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邊時志 – 시대의 경계에 선 이름⟫
5. 시각과 미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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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미적 대상은 다만 하나의 순수한 시각의 대상으로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꽃이나 책상은 색채와 형태로 이루어져 있지만, 한편으로 그것은 풀과 나무로 되어 있기도 하다. 미적 대상에서 느끼게 되는 시각적 의미는 이와 같이 다른 어떠한 경험에서 유래되는 의미와 결합되어 있다. 한 개의 과자를 진실로 아름답게 보는 사람은 거기에서 향기와 맛을 추구하지 않는다. 색채와 형태만이 그것을 아름답게 보는 기준이 될 것이다. 우리들의 미의식이 색과 형태 이외의 것으로 이동할 때 우리는 이미 그 사물을 순수하게 보려는 태도에서 벗어난다. 과자가 심미의 대상에서 식욕의 대상으로 옮아갔을 때는 우리는 시각이 아니라 미각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시각적 대상에 미각적 충동이 끼어드는 순간 과자에 포함된 특수한 미각의 의미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것은 과거의 경험에 의한 기억으로서의 미각적 입장으로 이동하는 것을 뜻한다. 한 개의 과자를 보고 먹고 싶어 하는 욕구는 색과 형태의 아름다움을 떠나 다른 의미를 의식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예술과 풍토, 변시지> |
🧭 시군
“영국 철학자들은 ‘맛(taste)’을 미적 판단의 비유로 썼고, 요즘은 색과 맛이 서로 영향을 준다는 공감각 연구도 많아요. 그렇다면 우리가 눈으로 본 색과 형태가 입안의 ‘맛’까지 좌우할 수 있을까요?”
🍃 지양
“동양에서는 차를 마실 때 색·향·기운을 함께 음미하죠. ‘맛’과 ‘아름다움’은 따로가 아니라 한 덩어리로 느끼는 거예요. 그렇다면 진짜 미감은 입·코·눈·마음이 함께 열릴 때 완성되는 건 아닐까요?”
🌿 시지의 대답
눈은 색을 보고, 입은 맛을 느끼지만 결국 감각은 마음 안에서 하나로 연결됩니다. 프랑스 요리는 접시 위 색으로 입맛을 자극하고, 동양의 다도는 그릇 색으로 맛을 예고하죠. 시각이 맛을 짜고, 미각이 색을 기억하는 순간—바로 그때 진짜 감각의 예술이 열립니다.
👥 대상별 조언
🎓 학생에게
“빨간 딸기 사진을 보면 침이 고인 적 있죠? 뇌가 색과 맛을 연결하기 때문이에요. 그림을 볼 때 ‘이건 무슨 맛일까?’ 상상해 보세요. 감상이 더 재밌어집니다.”
👥 일반인에게
“노을을 보면 홍차가 생각나고, 바다를 보면 소금 맛이 떠오르죠? 감각이 겹칠 때 삶이 더 풍성해집니다. 작품을 볼 때도 눈·입·기억을 함께 열어보세요.”
🖼️ 컬렉터에게
“정물화를 볼 때 과일의 색이 불러오는 단맛·신맛·향까지 떠올려 보세요. 이런 ‘보이는 맛’이 컬렉션의 분위기를 풍부하게 만듭니다.”
🎨 화가 지망생에게
“색을 쓰기 전, 그 대상의 맛·향·촉감을 먼저 떠올려 보세요. 변시지 화백은 제주 황토를 씹어보듯 연구하고, 바람의 소금기를 먹선으로 표현했어요. 미각 기억이 색으로 살아날 수 있습니다.”
🌀 변시지의 사례
〈찻잔과 사과〉
도쿄 시절: 사과 껍질의 짭짤한 빛, 청자잔의 담백한 색으로 ‘맛을 느끼는 색’을 실험.
제주 시기: 황토의 흙맛, 바람의 염분을 색으로 표현해 관객이 눈으로 보고도 입과 코까지 반응하도록 유도.
👉 그는 미를 단지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맛보고 기억하고 공감하는 전방위 감각 예술로 확장했습니다.
