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문 100답
변시지의 삶과 철학: 100문 100답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

그는 1926년, 태풍이 몰아치던 날 서귀포에서 태어났습니다. 숨이 끊어진 줄 알았던 갓난아기는 긴 호흡 끝에 다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어쩌면 그때부터였을 것입니다. 그의 삶에 바람이 멈추지 않았던 것은.

세상은 그를 '폭풍의 화가'라 불렀습니다. 하지만 그는 폭풍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폭풍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버티는 생명을 그렸습니다. 휘어진 소나무, 고개를 숙인 조랑말, 그리고 지팡이를 짚고 바람을 마주 선 사내. 그것은 제주의 풍경이자, 변시지 자신의 자화상이었습니다.

여기, 100가지의 물음과 대답을 통해 우리는 화가 변시지가 아닌, 인간 변시지를 만납니다. 황토빛 캔버스 뒤에 숨겨두었던 그의 고뇌와 사랑, 그리고 소박한 꿈을 말입니다.

그는 떠났지만, 그가 화폭에 가두어 둔 바람은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물며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바람을 마주하고 서 있느냐고.

제1부: 변시지의 삶과 배경

1926년 제주도 서귀포에서 태어났습니다. 태풍이 불던 날 태어났다는 일화가 있으며, 그의 호 '우성(宇城)'과 이름 '시지(時志)'는 때를 알고 뜻을 품으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여섯 살 때 아버지를 따라 일본 오사카로 건너갔습니다. 그곳에서 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내며 미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소년 시절 씨름을 하다 다쳐 한쪽 다리가 불편해졌습니다. 이 신체적 한계(절름발이 걸음)는 오히려 그가 내면의 세계와 그림에 더 깊이 몰입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사카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도쿄로 가서 데라우치 만지로와 같은 스승을 만났습니다. 그는 아카데믹한 기초와 더불어 자신만의 화풍을 찾아가는 과정을 겪었습니다.

일본에서 활동하다가 귀국하여 서울에서 활동했고, 장년기에 다시 고향인 제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제주의 풍토 속에서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완성하고자 했습니다.

단순한 고향이 아니라 그의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자 미적 근거입니다. 제주의 바람, 바다, 태양은 그의 독특한 화풍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가 되었습니다.

제주의 거친 바람, 구부러진 소나무, 조랑말, 까마귀, 그리고 초가집과 같은 제주의 향토적 소재들입니다.

제주의 거센 바람과 파도, 그리고 그 속에서 꿋꿋이 살아가는 생명력을 역동적인 필치로 그려냈기 때문입니다. 그의 그림 속 사물들은 바람에 의해 휘어지고 흔들리는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서구의 기법을 익혔으나 결국 동양적 정신과 제주의 풍토를 융합하여 독자적인 '제주화'를 완성하는 것이었습니다.

화가로서 그리기만 하던 그가 60세가 넘어 자신의 미적 체험과 예술론을 글로 정리한 것으로, 그의 예술 철학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제2부: 예술 철학 - 미(美)와 자연

아름다움은 '아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입니다. 어떠한 해설보다 감동이 우선하며, 아름다움은 인지의 대상이 아니라 감각의 대상이라고 보았습니다.

자연을 그대로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을 선택하고 화가의 미의식으로 재창조하는 것입니다. 모방은 베끼기가 아니라 창조의 정신입니다.

예술 창작을 고무시키는 동기이자, 화가가 자신의 이념과 정서를 투영하여 재해석해야 할 대상입니다.

회화는 시각적 대상(보이는 것)을 다루지만, 종교화와 같은 예술은 감상자가 가진 지식과 믿음(믿는 것)을 통해 그 의미가 확장됩니다. 신은 미술가에게는 보이기 위해, 신앙인에게는 믿기 위해 존재합니다.

기술은 실용적 가치를 추구하지만, 예술은 실용성을 떠나 독자적인 정신적 가치를 지닌 창조 활동입니다. 예술은 직관적 창조입니다.

