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邊時志 – 시대의 경계에 선 이름⟫
30. 반 조형, 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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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미술의 여러 동향 중에서 중요시되지 않았던 것들이 현대미술에서는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성의 형식이나 가치를 부정하는 새로운 이슈가 '전위미술'이라는 이름을 띠고 등장하기도 했다. 오늘의 현대미술은 따라서 과거의 미술에 대한 반성과 회의적 태도에 그 기본성격이 놓일 수 있으며, 그 양상은 한마디로 비개성주의 내지는 예술과 비예술의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의 추상표현주의나 1960년대의 액션 페인팅 또는 팝 아트 따위가 그것이다. 현대미술의 동향은 매우 다기다양해서 한마디로 말할 수 없지만, 한 예로서 해프닝과 같은 것은 회화나 조각의 형식을 완전히 벗어난 현상을 내보이고 있다. 무엇을 어떻게 그리느냐는 조형의 문제보다는 그린다는 행위는 무엇인가, 그것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하는 근원적인 물음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해프닝의 경우는 회화나 조각의 형식을 탈피하여 새로운 형식을 탐구하려는 것보다는 예술행위의 근본문제에 대한 반성적 의미가 강한 것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에 들어서면 예술은 인간 전체를 문제삼으려는 의욕이 뿌리를 내리게 된다. 형식화되고 세부화되어 버린 예술양식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새로운 모색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현대미술의 선구자격인 뒤샹과 슈비터스의 태도와 입장은 다소간의 차이가 있었다. 뒤샹이 가능한 한 무관심성의 태도를 보였다면, 슈비터스는 예술과 비예술의 구별을 제거하려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오늘의 현대미술은 이같이 양쪽의 사상이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서도 현대미술의 밑바닥에 흐르는 것은 반조형주의(反造形主義) 또는 반미학주의(反美學主義)이다. 이리하여 미술관의 작품이 밖으로 이탈, 야외 전시장을 가지는 현상이 생겼고, 작품도 소재를 구성하여 그리기보다 일시적으로 배열하는 동향을 보인다. 작가들은 작품을 남기려 하기보다는 그것을 해체하려 한 것이었다. <예술과 풍토, 변시지> |
🧭 시군
“뒤샹은 변기를 전시했고, 잭슨 폴록은 물감을 흩뿌리며 그렸어요. 해프닝·팝아트·플럭서스 등은 작품보다 행위와 개념을 중요하게 여겼죠. 그렇다면 현대미술은 조형을 거부하고, 예술을 질문 그 자체로 바꾸려 한 걸까요?”
🍃 지양
“동양 선화에서는 ‘무법이 곧 대법’, 즉 형식이 없을수록 더 깊은 예술이 된다고 했죠. 와비·사비 미학도 깨짐·부족함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았습니다.
그렇다면 동양에서도 **형식을 해체하면서 본질을 찾는 ‘반미학’**이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 아닐까요?”
🌿 시지의 대답
20세기 현대미술은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형식, 재료, 미적 기준을 해체하며 예술의 경계, 역할, 존재 방식 자체를 흔들었죠. 동양은 이미 오래전부터 완성보다 비움, 침묵, 파괴 속 진실을 강조해 왔습니다.
👉 반 조형은 형식의 거부가 아니라, 예술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이었고, 반 미학은 아름다움의 본질을 형식 바깥에서 다시 찾으려는 시도였습니다.
👥 대상별 조언
🎓 학생에게
“종이를 구기거나 찢은 후, 그 자국을 따라 즉흥 드로잉을 해보세요.
‘망가짐’이 새로운 형상을 낳는 창작 실험이 됩니다.”
👥 일반인에게
“폐품을 전시장에 놓은 작품을 보며 ‘이게 예술인가?’ 싶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 물음 자체가 작가의 의도일 수 있어요. 예술을 보는 눈을 깨우는 장치인 거죠.”
🖼️ 컬렉터에게
“찢김, 부식, 해체된 오브제는시간에 따라 변하면서 새로운 의미 층위를 만들어냅니다.
이런 작품은 정적인 오브젝트가 아닌, 시간과 함께 사는 예술입니다.”
🎨 화가 지망생에게
“붓질이 잘 안 풀릴 때, 과감히 캔버스를 찢거나 태워보세요. ‘예술은 태우고 나서 시작된다’는 걸 깨달을겁니다.”