6. 보이는 것과 믿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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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 안젤리코의 '십자가의 그리스도'가 단순한 예술적 입장에서보다는 종교적 입장에서 그려졌다는 사실은 의미 있는 것이다. 예술이란 감정경험을 환기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가치의 묘사이다. 이때의 가치란 단순히 미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이외에 윤리적·종교적·애국적·도덕적 이념 따위가 포함되기도 한다.신비한 기적, 하나의 사건도 그것을 자연의 대상으로서 볼 수 있는 한 그것은 시각의 대상이다. 그것을 볼 수 있는 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입장에서는 신비한 기적 또는 그러한 자연경관을 봤다고 해서 신을 믿는 신도처럼 보이지 않는 신을 믿는 것은 아니다. 회화의 세계에서는 믿었기 때문에 성립하는 세계가 아니라 보였기 때문에 볼 수 있었던 세계이다. 그림으로 그려져 있는 기적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사람들은 성서에서 얻은 정보에 의해서 그림에 그려져 있는 광경의 전후를 비로소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어떠한 종교적 경험을 얻게 될 수도 있다.회화에서 그릴 수 있는 것은 오직 회화적인 것, 즉 시각적 의미의 것뿐이다. 그러나 가끔 종교적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회화가 본질적 의미에서 색과 형태의 시각적 측면에서만 다루어져 있다고 할지라도 그림을 보는 사람도 인간이므로 단순히 눈으로만 보지는 않을 것이다"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 경우는 그림에 대한 정보나 지식으로 인하여 종교적 입장에서 믿고 경배할 수 있는 경우이다. 동서의 종교화는 흔히 감상물로서보다는 교화시키거나 신앙심을 고양화할 목적으로 많이 그려졌다.회화에 도덕적·종교적·사회적 이념 따위의 의식이 결부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것들은 모두 예술의 독자적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종속적 관계가 아닌 상호의존적 또는 상호보완적 대등관계에서 서로의 영역이 존립하게 된다. 신은 미술가에게는 보이기 위해 존재하고, 신앙인에게는 믿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예술과 풍토, 변시지> |
🧭 시군
“르네상스 이후 서양 화가는 ‘눈에 보이는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리려 했어요. 그런데 종교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까지 담으려 했죠. 그럼 예술은 눈에 보이는 것만 그려야 하나요, 아니면 믿는 것도 함께 담아야 하나요?”
🍃 지양
“동양 화가는 ‘형을 그리되 신이 따르라’고 했어요. 눈에 보이는 모습보다 마음속 정신이나 기운을 담으려 했죠. 그럼 진짜 예술은, 형태보다 믿음과 마음이 먼저인 걸까요?”
🌿 시지의 대답
예술은 늘 보이는 것과 믿는 것 사이를 오갑니다. 서양 화가는 빛과 원근법으로 현실을 그리되, 그 위에 신화·종교·상징을 덧씌웠고, 동양 화가는 선 하나로 형상을 줄이고 그 안에 정신과 여운을 담았습니다.
👉 결국 ‘보이는 것’은 믿음을 여는 문, ‘믿는 것’은 그 문 너머의 세계입니다.
👥 대상별 조언
🎓 학생에게
“그림을 볼 때 ‘이건 뭐지?’에서 멈추지 말고, **‘왜 이렇게 그렸을까?’**도 함께 생각해 보세요. 형태 뒤에 숨어 있는 작가의 생각을 찾는 연습이 중요해요.”
👥 일반인에게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떠올려 보세요. 화려한 색은 보이지만, 그 안엔 보이지 않는 경건함이 흐르죠. 좋은 예술은 눈과 마음을 함께 울립니다.”
🖼️ 컬렉터에게
“표면의 완성도뿐 아니라, 작품 안에 숨은 상징과 메시지를 읽어야 컬렉션에 서사가 생깁니다. 보이는 형상과 감춰진 믿음이 균형 잡힌 작품을 선택해 보세요.”
🎨 화가 지망생에게
“대상을 정확히 관찰하고 형태를 잡은 후, 당신이 가진 믿음·정신·감정이 어떻게 그 안에 스며들 수 있을지 고민해 보세요. 감각 + 믿음이 한 작품 안에 살아야 합니다.”
