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邊時志 – 시대의 경계에 선 이름⟫
15. 선(線)을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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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항아리를 어깨 위에 얹고 물가에 서 있는 젊은 여인의 나체상 “샘”은 앵그르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이상적인 신체적 균형과 하얗고 투명한 피부색, 달콤하고 정겨운 표정은 이 나부의 청정한 느낌을 더해 준다. 들라크루아가 색채에 의해서였다면, 앵그르는 형태에 의해 그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 사람이었다. 형태에 대한 앵그르의 기본 정신은 다음과 같은 진술에 잘 나타나 있다. "진실에 의해서 아름다움의 비밀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고전은 창작된 것이 아니라 아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모델에 대해서는 크기의 관계를 잘 살펴보라. 거기에는 전체의 성격이 있다. 선 또는 형태는 단순하면 할수록 아름다운 힘이 있는 것이다. 여러분이 그것을 분할하면 할수록 그만큼 아름다움에 약해진다. 왜 사람들은 더 큰 성격을 잡아내지 못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의 큰 형태 대신에 세 개의 작은 형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앵그르는 안정된 구도 속의 운동을 파악하여 그것을 성격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실제로 그의 유명한 〈그랑드 오달리스크〉는 드러누워 있는 나체 형태의 율동미를 강조하기 위해 의식적인 일종의 데포르마시옹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드가가 소년시절에 보고 반했다는 〈목욕하는 여인〉에서는 완전히 관중에게 등을 돌리고 얼굴 표정을 감추고 있는 한 여인의 나체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형태에 대한 앵그르의 미학적 기준을 잘 보여준 예다. 이 작품은 루브르 박물관에 들어간 다음에도 형태의 단순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의구심을 자아내게 했다. 오늘의 추상주의를 앵그르는 이미 그때 우리에게 예언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들라크루아가 색조분할에서 인상파의 선구가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선(線)을 공부하게. 그러면 자네는 훌륭한 화가가 될 것이야."청년 드가에게 앵그르는 이렇게 충고해 주었다. 앵그르의 이러한 회화적 정신은 우선 드가에 의해 계승되었고 인상파에 깊은 영향을 끼친 것이다. <예술과 풍토, 변시지> |
🧭 시군
“르네상스 이후 서양 화가는 선으로 형태를 정밀하게 묘사했어요.잉그레스는 ‘단순한 선일수록 아름답다’고 했고, 드가는 선을 보는 법이 곧 회화다라고 말했죠.
그렇다면 서양 미술에서 선은 단지 외곽선이 아니라, 이성적 구조와 리듬을 만드는 언어일까요?”
🍃 지양
“동양에서는 ‘선 하나에 기운(氣)이 담긴다’고 하며, 붓의 한 획을 매우 중시했어요.그렇다면 동양에서 선은 형태를 넘어서 정신과 생명을 담는 수행의 흔적인 걸까요?”
🌿 시지의 대답
‘선’은 단순한 윤곽이 아니라,눈이 지나간 길이자 마음이 스친 자국입니다.서양은 선으로 구도·비례·운동을 설계했고,
동양은 선 하나에 기운·시간·정신을 불어넣었습니다.
👉 좋은 선은 **정확함(骨)**과 **생동(氣)**이 함께 살아 있어야 하며, 딱 떨어지되 떨림이 남는 선이 진짜 예술의 선입니다.
👥 대상별 조언
🎓 학생에게
“자를 대고 반듯한 선을 그어 본 뒤, 손으로 숨 쉬듯 흔들리는 선도 그려 보세요.두 선을 비교하면 ‘정확함’과 ‘생동감’이 어떻게 다른지 몸으로 느낄 수 있어요.”
👥 일반인에게
“도시의 전봇대처럼 똑바른 선과, 바람에 흔들리는 빨래줄 같은 선은 감정이 다르죠.
일상에서 선의 느낌을 관찰하면, 보는 눈이 더 섬세해집니다.”
