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지의 그림으로 가는
마흔 세 걸음 - 황학주
삼십 대 중반, 인사동 한 골목 초입에 있는 어느 찻집에서 벽에 걸린 변시지 화백의 그림 두 점을 보았다. 화가의 이름도 모르면서 덜컥 처음 보는 노란색 주조의 아름다움에 끌려 둘 중 하나를 내게 팔아달라고 찻집 여주인에게 사정을 했다. 차와 함께 술을 파는 그 가게에 변시지 화백이 종종 들르시고 술값 대신 놓고 간 것인지 선물로 준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나는 결국 그 노란색 그림 한 점을 내 손에 넣을 수가 있었다.
그로부터 꽤 긴 시간이 흘러 나는 변시지 화백의 고향이기도 한 제주에 정착하고, 또 변시지 화백의 그림을 꽤 많이 볼 기회가 있었다. 오늘도 기다리기 좋은 곳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변시지의 그림을 읽는다.
나는 그분의 그림에 대해 이론적으로 무슨 말을 덧붙일만 한 사람이 못 되므로 이 책은 내 느낌과 생각과 감각에 다가오는 그림을 따라갈 뿐인 몇 마디 짧은 글들로 엮어질 것이다. 가능한 중요한 것들을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그냥 그림 속에 묻어두는, 지나치는 말들이 될 것이다.
2021년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