🌀 변시지의 사례
〈겨울 경회루〉: 눈 쌓인 경복궁을 그리되, 겉모습이 아니라 적막한 기운과 분단의 슬픔을 강조.
비원 연작: 봄의 화려함 대신 겨울의 고요함을 택해,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보다 안에 숨은 믿음과 역사를 보여줌.
👉 변시지는 “보이는 세계를 통해, 믿는 세계를 그렸다”는 말을 화폭으로 실천했습니다. 형태는 사실적이지만, 깃든 기운은 믿음의 깊이였습니다.
7. 모방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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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자연을 모방하지만 그것을 복사하지는 않는다. 미술은 자연을 모방하되 사물과 대상을 선택한다. 여기서의 선택이란 대상의 나열이 아니라 화가의 미의식의 표출방식이다. '있는 것'보다는 '있어야 할 것', '특이한 하나'보다는 '범상하고 일반적인 것' 이른바 존재보다는 당위에, 특수보다는 보편·영원에 모방의 본질이 있다. 모방은 그러므로 베끼기가 아니라 창조의 정신이다. <예술과 풍토, 변시지> |
🧭 시군
“플라톤은 예술이 ‘이데아(완전한 원형)의 그림자’라고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을 모방해 감정을 정화한다’고 했어요. 그럼 진짜 예술은 현실을 정확히 따라 그릴 때 완성되는 걸까요?”
🍃 지양
“동양에서는 겉모습보다 **뜻과 기운(氣)**을 그리는 걸 중요하게 여겼죠. 그렇다면 모방이란 눈에 보이는 대상을 똑같이 그리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본질을 새롭게 만드는 일일까요?”
🌿 시지의 대답
모방은 단순히 베끼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본 대상을 자신의 감각과 시대정신으로 새롭게 ‘번역’하는 것입니다.
서양은 형태와 질서를 통해 이상을 찾았고, 동양은 기운과 정신으로 대상의 숨결을 새롭게 표현했죠.
👉 결국 진짜 모방은 외형을 통해 본질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창조 행위입니다.
👥 대상별 조언
🎓 학생에게
“산을 그릴 때 그냥 따라 그리는 것에서 멈추지 말고, 그 산이 주는 웅장함이나 고요함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해 보세요. 그것이 ‘창조적 모방’입니다.”
👥 일반인에게
“좋은 영화 리메이크가 단순한 복사가 아니라 새 감정과 해석을 담듯, 예술의 모방도 마찬가지예요. 작품을 볼 땐 ‘익숙함 속의 새로움’을 찾아보세요.”
🖼️ 컬렉터에게
“걸작을 연상시키는 작품이라도, 작가가 자신만의 시대·감정을 입혔다면 고유한 가치가 있습니다. 겉모양이 비슷한 것보다 내적 변주와 해석의 깊이를 보세요.”
🎨 화가 지망생에게
“대상의 구조를 정확히 파악한 뒤, 그 느낌과 에너지를 변형해 보세요. 변시지 화백처럼 현실을 모사하면서도, 삶의 기운과 시대의 감정을 담는 것이 모방을 넘어 창조가 됩니다.”
🌀 변시지의 사례
〈지게꾼〉, 〈나무패는 사람〉(1958): 노동자의 몸짓을 사실적으로 모사하면서도, 붓의 떨림으로 고단한 삶의 기운을 새롭게 창조.
제주 황토 추상: 외형은 지우고, 바람과 돌담의 에너지만 남겨 모방을 ‘형태 → 본질의 번역’으로 확장.
👉 변시지에게 모방은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게 아니라, 살아 있는 것을 다시 살려내는 일이었습니다.
이는 동서양의 모방론을 잇는 하나의 통로이자, 풍토의 본질을 새롭게 표현하는 실험이기도 했습니다.