🖼️ 컬렉터에게
“드로잉, 판화, 회화를 볼 때 선의 힘과 성격을 유심히 보세요.힘주어 끊긴 선과 부드럽게 이어진 선은 서로 다른 정서와 긴장을 공간에 불어넣습니다.”
🎨 화가 지망생에게
“드로잉 전에 서예 붓으로 ‘一’자를 다양한 속도·굵기로 그려 보세요.
손목→어깨→호흡으로 선이 커질 때, 선은 기술이 아니라 몸 전체로 흐르는 기운이 됩니다.변시지 화백도 황토 위에 한 획의 먹선으로 시간·바람·정서를 담았습니다.”
🌀 변시지의 사례
황색+먹색 한 획 연작 : 넓은 황토 면 위에 단 한 줄의 먹선을 그어 섬 바람의 방향과 속도, 시간의 흐름을 암시.
〈돌담과 바람〉- 거친 돌담을 단순한 윤곽선으로 정리해 질서를 세우고,그 위에 자유로운 붓의 흔들림으로 생동을 더해 ‘선의 두 얼굴’—정확함과 떨림을 동시에 표현.
👉 변시지에게 선은 단지 형태의 경계가 아니라 기억과 감정이 흘러가는 통로, 바람이 지나간 흔적이었습니다.
16. 드가의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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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가의 〈욕조〉, 〈머리 빗는 여인들〉, 〈욕조로 들어가는 여인〉 등의 연작을 본 르누아르는 단순하면서도 힘찬 표현에 감명을 받고 "이는 파르테논의 단편과 같다"고 놀라움을 나타냈다. 창작 기술상의 문제들을 논리적·체계적으로 논한 것이 드물기는 하지만 언젠가 그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나는 젊은 사람들을 위해 이런 연구소를 하나 개설해 보고자 한다. 일층에는 살아 있는 모델을 사용하는 초보자의 교실이 있으며, 이층 이상은 모델 없이 그리면서 위로 올라갈수록 상급생을 위해 꾸며져 있어, 최상급 학생이 살아 있는 모델을 참고하려면 위층에서 아래로 내려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 학교를 졸업한 다음엔 이미 훌륭한 화가가 되어 있을 것이 틀림없다." 이 같은 연습법은 사실 드가 자신이 실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많은 경우 모델을 직접 그리지 않고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다가 머릿속에 충분히 기억시켜 그렸던 것이다. 데생에 대해서도 그는 말했다. "데생은 형태가 아니다. 형태를 보는 방법이다." <예술과 풍토, 변시지> |
🧭 시군
“드가는 발레리나나 목욕하는 여인의 자연스러운 순간을 포착했어요.무대 뒤, 쉬는 시간 같은 비공식 장면을 일부러 골랐죠.
그렇다면 모델은 더 이상 ‘이상적인 인물’이 아니라, 순간의 진짜 표정과 자세를 담는 존재가 된 걸까요?”
🍃 지양
“에도 시대 우키요에나 조선 풍속화도 서민과 거리의 삶을 담았어요.
그렇다면 동양에서도 모델은 군자·귀족을 넘어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전체로 확장된 것 아닐까요?”
🌿 시지의 대답
드가와 동양 풍속화가는 공식이 아닌 일상의 찰나를 사랑했습니다. 드가는 스냅처럼 포즈 없는 순간, 동양 화가는 여백과 시선 사이에 서민의 숨결을 담았죠.
👉 오늘날의 모델은 더 이상 완벽한 형태가 아니라, 관계·상황·움직임의 이야기를 품은 살아 있는 인물입니다.
👥 대상별 조언
🎓 학생에게
“친구가 공부하다 졸다가 고개를 떨구는 순간을 스케치해 보세요.어색하더라도 솔직한 순간이 그림을 특별하게 만듭니다.”
👥 일반인에게
“사진처럼, 그림도 우연한 찰나가 매력적일 수 있어요.
모델이 자연스러워 보인다면, 그건 작가가 ‘무심한 순간’을 잘 잡아낸 것입니다.”