🌀 변시지의 사례
변시지에게 형식은 벗어야 할 껍질, 불완성은 예술이 숨 쉬는 틈이었습니다. 그는 ‘조형’과 함께 바람, 재, 여백 같은 비물질의 미학으로 이동한 작가였습니다.
31. 표현 매체로서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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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미술이 작가의 개성적 내면을 표현한 신념의 세계이며 그것을 시각화하여 투영했다면, 오늘의 현대미술은 그러한 개성주의에 대한 부정으로서 그것을 조형하지 않고 우연성에 의존한다. 액션 페인팅은 행위를 통해 이성적인 것에서 벗어나 우연성에 의존하는 것이 보다 인간 전체에 접근할 수 있다 하여, 캔버스보다는 화가와 일상적 물체와의 관계를 성립시켰다. 과거의 회화가 물감과 캔버스로, 조각이 대리석이나 브론즈나 철 따위로 되었던 것과 같은 통념이 2차 세계 대전 이후 깨졌다. 여러 가지 일상용품, 기성품, 폐품은 물론 물, 공기, 불, 흙 등을 동원하였다. 개성이 온 세계를 지배한다고 믿었던 시대는 가고, 개성은 세계의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에 도달한 것이다. 이러한 비개성주의는 움직이는 예술(kinetic art)에도 나타난다. 알렉산더 콜더가 선구자적 작업을 시도했지만,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본격 시도되었다. 이는 작품을 개성의 지배하에 두는 것에 대한 포기였으며, 이러한 비개성주의가 극단적으로 표출된 것이 장 팅겔리의 폐물 기계의 조립을 통한 작품이었다. 이 기계의 조립과 작동은 작자와는 무관하게, 비개성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한편 옵티컬 아트(optical art)에서처럼 눈이 움직임에 따라 작품이 달라 보이게 하는 회화기법도 있다. 이러한 것을 환경예술(environment art)이라 부르기도 하는바, 여기에 보이는 비개성주의는 화가가 표현의 주체라기보다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매체적 존재에 불과한 것이었다. 현대미술의 동향은 매우 다기다양해서 한마디로 말할 수 없지만, 한 예로서 해프닝과 같은 것은 회화나 조각의 형식을 완전히 벗어난 현상을 내보이고 있다. <예술과 풍토, 변시지> |
🧭 시군
“폴록은 물감을 흘리고 뿌리는 드리핑으로 그렸고, 콜라주나 해프닝처럼 행위 자체가 작품이 된 경우도 많아요.
그렇다면 현대미술에서 화가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몸과 감정을 투사하는 예술 매체 그 자체가 된 걸까요?”
🍃 지양
“동양 선화에서는 ‘붓을 들면 곧 마음을 펼친다’고 하고, 한 획에 작가의 기운 전체가 담긴다고 했죠.그렇다면 동양에서도 예술가는 그림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정신이 통째로 담기는 매체였던 것 아닐까요?”
🌿 시지의 대답
서양의 현대미술은 작가를 그림 너머로 밀어냈습니다.
이제 화가는 물감이나 붓 이전에, 자기 몸·움직임·감정으로 그림을 그리는 존재입니다. 동양도 오래전부터 ‘한 획’에 기(氣)와 도(道)를 담아 화가의 내면이 그대로 예술이 되는 방식을 이어왔습니다.
👉 결국 화가는 표현하는 자가 아니라, 표현 그 자체가 되는 존재—즉 매체 그 자체입니다.
👥 대상별 조언
🎓 학생에게
“그림을 그리는 순간, 당신의 손·숨·기분이 전부 드러납니다. 붓질 하나하나가 ‘행동’이고 ‘기록’이라는 걸 느껴보세요.”
👥 일반인에게
“예술작품은 단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마음과 몸짓이 얼룩처럼 남은 장면입니다. 작품을 감상할 때 ‘그릴 때 어떤 몸 상태였을까’를 상상해 보세요.”
🖼️ 컬렉터에게
“작가가 직접 참여한 흔적—스플래시, 흔들림, 손의 박자—이 살아 있는 작품은 정적인 오브제가 아니라 경험의 기록입니다.이런 작품은 시간이 지나도 작가의 호흡이 느껴집니다.”
🎨 화가 지망생에게
“붓 대신 손가락이나 천, 흙, 심지어 바람을 매체로 써보세요. 물, 불, 바람과 자신의 몸을 함께 사용해 **‘화가가 그림이 되는 방식’**을 실천해 보세요.”
