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길 독백 에세이
자화상
01. 자화상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나를 그렸다.
1945년 38x45Cm
백색가옥과 흑색가옥
02. 백색가옥과 흑색가옥
-흑백의 시선 속에서-

흰 집은 침묵했고
검은 집은 등을 돌렸다.

전쟁은 끝났지만
마음은 아직 나뉘어 있었다.

나는 그 틈에 선 하나를 그었다.

빛도 어둠도 아닌,
숨 쉴 수 있는 여백.

구호가 아닌, 떨림을.
선언이 아닌, 공기를.

그게 내가 택한 그림이었다.
1946년 117x81Cm
거울나무
03. 겨울나무

겨울나무는 말없이 빛을 견딘다.
아직 전쟁의 기억이 남아 있던 그 땅 위에서
나무들은 몸을 비워낸 채,
고요히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빛은 나무의 빈 가지를 어루만지고,
흙 위에 기다랗게 그림자를 눕혔다.

황량함 속에서 무언가를 기다리는 일은
그 자체로 생을 견디는 일과 닮아 있었다.

나는 그 겨울의 숲에서
묵묵히 서 있는 나무들을 보며,
아무것도 갖지 않은 채
모든 것을 기다릴 수 있는 힘을 배웠다.
1947년 90x66Cm
바이올린을 가진 남자
04. 바이올린을 가진 남자

그의 손끝에서 선율은 흐르지 않았다.
군복의 시간 속에서
남자의 표정은
말없는 침묵이었다.

삶의 소리가 무겁고 낮게 흐르던 때,
그는 현 위에 손을 올린 채
자신의 마음을 연주하고 있었다.

그날 그의 바이올린은
소리를 내는 악기가 아니라
세상을 견디는 도구였고,
연주되지 않은 음악은
그의 마음속에 울려 퍼졌다.

그의 침묵은 파장이 되어
내 가슴을 두드렸다.
1948년 110x83Cm
오후
05. 오후

오후의 햇살은
낡은 담장을 넘어
철로 위에 길게 눕는다

기차는 오지 않았고
기다림만 남았다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기다렸다

1950년의 오후
멈춰버린 그 시간 위에
나는 말없이 서 있었다

기다림은
늘 그렇게
말없이 아프다
1950년 146x112Cm
겨울길
06. 겨울길

겨울길 위에
발자국은 조용히 쌓이고
지나가는 이는 홀로
작은 그림자가 된다

추위는 길고
침묵은 깊었지만
사람은 지나가고
삶은 멈추지 않았다

1952년 겨울
내 마음도
그 길 위를
홀로 걷고 있었다
1952년 83x110Cm
막다른 골목
07. 막다른 골목

벽돌 담 사이로 막다른 골목이 보인다.
창문은 닫혀 있고, 나무 한 그루만
말없이 서서 빈 가지를 하늘로 뻗는다.

1958년, 삶은 때때로 이렇게
어디로도 갈 수 없는 길을 내어준다.

그 골목 끝에서 나는 잠시 서서 생각했다.
어쩌면 인생의 모든 길이
결국 막다른 골목일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그곳엔 창이 있었고, 빛이 있었으며
무언가 기다리는 마음이 있었다.

막힌 길 끝에 서서야 깨달았다.
삶은 때로 길이 아니라
창문 너머로 바라보는 것임을.
1958년 50x60Cm
짐꾼
08. 짐꾼

어깨 위에 짐을 올린 순간,
세상은 그의 발밑으로 무겁게 가라앉았다.

1958년, 삶은 등짐이었다.
걸을 때마다 어깨는 낮아졌고,
걸음을 멈출 때마다
마음은 더 깊이 침묵했다.

그가 지고 가는 것은 짐이 아니라
우리의 시간이었고
우리의 마음이었다.

결국엔 버릴 수 없는 꿈이어서
그는 다시 짐을 고쳐 지고
낮은 걸음으로 길을 나섰다.

짐꾼의 뒷모습은
그 시대를 살아낸 우리의 모습이었다.
1958년 45x53Cm
소녀와 밥상
09. 소녀와 밥상

소녀는 밥상을 들고 있었다.
밥상 위에 놓인 생선 한 마리,
그 위로 어린 눈빛이 조용히 머물렀다.

1958년, 먹는다는 것은
그저 허기를 채우는 일이 아니었다.
작은 밥상 위에 놓인 것은
한 가족의 삶이었고, 소망이었고,
때로는 말없이 감내해야 할
슬픔 같은 것이었다.

소녀는 조심스럽게 숟가락을 들었다.
그 작은 손으로 삶을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세상도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

문득 깨달았다.
삶은 작은 밥상 위에 담긴
소박한 기적이라는 것을.
1958년 53x46Cm
10. 길

길 위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있었다

하나는 푸르게 빛났고
하나는 메말라 있었다

앞선 나무엔 젊은 날이 피어나고
뒤에 선 나무엔 늙은 날이 머물렀다

나는 그 사이에서 걸으며
젊음은 지나가고
늙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1960년 73x91Cm
가을 부용정
11. 가을 부용정