🖼️ 컬렉터에게
“드가나 우키요에 계열 작품은 **잘려 나간 구도(크로핑)**와 일상성이 특징입니다.
화면 밖으로 뻗는 서사의 여백이 컬렉션의 분위기를 확장시킵니다.”
🎨 화가 지망생에게
“모델에게 포즈를 지시하기보다, 쉬거나 잡담할 때 조용히 관찰해 보세요.변시지 화백도 시장 한켠에서 졸고 있는 할머니의 고개 움직임을 한 획에 담아냈습니다.우연한 몸짓이 작품을 숨 쉬게 합니다.”
🌀 변시지의 사례
폭풍의 바다 연작: 찰나의 폭풍를 빠른 붓질과 번짐으로 포착 → 드가의 발레리나처럼 움직임 사이의 쉼표를 그림에 담음.
👉 드가가 무대 뒤 빛을 좇았다면, 변시지는 섬의 바람 속에서 사람의 순간적 숨결을 붙잡았습니다. 이들은 동서양의 **‘찰나 리얼리즘’**을 각자의 방식으로 실천한 작가들이었습니다.
17. 르누아르의 이탈리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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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 문제에 관해서는 르누아르 역시 앵그르를 하나의 전범(典範)으로 삼았다. 그는 이탈리아 여행 중 그의 후원자였던 한 부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나폴리의 미술관에서 충분히 배워 왔습니다. 폼페이 화가들의 작업은 여러 가지 점에서 대단히 흥미가 있었습니다. 나는 믿습니다. 앵그르가 말한 크기를 획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그리고 저 고대 미술가들의 솔직성입니다. 앞으로 나는 큰 색조(valeur)만을 보는 걸로 정했습니다. 세부적인 것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상파 화가들은 무엇보다도 색채를 중시하고 빛의 관찰에 주의를 집중했기 때문에 형태나 선의 문제는 자연히 관심이 희박했던 것이다. 르누아르는 1881년 이탈리아 여행 중 고전에서 형태의 중요성을 배우고 프랑스에 돌아간 후에는 앵그르를 다시 보게 된다. 1880년부터 중반기까지의 르누아르 작품에는 앵그르의 영향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며, 청결한 형태의 단정한 작품이 많은데, 이 시기를 앵그르풍의 르누아르 시대라고 부르고 있다. 인상파 이전의 형태 연구는 주로 그리스 조각을 교본으로 삼아 집중적으로 묘사하는 데서 형태의 아름다움을 찾으려 했다. 세부의 형태에 집착하려는 경향은 이 때문이었다. '큰 형태를 잡으라'고 말한 앵그르의 가르침은 그러한 감정이나 생명감을 잡으라는 것이었으며, 그것은 필연적으로 형태의 단순화에 귀결되는 문제였다. 드가나 르누아르는 이를 철저히 지킨 사람들이었다. <예술과 풍토, 변시지> |
🧭 시군
“르누아르는 인상주의 화가였지만, 이탈리아 여행 후에는 빛보다 형태의 중요성을 깨달았어요.
라파엘로·폼페이 벽화·고대 조각에서 구성과 구조의 아름다움을 다시 배운 거죠.
그렇다면 예술가에게 여행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미적 가치관을 바꾸는 전환점이 될 수 있는 걸까요?”
🍃 지양
“겸재 정선은 금강산을 유람하며 진경산수를 만들었고, 동기창은 기행을 통해 붓법을 바꿨죠.
그렇다면 동양에서도 여행은 단순한 견문을 넘어, 자연과 역사와 교감하며 화풍을 바꾸는 수행이었던 건 아닐까요?”
🌿시지의 대답
여행은 눈앞의 풍경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예술가의 시선 자체를 바꾸는 경험입니다.
르누아르는 이탈리아에서 색보다 구조, 빛보다 형태의 힘을 새롭게 보았고,
동양 문인들은 산수 기행에서 자연의 기운과 리듬을 몸에 새겼습니다.👉 결국 여행은 예술의 팔레트를 바꾸는 사건이자,
창작의 방향을 전환시키는 미학적 재설정입니다.