제3부: 예술 철학 - 선·색채·형태

선은 단순할수록 힘이 있습니다. 앵그르와 고갱의 영향을 받아, 선은 대상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본질과 생명력을 요약하여 표현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색채는 인생의 열광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는 인상파의 색채 이론을 연구했지만, 결국 제주의 풍토색인 '황토색(Yellow ocher)'과 검은 먹색을 통해 독자적인 색채관을 정립했습니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보다 단순화할 때 그 본질에 더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세잔느처럼 자연을 구, 원추, 원통으로 보거나 대담하게 생략함으로써 예술적 진실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서양의 고전적 이념이 '재현(Representation)'에 있다면, 동양의 이념은 '표현(Expression)'에 있습니다. 그는 이 두 가지를 융합하고자 했습니다.

여백은 그려지지 않은 빈 공간이 아니라, 무한한 상상력과 기운이 생동하는 공간입니다. 동양적 미학에서 여백은 채움보다 더 큰 울림을 줍니다.

제4부: 예술가와 시대

예술은 그 시대와 풍토의 산물입니다. 화가는 자신이 발 딛고 선 땅(풍토)과 시대의 정신을 작품에 담아내야 합니다.

현대 미술이 지나치게 기교나 이론에 치우치거나,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졌습니다. 그는 예술의 본질적 가치와 감동을 중시했습니다.

과거에는 개성이 세계를 지배한다고 믿었으나, 현대에 와서는 개성 또한 세계의 일부일 뿐이라는 인식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예술은 작가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고유한 개성의 표현이어야 합니다.

기교적으로 훌륭한 그림보다는 작가의 혼과 진실이 담겨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이 명작입니다. "즐겁게 하는 형식"을 갖추어야 합니다.

고독은 예술가에게 숙명과도 같습니다. 그는 제주라는 고립된 섬에서 철저한 고독 속에 파묻혀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제5부: 변시지의 예술 세계 - 제주화(畵)

까마귀는 고독한 자아의 투영이자, 현실과 이상, 이승과 저승을 매개하는 영적인 존재로 등장합니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휘어진 나무, 쏠린 풀, 구부러진 인물을 통해 시각화됩니다. 그의 붓질(필력) 자체가 바람의 움직임을 닮아 있습니다.

제주의 흙과 빛, 그리고 태양을 상징하는 색입니다. 그는 이 고유한 색조를 통해 제주의 원초적인 생명력과 따뜻함을 표현했습니다.

서양화의 재료(유화)를 사용하면서도 동양화의 기법(선 위주의 묘사, 여백의 미)을 적용하여 동서양의 경계를 허문 독창적인 양식을 구축했습니다.

가장 지역적인 것(제주)이 가장 세계적인 것임을 증명했습니다. 그는 '제주화'라는 장르를 개척하여 한국 현대미술의 지평을 넓혔습니다.

제6부: 미술사적 영향과 거장들

'미소'보다 '손'에 주목했습니다. 미소가 신비로움을 준다면, 두 손을 포갠 모습은 다 빈치의 해부학적 지식과 관찰력이 응축된 결과물로, 인물의 우아함과 내면의 평온을 보여주는 결정적 요소라고 보았습니다.

"자연은 구(球), 원추, 원통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세잔느의 말처럼, 변시지 또한 대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기보다 단순화된 형태 속에서 견고한 본질을 찾으려 했습니다.

시각적인 그림에서 '촉각적 부드러움'을 느끼게 하는 힘입니다. 르느와르의 그림 속 여체나 꽃이 실제보다 더 부드럽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예술은 시각을 넘어선 감각적 체험을 제공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고갱의 선은 대상을 단순히 나누는 경계가 아니라, 작가의 강렬한 내면과 원시적 생명력을 표출하는 독자적인 언어라고 보았습니다. 이는 변시지가 제주의 거친 풍토를 표현할 때 굵고 투박한 선을 사용하는 데 영향을 주었습니다.

서양 낭만주의의 열정과 동양 도가 사상의 무위자연이 예술이라는 접점에서 만날 수 있음을 보았습니다. 기교를 넘어선 정신적 자유로움이 동서양 거장들의 공통된 지향점이라 생각했습니다.

칸딘스키나 몬드리안처럼 형태를 해체하고 순수한 조형 요소를 추구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예술이 인간의 삶과 자연의 리얼리티에서 완전히 유리되는 것은 경계했습니다.

