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지의 예술적 순례와 "제주화"의 조형적 완결

폭풍의 화가, 변시지 — 예술적 순례와 제주화

변시지의 예술적 순례와 '제주화(濟州畵)'의 조형적 완결

시기별 화풍의 심층 비교 및 미학적 분석

1. 서론: 풍토(風土)와 실존(實存)의 교차점에서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서 변시지(Byun Shi-ji, 1926~2013)라는 이름은 단순히 하나의 화풍이나 특정 지역을 대표하는 작가 이상의 무게감을 지닌다. 그는 해방 후 미군정 치하의 일본에서의 화려한 등단과 서양화 기법의 완벽한 체득, 1957년 서울대학교 초빙으로 영귀 귀국 후 서울에서의 정체성 탐구와 사실주의적 기록, 그리고 마침내 고향 제주로의 귀환을 통해 동서양의 미학을 융합한 독자적인 조형 언어인 '제주화(Jeju-hwa)'를 완성해낸 거장이다.

이 글은 변시지 예술의 핵심 기제인 '장소성(Site-specificity)'과 '풍토론(Theory of Climate)'을 축으로 삼아, 그의 예술을 일본 시기(1931~1957), 서울 시기(1957~1975), 제주 시기(1975~2013)로 구분하여 심층 분석한다. 특히 '제주화'의 탄생 배경과 조형적 특징을 규명하기 위해 앞선 두 시기와의 비교 분석을 통해 변시지가 어떻게 서양의 빛과 원근법을 해체하고, 제주의 황토색(Hwangto)과 검은 선(Black Line)으로 이루어진 실존적 공간을 구축했는지 추적한다.

“제주는 그에게 태양과 바람, 고독이 뒤엉킨 원초적 풍토였으며, 캔버스 위의 폭풍은 개인의 내면과 시대의 비극을 동시에 드러낸다.”

2. 제1장: 일본 시기 (1931~1957) — 서양적 빛의 체득과 아카데미즘의 정점

2.1 신체적 결핍과 예술적 몰입

1926년 제주 서귀포에서 태어난 변시지는 1931년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이주했으며, 어린 시절의 씨름사고로 인해 평생 지팡이를 짚게 되는 신체적 결핍을 갖게 되었다. 이 결핍은 활동적 삶에서 그를 배제했지만, 동시에 내면으로의 침잠을 촉발하여 회화에 대한 몰입을 심화시켰다. 이후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지팡이를 짚은 사내' 도상은 이 시기의 경험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2.2 데라우치 만지로와 임파스토 수련

오사카미술학교를 졸업한 뒤 도쿄에서 데라우치 만지로의 문하에 들어가 서양 근대의 유화 기법, 특히 임파스토(Impasto)와 명암법을 숙달했다. 이 시기 그의 화면은 물감의 물리적 두께와 붓질의 힘으로 구축되며, 빛을 외부 광원으로 재현하는 서구적 자연주의 전통에 충실했다.

2.3 최고 공모전 수상과 아카데미적 완성

1948년 광풍회전에서 최연소 최고상을 수상하는 등 일본 화단에서 빠르게 주목받았다. 그의 최연소 기록은 현재까지 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변시지는 훗날 이 시기의 작품을 "남의 옷을 입은 듯" 느꼈다고 회고하며, 기술적 완성 뒤에 남은 정체성의 공백을 자각하게 된다.

3. 제2장: 서울 시기 (1957~1975) — 비원파(秘苑派)의 사실주의와 정체성의 모색

3.1 비원으로의 침잠

귀국 후 변시지는 창덕궁 비원을 중심 소재로 삼아 '비원파'로 불리며 한국적 전통미를 탐구했다. 이 시기에는 세필과 박막의 섬세한 묘사, 사진적 정교함을 통해 고궁의 정취를 재현하려 했다.

3.2 상업적 성공과 내면의 공허

이 시기에도 그의 창작활동의 주 무대는 일본이었고, 한국 비원 시리즈는 일본에서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변시지는 스스로의 표현이 여전히 객관적 재현에 머물러 있음을 느꼈다. 이는 그가 진정한 독창성을 찾기 위해 고향 제주로 귀향하는 계기가 된다.

4. 제3장: 제주 시기 (1975~2013) — 황토빛의 혁명과 '제주화'의 완성

4.1 황토색의 발견

1975년 제주 귀환은 일본과의 단절을 가져오면서 변시지의 예술적 전환점이 되었다. 제주 공항에 내리는 순간 경험한 '황토빛'의 시각적 충격은 곧 그의 화면을 지배하는 기조색이 되었고, 이는 단순한 색채 선택을 넘어 존재론적·미학적 선언이 되었다.