👥 대상별 조언
🎓 학생에게
“여행지에서 본 풍경을 사진만 찍지 말고, 간단히 스케치해 보세요.그곳의 빛·공기·색을 몸으로 기억하면, 나중에 자신만의 시선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어요.”
👥 일반인에게
“여행 중 본 건물의 색, 음식의 향이 귀국 후에도 삶의 분위기를 바꾸는 경우, 많지 않나요?작품을 감상할 때도 작가가 ‘어떤 여행을 겪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어요.”
🖼️ 컬렉터에게
“작가의 여행 전후 작품 변화를 비교해 보세요.소재, 구도, 색감이 전혀 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전환기 작품’을 소장하면, 컬렉션에 작가의 진화 서사가 담깁니다.”
🎨 화가 지망생에게
“스튜디오에만 머무르지 말고, 새로운 땅의 빛·습도·소리를 몸으로 경험하세요.
변시지 화백이 도쿄의 맑은 빛에서 제주 황토·바람으로 옮겨갔듯, 장소는 화가의 색과 선과 호흡을 바꿉니다.”
🌀 변시지의 사례
유럽 여행 스케치 (1981년)
영국·프랑스·이탈리아에서 고딕 건축, 고전 회화를 연구 →귀국 후 인물 배치가 고전적 안정을 띠기 시작.
제주 정착: 도쿄에서의 인상주의적 밝음 → 제주에서 황토·먹·바람의 색채로 전환.
르누아르가 파리 인상주의를 넘어 고전 회화로 확장했듯, 변시지 역시 도시 화풍을 넘어 섬의 원형적 풍토미학으로 나아감.
👉 그는 “여행은 그림의 피부를, 정착은 영혼을 바꾼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처럼, 르누아르의 여행과 변시지의 이주는 모두 작가의 미학을 바꿔놓은 길 위의 사유였습니다.
18. 세잔의 형태의 단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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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이야말로 형태에 대해 철저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자연에의 끊임없는 관찰의 결과로 하나의 원리를 발견했다. 그는 자연에서의 모든 것을 원통·원뿔·구체(球體)로 보았다. 그래서 그는 "지금, 단순한 형태로 그릴 수 있는 방법을 배운다면 용이하게 원하는 것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그의 친구 베르나르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인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후에 입체파의 출현을 보게 된 것은 유명한 일이다. 세잔의 이와 같은 생각은 앵그르의 '큰 형태를 잡아라'라는 뜻과 결부시킬 수 있을 것이다. 조형으로서의 회화의 역사는 중심적 과제로 전환하여 대담한 근대회화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세잔은 소묘에 대해 "순수한 데생이란 하나의 추상에 지나지 않는다. 사물은 색채가 있는 이상 데생과 색채와의 구별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최후까지 선(線)보다는 양감(量感)에 중점을 두어 색조를 중시했다. 그리하여 그는 "윤곽은 나로부터 멀어져 간다"고 말할 정도로 자연에서의 원뿔과 원통과 같은 단순화를 시도했다. 아울러 그는 사과, 꽃병, 풍경, 인물 등을 대상으로 하면서도 제각기 고유의 형태나 색채보다는 그것들 속에 내재한 공통의 성질, 즉 입체성이나 안정성을 회화적으로 추상화하려 했다. 구형(球形)·방형(方形)·평면의 상이점을 넘어서서 단순히 어떤 것과도 공통할 수 있는 입체성을 추상화하는 형이상학적 추구라 할 것이다. 그는 넓은 표면을 평평하게 칠했을 때 평붓의 터치가 화면에 남는 것을 이용하여 한 개의 장방형 색면과 인접하는 다른 색면 사이의 비약적인 변화 상태를 온존(溫存)하면서 그것을 나열하고 독특하게 묘사하여 종래의 톤의 기술을 제거하거나 단순화하거나 추상화했다. 입체파의 형성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형태의 단순화'란, 세잔에게서는 대상물이 무엇이기 전에 그것은 이미 하나의 추상(抽象)이었다. <예술과 풍토, 변시지> |
🧭 시군
“세잔은 사과나 산, 사람을 그릴 때 구, 원추, 원통으로 나눠 단순한 형태로 정리했어요.