하나의 시점이 아닌 여러 시점에서 대상을 파악하고 재구성하는 혁신적인 '형태 파괴'를 통해, 사물의 진실에 더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을 높이 샀습니다.

단순히 그림이 잘 그려진 것을 넘어, 그림 속에 우주의 생명력과 작가의 호흡이 살아 숨 쉬는 상태를 의미하며, 이는 모든 예술가가 도달해야 할 궁극의 경지라고 여겼습니다.

기술은 예술을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제비가 집을 짓는 것은 훌륭한 기술이지만 예술은 아니듯, 인간의 정신적 가치와 직관이 담길 때 비로소 기술은 예술로 승화됩니다.

화가는 아는 지식에 갇히지 않고 눈에 보이는 직관적 아름다움을 포착해야 하지만, 동시에 그 이면에 숨겨진 본질(아는 것)을 시각화하여 관람자에게 전달하는 매개자여야 합니다.

제7부: 기법과 재료의 철학

빛이 있어야 그림자가 존재하듯, 삶의 기쁨과 슬픔, 희망과 고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의 그림에서 강렬한 태양(빛)은 역설적으로 짙은 검은색(그림자)을 통해 더욱 강조됩니다.

제주의 흙, 초가집, 그리고 태양에 그을린 제주 사람들의 피부색을 가장 잘 대변하는 색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색에서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제주의 원초적인 온기를 느꼈습니다.

훌륭한 정물화 속 과일은 보는 것만으로도 침이 고이게 합니다. 이처럼 시각 예술인 회화도 공감각(Synesthesia)을 일으켜 미각, 촉각, 청각 등 다양한 감각을 환기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재현은 대상을 눈에 보이는 대로 옮기는 것이고, 표현은 작가의 감정과 사상을 담아내는 것입니다. 변시지는 재현에서 출발해 결국 자신만의 내면을 표출하는 '표현'의 단계로 나아갔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을 그대로 베끼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눈으로 선택하고 변형하여 현실보다 더 리얼한 감동을 주는 예술적 진실을 말합니다.

자연이라는 재료에 생명을 불어넣는 마법과도 같은 힘입니다. 모방을 넘어 예술을 예술답게 만드는 핵심 동력입니다.

바로 '선(Line)'입니다. 특히 제주의 바람처럼 휘어지고 끊어질 듯 이어지는 역동적인 선(장두필, 붓을 길게 잡고 그리는 기법 등)은 그의 화풍을 결정짓는 핵심입니다.

캔버스를 꽉 채우기보다 비워둠으로써 제주의 바람이 지나갈 길을 터주었습니다. 서양화 재료인 유화를 쓰면서도 붓을 얇게 펴 바르거나 캔버스 천의 질감을 살려 동양적 여백의 효과를 냈습니다.

고독은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라, 내면 깊은 곳으로 침잠하게 만드는 에너지원입니다. 그는 철저한 고독 속에서 자신만의 예술 세계(제주화)를 길어 올렸습니다.

화가가 붓을 놓는 순간이 아니라, 관람자가 그 그림을 보고 마음에 어떤 울림(감동)을 느낄 때 비로소 작품은 생명력을 얻고 완성됩니다.

제8부: 삶의 기록과 증언 (다큐멘터리)

1948년, 일본의 권위 있는 미술 단체인 '광풍회(光風會)' 공모전에서 23세의 나이로 최연소 최고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는 일본 화단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사건으로, 청년 변시지의 천재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한 첫 번째 기록입니다.

일본에서의 성공이 바탕이 되어 31세에 서울대 교수로 초빙되었지만, 학연과 지연으로 얽힌 당시 화단의 파벌 싸움과 권위적인 분위기에 깊은 환멸을 느꼈습니다. 결국 그는 6개월 만에 "나는 그림만 그리고 싶다"며 미련 없이 사표를 던지고 야인(野人)의 길을 택했습니다.

한국 생존 작가 최초로 스미스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에 그의 작품 <난무(The Dance)> 등이 10년간 상설 전시되었습니다. 이는 그의 예술이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보편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았다는 미술사적 쾌거입니다.