정자 위에 내려앉은 가을은
바람 속에 쓸쓸히 흔들렸다

왕의 정원에
이제는 아무도 없고
흩어진 기억만이
물결 위에 머물러 있다

고요함은
고운 단풍잎처럼
조용히 내려앉아
지나간 시간을 말없이 덮는다

부용정에서
화려함 뒤에
숨겨져 있는
고독을 보았다
1969년 65x53Cm
가을의 비원
12. 가을의 비원

가을이 오면
비원은 말없이 낮아진다
화려했던 모든 것들은
조용히 흩어지고
낙엽은 기억처럼 쌓인다

바람 속에
지난 시간의 웃음과 한숨이
낮은 목소리로 들려온다

비원에서
흩어진 기억들을 바라보며
삶이 결국
이 침묵을 향해 걷고 있음을 알았다
1970년 65x53Cm
애련정
13. 애련정

물 위의 그림자는
늘 흔들린다
애련정 처마 끝에
닿을 듯 말 듯
흔들리며

사랑을 그리워하는 마음처럼
닿지 않는 것을
끝없이 바라보는 일

흔들리는 그림자와
나의 닿지 못한 마음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1971년 160x112Cm
해신제
14. 해신제

바다는 늘 무언가를 데려간다

오늘도
파도는 끊임없이 밀려와
말없이 슬픔을 쓸어갔다.

남은 사람들은 바위 위에 모여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간절히 손 모아 기도하는 사람들 위로
바람과 하늘만이 듣는 조용한 기도가 울려 퍼진다.

보이지 않는 그리움과
닿을 수 없는 슬픔은
파도에 씻겨,
다시 먼 바다로 흘러간다.

제사란 떠난 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은 자들이 견디기 위한 의식이었다.
1976년 39x21Cm
해촌
15. 해촌

바닷가 마을엔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낮게 드리운 하늘 아래,
낡은 초가지붕과 메마른 나뭇가지들이
고요히 서 있다.

바다는 말이 없었고,
파도는 마을 가까이까지 다가와
오래된 슬픔을 내려놓았다.

하늘에 떠 있는 낮은 구름들은
마을 사람들의 작고 소박한 꿈처럼
어디로 갈지 모르고 떠다닌다.

삶은 고단했지만
바닷가 마을 사람들은 그저
파도처럼 밀려오고 물러나는 하루를
묵묵히 견디며 살아가고 있었다.
1978년 53x46Cm
멍든 돌하르방
30. 멍든 돌하르방

홀로 서 있는 돌하루방
멍든 눈으로
바다를 본다

세월은 지나가고
사람들은 떠나고
남겨진 것은
바람뿐

그의 멍은
떠난 이들의
남겨진 마음이었다

말없이 서서
모든 아픔을 안고
돌하루방은
바라보고만 있었다
1998년 16x23Cm
다시 이어진 길
29. 다시 이어진 길
황금빛 언덕 위
길이 이어져

처음은 절벽으로
나중은 집으로 향하네

바다는 꿈을 부르고
집은 귀향을 말하니

벼랑 끝 서성이다
다시 돌아온 집 앞에서

날개를 접은 일상도
날개를 피는 이상도
모두가 삶이 된다
1998년 160x130Cm
좌도 빈집, 우도 빈집
28. 좌도 빈집, 우도 빈집

두 채의 빈집 사이
한 노인이 서 있다

닫힌 문은 두려움을
열린 창은 희망을 품고

돌담과 바다 너머로
황금빛이 스며든다

어느 길을 택하든
그 길이 삶이 되리니
1997년 160x130Cm
심우도(尋牛圖)
27. 심우도(尋牛圖)

바람이 지나는 길 위에서
나는 내 마음을 잃어버렸다.
어디쯤 놓아두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마음을 찾기 위해
끝없는 황톳길을 걷는다.

멀리 서 있는 소 한 마리,
그것은 나의 마음인가,
아니면 찾아 헤매는 나를 기다리는
또 다른 나인가.

삶이란 결국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는 여정이다.
때로는 바람 부는 언덕 위에서,
때로는 고요한 산 아래서.

길 위의 나는 오늘도 걷는다.
마음의 소를 찾을 때까지.
1997년 130x160Cm
소식
26. 소식

늙은 말 한 마리
초가집 앞에 서서
잊히지 않는 발자국을 기다린다

무수한 별들이 내려앉은 밤
파도는 그리움을 품고 밀려왔다 밀려가고
바람은 어디론가 전하지 못한 말을 띄운다

말은 안다
떠난 이가 돌아오지 않을 것을
그래도 이곳을 떠날 수 없다

까마귀는 밤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별빛 속에 숨은
그 사람의 소식을 전한다
1991년 32x41Cm
떠나가는 배
25. 떠나가는 배

말 한 마리
작은 섬에 남겨졌다
소나무 하나에 기대어
배를 바라본다

1985년의 바다
떠나는 배 위로
그리움 하나가 실려 있다

남겨진 것은 섬이었고
떠나는 것은 배였고
흔들리는 것은 마음이었다

말없이 서 있는 말 한 마리
끝없이 바라보는 섬 하나
우리 삶도 그렇게
무언가를 떠나보내며
작은 섬 위에 남아 있었다
1985년 31x21Cm
그리움
24. 그리움

언덕 위에 앉아
바다를 본다
멀어지는 배 한 척에
그리움 하나를 실었다

그리움이란
멀어져 가는 것을
끝까지 바라보는 일

배는 결국 사라졌지만
언덕 위 나는
아직도 그곳에 앉아 있다
1987년 20x39Cm
그리움
손잡기
23. 손잡기

세상에는 수많은 손이 있다.
다가가는 손, 붙잡는 손, 그리고 놓치는 손.

