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재현과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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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적 견지에서의 형태적 미완성은 동양화에서는 결코 미완성이 아니다. 대상의 정확한 묘사로부터 차차 불필요한 것을 지워 나가는 작업이야말로 대상에 관념상으로 접근해 가는 방법이라고 보는 것이다. 잡다한 디테일로부터 초탈하여 대상의 정수(精髓)만을 과감히 표출, 주제적인 것만을 집중하는 선의 필세(筆勢)에 기운생동(氣韻生動)의 묘가 있다는 것이 당대(唐代)의 화론(畵論)이었다. 일지(一枝)의 죽(竹)에 전 우주의 신운(神韻)을 표상한 것이야말로 완성의 극치로 일컬어지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동양과 서양의 예술이념은 아주 대조적이다. 서양의 고전적 예술이념이 '재현'에 있었다면 동양의 그것은 '표현'에 있었다. 이러한 동서 문화권의 이념의 차이는 오랜 동안의 시간이 지나면서 미술사에 각각 독자적 전통을 형성했다. '재현'은 현상적 사물의 자연스런 묘사에 따르지만, 본래는 이데아를 반영하려는 노력이었고 필연적으로 신적인 초월자를 지향하는 의미가 있었다. '표현'의 경우는 자연과 우주라는 대상에 표현 주체인 화가 자신의 삶의 이념이나 가치 또는 정서를 주관화하여 주체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다. 표현이든 재현이든 이는 모두 묘사가 개인의 필연적인 실존의 신비에 관한 것이 아닐 수 없으며, 예술은 그래서 그 제작 이념에 있어 존재의 신비를 직접 상관자로서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닐까. 동양과 서양의 예술이념은 아주 대조적이다. 서양의 고전적 예술이념이 '재현'에 있었다면 동양의 그것은 '표현'에 있었다. <예술과 풍토, 변시지> |
🧭 시군
“르네상스 화가는 원근법과 명암을 이용해 보이는 세계를 사실적으로 재현했어요.
하지만 이후 표현주의자들은 감정과 주관을 더 중요하게 여겼죠.
그렇다면 예술은 ‘사실을 닮는 것’과 ‘느낌을 담는 것’ 중, 어떤 쪽이 더 중요할까요?”
🍃 지양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겉모습보다 정신을 담아야 한다’며 기운과 여운을 중시했어요.
그렇다면 동양 예술은 재현과 표현의 경계를 나누지 않고, 느낌과 형상을 함께 그리려 한 건 아닐까요?”
🌿 시지의 대답
‘재현’은 “세상이 거울에 비친 모습”, ‘표현’은 **“그 거울을 들고 선 사람의 표정”**입니다.
서양은 정확하게 비추려 했고, 동양은 숨결과 기운을 담으려 했죠.
👉 진짜 예술은 ‘보이는 것’과 ‘느껴지는 것’을 한 화면 안에서 함께 말하는 것입니다.형태를 닮되, 감정을 새겨 넣는 것—그게 진짜 힘입니다.
👥 대상별 조언
🎓 학생에게
“풍경을 사진처럼 똑같이 그리는 것도 멋지지만, 여기에 당신 느낌을 색이나 선으로 조금만 바꿔 넣어 보세요. 그림이 더 살아납니다.”
👥 일반인에게
“좋은 영화는 장소·시대를 정확히 보여주면서도, 감독의 감정이 녹아 있죠. 그림도 마찬가지예요. **어떻게 그렸나(재현)**와 **왜 이렇게 느꼈나(표현)**를 함께 보세요.”
🖼️ 컬렉터에게
“세밀한 묘사와 감성적 붓질이 균형 잡힌 작품은 시대가 바뀌어도 가치가 오래갑니다. 겉모습의 사실성과 내면의 정서가 함께 있는지를 살펴보세요.”
🎨 화가 지망생에게
“드로잉으로 형태를 정확히 잡은 뒤, 붓질·색·여백을 통해 감정을 덧입히세요. 변시지 화백의 **〈겨울나무〉**처럼, 나무의 형태를 살리면서도 먹선의 떨림으로 고독과 희망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 변시지의 사례
〈겨울나무〉: 겨울의 풍경을 충실히 재현하면서도, 거친 먹선과 황토 바림으로 한기·고요·재생의 감정을 표현 → 재현과 표현의 합일.
제주 바람 추상:보이지 않는 바람을 색과 선의 흐름으로 표현, → 화면에 형태 없는 기운을 시각화하며 재현과 표현의 경계를 넘음.
👉 변시지는 “사실을 보되, 감정을 숨기지 말라”는 원칙처럼, 재현의 정확성과 표현의 울림을 하나로 엮어 자신의 미학을 완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