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적 맥락에서 본 변시지(邊時志)

폭풍의 연대기, 경계의 미학: 변시지 예술 분석

폭풍의 연대기, 경계의 미학:
미술사적 맥락에서 본 변시지(邊時志) 예술 분석

구술 채록 자료, 저서 『예술과 풍토』, 비평 자료 등 방대한 문서를 심층적으로 분석한 결과, 화가 변시지(1926-2013)는 한국 근현대사의 격동 속에서 동서양 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지역적 특수성(Locality)을 보편적 예술 언어로 승화시킨 거장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의 예술적 궤적은 20세기 세계 미술사의 주요 화두인 모더니즘의 수용과 극복, 정체성 탐구, 그리고 실존주의적 성찰과 깊이 맞닿아 있습니다.

1. 변시지의 예술적 궤적: 정체성을 향한 여정

변시지의 삶과 예술은 일본(오사카/도쿄), 서울, 제주라는 세 개의 시공간적 축을 따라 극적으로 변화했습니다.

가. 도쿄 시기 (1940년대–1957): 서구 모더니즘의 습득과 이방인의 성공

6세에 일본으로 건너간 변시지는 오사카미술학교와 데라우치 만지로(寺内萬治郎) 문하에서 서구식 미술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는 당시 일본 화단의 주류였던 광풍회(光風會)를 중심으로 활동했는데, 이는 인상주의의 외광 효과를 일본식 아카데미즘과 결합한 양식이었습니다.

23세에 광풍회 최고상을 수상하며 기술적 완성을 인정받았으나, 이는 동시에 그에게 실존적 고민을 안겨주었습니다. 구술 채록에서 드러나듯, 이 시기는 '황금빛 족쇄'와 같았습니다. 그는 이방인으로서의 소외감과 자신의 예술적 뿌리에 대한 깊은 갈증을 느꼈습니다. 이는 서구 모더니즘을 습득한 비서구권 예술가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모방과 독창성 사이의 긴장'을 보여줍니다.

나. 서울 시기 (1957–1975): 과도기적 모색과 선(線)의 자각

귀국 후 서울에서 변시지는 한국적 미의 본질을 탐구했습니다. 고궁 풍경에 천착하며 '비원파(秘苑派)'로 불리기도 했으나, 이는 여전히 서구적 기법으로 한국적 소재를 다루는 과도기였습니다. 동시에 구술 채록에서 언급된 정치적 감시와 화단의 냉대는 그를 고립시켰습니다.

이 시기의 중요한 성과는 색채 중심의 서양화에서 벗어나 동양 미학의 근간인 '선(線)'의 중요성을 자각했다는 점입니다.  그가 "선(線)은 색(色)을 버리는 데 있다"는 미학적 진리를 획득합니다. 이는 형태의 본질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다. 제주 시기 (1975–2013): 풍토(風土)와의 합일과 독창성의 완성

50세에 고향 제주로의 귀환은 그의 예술 인생에서 결정적인 혁명이었습니다. 그는 『예술과 풍토』에서 밝혔듯, 예술이 자신이 발 디딘 땅의 환경과 분리될 수 없음을 깨닫고 제주를 자신의 미학적 근거로 삼았습니다.

이 시기에 그의 독창적인 '제주 화풍'이 완성됩니다.

  1. 황토빛(黃土色)의 미학: 그는 서양 유화의 다채로운 색을 버리고, 제주의 흙과 빛, 그리고 그 땅에 새겨진 삶의 애환을 상징하는 황토색을 주조색으로 삼았습니다. 이는 단순한 색채 선택이 아니라, 풍토의 본질을 담아내려는 시도였습니다.
  2. 검은 선(墨線)의 힘: 황토빛 화면 위를 가로지르는 강렬한 검은 선은 형태의 윤곽을 넘어, '바람'의 에너지와 생명력을 시각화합니다. 이는 유화 물감의 물성을 변형시켜 동양화의 필선(筆線)과 기운생동(氣韻生動)을 구현한 혁신적인 성과입니다.

제주 시기의 작품 속 구부정한 노인, 왜소한 조랑말, 휘몰아치는 폭풍은 자연의 위대함 앞에 선 인간 존재의 근원적 고독과 끈질긴 생명력을 상징합니다.

2. 세계 미술사적 맥락에서의 변시지

변시지의 예술은 세계 미술사의 다양한 흐름과 교차하며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합니다.

가. 실존주의 미학과 고독의 형상화

변시지의 후기 작품에 나타나는 황량한 풍경과 고독한 인물상은 전후(戰後) 세계 미술을 관통했던 실존주의(Existentialism) 미학과 깊이 공명합니다. 황토빛 대지 위를 지팡이에 의지해 홀로 걷는 노인의 모습은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의 조각상처럼, 부조리한 세계 속에 내던져진 인간 존재의 근원적 고독을 형상화합니다. 변시지는 제주의 풍경을 통해 외부 세계의 재현이 아닌, 인간 실존의 보편적 조건을 탐구했습니다.

나. 동서양 미학의 창조적 융합: 유화와 필선

변시지의 가장 중요한 미술사적 기여는 동서양 회화의 경계를 허문 독창적인 융합 방식에 있습니다. 20세기 중반, 서구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예: 프란츠 클라인, 마크 토비)은 동양의 서예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반면 변시지는 서양의 주재료인 유화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그 물성을 변형시켜 동양화의 핵심인 필선의 미학과 정신성을 구현했습니다. 그의 검은 선은 형태의 윤곽선이 아니라, 기(氣)의 흐름 그 자체입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그가 이러한 융합을 추상이 아닌 구상(具象)의 영역에서 이루어냈다는 사실이며, 이는 세계 미술사에서 드문 성과입니다.

다. 지역주의(Regionalism)의 승화와 보편성의 획득

변시지는 자신의 예술이 철저하게 제주의 '풍토(風土)'에 뿌리내려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20세기 모더니즘의 보편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난 지역주의의 강력한 사례입니다.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가 뉴멕시코의 사막에서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했듯이, 변시지는 제주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가장 지역적인 것(바람, 현무암, 조랑말)을 통해 가장 보편적인 가치(인간의 실존, 자연과의 관계)를 탐구했습니다. 그의 '풍토 미학'은 지역성을 기반으로 한 독자적인 모더니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비서구권 예술의 중요한 성취입니다.

3. 결론: 경계를 넘어선 독보적 거장

변시지는 일본 화단과 한국 화단, 서양화와 동양화, 중심과 주변이라는 이분법적 경계 속에서 끊임없이 투쟁했던 예술가입니다. 그는 주류 미술계의 유행에 편승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실존적 고민과 자신이 발 딛고 선 땅의 풍토에 충실했습니다.

그 결과 탄생한 그의 '제주화'는 서구 모더니즘의 수용과 극복, 동양 정신의 현대적 계승이라는 복합적인 과제를 독창적인 조형 언어로 풀어낸 기념비적인 성과입니다. 황토빛과 검은 선으로 직조된 그의 폭풍의 풍경은 지역성을 넘어, 시대와 국경을 초월하여 인간 존재의 근원적 조건과 마주하게 하는 보편적 울림을 지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