어느 날 작은 배를 위해,
땅과 해가 손을 맞잡은 장면을 보았다.

황금빛 석양이 땅 끝에 닿는 순간,
해는 땅을 붙들고 땅은 해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 사이 작은 배 한 척은 위태롭게 흔들리며
놓을 수 없는 무언가를 기다렸다.

손을 잡는다는 건
서로를 지키겠다는 약속이었다.
무너지는 삶을 함께 붙잡고
흔들리는 마음을 함께 견디는 일.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결국 그 손을 놓지 않기 위함이 아닐까.
1982년 34x20Cm
손잡기
선착장
22. 선착장

선착장 끝에 놓인 짐
주인을 기다리는 듯
하루 종일 그 자리에 있었다

1979년의 바다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고
짐만 홀로 기다렸다

삶이란,
누군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며
조용히 놓인 짐 같은 것

기다림이 깊을수록
그림자는 길어졌고
짐은 하루를 견디며
바다만 바라보았다
1979년 31x16Cm
선착장
제주섬
21. 제주섬

섬은 사람을 품고, 사람은 섬이 된다.

1979년, 제주의 바닷가에서
사람들은 서로에게 기댄 채 작은 섬을 이루고 있었다.

파도와 바람 속에서도
해녀들은 말없이 어깨를 맞대고,
함께 흔들리며 하루를 견뎠다.

멀리 지나가는 배 한 척은
그들의 외로움을 싣고 어디론가 떠나갔다.

진짜 섬은 파도 위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 있다.
1979년 37x20Cm
제주섬
어머니와 물고기
20. 어머니와 물고기

어머니는 말없이 앉아 있었다.
모래 위에 펼쳐진 몇 마리의 물고기,
그리고 그 곁을 지키는 아이.

멀리 배 한 척이 수평선을 지나갈 때,
어머니는 지나간 세월을 생각하며 말없이 바다를 보았다.

작고 여윈 어머니의 어깨 위에
삶의 무게가 조용히 내려앉았고,
아이의 눈빛에는 바다보다 깊은 질문이 일렁였다.

모래 위 작은 물고기들처럼
그들의 삶도 작고 소박했지만,
그 작은 삶 속에 큰 바다가 있었다.
1979년 37x21Cm
어머니와 물고기
해녀
19. 해녀

해녀는 바다에서 나와
모래 위에 삶을 내려놓았다
몸에 남은 소금기처럼
짙은 슬픔과
깊은 고단함

바다는
그녀의 숨결로 가득했고
파도는 말없이
그녀의 삶을 어루만졌다

그녀는 오늘도 바다를 견디며
바다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1979년 16x24Cm
해녀
까마귀와 나
18. 까마귀와 나

모래 위에 엎드린 나
그 곁에 까마귀가 있었다
서로 말없이
멀리 바다를 바라보았다

침묵 속에서
우리는 외롭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서로의 외로움 때문이었다

까마귀는 또 다른 나였고
나는 또 다른 까마귀였다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함께 외로웠다
1979년 38x25Cm
까마귀와 나
이어도
17. 이어도

헤어짐을 배우는 섬, 이어도.
그곳은 닿는 곳이 아니라 헤어지는 곳이었다.

수평선 저 너머로
떠난 이들의 그림자가 희미하게 흔들렸다.
닿을 듯 닿지 않고, 머물 듯 머물 수 없는
이어도는 그래서 더 슬프고 아름다웠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이별을 맞이한다.
가장 먼 바다, 가장 먼 섬으로 떠나보낸 후에야
삶은 비로소 이별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

이어도는 헤어짐을 말없이 받아들이는 섬,
남은 이들이 끝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는 섬이었다.
1978년 53x46Cm
이어도
바람
16. 바람

바람은 지나갔지만
그림자는 남아 있었다
흔들린 나무 아래
고요히 누운 시간

삶이란
흔들림을 견디며
보이지 않는 바람을 따라
흘러가는 일이었다

바람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남은 건 오직
긴 그림자뿐이었다
1978년 31x16Cm
 
예술의 길 독백 에세이

예술의 길 독백 에세이

가상의 독백을 통해 변시지 화백의 예술 세계와 보편적 창작의 진실을 비추다.

빛을 좇다가 어둠을 발견하는 순간.

기교를 익히다가 서툼의 아름다움을 깨닫는 때.

이름을 얻고자 하다가 무명의 자유를 만나는 길.

완성을 추구하다가 여백의 충만함에 이르는 여정.

이는 동서고금 모든 창작자가 걸어가는 길이며, 예술이 단순한 기술이 아닌 존재의 탐구임을 보여주는 과정입니다.

진정한 예술가의 여정은 역설의 연속입니다. 더 많이 알수록 더 적게 알고 있음을 깨닫고, 더 능숙해질수록 서투름의 가치를 발견하며, 더 유명해지려 할수록 무명의 해방감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이 모든 모순 속에서 예술가는 비로소 자신만의 진실에 도달합니다.

이 독백체 에세이는 한 화가의 이야기인 동시에 모든 화가의 이야기이며, 나아가 창조하는 모든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형식을 버려도 본질에 이르고, 말을 잃어도 침묵으로 말하며, 그림을 넘어 삶 자체가 되는 여정 그것이 예술의 길입니다.