4.2 '해체와 재구축'의 단계

제주 시기는 초기·중기·후기로 나눌 수 있다. 초기에는 서울 시기의 잔재가 남아 있었으나 점차 황토색의 전면화, 굵은 검은 선의 도입, 그리고 도상들의 상징화가 진행되며 중기에 '제주화'가 정립되었다. 후기에는 형상이 더 단순화되고 명상적 여백이 강조되며 '졸박미'가 극대화되었다.

4.3 조형 요소 분석

색채

황토색은 대상들 사이의 위계를 제거하고 모든 존재를 평등하게 놓는 기조색으로 기능한다. 일본 시기의 물리적 빛과 달리, 제주 시기의 빛은 내면에서 우러나는 정신적 빛이다.

거칠고 역동적인 검은 선은 유화 붓으로 구현한 서예적 필력으로, 바람의 움직임을 시각화한다. 갈필과 같은 효과를 통해 제주의 거친 풍토를 표현한다.

공간

서양적 원근법은 해체되고 여백과 평면성이 자리잡는다. 관람자는 풍경 밖에서 바라보는 '타자'가 아니라 바람의 한가운데로 초대되어 주체와 대상의 경계가 흐려진다.

4.4 도상학적 분석

도상상징적 의미
구부정한 사내 작가의 분신이자 신체적 결핍과 인내의 상징
조랑말 섬에 갇힌 운명과 연민의 대상
까마귀 고독의 매개체이자 삶과 죽음 사이의 메신저
소나무 바람을 견디며 꺾이지 않는 생명력
태양·바다 삶의 터전이자 단절과 동경의 상징

5. 제4장: 3시기의 심층 비교 분석 및 통시적 고찰

변시지의 변모는 기술·형식의 변화가 아니라 세계관의 전회이다. 다음 표는 핵심 지표를 통해 세 시기를 비교한다.

구분일본 시기 (1931~1957)서울 시기 (1957~1975)제주 시기 (1975~2013)
핵심 철학 서구 모더니즘, 자연주의 민족적 정체성, 사실주의 풍토론(Pungto), 실존주의, 노장사상
주요 기법 임파스토(두터운 물감) 세필(정교한 묘사) 갈필·검은 선(유화로 그린 수묵)
주조 색채 자연색·다색 청록·푸른색조 황토색(Yellow Ocher)
공간 구성 투시 원근법 연극적·무대적 평면성·여백
자아의 위치 학습자·관찰자 이방인·기록자 주체·실존적 자아

5.1 재현에서 표현으로

일본과 서울 시기는 주로 재현의 범주에 머물렀고, 제주 시기는 표현의 세계로 이행했다. 변시지는 제주의 풍토를 통해 개인적·정치적 감정을 캔버스에 담아내며 시대의 알레고리를 제작했다.

5.2 재료의 토착화

유화라는 서양 재료를 통해 닥종이나 장판지 같은 한국적 질감을 만들어낸 점은 그의 물질성(materiality)에 대한 가장 창의적 응답이었다.

5.3 시선의 전회

그는 이방인의 시선에서 고장의 주체로 거듭나며 예술적 주체성을 회복했다. 이는 단순한 귀향이 아니라 예술적 귀환이었다.

6. 제5장: 심층 통찰 및 예술사적 의의

6.1 지역성의 보편성

그의 작품은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미학적 명제를 증명한다. 지역성에 천착함으로써 보편적 호소력을 얻었다.

6.2 시대의 우울과 저항

폭풍과 휘청이는 소나무, 꺾이지 않는 사내의 형상은 1970~80년대 한국의 정치적 억압과 그에 대한 저항을 상징한다.

6.3 동양적 실존주의의 완성

변시지의 회화는 서구 실존주의와 동양 노장사상이 만나는 지점에 서 있으며, 인간의 고독과 운명에 대한 숙고를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7. 결론: 바람의 길, 영원한 귀향

변시지는 201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서귀포의 작업실에서 붓을 놓지 않았다. 그의 예술 여정은 일본의 찬란한 태양, 서울의 차분한 그늘을 거쳐 제주의 거친 바람 속에서 황금빛으로 산화했다. 제주화는 서양 기법의 습득, 형식적 고민의 성찰, 그리고 풍토에의 철저한 천착이 결합해 탄생한 총체적 성취이다.

 

“고통 속에서 기다릴 줄 아는 사람,

벼랑 끝 까지 스스로를 몰아 내는 사람,

그래서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

예술가는 그런 사람인지 모릅니다." 

— 변시지의 황토빛 화폭이 남긴 무언의 메시지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