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폭풍을 삼킨 화가: 변시지의 예술과 실존
"시대상황이 한 화가를 완성했다"는 통찰은 변시지 화백의 예술 세계를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열쇠입니다. 그의 삶은 식민지(정체성의 상실), 2차 세계대전(파괴), 6.25 전쟁과 냉전(이념 대립과 분단), 그리고 4.3사건(내재된 상처)이라는 20세기 한민족의 고난을 그대로 압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그가 내렸던 예술적 결정들은 단순한 미학적 선택이 아닌, 생존과 실존을 위한 치열한 투쟁이었습니다.
1. 시대의 혼돈과 '구상(具象)'의 필연성
변시지 화백이 활동하던 1950~70년대 한국 화단은 서구의 추상미술, 특히 '앵포르멜(Informel, 비정형 추상)'이 휩쓸고 있었습니다. 6.25 전쟁의 참상을 겪은 젊은 작가들에게, 기존의 형상을 파괴하고 격렬한 물성과 행위로 내면의 상처를 토해내는 추상 작업은 시대정신의 발현이었습니다.
하지만 변시지는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지 않고 '구상'을 고집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시대적 역행이 아니라, 그의 경험에서 비롯된 필연적 선택이었습니다.
이유: '추상'을 넘어선 '현실'의 압도성
앵포르멜이 '파괴'와 '혼돈'을 표현하려 했다면, 변시지에게는 그가 겪은 현실 자체가 이미 파괴와 혼돈 그 자체였습니다. 식민지 소년으로 겪은 2차 대전의 공포, 귀국 후 마주한 6.25의 폐허와 이념 대립은 이미 형상을 알아볼 수 없는 '추상적 부조리'의 극치였습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혼돈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혼돈의 폐허 속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아 '존재'하는 무언가를 붙잡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람', '말', '나무' 같은 구체적인 '형상(구상)'이었습니다.
결론: 구상은 '휴머니즘'의 마지막 보루
모든 것이 파괴되고 이념으로 인간이 대체되는 시대에, 그가 고집한 '구상'은 인간성의 마지막 보루이자,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존재를 긍정하려는 실존적 태도였습니다. 그의 구상은 단순한 재현이 아닌, 시대의 폭력에 맞서 존재의 의미를 묻는 철학적 도구였습니다.
2. 정체성의 탐색과 '비원(祕苑)'
1945년 해방된 조국에 돌아왔지만, 그가 마주한 서울은 6.25 전쟁으로 다시 폐허가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식민지인'으로 자란 그에게 '조국'은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안착할 곳이 아니었습니다.
이유: 상실된 '원형(原型)'에 대한 갈망
그의 청년기는 '일본(타자)' 속에서 '조선인(자아)'이라는 정체성의 혼란기였습니다. 귀국 후에는 이념 대립 속에서 '조국'의 순수한 원형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이때 '비원(창덕궁 후원)'은 그에게 식민과 전쟁으로도 훼손되지 않은 '조선(한국)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공간이었습니다. 비원의 고궁과 정자는 서구화나 식민지화 이전의, 가장 한국적인 미(美)의 원형이자, 그가 찾고자 했던 정체성의 뿌리였습니다.
결론: '비원'은 정신적 귀향지
폐허(전쟁)와 혼란(냉전)의 한복판에서, '비원'은 그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정신적 귀향지였습니다. 그는 비원의 정적인 아름다움을 그리며 식민지 청년으로서 상실했던 자신의 문화적, 민족적 정체성을 스스로 재구축하려 했습니다.
3. '풍토(風土)'로서의 제주: 실존의 무대
1975년, 그는 모든 것을 뒤로하고 제주로 향합니다. 이는 단순한 이주가 아닌, 그의 삶을 완성하는 운명적 귀결이었습니다.
이유: 내면의 폭풍과 '풍토'의 공명(共鳴)
그가 제주에서 마주친 '풍토'는 아름다운 관광지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거친 바람, 검은 현무암, 고립된 섬이라는 원시적이고 가혹한 환경이었습니다.
이 제주의 '풍토'는 그가 평생 겪어온 시대적 시련(식민, 전쟁, 이념)의 '객관적 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이었습니다.
- 거친 바람: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몰아쳤던 20세기 역사의 폭력(전쟁, 식민 통치) 그 자체였습니다.
- 검은 현무암: 모든 것을 태우고 남은 상처(4.3의 비극, 6.25의 폐허)의 응축물이었습니다.
- 고립된 섬: 일본에서도, 서울에서도 이방인이었던 그가 느낀 '고독'의 궁극적인 공간이었습니다.
결론: '풍토'는 운명이자 실존의 무대
제주에서 그는 비로소 자신의 내면 풍경(시대적 트라우마)과 정확히 일치하는 외부 세계(제주의 풍토)를 만났습니다. 그는 이 가혹한 풍토에 맞서거나 도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견뎌내는 인간과 말을 그립니다.
제주의 풍토는 그에게 '운명' 그 자체였으며, 그 운명 속에서 고독하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실존의 무대'였습니다.
종합 결론
변시지의 예술 여정은 '정체성의 탐색(비원)'에서 시작하여 '실존의 증명(제주)'으로 완성됩니다.
- 식민지와 전쟁이라는 거대한 혼돈 속에서 그는 추상이 아닌 '구상(인간)'이라는 끈을 필사적으로 붙잡았습니다.
- 폐허가 된 서울에서 그는 '비원(전통)'을 통해 자신의 문화적 뿌리, 즉 정체성을 찾으려 했습니다.
- 그리고 마침내 '제주(풍토)'에서 그는 자신이 평생 겪어온 시대의 폭력과 고독이라는 '운명'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것을 견뎌내는 인간의 존엄성을 그려냈습니다.
결국 그가 제주에서 그린 것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식민, 전쟁, 분단이라는 20세기의 폭풍우를 온몸으로 삼키고도 꿋꿋이 서 있는 한 인간의 실존, 바로 그 자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