독자 여러분이 이 가상의 독백을 통해 실제 변시지 화백의 예술 세계를 상상해보시길, 그리고 동시에 모든 예술가의 영혼 깊은 곳에서 울리는 보편적 진실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 이 글은 변시지 화백의 삶과 예술에 대한 인생철학과 미학을 바탕으로, 그의 예술 철학과 제주 시기의 실제 삶과 작품들에서 모티브를 얻어 재구성된 창작물임을 밝힙니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나를 그렸다."

① 빛을 버리고, 바람을 따르다

도쿄의 화실 ‘파르테논’의 벽에는 거장들의 복제화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팔레트 위에서는 매일 새로운 무지개가 태어났고, 카드뮴 옐로의 따스함, 울트라마린의 깊이, 카민의 열정이 뒤섞이며 소용돌이쳤다. 나는 이 물감들과 대화하듯, 그 빛을 좇으며 매일같이 그림을 그렸다. 고흐의 해바라기에서 눈부시게 쏟아지는 빛, 모네의 수련 위로 반짝이는 빛, 피카소의 왜곡된 형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빛을.

그 빛들은 마치 거대한 폭포처럼 내 영혼 위로 쏟아졌다. 밤을 새워 화집을 넘기며, 붓질 하나하나를 흉내 내려 애썼다. 인상파의 순간 포착, 표현주의의 내면의 외침, 입체파의 시각 혁명 모든 것이 나를 사로잡았다.

“오늘은 고흐처럼…”

붓끝에서 소용돌이가 피어났고, 하늘은 물결쳤으며, 별들이 춤을 추었다. 그건 단지 모방에 지나지 않았지만, 화실에서 밤을 새워 그린 스케치는 거장들의 빛을 붙잡기 위한 고투의 흔적이었다. 나는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그들이 도달한 그 높이에 나도 이르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빛은 나를 눈멀게 했다. 너무 눈부신 빛은 오히려 시력을 잃게 한다. 나는 그들의 빛에 도취된 나머지, 나만의 색을 잃어버렸고, 빛 속에서 오히려 방향을 잃었다. 빛은 길을 비추기도 했지만, 동시에 내 본질을 가려버렸다. 나는 타인의 언어로 말하며, 정작 내 언어를 찾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었다.

화실 밖, 저녁노을이 지는 날. 서울의 회색빛 하늘을 가르며 스며든 붉은 빛을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내가 구하고 있던 건, 그들의 빛이 아니라, 나 자신의 어둠이었다.

나는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가방 하나와 몇 장의 하얀 캔버스만을 챙긴 채. 비행기가 이륙하는 그 순간까지도, 그것이 도피인지, 새로운 시작인지 알 수 없었다. 서울의 도시는 여전히 찬란한 빛으로 가득했지만, 그 빛은 더 이상 영감이 아니라 소음처럼 느껴졌다.

더는 빛을 그리고 싶지 않았다. 빛이 만들어낸 그림자, 빛이 떠난 뒤 남겨진 고요, 빛이 닿지 않는 곳의 신비로움을 그리고 싶었다.

제주공항에 내려 처음 나를 맞은 것은, 빛이 아니라 바람이었다. 거센 바람이 온몸을 흔들었고, 낡은 빛을 쓸어내려 주었다. 제주의 바람은 투명하고 무형이며, 조용히 모든 것을 감싸 안았다. 서울의 빛이 직선적이었다면, 제주의 바람은 유동적이었다. 바람은 강요하지 않았다. 그저 스쳐 지나갔다.

처음엔 이 무형의 바람을 어떻게 그릴 수 있을지 막막했다. 물감이 바람을 담을 수 있을까? 붓이 그 흐름을 표현할 수 있을까?

하지만 바람 한 줄기 한 줄기마다, 내 마음속 혼란이 조금씩 정돈되는 것을 느꼈다. 바람은 치유였고, 정화였고, 새로운 시작이었다.

바람은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스쳐간다. 그 간결함 속에, 복잡함에 대한 답이 있었다. 나는 그동안 너무 많이 설명하고, 너무 많이 보여주려 했던 것이다. 바람은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지만, 모든 것을 느끼게 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이제는 빛이 아닌 바람을 따른다. 무엇을 그릴까 고민하지 않고, 바람이 이끄는 대로, 속삭이는 대로,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 그리기로 했다.

문지방을 넘듯, 나는 빛으로부터 떠나, 바람의 세계로 들어섰다. 그곳에서 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림이 나를 그리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나를 그렸다."

② 황토색의 탄생

석양이 수평선에 닿는 찰나, 나는 중얼거렸다. “이 섬에는 이름이 없다 다만 수많은 이야기가 있을 뿐” 하늘은 화려하게 물들어 있었지만, 그 너머에는 깊은 침묵이 깃들어 있었다.

제주는 내게서 색을 앗아갔다 ―― 아니, 색이라는 환상을 벗겨냈다. 서울에서 가져온 물감들은 이곳에서 무력해졌다. 카드뮴 레드로도, 코발트 블루로도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이 섬에는 흐르고 있었다.

바람은 색이 아닌 속삭임을 실어 나르고, 돌담은 회색이 아니라 시간을 간직한 벽이었으며, 바다는 파랗기보다는 그 깊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작은 주머니를 들고 흙을 모으기 시작했다. 마치 고고학자처럼 각지의 흙을 채집하자, 그마다 다른 감촉과 색채가 깃들어 있었다.