크게 일본 시절의 '인물/풍경 사실주의', 서울 시절의 '비원파(후기 인상주의 경향)', 제주 귀향 초기의 '과도기', 그리고 1980년대 이후 완성된 '황색 시기(Yellow Period)'로 구분됩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변시지의 대표작들은 대부분 황색 시기의 작품입니다.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꿈속에서 대화를 나누고 그를 이상향으로 이끄는 영혼의 동반자이자, 제주의 순수한 자연 그 자체를 상징하는 매개체였습니다.

서양의 기법을 완벽히 익혀 인정받았지만(광풍회 최연소 수상 등), 내면 깊은 곳에서는 항상 자신의 뿌리인 '한국적 정서'와 '제주의 풍토'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안락한 지위와 명예보다는, 잃어버린 자신의 본질과 예술적 원형을 찾기 위해 고향의 품, 즉 바람 부는 제주 바다 앞으로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지도에 없는 섬 이어도는 그가 평생 붓을 통해 찾고자 했던 예술적 이상향(Utopia)이자, 삶과 죽음, 현실과 환상이 하나가 되는 구원의 세계였습니다.

"예술은 그 시대와 풍토의 산물이다." 가장 나다운 것, 내가 발 딛고 선 땅의 이야기를 진실하게 그려낼 때 비로소 세계와 통할 수 있다는 깨달음입니다.

제9부: 인간 변시지 - 생활과 윤리

당시 많은 남성들이 아내를 가사 노동을 하는 존재나 소유물로 여길 때, 변시지는 이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아내(주부)는 집안일을 처리하는 기계가 아니라, 감정과 꿈을 가진 존엄한 인격체임을 강조하며 가정 내에서의 평등과 존중을 역설했습니다.

서로를 구속하거나 지배하는 상하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고독을 이해하고 각자의 세계를 존중해 주는 '독립된 동반자' 관계입니다.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 또한 하나의 온전한 우주를 가진 인격체이므로, 부모의 뜻을 강요하기보다 아이가 가진 고유의 기질(천성)을 발견하고 스스로 피어날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것이 참된 교육이라 믿었습니다.

'속물(Snob)'입니다. 돈이나 지위, 권력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예술조차 과시의 수단으로 삼는 위선적인 태도를 가장 싫어했습니다.

돈은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일 뿐, 삶의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는 "황금의 노예가 되지 말고, 황금의 주인이 되라"고 하며, 가난하더라도 정신의 품위를 잃지 않는 삶(청빈)을 지향했습니다.

캔버스 앞에서는 타협하지 않는 제왕처럼 오만할 정도로 당당했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이웃집 아저씨처럼 소박하고 겸손했습니다. 그는 예술적 자부심과 인간적 겸손을 구분할 줄 알았습니다.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창작은 칭찬보다 비판 속에서 단단해진다고 믿었으며, 남의 말에 흔들리기보다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외골수' 기질을 지켰습니다.

겉치레나 허례허식이 아닌,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진정한 예의입니다. 그는 형식적인 예법보다 진실한 눈빛과 태도를 중시했습니다.

세속적인 출세가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자기답게 사는 삶입니다. 그는 고향 제주로 돌아와 자신만의 그림을 완성한 삶 자체를 성공이라 여겼을 것입니다.

늙음은 추한 쇠락이 아니라, 잘 익은 과일처럼 향기가 짙어지는 과정입니다. 육체는 쇠해도 정신은 더욱 맑아져 예술의 정수에 도달할 수 있는 시기로 보았습니다.

제10부: 사색과 단상 - 삶의 깊이

행복은 멀리 있는 무지개가 아니라, 내 마음속의 평온함에 있습니다.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자유, 제주 바다를 볼 수 있는 눈, 바람을 느낄 수 있는 피부가 있음에 감사하는 소박한 마음이 곧 행복입니다.

슬픔은 영혼을 씻어주는 비와 같습니다. 슬픔을 모르는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으며, 깊은 예술 또한 나올 수 없습니다.

많은 친구보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단 한 명의 지기(知己)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침묵의 대화가 가능한 관계를 지향했습니다.

해방감입니다. 사람들의 시선, 정치적인 다툼, 복잡한 인맥 관계에서 벗어나 오로지 '나'와 '자연'만이 존재하는 곳으로 간다는 설렘이었습니다.

