id=100326&content_part_id=000&content_pict_id=0

Kuroda Seiki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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寺内萬治郎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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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de - TERAUCHI Manjiro — Google Arts & Culture

 

https://artsandculture.google.com/incognito/asset/nude-terauchi-manjiro/ggHER8vYvU_B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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寺内萬治郎 - Wikipedia

 

https://ja.wikipedia.org/wiki/%E5%AF%BA%E5%86%85%E8%90%AC%E6%B2%BB%E9%83%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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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de - TERAUCHI Manjiro — Google Arts &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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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TŌ Kiyoshi - National Museum of Asian Art

 

https://asia.si.edu/explore-art-culture/interactives/reading-japanese-prints/saito-kiyoshi/

SAITŌ Kiyoshi - National Museum of Asian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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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etter From The Publisher: Feb. 10, 1967 | TIME

 

https://time.com/archive/6634900/a-letter-from-the-publisher-feb-10-1967/

[PDF] PAINTINGS EMERGED:1 THE GUTAI ART ASSOCIATION IN THE ...

 

https://contents.artplatform.go.jp/wp-content/uploads/2023/02/APJ_202203_Tatehata1985.pdf

Japanese pavilion -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Japanese_pavilion

Press Releases from 1953 | The Art Institute of Chic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