이렇게 복잡한 것을 단순화해서 보면, 더 본질에 가까운 구조가 보인다고 했죠.
그렇다면 서양 미학에서 단순화는 복잡함을 줄이는 게 아니라, 핵심에 이르는 방법일까요?”
🍃 지양
“동양 화가들은 산, 잎, 파도를 몇 개의 붓놀림으로만 표현했어요.
단색화 작가들도 반복과 절제로 사물의 기운을 드러내려 했죠.
그렇다면 동양에서도 단순화는 비움과 응축을 통해 본질을 드러내는 길이었던 것 아닐까요?”
🌿 시지의 대답
세잔의 단순화는 **덜어내기(減)**가 아니라 **응축하기(濃)**였습니다.
그는 사물을 단순 도형으로 정리하며, 시각적 질서와 안정성을 찾았고,동양 화가는 몇 획으로 자연의 기운과 여운을 남겼습니다.
👉 형태의 단순화는 결국 물질을 줄이고 의미를 짙게 하는 미학 ,보이는 틀을 좁히고 해석의 여지를 넓히는 방법입니다.
👥 대상별 조언
🎓 학생에게
“복잡한 건물을 그릴 땐, 먼저 직육면체나 원통 같은 기본 도형으로 나눠 보세요.
구조가 단단해지면 디테일도 자연스럽게 들어갑니다. 단순하게 보는 눈이 중요해요.”
👥 일반인에게
“군더더기 없는 공간이 오히려 집중과 여운을 주죠.
그림도 마찬가지예요. 색과 선을 줄이면, 핵심 인상이 더 또렷해집니다.”
🖼️ 컬렉터에게
“단순한 작품일수록 멀리서 구조, 가까이서 질감이 보입니다.단순함 속에 감정과 시간의 층을 담은 작품은 시간이 갈수록 깊어집니다.”
🎨 화가 지망생에게
“스케치할 때 먼저 대상을 기하학 형태와 리듬으로 정리하고, 그다음 감정을 덧입혀 보세요.
변시지 화백은 제주 오름을 두세 곡선만으로 표현하면서도, 그 안에 지층과 바람을 담았습니다.”
🌀 변시지의 사례
〈오름 〉 시리즈 : 제주 오름의 능선을 두세 개의 곡선으로 단순화.황토의 그라데이션으로 지층의 깊이를 암시.
→ 세잔의 구조적 단순화와 동양의 여백 감각이 겹쳐진 표현.
황토+먹 추상색과 형태는 최소화하고, 질감과 기운만 남겨→ 동양 단색화처럼, 비움 속 의미 밀도를 높임.
👉 변시지의 단순화는 단순한 생략이 아니라, 의미의 압축이고 감정의 정제였습니다. 그에게 단순한 선 하나, 먹 한 점은 산보다 크고, 말보다 깊은 언어였습니다.
