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토에서 발원하는 한국 현대미술의 자기언어
서론: 'K'라는 글자 앞에서 선행 질문을 제출한다
K-모더니즘(K-Modernism)이라는 개념을 제출할 때, 우리는 하나의 선행 질문에 먼저 답해야 한다. 'K'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단순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K-팝에서 'K'는 한국에서 생산된 팝 음악이라는 지리적 기원을 가리킨다. 그러나 K-모더니즘에서 'K'를 단순히 '한국에서 만들어진 모더니즘'으로 정의한다면, 그것은 개념으로서 아무 변별력도 갖지 못한다. 일본에서 배운 서양화 기법을 서울 화실에서 구사한 것도, 뉴욕 추상표현주의를 서울에서 모방한 앵포르멜도 그 정의 안에 들어간다. 그러나 이것들이 K-모더니즘의 핵심이 될 수 있는가.
이 에세이는 K-모더니즘의 'K'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한국이라는 특수한 존재 조건 — 풍토, 장소, 역사적 상처, 문화적 기층 — 에서만 발생할 수 있었던 미학. 이 정의에 따르면 K-모더니즘의 원류를 묻는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서구 모더니즘의 언어에 기대지 않고도 설 수 있는 한국 미술의 자기언어를, 누가 먼저 발견했는가.
이 질문 앞에서, 나는 변시지(邊時志, 1926~2013)를 K-모더니즘의 원류로 제출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재명명이 아니다. 이것은 기존 미술사가 전제해온 기준을 드러내고, 다른 기준으로 계보를 다시 쓰는 이론적 개입이다.
1. K-모더니즘의 'K'를 둘러싼 두 개의 기준
K-모더니즘의 기원을 논할 때 두 개의 기준이 경합한다.
기준 A는 서구 형식을 수용하되 한국적 맥락으로 재해석했는가를 묻는다. 이 기준에서 K-모더니즘의 주류는 단색화다. 박서보의 묘법, 윤형근의 번트 엄버와 울트라마린, 정상화의 박리-충전, 하종현의 배압법은 서구 추상표현주의와 미니멀리즘의 형식적 어휘를 수용하면서 한국의 물성 감각, 수행적 반복, 불교적 비움으로 재구성한 미술이다. 단색화는 훌륭하다. 그러나 그것의 국제적 성공은 이 기준의 한계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2014~2016년 단색화 시장 붐이 가능했던 결정적 이유는 서구 컬렉터들이 그것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추상의 동양적 변주"로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구의 언어로 번역될 때 비로소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미술에, 'K'라는 접두어를 붙이는 것이 정당한가 — 이것이 기준 A가 직면하는 근본적 역설이다.
기준 B는 다른 질문을 던진다. 외부 규범 없이도, 자신이 속한 풍토의 원리에서 미학이 발생했는가. 이 기준에서 단색화는 'K'이기 어렵다. 서구 추상 없이 단색화는 존재하지 못한다. 반면 변시지의 제주 시기 작업 — 황토색 바탕, 최소한의 흑선, 바람 속의 고독한 인물들 — 은 서구 추상의 언어로 번역되기를 거부한다. 이 미술은 제주의 빛과 바람과 현무암 없이 존재할 수 없다. 풍토 자체가 미술의 존재 원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이분법을 지나치게 선명하게 유지하는 것은 현실의 복잡함을 단순화하는 위험을 안는다. 기준 A와 기준 B는 두 개의 분리된 칸이 아니라 하나의 연속적 축의 두 방향이다. 어떤 한국 현대미술도 20세기 서구와의 접촉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이 점을 인정하되, 결론은 바뀌지 않는다. 변시지는 그 축에서 기준 B를 향해 가장 멀리, 가장 일관되게 나아간 작가다. 그것이 그를 원류로 부를 수 있는 이유다. 원류는 절대적 순수성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적 위치와 구조적 일관성의 문제다.
2. 연대기적 증거 — 변시지는 단색화 이전에 이미 다른 길 위에 있었다
원류라는 주장은 시간적 선행성과 구조적 순수성 두 차원에서 입증되어야 한다.
1931~1957년, 서구의 철저한 체화. 오사카에서 자란 변시지는 오사카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도쿄에서 후기인상주의와 표현주의를 수학했다. 1948년 광풍회전 최연소 최고상 수상, 니텐 입선 최초의 한국인. 이 이력은 이후 전환의 전제 조건으로서 결정적이다. 승화는 충분한 체화 없이 불가능하다.
