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풍경

 

왕은 떠났지만 정원은 남았다. 1970년 겨울, 비원에 내린 눈이 오백 년 역사를 하얗게 덮고 있었다.
앙상한 나무들만이 그 긴 세월을 기억하고 있을 뿐.

한때 왕들이 거닐던 그 길 위에 이제는 사람들의 발자국만 남는다.
기와지붕 아래 숨어있던 웃음소리도, 정치의 무게도, 궁중의 화려함도 모두 사라졌다.
남은 것은 침묵뿐이다.

어느덧 나는 쇠퇴하는 것들을 그리는 화가가 되었다. 영광이 지나간 자리, 번영이 끝난 후의 고요함을.
그것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절정보다는 몰락에서, 완성보다는 스러짐에서 진실을 보았다.

눈은 모든 것을 평등하게 덮어준다. 왕의 정원도 서민의 뜰도 똑같이 하얗게. 자연 앞에서는 모든 권력이 무의미하다.
나는 그 앞에서 겸손해진다.

내가 그리는 모든 것들도 언젠가는 이렇게 쇠퇴할 것이다.
내 그림도, 내 이름도,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도.
그래서 더 절실하게 붓을 들었다.

<설풍경>, 변시지, 1970년 비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