🌀 변시지의 사례
변시지에게 화가는붓을 든 관찰자가 아니라, 바람·황토·몸짓·침묵까지 작품 속에 스며드는 존재였습니다.그는 자신을 표현자이자 표현물, 동시에 표현 매체로 만든 작가였습니다.
32. 예술과 비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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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에서의 과거 미술에 대한 반성적 성격이 회화나 조각의 형식에 많이 나타났지만, 우리는 무엇보다도 예술과 비예술의 구분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다다이즘에서 회화나 조각을 대신하여 일상용품과 기성품을 사용하면 할수록 작품은 현실 생활과 물체와의 거리를 축소시키는 것이고, 또한 이는 액션 페인팅에서처럼 일상의 행위와 접근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미술의 일상생활에서의 해소라기보다는 일상생활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나타냄에 지나지 않는다. >예술과 비예술의 애매성이란 결국 예술이 예술로서 특수화되어 너무나 형식적이었던 데 대한 반성의 결과에 기인한다. 문제는 예술의 개성이 아니라 예술을 인간의 삶 전체의 문제로 삼으려 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현대미술을 낙천적 유희라고 말할 수만은 없는 것이며, 바로 그러한 문제의식 속에 오늘의 우리들의 삶의 고통과 허무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예술과 풍토, 변시지> |
🧭 시군
“뒤샹은 변기를 ‘샘’이라 부르며 전시장에 뒀고,폴록은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를 예술로 만들었죠.그렇다면 현대미술은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 자체를 예술로 삼은 것 아닐까요?”
🍃 지양
“노장사상이나 선(禪)에서는 일상의 소소한 행위 속에도 깨달음과 아름다움이 있다고 했어요.
차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는 순간조차도 ‘도(道)’의 예술이 되죠. 그렇다면 동양에서도 이미 오래전부터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삶 전체를 예술로 본 관점이 있었던 건 아닐까요?”
🌿 시지의 대답
현대미술은 ‘이게 예술인가?’라는 물음을 작품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작품은 형태보다 태도, 대상보다 맥락이 되었습니다. 동양도 오래전부터 ‘도(道)는 삶과 연결돼야 진짜다’라고 말했죠.
👉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는 고정된 선이 아니라, 질문과 인식이 오가며 흔들리는 흐름입니다. 예술은 때로 형태가 아닌, 사유와 감응의 장으로 존재합니다.
👥 대상별 조언
🎓 학생에게
“‘이게 예술이 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들 때, 그 의심이 바로 창작의 출발점이 될 수 있어요. 작품을 만드는 것보다, 예술을 ‘다르게 보는 것’이 먼저입니다.”
👥 일반인에게
“전시장 한복판에 의자가 놓여 있는 게 예술일까? 그 질문을 스스로 던지는 순간, 당신도 이미 예술의 일부가 된 것이에요.”
🖼️ 컬렉터에게
“예술의 경계를 탐색하는 작품은 처음엔 낯설고 어렵지만, 그 낯섦 자체가 컬렉션의 사유 깊이를 넓혀줍니다. 이해보다 반응이 먼저 와닿는 작품을 한번 들여보세요.”
🎨 화가 지망생에게
“오늘은 그림을 그리지 말고, 걷기, 태우기, 버리기, 기록하기 같은 비조형 행위로자신의 감정을 표현해보세요.
변시지 화백도 고독과 침묵 속에서 새로운 ‘보이지 않는 풍경’을 얻었습니다.”
🌀 변시지의 사례
변시지는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에서 완성보다 감응, 재현보다 사유, 형식보다 숨결을 택했습니다.
그에게 예술은 결국 **‘아는 것’보다 ‘맛보는 것’**이었습니다.