1957~1975년, 비원 시대 — 결정적 분기점. 1957년 귀국 후 서울 미술계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변시지 앞에는 주류 화단으로 진입하는 길이 열려 있었다. 그러나 당시 화단의 시대정신은 앵포르멜이었다. 유럽 앵포르멜과 미국 추상표현주의를 열정적으로 수용하던 박서보를 필두로 한 세대가 국제적 동시성을 추구하고 있었다. 변시지는 이 흐름에 합류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을 "자발적 거리두기"나 "의식적 저항"으로 읽는 것은 해석의 강도를 지나치게 높이는 것이다. 더 정확한 서술은 이렇다. 그는 자신의 감각이 향하는 곳으로 갔기 때문에 앵포르멜을 지나쳤다. 대립은 대립하는 것에 묶이지만, 집중은 묶이지 않는다. 비원(秘苑) — 창덕궁의 돌담, 연못, 고목, 처마선 — 을 선택한 것은 한국의 구체적 장소와 물질에 신체적으로 반응하는 감각이 먼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비원 시기의 의미를 제주 시기의 서론으로만 읽는 것도 잘못이다. 비원 시기 작업은 그 자체로 완결된 미적 세계를 가졌다. 그것이 제주 시기와 연결되는 방식은 목적과 수단의 관계가 아니라 동일한 감각 구조의 두 표현이다. 비원의 연못 물빛과 제주의 바람 — 이 두 요소는 다른 감각 기관을 통해 신체로 들어온다. 연못의 빛은 눈이 먼저 받아들이고, 바람은 피부와 무게중심이 먼저 받아들인다. 그러나 구조는 같다. 외부 세계가 신체를 통과하여 화면에 도달한다. 극사실주의에서 최소한의 선으로의 전환은 버림이 아니라 압축이다. 연못의 물빛을 그리기 위해 필요했던 수백 개의 붓질이 제주의 바람을 그리기 위해서는 세 개의 선으로 압축된다. 같은 감각 원리가 더 순수한 형태를 찾아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분기가 일어난 시기다. 단색화 운동이 형성되던 바로 그 1960년대에, 변시지는 이미 서구 추상과 다른 방향을 실천으로 탐색하고 있었다. 시간적 선행성은 이 비원 시대에 이미 성립한다.
1975~2013년, 제주 — 풍토 모더니즘의 완성. 44년 만에 태어난 곳으로 돌아온 변시지는 약 2년의 전환기를 거쳐 완성된 양식에 도달했다. 황토색 바탕, 최소한의 흑선, 바람 속의 인물, 조랑말, 까마귀, 해송. 변시지 자신의 증언이 이것을 명징하게 말한다. "제주공항에 내렸을 때, 햇빛이 너무 강렬해서 모든 것이 누렇게 보였다. 제주를 한 색으로 표현한다면 바로 이 누런색이다." 황토색 바탕은 미학적 결정이 아니라 감각적 필연이다. 그리고 이 귀환은 단순한 지리적 이동이 아니다. 출발점과 귀환점이 일치하는 그 구조 자체가 풍토적 귀속(belonging)의 완성이다.
3. 이론적 근거 — 와쓰지 데쓰로의 풍토론과 비교 철학적 발견
변시지의 예술이 왜 K-모더니즘의 원류로 읽혀야 하는가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틀은 와쓰지 데쓰로(和辻哲郎)의 풍토론이다.
와쓰지는 1935년 『풍토: 인간학적 고찰』에서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비판적으로 전개했다. 하이데거가 인간 존재를 시간성(Zeitlichkeit)으로 규정했다면, 와쓰지는 공간성, 즉 풍토적 조건이 시간성과 동등하게 인간 존재를 구성한다고 주장했다. 와쓰지에게 풍토는 인간이 그 안에 있는 객관적 환경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 구조 안에 있는 것이다. 기후, 지형, 빛의 조건이 인간의 감각과 정서와 사유 방식을 형성한다.
변시지가 와쓰지를 읽었다는 기록은 없다. 이 연결은 이론가의 사후적 구성이다. 그러나 이것이 이 연결을 무효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사실이 더 중요한 주장을 가능하게 한다. 와쓰지가 개념화한 것을 변시지가 독립적으로 실천했다면, 이것은 두 개의 다른 문화적 맥락에서 동일한 구조의 사유가 독립적으로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영향 관계의 주장이 아니라 비교 철학의 발견이다. "변시지가 와쓰지를 실천했다"가 아니라 "와쓰지의 풍토론과 변시지의 회화적 실천은 동아시아의 공통된 존재론적 감각을 각자의 방식으로 현현했다."
