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그림들과 주조색이 다른 이 화면은 폭풍이 다가오는 제주 해변이라기보다 제주 해변의 아카이브 공간과도 같이 변화무쌍한 풍경들을 모두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바람과 싸워온 키 낮은 나무들이 인상적인 언덕 위에 황갈색과 회녹색, 노랑, 하양들이 하나하나씩 순서대로 제주 풍경을 끌고 들어오는 것 같다. 어두운 대지에 선들은 젖으며 흐려지고, 조심스러운 사물들의 나신은 아직 자유롭다.
밤의 석탄에 데워지려는지 대지의 상처까지도 발그레해지고, 태풍이라면 바람의 맨 앞까지 열심히 가야 하는 색들이 혼재된 제주 해변은 색과 색들이 서로 윽물고 있다.
주저앉은 사내는 조랑말도 조랑말이 보고 있는 곳도 보고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