33. 추상표현주의의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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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의 특징을 집중적으로 드러내 보인 것이 2차 세계 대전 이후 등장한 소위 추상표현주의이다. 타시즘(tachisme) 서정적 추상(abstraction lyrique) 앵포르멜(informel) 액션 페인팅 따위가 이러한 명칭으로 불리고 있는데, 형식적으로 추상미술의 계보에 놓이지만 20세기 초반에 보이는 기하학적 추상과는 이질적인 것이다. 이를 구분하기 위해 기하학적 추상을 차가운 추상, 추상표현주의를 뜨거운 추상이라 부르기도 한다. 유럽에서는 장 포트리에, 장 뒤뷔페 등을 추상표현주의자의 선구로 들 수 있다. 이들에 있어서의 마티에르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이들은 물감을 두껍게 발라 올린 화면을 긁거나 파는 것처럼 그렸다. 포트리에는 석고나 석회를 굳게 화면에 발랐으며, 뒤뷔페는 물감에 모래나 유리조각 같은 것을 섞어 두껍게 발랐다. 이들은 마티에르란 물질성을 강조한 것이고, 그린다는 것은 단순한 습관적인 테크닉이 아니라 하나의 행위라는 점을 강하게 의식했다. 마티에르를 행위와 밀접하게 관련시킨 것이다. 이와 같은 동향을 미셸 타피에는 '앵포르멜'이라 이름 붙였는데 이것은 추상미술의 새로운 전개가 아니라 실로 '또 다른 예술'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약동적 필촉과 거친 마티에르의 비구상화가 1950년대의 유럽미술을 풍미하였다. 195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행위와 마티에르의 원초적 관계가 고정화되어 신선함을 많이 잃게 되었지만 기왕의 회화이념을 탈피, 1960년대 회화의 새 장을 열었다. 한편 미국의 경우는 에른스트, 이브 탕기 등 유럽의 초현실주의자들의 망명으로 영향을 받았다. 그러면서 미국 나름의 독자적 세계를 개척했는데, 잭슨 폴록은 그 대표적 작가다. 그는 멕시코 벽화풍의 또는 비유럽적 프리미티브 아트라 일컬을 수 있는 요소를 가지고 바닥에 큰 화폭을 놓고 그 주변에서부터 물감을 흘려 그리는 드립 페인팅을 시도했다. "나 자신은 그렇게 함으로써 회화의 일부가 된 느낌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이는 회화가 화가의 자아표현이라는 기왕의 관념을 넘어선 것이라 할 수 있으며, 평론가 해롤드 로젠버그는 "화폭은 현실이나 사용의 대상을 재현, 구성, 분해, 표현하는 공간이 아니고 행위를 위한 경기장같이 보인다"고 말했다. 종래의 회화와는 근본적인 이질성을 지적하여 이를 액션 페인팅이라 부른 것이다.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화면 전체를 균질의 공간으로 보는 데 있다고 하겠다. 초점이 없는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것은 유럽 회화와 같은 구심점을 지니지 않는 극도의 확산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유럽 회화가 마티에르의 문제를 중시했다면 미국은 회화의 평면성을 크게 문제삼았다. 1960년대에 들어와서는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아상블라주 예술이라는 국제전이 개최되었는데, '아상블라주(집합, 조립)'란 용어는 뒤뷔페가 처음 사용했다. 명칭에서처럼 기성품, 폐품, 가공품, 기타 여러 가지 물체를 긁어모아 만들어낸 전시회이다. 그리는 대신 긁어모은다는 행위까지 확대된 것이다. 현대 도시문명의 생활양식이나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누보레알리슴 혹은 팝 아트와도 관련된 것이었다. 이 경향은 주관적이며 유동적인 추상예술로부터 떠나서 환경과의 새로운 결합을 시도한 것으로 해프닝과의 관련도 주목할 만하다. 잡동사니 물체로서의 작품에 관객이 끼어든 삼차원의 살아 있는 아상블라주는 해프닝에서 말하는 환경과의 새로운 결합과 유사한 것이었다. <예술과 풍토, 변시지> |
🧭 시군
“폴록, 뒤뷔페 같은 화가들은 색과 선 대신 감정과 행위를 강조했어요. 붓 대신 손, 붓질 대신 뿌리기와 긁기를 사용했죠.
그렇다면 추상표현주의는 단순한 추상이 아니라, 감정과 내면을 직접 드러내는 예술의 새로운 방식이었던 걸까요?”
🍃 지양
“동양에서는 ‘한 획에 마음이 실린다’고 했어요.
수묵화나 서예에서 감정과 기운의 흐름이 중요했죠.그렇다면 동양에서도 일찍이 감정을 즉흥적으로 담는 표현 중심의 미학이 있었던 것 아닐까요?”
🌿 시지의 대답
추상표현주의는 ‘무엇을 그렸는가’보다 ‘어떻게 그렸는가’, 왜 그리게 되었는가를 묻는 미술입니다.