19. 고갱의 선(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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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은 형태의 표출을 선(線)에 의존했다. 세잔과는 정반대의 입장이었다. 그는 말했다. "자연을 너무 정직하게 그려서는 안 된다. 예술은 추상이다. 자연을 연구하고 거기에 피를 통하게 하고 그 결과로써 진중하게 창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신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세잔과는 반대의 입장에 있던 종합주의자(Synthétisme) 시호프 네케르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다. 그는 이어서 "한 개의 형태와 한 개의 색채는 어느 쪽이 우위라고 말할 수 없는 종합이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 근본 이념으로서의 그의 이상을 원시예술에 두었던 것이다. "진리, 그것은 순수한 두뇌적인 예술 혹은 원시예술이다. 그것이야말로 모든 것에 능가할 수 있는 박식의 예술이다. 우리들에게 오가는 것들은 모두 두뇌에 직접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자극이 중복에 의해서 감동하게 되며, 이것은 어떠한 교육에 의해서도 이 조직을 파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고귀한 선과 허위의 선을 판정한다. 선은 무한에 도달하고 동시에 곡선은 창조물의 한계를 나타낸다." 고갱은 또한 선이나 형태의 상징성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정삼각형은 가장 안전하고 완전한 삼각형이다. 길쭉한 삼각형은 한층 우미하다. 우리들은 오른쪽으로 향한 선을 진행하는 선이라 부르고, 왼쪽으로 향하는 선을 후퇴하는 선이라 한다. 오른쪽 손은 때리는 손이고 왼쪽 손을 방어하는 손이다. 긴 목은 우미하지만 어깨 위에 붙은 목은 한층 사의적(邪意的)이다."세잔의 형태관이 자연스럽게 입체파에 연결되었듯이, 고갱의 이와 같은 선의 사상은 그가 죽은 후 얼마 안 있어 야수파의 마티스에 의해 계승되었다. <예술과 풍토, 변시지> |
🧭 시군
“고갱은 타히티에서 강한 윤곽선으로 색면을 나눴고, 그 선을 통해 자연의 야성과 원시적 상징을 표현했어요.
그렇다면 서양 후기 회화에서 선은 단순한 외곽이 아니라, 문화와 감정, 정신을 구획하는 경계였던 걸까요?”
🍃 지양
“동양 산수화의 철선묘나 목판화의 굵은 선도 단순한 형태가 아니라 기운과 상징의 흐름을 보여주는 도구였어요.
그렇다면 동양에서도 선은 단순한 테두리가 아니라, 현실과 감정을 넘나드는 다리였던 건 아닐까요?”
🌿 시지의 대답
고갱은 선을 **“색을 나누는 칼”**이라 했고, 동양 화가는 선을 **“기운이 지나간 흔적”**으로 여겼습니다. 하나는 색을 감싸 상징으로 만들고, 다른 하나는 여백 속 생명을 불러내죠.
👉 결국 선은 경계이자 다리, 색과 색, 현실과 상징, 감정과 기억을 이어 주는 시각적 언어입니다.
👥 대상별 조언
🎓 학생에게
“만화를 그릴 때 굵은 테두리를 쓰면 인물이 더 뚜렷해지죠?
고갱도 그렇게 선을 썼어요. 선의 굵기, 곡선, 끊김에 따라 감정이 달라지는 걸 직접 실험해 보세요.”
👥 일반인에게
“스테인드글라스를 떠올려 보세요. 검은 선이 색을 나눠주기 때문에빛이 더 선명하고 깊게 보이죠.
그림에서도 선이 만드는 경계와 강조를 느껴보세요.”
🖼️ 컬렉터에게
“굵은 윤곽선이 있는 작품은 강한 리듬을,가느다란 선은 여운을 남깁니다.선의 두께, 방향, 끊김이 만들어내는 에너지를 관찰해 보세요.”
🎨 화가 지망생에게
“색을 채우기 전에 먼저 윤곽선을 의식적으로 설계해 보세요.변시지 화백은 황토 바탕 위에 굵은 먹선으로 새, 바람, 토템의 경계를 새겼습니다. 선이 곧 형태 + 정서 + 상징임을 느끼게 될 거예요.”
🌀 변시지의 사례
〈바람 속의 까마귀〉붉은 황토와 검은 윤곽선의 대비로 새와 풍토의 토템성을 고갱 식으로 재해석.
제주 돌담 추상: 굵은 선으로 돌담의 형을 구획하고,여백과 색면 사이에 정서적 긴장감을 생성.
👉 고갱이 타히티에서 문화적 원형을 찾았다면, 변시지는 제주에서 풍토의 원형을 탐구했습니다. 두 화가 모두 선을 통해 색을 넘는 정신의 지형을 그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