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바다


회녹색으로 물밀어오는 폭풍은 화가가 본 것을 기억해내 그린 것이다. 폭풍이 될 수 있는 색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화가는 바람과 수증기를 가득 머금은 바다와 대기가 해안 구석구석을 넘볼 수 있는 색으로 회녹색을 지정하고 그러려면 하늘이 중요해진다는 것까지 감안하고 있다. 바다와 하늘이 닿고 포개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눈 앞에 펼쳐진 바다와 하늘을 그린 것이 아니라 기억 속의 어떤 색, 화가가 기억 속에서 호명한 회녹색 바람과 노랑보다 연하고 채도가 약한 하늘을 불러들인 셈이다.

회녹색 폭풍, 그것은 아마도 화가의 기억 속에서 가장 오래된 폭풍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억이란 또 다른 발견이다. 일상 속에서 폭풍은 언제 폭풍이며 언제부터 언제까지 폭풍인지 부정확하지만, 폭풍 후에 남겨진 기억은 그것을 화면에 형태로서 끄집어낸다.

어떤 대상의 색을 화가가 끄집어낸다면 화가는 그 대상을 본 적이 있고, 그것에 대해 생각을 했다는 뜻이 된다. 폭풍이라는 커다란 연잎 하나가 바다에 휩쓸리다 해안을 넘어오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