“무엇을 하고 계셔요?”

밭에서 마주친 할머니가 물었다. 땅을 줍는 육지 사람에게 혼란과 따뜻한 관심이 뒤섞인 눈빛이었다.

“그림 재료를 찾고 있어요.” “물감을 사면 되잖아, 왜 굳이 흙을…”

할머니는 작게 혀를 차며 무릎을 짚고 일어섰다. 그 몸짓엔 꾸지람과 애정이 함께 담겨 있었다.

“이리 와. 좋은 흙 나오는 곳을 알고 있지.”

돌담길을 따라 굽이진 길을 걸었다. 길가에는 유채꽃이 피고, 멀리에는 푸른 바다가 펼쳐졌다. 할머니의 걸음은 느렸지만 확고했다.

도착한 곳은 오래된 돌집의 폐허 ―― 4·3 사건의 상처를 품은 유적이었다. 무너진 돌담 틈에서 유독 붉은 흙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다른 황토들과는 분명히 다른, 짙고 무거운 흙이었다.

“여긴 옛날 우리 집이었어. 불탄 뒤론 아무도 손을 안 댔지. 이 흙을, 우리 영감이 참 좋아했거든.”

할머니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나는 깨달았다. 이 흙은 단순한 자연의 재료가 아니었다. 가족의 역사와 시대의 아픔이 스며든 증인이었음을.

나는 흙 한 줌을 떴다. 뜨거웠다 ―― 아니, 뜨겁게 느껴졌다. 불타버린 집의 기억, 사라진 사람들의 온기가 아직 남아 있는 듯했다. 수많은 발자국, 비와 바람, 그리고 겹겹의 시간이 이 흙에 축적되어 있었다.

황토색은 물감이 아니라, 생명의 색이었다.

할머니의 얼굴에 새겨진 주름은 단순한 갈색 선이 아니었다. 삶의 역사였다. 해녀의 거친 손은 바다와의 대화가 남긴 흔적이었다.

이 섬의 진짜 색채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기억의 색, 시간의 색, 침묵의 색 ―― 그것은 팔레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깃든 색이었다.

나는 마침내 이해했다. 진정한 그림은 물감으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로 창조된다. 가장 아름다운 색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색이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나를 그렸다."

③ 바람의 언어

그건 마치 물속의 그림자를 붙잡으려는 일처럼, 불가능해 보였다. 바람은 형태도 색도 없다. 그저 모든 것의 곁을 스치고 지나갈 뿐이다.

평생 형태 있는 것들만 그려온 나에게 바람은 너무나 추상적인 존재였다. 나무는 윤곽이 있고, 사람은 형태가 있으며, 바위는 외형이 있다. 하지만 바람은 ―― ‘무’이면서 동시에 ‘전부’였다.

제주의 바람이 내게 첫 스승이 되었다. 아침에는 창문을 두드리고, 밤에는 처마 밑에서 속삭였다. 바람은 친구였고, 때로는 마음을 어루만지는 연인이기도 했다.

“바람을 그리려면, 바람처럼 그려라.”

처음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빠르게? 자유롭게? 형체 없이? 시간이 흐르며, 나는 점차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기 위해서는 먼저 침묵해야 한다.

바람에는 바람만의 리듬과 속도가 있다. 나 또한 그 리듬에 나 자신을 조율해야 했다.

붓을 들기 전에 기다린다. 기다림은 내게 익숙하지 않았다. 서울에서는 모든 것이 빨랐다. 하지만 제주에서는 모든 것이 느렸다. 해가 뜨는 것도, 파도가 밀려오는 것도, 구름이 흐르는 것도.

어느 날, 오름 중턱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처음에는 지루했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괴로웠다. 하지만 곧 고요 속으로 가라앉았다.

능선을 따라 구름의 그림자가 미끄러지고, 은빛 억새가 바다 쪽으로 기울어졌다. 그 움직임은 너무 느려서, 마치 멈춰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눈을 집중하자, 모든 것이 살아 있고, 움직이고 있었다.

풍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갑자기 나는, 바람의 말을 들었다. 그것은 귀로 듣는 소리가 아니라, 마음의 진동이었다. 마치 온몸의 세포가 바람의 주파수에 공명하며 떨리는 듯했다.

“선을 긋지 마라 ―― 여운을 남겨라.”

나는 깨달았다. 바람을 그린다는 건 형태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이 남기고 간 여운을 표현하는 일이라는 것을. 나뭇가지를 흔들고 간 뒤의 흔들림, 수면 위의 율동, 구름을 밀어내는 그 힘의 흐름.

그날부터 나는 윤곽을 그리는 것을 멈췄다. 사물의 경계가 아니라, 그것들에 스쳐간 바람의 궤적을 쫓았다. 나무의 윤곽이 아니라, 나무를 흔드는 힘. 집의 형태가 아니라, 집을 감싸는 흐름.

형태는 희미해졌지만, 그 대신 자유가 생겨났다. 얼굴도 점점 모호해졌다. 고정하지 않고, 흐르게 했다. 그건 소유가 아닌, 자유를 허락하는 사랑이라고 바람이 가르쳐주었다.

나는 바람이 지나간 자리만을 기억하려 했다. 바람 그 자체는 붙잡을 수 없지만, 조용한 궤적은 캔버스에 남는다. 그 궤적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다시 바람이 되어 살아난다.