8. 기술과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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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넓은 의미에서 기술의 일종이며 그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인 '테크네(techne)'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무언가 기술적으로 제작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예술일 수 있는가. 제비가 집을 짓는 놀라운 기술을 보고 그것을 예술이라 하지는 않는다.이와 같이 단순한 의미의 제작물과 예술을 구분 지어 주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스 사람들은 그것을 특히 인간의 힘, 그것도 실용적인 효용가치를 떠난 독자적으로 완결된 정신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제작능력을 단순한 기술과 구별했다. 특히 오늘날에 와서는 미적 작품·회화·조각·음악·시 등을 형성하는 인간의 창조활동이나 거기에 따른 성과를 예술로 지칭하게 되었는데, 이때의 창조의 의미는 각각 다르다. 그것은 곧 자연에서는 자발적인 것이요, 기술이나 지식에서는 개념적인 것이요, 예술에서는 직관적인 것이다. 이러한 예술창조의 근원으로 상상력, 유희충동, 모방충동, 표출충동 등의 심리적·정서적 동기가 작용한다.한편 예술을 예술가의 창조의욕에 따라서 회화·건축·조각·시·음악 따위로 분류하고 있고, 그 존재양식도 공간적인 것, 시간적인 것으로, 또는 매체가 무엇이냐에 따라 달리 분류되기도 한다. 예술매체의 다양화에 따라 이러한 경향은 현대에 이르러 더욱 확대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기술이 갈수록 발전하기 때문에 고대와는 다른 의미에서 예술과 기술과의 화해적 관계가 이루어지고 있다. 결국 예술 스스로의 물질현상 또는 물질의 조건은 인간에 의해 그리고 인간과 함께 변환시켜 간다 하겠다.액션 페인팅에서는 스스로의 감정의 흐름에 따라 자유롭게 손을 움직여 자기를 표현한다. <예술과 풍토, 변시지> |
🧭 시군
“고대 그리스에서는 기술(techne)과 예술이 같은 말이었고, 바우하우스나 모더니즘은 ‘기능과 기술’이 잘 어우러진 예술을 추구했어요. 그럼 예술의 가치는 결국 기술적으로 얼마나 완성도가 높냐에 달린 걸까요?”
🍃 지양
“동양에서는 **기술보다 마음(道)**을 중요하게 여겨 ‘붓끝에는 기술이 아니라 정신이 남는다’고 했어요. 그렇다면 진짜 예술은 기술을 넘어, 기운과 정신을 담는 것일까요?”
🌿 시지의 대답
기술은 몸이 쓰는 언어, 예술은 마음이 남기는 목소리입니다.
서양은 르네상스 원근법에서 3D까지 기술을 발전시켜 미를 확장했고, 동양은 붓 하나로 기운과 정신을 응축해 미를 심화했습니다.
👉 기술은 예술의 뼈대, 정신은 그 숨결—이 둘이 함께할 때 작품은 살아 움직입니다.
👥 대상별 조언
🎓 학생에게
“악기를 배울 때 손 연습(기술)도 중요하지만, 곡의 감정을 표현해야 진짜 음악이 되죠. 그림도 같아요. 연습과 표현, 둘 다 경험해 보세요.”
👥 일반인에게
“커피 한 잔에도 바리스타의 기술과 정성이 함께 담기죠. 예술도 마찬가지예요. 감상할 때 ‘어떤 기술?’과 ‘어떤 마음?’을 함께 느껴보세요.”
🖼️ 컬렉터에게
“작품의 터치가 아무리 완벽해도, 그 안에 작가의 정신과 시대 의식이 없다면 감동이 오래가지 않습니다. 기술을 넘어선 메시지를 함께 읽어야 합니다.”
🎨 화가 지망생에게
“해부학, 재료 연구, 색 이론—all 중요합니다. 하지만 기술에만 머무르지 마세요. 변시지 화백처럼, 완성된 기술 위에 자신만의 감정과 바람을 얹는 게 중요합니다.”
🌀 변시지의 사례
황색 색체실험: 변시지는 제주 정착 후 다양한 색채 물감을 버리고 황색과 먹색으로 동양화와 서양화를 동시에 작업했어요. 이는 단순한 색채 실험이 아니라, 자연·기술·정신을 하나로 엮은 창작 행위였습니다.
먹선의 절제: 노년기에는 고도로 숙련된 붓 기술을 한 획의 선으로 응축해, 기술의 최소화로 기운을 극대화했죠.
