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류(逆流)의 미학

역류(逆流)의 미학:
변시지의 ‘비원 시대’와 한국적 풍토미의 재건

부제: 시대의 유행을 거부하고 잃어버린 한국의 원형을 찾아 나선 고독한 순례

1. 서론: 경계에 선 화가의 자각

우성(宇城) 변시지의 예술 세계를 논함에 있어 1957년부터 1975년까지 이어진 ‘비원(秘苑) 시대’는 단순한 과도기가 아닌, 작가의 예술적 정체성이 확립된 결정적 시기로 재평가되어야 한다.

청년 시절 일본 광풍회(光風會)에서 최연소 최고상을 수상하며 천재성을 인정받았던 그였지만, 귀국 후 그가 마주한 것은 정체성의 혼란이었다. 그는 자신의 캔버스에 담긴 기법이 서양의 것일지언정, 그 안에 담겨야 할 혼(魂)은 철저히 한국적이어야 함을 자각했다. 작품 <애련정(愛蓮亭)>은 이러한 자각이 치열한 조형적 실험을 거쳐 하나의 완결된 미학으로 승화된 결과물이다.

2. 시대정신: 타자를 쫓는 시선에 맞서 내면을 응시하다

19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한국 화단은 격변기였다. 전후(戰後)의 혼란 속에서 수많은 작가가 ‘세계화’라는 미명 아래 앵포르멜(Informel)과 서구 추상표현주의 등 해외의 사조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있었다. 모두가 눈을 바깥으로 돌리며 서구의 조형 언어를 이식하기에 급급했던, 소위 ‘탈(脫)한국’이 모던함으로 여겨지던 시대였다.

“남의 것을 흉내 내어서는 결코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변시지는 이러한 거대한 시류에 역행(逆行)했다. 그는 위와 같은 확고한 신념을 가졌다. 모두가 밖을 볼 때 그는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근대화와 서구화의 물결 속에 급격히 소실되어 가던 ‘잃어버린 한국적 풍토미(風土美)’를 재건(Reconstruction)하는 것을 자신의 예술적 소명으로 삼았다.

그가 매일같이 창덕궁 후원(비원)을 찾은 것은 단순한 풍경 묘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라져 가는 한국 고유의 색감, 선, 그리고 공기의 질감을 화폭에 붙잡아 두려는 처절한 기록이자 저항이었다.

3. 조형 분석: 한국적 빛의 온도를 찾아서

작품 <애련정>은 이러한 작가의 철학이 시각적으로 구현된 정점이다.

  • ■ 빛의 번안(Translation) 변시지는 서양의 인상주의가 추구했던 ‘태양의 빛’을 한국의 ‘스며드는 빛’으로 치환했다. 화면 속 애련정을 감싸는 빛은 강렬하게 내리꽂히지 않고, 숲의 녹음과 오래된 기와 사이로 은은하게 배어 나온다. 이는 한국의 풍토가 가진 습도와 온도를 정확히 이해한 자만이 표현할 수 있는 색채다.
  • ■ 정중동(靜中動)의 구현 화가는 캔버스의 절반을 할애하여 수면에 비친 반영(Reflection)을 그렸다. 실재하는 정자가 견고한 역사를 상징한다면, 물에 비친 허상은 끊임없이 흔들리는 작가의 내면이자 한국의 정서다. 그는 이 두 세계를 대등하게 배치함으로써 고요함 속에 움직임이 있는 한국 전통 미학을 완벽하게 재현했다.

4. 의의: 고독한 선구자의 길

당시 화단의 유행을 따랐다면 그는 더 쉽고 빠른 명성을 얻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변시지는 고립을 자처하며 비원의 숲속으로, 그리고 훗날 제주의 폭풍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애련정>은 화려한 서구의 옷을 입기를 거부하고, 가장 한국적인 흙냄새와 고요를 찾으려 했던 한 화가의 고독한 투쟁의 산물이다. 그는 이 시기를 통해 서양 재료인 유화 물감으로도 한국의 정신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음을 증명했으며, 이는 훗날 한국 미술이 나아가야 할 ‘주체적 현대화’의 방향을 미리 제시한 선구적 업적이라 할 수 있다.

5. 결론

변시지에게 ‘비원’은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잃어버린 한국의 미를 발굴하고 복원하는 성소(聖所)였다. 남들이 바다 건너의 화려한 사조를 동경할 때, 묵묵히 우리 땅에 발을 딛고 한국적 미의 원형을 탐구했던 그의 집념은 <애련정>이라는 명작으로 남았다.

이 작품은 오늘날 우리에게 묻는다. 진정한 세계화란 밖을 쫓는 것이 아니라, 가장 깊은 우리 내면의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에서 시작된다.

 

1964 애련정 53x4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