이제 나는 바람의 말을 듣기 위해 귀 기울인다. 캔버스가 나를 부르지 않으면 기다린다. 바람이 말하지 않으면, 붓을 들지 않는다. 바람의 여운 속에서만 선을 그린다.

그렇게 놓인 선은, 더는 선이 아니다. 존재의 여운이며, 바람의 언어다. 말로 옮길 수는 없지만, 마음으로 이해되는 언어. 침묵의 가치 ―― 많이 말할수록 진실은 흐려진다. 바람은 최소한의 말로 최대한을 전한다. 나의 그림도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나를 그렸다."

④ 침묵의 얼굴들

서울에서 사람의 얼굴을 그릴 때, 나는 늘 그 표정 너머를 보지 못했다. 미소 짓는 입술, 반짝이는 눈빛, 그것들이 표현하는 표면의 감정에만 집중했다. 마치 얼굴을 읽는 것이 아니라, 얼굴을 복사하는 것 같았다.

그때의 나는 얼굴을 하나의 정보로만 받아들였다. 이 사람은 행복해 보인다, 저 사람은 슬퍼 보인다, 그 사람은 화가 난 것 같다. 표정을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그것을 캔버스에 재현하는 것이 초상화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주에 와서 처음 마주한 얼굴들은 달랐다. 그 얼굴들은 풍경보다 더 조용했고, 말보다 더 깊은 침묵을 품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단순한 표정의 집합이 아니라 시간의 지층이었다.

시장에서 무심히 파를 다듬는 노파, 바다를 응시하며 오래 앉아있는 어부, 해녀의 주름진 눈가. 그들은 결코 내게 포즈를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보지 않고 먼 곳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 시선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묻고 싶었다. 뒤돌아봐도 바다와 하늘, 구름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그 평범함은 날마다의 기도였고, 이별이었고, 노동의 기억이었다. 나는 그들의 침묵 속에서,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잔향을 듣기 시작했다. 침묵은 무음이 아니라, 소리로 가득 찬 고요였다.

나는 눈동자를 그리는 것을 멈추고, 시선이 향하는 방향을 그리기 시작했다. 검은 점으로서의 눈이 아니라, 끝없이 뻗는 시선의 무게를. 입술의 윤곽이 아니라, 그 틈에 숨어 있는 한숨을. 말하지 않는 입술이 오히려 무수한 말을 품고 있었다. 나는 그 침묵의 언어를 번역해 화면에 옮기고 싶었다.

시장 한편에서 만난 어떤 할머니의 얼굴 앞에서는, 얼굴 자체가 아니라 바다 그 자체를 그리게 되었다. 깊게 팬 주름, 바람에 거칠어진 입술, 바람을 피하듯 가늘게 뜬 눈, 주름 하나하나가 이야기였고, 입가의 세로 주름은 말해지지 않은 언어의 흔적이었다. 나는 물었고, 할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먼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 눈길에는 두려움도 용기도, 체념도 희망도 녹아 있었다.

“할머니, 그림 그려도 될까요?”

“뭐 하러.”

퉁명스러운 대답. 그러나 거절은 아니었다.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호기심이 섞여 있었다. 귀찮아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관심이 있다는 것을 나는 직감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스케치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눈코입을 그리는데 자꾸 다른 것이 그려졌다. 바다가 그려지고, 파도가 그려지고, 물속의 어둠이 그려졌다.

할머니의 얼굴이 아니라, 할머니가 살아온 세월이 그려지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단순한 개인의 얼굴이 아니라 제주 바다 전체의 얼굴이었다. 수십 년간 바다와 함께 살아온 사람의 얼굴에는 바다가 스며들어 있었다.

“할머니, 물질은 언제부터 하셨어요?”

“열다섯부터.”

“무서웠죠?”

“…”

대답 대신 할머니는 먼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모든 대답이 있었다. 두려움도, 용기도, 체념도, 희망도 모두 그 침묵 속에 녹아있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진정한 초상화란 얼굴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삶을 그리는 것이라는 것을. 할머니의 주름은 단순한 노화의 흔적이 아니라 삶의 연대기였다.

그날, 나는 초상을 ‘완성’하지 않았다. 아니, 완성해서는 안 된다고 느꼈다. 살아 있는 얼굴은 한 장의 화면에 가둘 수 있을 만큼 작지 않다. 나는 대신 바다를 그렸다. 먹으로 깊은 바다를, 황토로 거친 파도를. 그리고 완성된 화면은, 어느새 할머니의 얼굴이 되어 있었다. 바다가 할머니였고, 할머니가 바다였다.

나는 배웠다. 완성은 종종 종결이며, 침묵은 종종 시작이라는 것을. 침묵이 만들어내는 공허는 새로운 언어였다. 그 언어는 설명하지 않고, 암시만 한다. 제한하지 않고, 열어둔다.

나는 그림을 그리며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침묵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어떤 색이 필요한지, 어떤 선에서 멈춰야 할지. 그림이 말하기를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얼굴은 거짓말을 할 수 있지만, 침묵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지금 내 그림에 남는 것은 형태가 아니라 침묵이며, 그 침묵이야말로 진짜 얼굴이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나를 그렸다."

⑤ 기억의 풍경들

‘풍경’이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다나 산, 나무를 떠올린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풍경이란, 눈앞에 있는 사물이 아니라, 기억 속에 잠든 시간의 흔적이었다. 보이는 풍경은 ‘현재’라는 얇은 막에 불과하다. 기억의 풍경 속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가 침전되어 서로 겹쳐 있다.