이 공명은 동아시아 미술사에서 더 넓은 계보와 연결된다. 20세기 중국 화가 황빈홍은 전통 문인화의 묵법을 근대적 회화 감각으로 재구성하면서 특정 산천의 기후와 빛이 신체를 통과한 것이 그의 먹의 층위라고 말했다. 일본 모노하와 한국 단색화의 공명도 유사한 구조를 보여준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도 했지만, 각각 독립적인 문화적 토대를 가진 채 서구 모더니즘의 물질과 행위 중심성에 대응하는 유사한 감각이 동시적으로 발생했다.
와쓰지가 하이데거를 비판하면서 시간성을 공간성으로 보완했다는 것은, 서구 철학의 개념 틀 안에서 비서구적 감각이 서구 철학을 비판하는 자원이 된 사례다. 변시지의 작업은 이 철학적 비판을 이론 이전에, 이론 없이, 회화적 실천으로 수행한 것이다. 이론 이전의 신체적 실천이 철학적 명제를 살아있게 만드는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추상적 반박이 아니라 구체적 대안의 제시.
4. "소각"이 아니라 "승화" — 그러나 그 과정의 마찰을 함께 복원한다
변시지에 대한 기존 서술에서 종종 등장하는 "서구 기법을 버렸다"는 표현은 사실과 다르다. 황토색 바탕은 서양 유화 물감이고, 검은 선은 유화 매체 위에 놓인다. 기술적 기반은 끝까지 서양화다.
이 전환의 구조를 정확하게 포착하는 개념은 승화(昇華, sublimation)다. 화학에서 승화는 고체가 액체를 거치지 않고 직접 기체가 되는 현상이다. 물질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물질을 조직하는 원리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이다. 변시지의 전환이 정확히 이 구조를 따른다. 서구 기법이라는 물질은 남아있되, 그것을 운용하는 존재 원리가 서구 표현의 논리에서 풍토 존재의 논리로 전환되었다. 유화 물감을 쓰면서도 문인화의 감필법으로 그린다는 것 —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서구 기법을 충분히 체화한 뒤 그것의 원리 자체를 다른 원리로 교체해야 한다.
단색화와의 차이가 여기서 더 선명해진다. 단색화는 서구 추상의 그릇에 한국적 내용을 담았다. 형식은 서구, 내용은 한국의 정신적 원리. 변시지는 서구 기법의 물질을 보유하면서 그것을 운용하는 원리를 풍토에서 찾았다. 형식의 물질은 서구, 그것을 운용하는 문법은 풍토. 채움과 교체는 다르다.
그러나 승화라는 개념을 사용할 때 반드시 함께 말해야 하는 것이 있다. 승화는 결과의 구조를 설명하는 개념이지 과정을 설명하는 개념이 아니다. 제주 초기 2~3년은 이 승화가 일어나는 지난한 마찰의 시간이었다. 황토색 바탕과 검은 선이 가진 팽팽한 긴장은, 서구와 동양 사이의 투쟁이 완전히 끝난 자리가 아니라 그 투쟁의 흔적이 생산적으로 지속되는 자리에서 온다.
바람 속 지팡이 인물을 보면 이 긴장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황토색 바탕은 인물을 집어삼키지 않는다. 검은 선은 황토색을 부정하지 않는다. 인물은 바람에 저항하는 것도 쓸려가는 것도 아니다. 기울어지면서 지팡이를 짚은 자세 — 바람의 힘을 받아들이면서 그 안에서 자신의 방향으로 서 있는 것. 완전히 저항하거나 완전히 굴복한 자세는 정적이다. 기울어지면서 서 있는 자세만이 진동한다. 이 진동이 그림의 에너지가 된다.
이 복원이 K-모더니즘 전체에 주는 통찰은 넓다. 단색화의 마찰을 복원한다는 것은 박서보가 묘법에 도달하기 전에 겪었던 표현 방식의 위기와 실험들을 담론 안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민중미술에서 오윤의 목판화가 가진 거칠고 직접적인 선은 정치적 현실과의 마찰에서 왔고, 그 마찰이 사라지면 목판화는 미술 운동의 기념물로만 남는다. K-모더니즘의 어떤 흐름도 고통 없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마찰을 복원하는 것은 K-모더니즘을 완성된 양식들의 전시에서 살아있는 과정의 서술로 바꾸는 것이다.
