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들라크루아와 노자

22. 들라크루아와 노자


들라크루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모델은 여러분이 상상의 눈을 가지고 보는 때처럼 그렇게 생생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자연은 대단히 강력하기 때문에 붓을 잡고 그것을 묘사하려 할 때 여러분의 구상은 이미 깨지고 말며, 아름다운 습작을 얻으려는 여러분의 노력은 허사가 되고 말 것입니다."

노자는 말했다."도(道)를 도라고 부르고자 할 때는 이미 도가 아니다 (道可道非常道)."

<예술과 풍토, 변시지>

🧭 시군

“들라크루아는 모델보다 상상의 눈이 더 생생하다고 했어요.자연이 너무 강렬해서 그대로 그리려 하면 오히려 의도가 깨진다고도 했죠. 그렇다면 예술은 보이는 걸 그리는 게 아니라, 느끼는 걸 떠올려 그리는 것일까요?”

🍃 지양

“노자는 ‘도(道)는 말로 설명하려는 순간 이미 도가 아니다’라고 했어요.
보이지 않는 진실은 말로 표현하려 하지 말고 여백 속에서 느껴야 한다고 했죠. 그렇다면 예술도 형태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암시하는 일이 아닐까요?”

🌿 시지의 대답

서양의 들라크루아는 자연의 압도적 현실성 앞에서 상상으로 돌파했고, 동양의 노자는 보이려 할수록 본질에서 멀어진다고 경고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예술은 완벽히 표현할 수 없기에 오히려 더 넓어진다”는 걸 보여줍니다.

👉 예술은 말로 끝낼 수 없는 감정, 형태로 가둘 수 없는 본질을때론 상상, 때론 침묵과 비움으로 전달합니다.


👥 대상별 조언

🎓 학생에게

“풍경을 완벽히 그리려 애쓰기보다, 일부만 그리고 여백을 남겨보세요. 그 빈칸은 감상자의 상상이 채우게 됩니다—상상도 하나의 표현이에요.

👥 일반인에게

“작품을 보고 ‘잘 모르겠다’ 느껴도 괜찮아요. 그 모호함 속에 예술가가 숨겨둔 질문이 있을 수 있어요.
해설보다 자신의 느낌을 먼저 믿어보세요.”

🖼️ 컬렉터에게

“형태나 서사가 분명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며 여운이 깊어지는 작품이 있습니다.불확실성과 해석의 여지 자체가 컬렉션의 폭을 넓혀줍니다.”

🎨 화가 지망생에게

“스케치가 꼬이고 손이 멈출 때, 붓을 놓고 물의 번짐을 지켜보세요. 변시지 화백도 때로는 우연한 물자국에서 **‘보이지 않는 바람’**을 얻었습니다.
완성보다 ‘틈’이 예술을 숨 쉬게 합니다.”


🌀 변시지의 사례

〈돌담과 바람〉 초기 습작: 정밀 묘사를 시도하다 중단한 후, 여백과 먹 번짐만으로 섬의 기운을 암시.
형태를 덜어낼수록, 감정과 기운은 더 짙게 남음.

👉 변시지는 “형태가 실패할 때, 바람이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그에게 예술은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감응을 남기는 것,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세계를 보여주는 통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