제주에서의 나날이 길어질수록, 나는 눈에 보이는 것을 믿지 않게 되었다.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감정이 문득 되살아난다. 해녀의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스며 있는 슬픔, 노을 속 들판에 번지는 따뜻한 숨결. 기억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찾아온다.

나는 그려지지 않은 것을 남기기로 했다. 빈 화면은 기억의 그림자였고, 그 그림자가 때때로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었다. 기억은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바로 그 부정확함이, 기억의 아름다움이다. 시간이 흐르며 기억은 변형되고, 새로운 경험과 섞여, 숙성되어 간다.

꿈에 나타난 어린 시절의 골목길을 나는 정확하게 그릴 수 없었다. 어떤 곳은 좁아지고, 어떤 곳은 넓어졌으며, 어떤 부분은 과도하게 선명했고, 다른 부분은 극도로 흐릿했다. 기억은 카메라가 아니라, 화가다. 소중한 것을 강조하고, 사소한 것은 생략한다. 감정에 따라 색을 바꾸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 나는 장소가 아닌, 감정을 그린다. 윤곽선 대신 잔상(잔영)을, 선 대신 떨림을. 어떤 기억은 따뜻한 황토 속에, 어떤 기억은 차가운 먹물 속에 잠긴다. 같은 장소일지라도, 마음의 날씨에 따라 전혀 다른 색이다.

나는 오늘도 천천히 기억의 풍경을 펼치고, 그 안에 몸을 맡긴다. 그곳에서 나는 화가이자, 모델이며, 관객이며, 그리고 주인공이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나를 그렸다."

⑥ 내면의 오름

나는 자주 오름(화산 언덕)에 올랐다. 멀리 펼쳐진 풍경은 온화했고, 능선은 부드러웠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오르려 했던 것은, 눈에 보이는 언덕이 아니라, 마음속의 험한 언덕이었다.

제주의 오름마다 각자의 역사가 있다. 완만한 경사도 있고, 숨이 가쁠 정도로 가파른 경사도 있다. 어느 쪽이든 정상에 서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하지만 나는 점차 깨달았다. 중요한 건 정상이 아니라, 오르는 그 과정이라는 것을. 한 걸음마다 호흡이 달라지고, 시야가 트이고, 마음이 열린다 그 과정 자체가 의미였다.

해가 뜨기 전, 이슬에 젖은 은빛 풀, 안개에 싸인 정상,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 침묵 속에서 나는, 내면의 소음을 들었다. 초조함, 성공에 대한 갈망, 인정받고 싶은 욕구, 실패에 대한 두려움 그 모든 것은 언덕을 오를수록 차츰 가라앉아 갔다.

내면의 오름에는 이름이 없다. 성산일출봉처럼 고유한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계속해서 변화하는 마음의 지형일 뿐이다.

나는 이제 정상을 목표로 삼지 않고, 그저 비탈을 걷는다. 목적 없는 산책, 도착지가 없는 여행. 그 편이 더 자유로웠다. 어디엔가 도달해야 한다는 짐이 사라지고, 나는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만큼, 실로 풍요로운 날은 없다. 바람과 구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충만했다.

오름이란 정상 도달이 아니라, 오르고 내려오는 반복이다. 내려오는 길도 오르는 길만큼 중요하다. 평지로 돌아오는 순간, 그곳은 이미 출발했을 때의 평지가 아니다.

나는 바람 속에 앉아, 때때로 그림을 그리지 않고 지낸다. 그리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음을 나는 배웠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나를 그렸다."

⑦ 명암-설명과 암시

한때 나는 빛이 모든 것을 드러낸다고 믿었다. 찬란한 빛이 나를 이끌고, 그 눈부심 속에서 내 그림도 빛나는 줄 알았다. 빛이 진실을 밝혀내고,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며, 생명을 불어넣는다고 생각했다.

서울 시절, 나는 스포트라이트 아래 있는 그림들을 부러워했다. 강한 조명 아래 반짝이는 작품들,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화려한 색채. 그것이 예술의 정점이라 믿었다.

하지만 제주에 오고, 이 섬의 바람과 바다를 마주한 뒤, 나는 점점 깨닫게 되었다. 진정한 진실은 빛 속이 아니라, 그림자 속에 숨겨져 있다는 것. 아름다움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빛은 선택적이다. 어떤 것을 강하게 비추고, 어떤 것은 완전히 지워버린다. 그러나 어둠은 차별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고르게 품어 안는다. 빛이 외면하는 것, 빛이 거부하는 것을, 어둠은 따뜻하게 받아들인다.

이 섬의 풍경은 밝은 햇살보다는 오히려 짙은 안개와 구름에 덮여 있었다. 처음엔 그게 슬펐다. 서울의 네온과 형광등에 익숙한 눈으로 볼 때, 제주의 어둠은 이질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그 어둠 속에서 매혹을 발견했다. 흐린 날의 바다는 조용히 깊었고, 그 깊은 침묵은 나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맑은 날의 바다가 표면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면, 어두운 날의 바다는 내면의 진실을 속삭였다.

그림자를 그릴수록, 나는 감정의 세계 깊숙이 들어갔다. 그림자는 단지 빛의 부재가 아니었다. 거기엔 빛으로는 숨길 수 없는 진실이 담겨 있었다. 사람의 진짜 모습은 환한 곳이 아니라, 그림자 속에서 비로소 드러난다.