5. 기준 B의 일반성 — 정선에서 변시지까지, 그리고 동시대 작가들
이 이론이 변시지를 위해서만 작동하는 순환론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기준 B가 다른 작가들에게 적용될 때 어떤 계보가 드러나는지를 살펴야 한다.
정선의 진경산수화는 기준 B의 가장 선명한 역사적 선례다. 18세기 조선 화단은 중국 남종화의 관념적 산수를 규범으로 삼았다. 정선이 금강산을 그렸을 때, 그것은 단순한 실경 묘사가 아니었다. 중국이라는 가상의 이상 풍토를 버리고, 조선의 화강암 지형과 빛을 미학 원리로 삼겠다는 선언이었다. 기준 B를 적용하면 진경산수화는 "중국 남종화 없이도 존재할 수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한국 회화의 거의 유일한 전통이다. 이 계보에서 변시지는 20세기의 정선이다. 외부 규범(중국 이상 산수 / 서구 추상)을 충분히 통과한 뒤, 자신의 풍토로 귀환하여 그 풍토를 미학 원리로 전환한 것.
이중섭을 기준 B로 읽으면 흥미로운 역설이 드러난다. 제주 서귀포의 게와 아이들은 해양 생태와 빛 속에서만 발생할 수 있었던 이미지다. 그러나 이중섭에게 제주는 귀속의 장소가 아니라 피난처였다. 그의 황소는 한반도라는 역사적 풍토 전체를 담지한다. 제주가 그에게 "잠깐의 해방감"으로 남는 이유는 그의 귀속이 제주라는 지형이 아니라 한반도라는 역사적 상처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중섭은 지형적 풍토가 아니라 역사적 풍토에 귀속되었다. 기준 B의 두 가지 층위 — 지형적 귀속과 역사적 귀속 — 가 여기서 분리된다.
김환기는 귀속과 이탈이 동시에 작동하는 가장 복잡한 사례다. 서울-파리-뉴욕을 이동하면서 그는 한국의 구체적 이미지(항아리, 달, 학)를 점차 추상화했다. 뉴욕 말기 점화 시리즈는 이탈을 통해 귀속에 도달한 역설적 형태다. 그의 점들이 특정 풍토의 지형에서 직접 온 것은 아니지만, 귀향하고자 하는 기억의 풍토를 담고 있다는 의미에서 기준 B의 변형된 형태를 충족한다. 기억의 귀속.
이응노는 신체적 귀속의 사례다. 프랑스에서 동양의 서예 원리로 앵포르멜을 전개한 그의 미학은 먹과 붓의 신체적 운동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특정 장소의 기후가 아니라 신체에 내면화된 문화적 기층이 그의 풍토다.
이 네 작가를 나란히 놓으면 기준 B는 단일한 기준이 아니라 스펙트럼임이 명확해진다. 지형적 귀속(변시지), 역사적 귀속(이중섭), 기억의 귀속(김환기), 신체적 귀속(이응노). 이 네 가지 귀속 양식이 한국 현대미술의 풍토적 자기언어 탐색의 네 형태를 이룬다. 그리고 이 스펙트럼 안에서 변시지가 기준 B의 가장 순수하고 일관된 형태를 구현했다는 것이 더욱 선명해진다. 다른 세 작가의 귀속이 변형되거나 복합적인 형태를 취한다면, 변시지의 귀속은 지형과 기후가 그대로 미학 원리가 되는 가장 직접적인 형태이기 때문이다.
이 방법론이 기존 미술사의 "서구 수용 대 민족주의" 이분법을 어떻게 넘어서는가. 기존 대립은 미술을 외부와의 관계로만 정의한다. 그러나 귀속/이탈의 축은 외부와의 관계가 아니라 자신이 속한 풍토와의 관계를 묻는다. 서구를 완전히 받아들인 작가도 기준 B를 충족할 수 있고, 민족주의를 표방한 작가도 기준 B와 무관할 수 있다. 이 방법론은 수용/거부의 축을 귀속/이탈의 축으로 교체함으로써, 제3의 계보 서술 원리를 제안한다.