서양은 손짓, 흔들림, 표면의 물성으로 감정을 해방했고, 동양은 한 획의 농담과 여백으로 마음의 울림을 남겼습니다.
👉 추상표현주의는 감정의 순도, 정신의 즉흥성, 인간 존재의 흔적을 그리는 예술입니다.
👥 대상별 조언
🎓 학생에게
“기분이 강하게 움직였던 날, 색과 선으로 감정을 풀어보세요. 정해진 대상이 없어도 그림이 됩니다.”
👥 일반인에게
선이나 색이 복잡해 보여도, 그 안에는 작가의 감정이 뿌려진 흔적이 있어요. 감상은 해석보다 반응이 먼저입니다.”
🖼️ 컬렉터에게
“작품의 터치, 마티에르, 흐름 속에 작가의 흔들림과 시대의 정서가 스며 있습니다. 감정 밀도를 읽어보세요.”
🎨 화가 지망생에게
“도구보다 감정의 흐름을 먼저 따라가 보세요. 변시지 화백은 붓을 사용해서 감정의 흔적을 직접 남기는 방식으로 전환했습니다.”
34. 빛, 운동,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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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예술’이란 단순히 움직이는 작품뿐 아니라 빛과 운동과의 일체화된 빛의 예술, 또는 작품 자체는 움직이지 않지만 관중의 눈이 움직임에 따라 시각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작품 등을 일컫는 말로 널리 사용되었다. 팅겔리의 〈뉴욕에의 찬미〉(1960)라는 작품은 피아노·자전거·선풍기·인쇄기 기타 폐물을 긁어 모아 그것을 기묘하게 움직이도록 조립되었으며, 나중에는 불을 뿜으며 요란한 소리를 내다가 파괴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빛의 예술'은 이탈리아의 폰타나에 의해 "오늘의 공간예술은 네온의 빛이나 텔레비전이나 건축에 있어서 제4의 관념적 차원이다"라고 그 성격이 규정되었다. 그는 인간과 빛과 공간의 상호관계 속에서 새로운 예술을 개척했는데, 1940년대 말에 이미 네온이나 형광등을 사용한 작업을 시도했다. 빛과 운동과 공간의 일체화에서의 관중의 심리적·육체적 반응을 야기하는 환경적 성격을 그 특징으로 했다. <예술과 풍토, 변시지> |
🧭 시군
“팅겔리는 불·자전거·소음을 결합한 작품을 만들고, 폰타나는 공간을 뚫거나 빛으로 조형했어요. 그렇다면 현대미술은 정지된 그림을 넘어서, 빛과 움직임 속에 반응하는 공간 예술로 나아간 걸까요?”
🍃 지양
“동양 화론은 움직임 속 고요(動中靜), 기운의 흐름,여백에서 생기는 시간성을 중요하게 봤어요. 그렇다면 동양에서도 이미 공간과 흐름, 감응을 예술의 본질로 삼아온 흐름이 있었던 건 아닐까요?”
🌿 시지의 대답
현대미술은 평면 회화를 넘어 빛, 운동, 공간 전체를 조형 요소로 삼았습니다.
작품이 아니라 경험이 예술이 되고, 작가는 공간 속 관객과 함께 호흡하게 되었죠. 동양 역시 오래전부터 그림을 ‘시간의 통로’로 삼고기운의 흐름을 여백에 담아왔습니다.
👉 예술은 이제 고정된 물체가 아니라, 움직이는 빛·흐르는 감각·반응하는 장면이 되었습니다.
👥 대상별 조언
🎓 학생에게
"빛이 바뀌면 감정도 바뀌어요. 같은 공간을 시간대별로 관찰해보며 색감과 감정이 어떻게 변하는지 체험해보세요.”
👥 일반인에게
"빛과 그림자의 관계, 조명에 따라 바뀌는 감정—그것도 예술의 일부입니다. 공간을 ‘느끼는 법’을 익혀보세요.”
🖼️ 컬렉터에게
“빛, 움직임, 반사, 그림자의 구성은 전시 공간을 ‘감정의 무대’로 만듭니다. 조명을 설계하듯 작품을 배치해보세요.”
🎨 화가 지망생에게
“회화가 아니라 공간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변시지 화백은 황토·바람·습기·광선을 그림 바깥의 재료로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