그의 옷차림, 식사, 말투는 모두 꾸밈없고 단순했습니다. 복잡한 것을 걷어내야 본질이 보인다는 예술 철학이 생활 습관에도 그대로 배어있었습니다.

제주의 아름다움은 원시적인 야성에 있는데, 무분별한 개발로 그 풍토가 파괴되는 것을 몹시 안타까워했습니다.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의 대상입니다.

말은 때로 진실을 왜곡하지만, 침묵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는 제주의 바람 소리를 듣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기 위해 자주 침묵했습니다.

특정한 종교 의식보다는,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고 매 순간 진실하게 사는 것이 곧 기도이자 종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그림 자체가 구도(求道)의 과정이었습니다.

무의미한 사교나 잡담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그에게 시간은 예술을 위해 주어진 유한하고 귀한 자원이었습니다.

강자가 약자를 누르지 않고, 서로 다른 개성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세상. 마치 그의 그림 속에서 거친 바람과 작은 새가 한 화면에 공존하듯, 평화롭고 순수한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제11부: 변시지가 후학들에게 (가상의 메시지)

"손재주를 믿지 말고 눈과 마음을 믿어라. 기교는 연습하면 늘지만, 보는 눈은 깊은 사색 없이는 얻을 수 없다."

"멈추지 마라. 태풍이 불어도 파도는 멈추지 않는다. 고통스러울 때가 바로 껍질을 깨고 나갈 때다."

"유행은 바람처럼 지나간다. 남들이 가는 넓은 길로 가지 말고, 너만이 갈 수 있는 좁은 길, 너의 풍토를 찾아라."

"개성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네 안에 있는 가장 솔직한 모습, 남에게 보이기 부끄러운 그 모습 속에 진짜 네가 있다."

"가난은 불편하지만 불행은 아니다. 헝그리 정신이 없으면 예술의 야성은 죽는다. 풍요 속에서는 영혼이 살찌기 힘들다."

"넓은 세상을 보는 것은 좋다. 그러나 결국 돌아와야 할 곳은 너의 뿌리다. 남의 것을 배우되 너를 잃어버리지는 말라."

"멀리서 찾지 마라. 네 발밑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지나가는 바람, 이웃의 주름진 얼굴 속에 우주가 있다."

"먼저 인간이 되어라. 따뜻한 가슴 없이는 차가운 캔버스를 데울 수 없다."

"나를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나를 자극하여 스스로 깨닫게 하는 자극제다. 자연은 가장 위대한 스승이다."

"예술이 밥을 주지는 않지만, 사람이 왜 밥을 먹고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려준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면 세상은 변한다."

제12부: 에필로그 - 바람의 길

'우주 우(宇)'에 '재 성(城)'. 우주를 담는 성, 혹은 집이라는 뜻으로 그의 예술 세계가 제주의 작은 섬을 넘어 무한한 우주로 확장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변시지의 제주화는 완결된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입니다. 후대들이 그 정신을 이어받아 각자의 시선으로 제주의 풍토를 재해석할 때 제주화는 계속 진화할 것입니다.

화려한 교향곡보다는 첼로 독주곡이나, 제주의 노동요, 혹은 바람 소리 그 자체가 가장 잘 어울립니다.

어릴 적 떠나온 고향에 대한 원초적인 그리움, 그리고 인간 본연의 순수했던 시절에 대한 향수(Nostalgia)입니다.

그것이 자신의 운명이자,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그리기는 숨 쉬기와 같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고독한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줌으로써 역설적인 위안을 줍니다. "나만 외로운 게 아니구나, 저 바람 속의 사내도 외롭구나."

여전히 제주의 바다와 오름을 그렸겠지만, 기후 변화로 변해가는 제주의 모습에 아파하며 경고의 메시지를 담았을지도 모릅니다.

'바람(Wind)'입니다. 물리적인 바람이자, 시대의 바람, 그리고 내면의 일렁임입니다.

찰나의 순간입니다. 그의 예술은 100년을 넘어 영원성을 획득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평생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을 치열하게 사랑하고, 그 사랑을 화폭에 남김없이 쏟아부었으므로 그는 진정으로 행복한 예술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