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창조적 리얼리즘

10. 창조적 리얼리즘


그리스의 조각이나 도자기에 그려져 있는 회화는 선과 색채가 아주 선명한 시각적 조형예술로서, 이상적 전형으로 완성된 이데아를 가능한 한 물질의 세계로 재현하려는 그들의 노력의 흔적을 잘 말해 주고 있다. 

이 같은 재현으로서의 모방은 그리스 시대 이후 서양예술의 오랜 미학상의 원리가 되었다. 그러나 플라톤은, 철학자가 아닌 예술가들 특히 시인이나 화가는 일종의 접신(接神)된 상태에서 창작을 하기 때문에 도리어 진리로부터 사람의 정신을 멀어지게 한다고 했다. 진리란 인간의 이성적 상태에서 접근이 가능한 것인데, 시인의 그 서정적 요소(신들린 상태)는 인간의 이성을 흐리게 하여 결과적으로 진리에 접근하는 일을 방해한다고 하였다. 또한 시인이라는 모방자는 모방의 대상을 잘 알지 못하는 존재라고 했다. 예컨대 하느님이 이데아(진실)를 창조했다면 목수는 이 이데아를 모방하여 탁자를 만들었고, 화가는 이 탁자를 모방하여 그림을 제작하기 때문에 이데아의 그림자만을 좇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시인 예술가 추방론은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수정 비판되어, 모방의 이념이 긍정적으로 계승 발전되었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 모방의 가치는 재현하거나 재현하는 대상들의 '재현적 진실'이 되었으며, 이가 곧 리얼리즘의 중심적 관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베르메르의 정확무비한 베네치아 풍경화와 같은 작품을 오늘날에 다시 시도한다면, 사진이 일반화된 현대사회에서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인가 싶다.

오늘의 예술은 종래의 낡은 재현론에 대한 끊임없는 반성과 모색과 탈피와 실험을 통해 자기만의 새로운 이념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예술과 풍토, 변시지>

🧭 시군

“리얼리즘은 원래 ‘있는 그대로’를 그리는 것이었지만, 쿠르베나 밀레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새로운 진실을 드러내려 했어요.
그렇다면 진짜 리얼리즘은 현실을 복사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다시 빚는 창조인 걸까요?”

🍃 지양

“조선 진경산수나 중국 신국화처럼 동양 리얼리즘은 실제 풍경에 정서와 역사를 덧입혀 그렸어요.
그렇다면 동양에서의 리얼리즘은 눈에 보이는 걸 그리는 게 아니라, 마음속 진경까지 함께 담는 것 아닐까요?”

🌿 시지의 대답

리얼리즘은 사실을 다루지만, 목표는 항상 진실입니다.서양은 사회 문제와 인간 삶을 날카롭게 드러냈고,
동양은 실제 풍경에 감정·철학·정체성을 덧입혀 ‘심상의 진경’을 만들었습니다.👉 진짜 창조적 리얼리즘은 현실을 바탕으로, 해석과 상상을 더해 더 큰 진실을 만드는 예술입니다.


👥 대상별 조언

🎓 학생에게

“거리 풍경을 그냥 그리는 대신, 그때 느꼈던 냄새, 소리, 기분을 색이나 선으로 표현해 보세요. 현실이 감정으로 바뀌는 순간, 그림이 이야기를 갖게 됩니다.”

👥 일반인에게

“뉴스 사진과 다큐 영화의 차이는 사실 + 해석입니다. 그림도 마찬가지예요. 눈에 보이는 현실을 담되, 작가가 무엇을 느끼고 말하고 싶은지 읽어보세요.”

🖼️ 컬렉터에게

“리얼리즘 작품을 볼 땐 ‘얼마나 똑같이 그렸나’보다, **‘그림이 무슨 진실을 전하려 하나’**에 주목하세요. 시대·사회·삶의 통찰이 담긴 작품은 시간이 지나도 가치가 쌓입니다.”

🎨 화가 지망생에게

“현장을 철저히 관찰하고, 그 위에 당신의 감정이나 철학을 더하세요. 변시지 화백이 **〈지게꾼〉**에서 노동의 자세는 정확히 묘사하되, 황토와 먹으로 삶의 고단함과 시대의 무게를 표현한 것처럼요.”


🌀 변시지의 사례 

〈지게꾼〉·〈나무패는 사람〉(1958): 해부학적 정확성과 사실 묘사 위에 먹의 무게감과 탁한 색감으로 전후 한국 농촌의 삶을 강조. → 현실 위에 정서와 시대정신을 더한 창조적 리얼리즘.

제주 돌담 연작: 실제 돌담을 정밀하게 그리되, **바람의 흐름·섬 사람의 한(恨)**을 함께 담아냄.
→ 리얼리즘이 단순 재현이 아닌 정서적 풍경화로 확장됨.

👉 변시지의 리얼리즘은 **‘관찰 + 감정 + 철학’**으로 완성됩니다. 그는 ‘사실’을 발판 삼아, 풍토 속의 진실을 창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