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늘 그려왔다.
그림이 아니라 사람을,
사람이 아니라 삶을.
전쟁이 휩쓸고 간 동경의 거리는
아직 상처와 절망이 남아 있지만,
그녀의 옷자락에서 희망의 빛이 흘렀다.
소박한 원피스는 작업복이 되었고,
노동의 흔적이 담긴 손은
세상이 함부로 빼앗지 못한
존엄을 지키고 있었다.
어깨는 삶의 무게에 기울었지만
허리는 그 어떤 고단함에도 굽지 않았다.
나는 그 꼿꼿한 선에서
그녀만의 단단한 자존감을 보았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오는
말 없는 이야기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그 조용한 품위 속에서
나는 사람이 가진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았다.
그녀를 그리며 나는 깨달았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인간의 존엄을 그렸고,
역경을 이겨낸 삶의 의지를 그렸으며,
희망을 지켜낸 내면의 빛을 그렸다.
<FEMME>, 변시지, 1947년 동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