6. 글로컬리즘의 시대와 원류 서사의 현재적 긴급성
롤랜드 로버트슨이 정식화한 글로컬리제이션(glocalization) 개념의 핵심은 "지역이 세계화에 저항한다"는 방어적 논리가 아니라 "지역적 특수성이 세계적 보편성의 생산 조건이 된다"는 능동적 논리다. 동화적 번역과 확장적 번역의 차이가 이 논리와 정확하게 대응한다.
단색화의 국제적 성공은 동화적 번역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것은 서구 추상과 같은 종류의 미술이다"라는 방식. 이것은 기존 지도 위에서 한국의 위치를 찾는 것이다. 변시지가 지향하는 방향은 확장적 번역이다. "이것은 당신이 아직 갖지 않은 경험의 언어다"라는 방식. 이것은 지도 자체를 새로 그리는 것이다. 로버트슨이 말한 "지역이 세계를 생산한다"는 것은 정확히 이 확장적 번역의 구조다.
타이밍의 문제도 중요하다. 이 이론이 1980년대에 제출되었다면, 단색화가 한국 미술의 유일한 국제적 출구이던 그 시기에 "단색화는 기준 B의 K가 아니다"라는 주장은 한국 미술의 성취를 부정하는 것으로 읽혔을 것이다. 그러나 단색화의 국제적 위치가 확립되고, 동시에 서구 중심 모더니즘 서사 자체가 글로벌 담론에서 근본적으로 비판받기 시작한 지금, 이 이론은 단색화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K-모더니즘의 스펙트럼을 더 풍부하게 만드는 것으로 읽힌다.
그러나 타이밍은 이 이론의 조건이지 근거가 아니다. 기준 B는 글로컬리즘 담론이 쇠퇴하더라도 유효하다. 이론의 뼈대가 담론보다 단단할 때, 이론은 담론의 변화 속에서도 살아남는다.
결론: 원류는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순수성의 문제다
변시지를 K-모더니즘의 원류로 부르는 것에 대한 반론은 두 방향에서 온다. 단색화가 더 넓은 국제적 영향력을 가졌다는 것, 그리고 미술사 교과서가 아직 변시지를 그 자리에 놓지 않는다는 것.
첫 번째 반론에 대해. 영향력은 원류의 기준이 아니다. 더 널리 읽힌 번역본이 원전을 대체할 수 없듯, 더 넓은 국제적 영향력을 가진 단색화가 풍토 모더니즘의 원형을 대체하지 않는다. 원류는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순수성의 문제다.
두 번째 반론에 대해. 미술사 교과서는 이미 일어난 일을 기술하고, 이론은 앞으로 어떻게 읽혀야 하는지를 제안한다. 오쿠이 엔위저가 도쿠멘타 11을 통해 비서구 미술을 동시대성의 언어로 재프레이밍했을 때, 그것은 미술사 서술이 아니라 큐레이토리얼 이론의 구성이었다. 미술사가 이론을 따라간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었다. 이 에세이도 같은 방향에서 읽혀야 한다.
이 이론이 K-모더니즘을 읽는 방식 자체를 바꿀 수 있을 때, 그것은 변시지라는 한 작가의 재조명을 넘어선다. 세계 미술이 장소와 풍토와 신체의 관계를 이해하는 방법 자체를 바꾸는 것 — 그것이 이 이론이 세계 미술사에 제출하는 'K'다. 서구 모더니즘과의 관계에서 정의되는 K도, 동아시아 전통의 계승으로 정의되는 K도 아닌, 특정한 기후와 지형과 빛이 인간의 신체를 통과하여 회화의 원리가 되는 과정 — 그 과정이 어느 풍토에서든 발생할 수 있다는 보편성을 가지면서, 변시지의 제주에서 가장 순수하게 구현되었다는 특수성을 갖는 그 'K'.
풍토가 존재 원리가 된다는 것. 그것을 회화적 언어로 증명한 작가가 있다는 것. 그 증명이 철학보다 먼저, 이론보다 먼저, 캔버스 위에서 이루어졌다는 것. 이것이 변시지가 세계 미술사에 제출하는 주장이다.
이 에세이는 완성된 미술사 서술이 아니라 이론적 제안이다. K-모더니즘의 'K'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라는 선행 질문을 담론 안에 제출하고, 그 정의에 따라 변시지가 어떤 자리에 서는지를 논증한다. 이 제안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작품 연구, 비교 분석, 그리고 국제 큐레이터 및 연구자들과의 대화를 통한 검증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