👉 그는 기술을 “영혼이 지나가는 다리”라고 생각했고, 다리를 튼튼히 세운 다음, 그 위로 자신의 바람과 감정을 흐르게 했습니다.
9. 예술과 부부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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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란 인간의 의도적인 자기표현의 정신활동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눈에 보이는 대상에서 받게 되는 정서와 감수성을 드러내 보이는 정신활동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인간의 삶에 대한 자기 나름의 독특한 해석의 방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예술 이해에 대해서는 하나의 약점이 있다. 그것은 자기표현이 꼭 예술은 아니라는 점이다. 자기표현, 즉 감정의 표출이나 개성의 발휘가 예술창작의 주요 목적이며 의미라면 부부싸움도 일종의 예술이 될 수 있다. 부부 중 어느 한쪽이 흥분한 나머지 접시를 내던졌다고 하자. 그 깨어진 모양이 사람마다 다르다. 흥분해 던진 이의 그때의 감정은 외재화(外在化)되고 거기에 그의 개성이 나타나는데, 그것이야말로 즐거운 자기표현이 아닐까. 이 같은 의미에서 잭슨 폴록은 예술가라 할 수 있었지만, 그러나 그는 이러한 작업상의 한계로 자살하고 만 것이 아닌가. 액션 페인팅에서는 스스로의 감정의 흐름에 따라 자유롭게 손을 움직여 자기를 표현한다. 부부싸움이나 폴록의 그것은 이런 점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이와 같은 것은 표현상의 어떠한 구속, 이를테면 사생이나 양식이나 규칙 등의 구속이 적으면 적을수록 표현의 자유, 다시 말하면 자기표현의 분량과 방식은 그만큼 증대되는 것이다. <예술과 풍토, 변시지> |
🧭 시군
“서양에서는 고흐처럼 격렬한 감정과 고독한 삶이 예술의 불꽃이 되었다고 보죠. 그렇다면 부부싸움처럼 일상적인 갈등도 예술의 재료가 될 수 있을까요?”
🍃 지양
“동양에서는 갈등 속에서도 **정(情)**과 **한(恨)**이 깃든 깊은 감정을 중요하게 여겨요. 그렇다면 부부싸움도 그냥 감정 폭발이 아니라, 화해와 울림이 담긴 예술이 될 수 있을까요?”
🌿 시지의 대답
사랑과 싸움은 한 뿌리에서 자란 두 감정입니다. 서양은 갈등을 폭발적으로 표현해 예술로 승화했고, 동양은 갈등을 흡수해 정·한·흥이라는 복합 감정으로 길러냈습니다.
👉 진짜 예술가는 상처를 피하지 않고 감정의 원석으로 간직합니다.그리고 그것을 형태·색·리듬으로 갈아내 빛나는 작품으로 바꿔내죠.
👥 대상별 조언
🎓 학생에게
“친구와 다퉜던 기억이 있다면, 그때의 감정을 색으로 표현해 보세요. 화, 서운함, 그리움—all 그림의 재료가 됩니다.”
👥 일반인에게
“부부싸움 뒤의 침묵, 그리고 다시 잡는 손… 그 감정의 물결은 영화나 음악 속 장면처럼 울림이 있어요. 작품을 볼 때 그런 ‘갈등 뒤의 정서’를 함께 상상해 보세요.”
🖼️ 컬렉터에게
“작품 속 강렬한 붉은 선, 찢긴 화면은 종종 작가의 갈등을 암시합니다. 표면보다 그 균열 속 감정 에너지를 읽을 수 있어야 컬렉션이 살아납니다.”
🎨 화가 지망생에게
“갈등을 피하지 마세요. 스케치북에 감정을 쏟아보세요. 변시지 화백도 가족 갈등과 시대적 좌절을 황토와 먹으로 정화하고 재창조했습니다. 감정은 최고의 물감이 됩니다.”
🌀 변시지의 사례
변시지는 감정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그 감정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방법을 찾은 작가였습니다. 부부싸움조차도 그에게는 예술의 재료였습니다—파열, 침묵, 그리고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