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항

 

44년이 흘러 나는 다시 그 바다 앞에 섰다.
여섯 살 어린아이의 눈에 보였던 그 바다와 지금 눈에 보이는 바다는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배들이 그대로 있었다. 작고 소박한 어선들이 물가에 조용히 정박해 있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내가 달라져 있었다.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던가. 공부하고, 그림 그리고, 사랑하고, 절망하고.
내가 없는 동안 이 바다는 무엇을 했을까. 매일 같은 파도를 일으켰을까, 아니면 나를 기다렸을까.

서귀포항의 작은 배 한 척, 모든 사람에게 그런 배가 하나씩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떠나온 곳, 돌아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배.

나는 화가가 되어 돌아왔다.
여섯 살 때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이제는 본다.
물빛의 미묘한 변화를, 구름의 속삭임을, 배들의 외로움을.
떠나야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서귀포항>, 변시지, 1975년 제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