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보이는 것과 믿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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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 안젤리코의 '십자가의 그리스도'가 단순한 예술적 입장에서보다는 종교적 입장에서 그려졌다는 사실은 의미 있는 것이다. 예술이란 감정경험을 환기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가치의 묘사이다. 이때의 가치란 단순히 미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이외에 윤리적·종교적·애국적·도덕적 이념 따위가 포함되기도 한다.신비한 기적, 하나의 사건도 그것을 자연의 대상으로서 볼 수 있는 한 그것은 시각의 대상이다. 그것을 볼 수 있는 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입장에서는 신비한 기적 또는 그러한 자연경관을 봤다고 해서 신을 믿는 신도처럼 보이지 않는 신을 믿는 것은 아니다. 회화의 세계에서는 믿었기 때문에 성립하는 세계가 아니라 보였기 때문에 볼 수 있었던 세계이다. 그림으로 그려져 있는 기적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사람들은 성서에서 얻은 정보에 의해서 그림에 그려져 있는 광경의 전후를 비로소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어떠한 종교적 경험을 얻게 될 수도 있다.회화에서 그릴 수 있는 것은 오직 회화적인 것, 즉 시각적 의미의 것뿐이다. 그러나 가끔 종교적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회화가 본질적 의미에서 색과 형태의 시각적 측면에서만 다루어져 있다고 할지라도 그림을 보는 사람도 인간이므로 단순히 눈으로만 보지는 않을 것이다"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 경우는 그림에 대한 정보나 지식으로 인하여 종교적 입장에서 믿고 경배할 수 있는 경우이다. 동서의 종교화는 흔히 감상물로서보다는 교화시키거나 신앙심을 고양화할 목적으로 많이 그려졌다.회화에 도덕적·종교적·사회적 이념 따위의 의식이 결부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것들은 모두 예술의 독자적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종속적 관계가 아닌 상호의존적 또는 상호보완적 대등관계에서 서로의 영역이 존립하게 된다. 신은 미술가에게는 보이기 위해 존재하고, 신앙인에게는 믿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예술과 풍토, 변시지> |
🧭 시군
“르네상스 이후 서양 화가는 ‘눈에 보이는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리려 했어요. 그런데 종교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까지 담으려 했죠. 그럼 예술은 눈에 보이는 것만 그려야 하나요, 아니면 믿는 것도 함께 담아야 하나요?”
🍃 지양
“동양 화가는 ‘형을 그리되 신이 따르라’고 했어요. 눈에 보이는 모습보다 마음속 정신이나 기운을 담으려 했죠. 그럼 진짜 예술은, 형태보다 믿음과 마음이 먼저인 걸까요?”
🌿 시지의 대답
예술은 늘 보이는 것과 믿는 것 사이를 오갑니다. 서양 화가는 빛과 원근법으로 현실을 그리되, 그 위에 신화·종교·상징을 덧씌웠고, 동양 화가는 선 하나로 형상을 줄이고 그 안에 정신과 여운을 담았습니다.
👉 결국 ‘보이는 것’은 믿음을 여는 문, ‘믿는 것’은 그 문 너머의 세계입니다.
👥 대상별 조언
🎓 학생에게
“그림을 볼 때 ‘이건 뭐지?’에서 멈추지 말고, **‘왜 이렇게 그렸을까?’**도 함께 생각해 보세요. 형태 뒤에 숨어 있는 작가의 생각을 찾는 연습이 중요해요.”
👥 일반인에게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떠올려 보세요. 화려한 색은 보이지만, 그 안엔 보이지 않는 경건함이 흐르죠. 좋은 예술은 눈과 마음을 함께 울립니다.”
🖼️ 컬렉터에게
“표면의 완성도뿐 아니라, 작품 안에 숨은 상징과 메시지를 읽어야 컬렉션에 서사가 생깁니다. 보이는 형상과 감춰진 믿음이 균형 잡힌 작품을 선택해 보세요.”
🎨 화가 지망생에게
“대상을 정확히 관찰하고 형태를 잡은 후, 당신이 가진 믿음·정신·감정이 어떻게 그 안에 스며들 수 있을지 고민해 보세요. 감각 + 믿음이 한 작품 안에 살아야 합니다.”
🌀 변시지의 사례
〈겨울 경회루〉: 눈 쌓인 경복궁을 그리되, 겉모습이 아니라 적막한 기운과 분단의 슬픔을 강조.
비원 연작: 봄의 화려함 대신 겨울의 고요함을 택해,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보다 안에 숨은 믿음과 역사를 보여줌.
👉 변시지는 “보이는 세계를 통해, 믿는 세계를 그렸다”는 말을 화폭으로 실천했습니다. 형태는 사실적이지만, 깃든 기운은 믿음의 깊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