처음엔 어둠이 두려웠다. 어둠 속에서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몰랐다. 형태도 색도 확실치 않은 그 어둠은, 눈을 감고 길을 찾는 일처럼 막막했다.

하지만 그 그림자 속에서, 나는 두려움이 아니라 안도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둠은 나를 숨겨주었다. 빛 아래서는 모든 게 드러나고, 그것은 무거운 짐이었지만, 어둠 속에서는 오히려 진실하게 존재할 수 있었다.

그림자는 빛을 간직한 존재였다. 그림자가 있다는 건, 어딘가에 빛이 있다는 증거였다. 빛과 그림자는 적이 아닌, 연인 같은 관계였다. 서로를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존재.

빛이 언어로 설명한다면, 그림자는 침묵으로 암시했다. 빛이 직선적이라면, 그림자는 은유적이었다.

내 그림은 점차 어두워졌다. 화려하고 밝은 색 대신, 먹과 황토의 깊고 진한 색조를 택했다. 색을 덧칠하기보다, 하나씩 덜어내는 법을 배웠다. 비추기보다는, 숨기는 것을 배웠다.

그림이 어두워질수록, 더 진실해졌다. 화려한 색은 눈을 즐겁게 할지 몰라도, 마음을 움직이진 않는다. 하지만 깊은 어둠은 보는 이의 영혼 깊숙이 침투했다.

어둠을 그리며, 나는 마침내 빛의 진정한 가치를 이해하게 되었다. 빛은 어둠이 있어야만 비로소 빛날 수 있다. 어둠 없이 빛은 의미를 잃는다. 그들은 서로를 완성시키는 관계였다.

밤하늘의 별이 아름다운 이유는, 주변이 어둡기 때문이다. 하늘이 밝으면 별은 보이지 않는다. 어둠이야말로, 별이 빛날 무대였던 것이다.

이제 나는 어둠을 안고, 그 안에서 숨 쉴 수 있다. 그림자에 몸을 기댄 채, 조용히 속삭인다. 그림자는 결핍이 아니다. 그건 오래된 존재의 모습이며, 삶의 진짜 절반이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그림자 속에서 진짜 나를 만난다. 어둠이 내 스승이 되었고, 그림자가 내 친구가 되었다. 그들과 함께라면, 나는 빛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깊이에 닿을 수 있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나를 그렸다."

⑧ 빛보다 느린 선

한때 나는 빛이 모든 것을 드러낸다고 믿었다. 찬란한 빛이 나를 이끌고, 그 눈부심 속에서 내 그림도 빛나는 줄 알았다. 빛이 진실을 밝혀내고,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며, 생명을 불어넣는다고 생각했다.

서울 시절, 나는 스포트라이트 아래 있는 그림들을 부러워했다. 강한 조명 아래 반짝이는 작품들,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화려한 색채. 그것이 예술의 정점이라 믿었다.

하지만 제주에 오고, 이 섬의 바람과 바다를 마주한 뒤, 나는 점점 깨닫게 되었다. 진정한 진실은 빛 속이 아니라, 그림자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을. 아름다움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빛은 번개처럼 순간적으로 찾아온다. 그러나 선(線)은 시간을 머금고 온다. 빛의 속도는 우주에서 가장 빠르지만, 선의 속도는 화가의 호흡처럼 느리고, 마음의 맥박처럼 부드럽다.

한때 나는 빛의 속도를 따라 그림을 그렸다. 순간의 아름다움, 갑작스러운 감동을 재빨리 캔버스에 옮기려 했다. 인상파 화가들처럼, 변화하는 빛을 재빠르게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제주에 와서, 나는 천천히 그리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빛은 공간을 지배하지만, 선은 시간을 지배한다. 빛은 눈을 자극하지만, 선은 마음 깊이 스며든다. 빛은 폭발하지만, 선은 지속된다.

선을 그으면서 나는 시간의 흐름을 느꼈다. 붓이 종이에 닿는 순간부터, 선이 끝나는 순간까지 그 안에는 무수한 시간의 층이 쌓여 있었다. 한 줄의 선에는, 화가의 전 인생이 압축되어 있었다.

빠른 선은 충동적이고, 피상적이었다. 하지만 느린 선은 깊고 사려 깊었다. 그 선에는 망설임도, 확신도, 후회도, 희망도 담겨 있었다. 그래서 선의 굵기와 농담은 미세하게 변화했다.

어느 날, 석양이 은빛 들판을 붉게 물들였을 때 나는 서두르지 않고 붓을 들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황급히 그 장면을 스케치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나는 그 순간을 그저 눈에 새겼다.

빛이 서서히 사라지고, 그림자가 드리워질 때까지 기다렸다. 풀잎의 색이 붉은색에서 보라색으로, 그리고 검은색으로 변해가는 그 전체 과정을 지켜보았다.

빛의 드라마가 끝난 뒤, 나는 마침내 붓을 들었다. 그 순간의 빛은 이미 사라졌지만, 내 안에는 그 흔적이 더 깊게 새겨져 있었다. 보이지 않는 빛을 그리는 것 그것이 내가 배운 새로운 방식이었다.

나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선을 그었다. 한 줄을 그기 위해서도 긴 호흡이 필요했다. 숨을 들이쉬고, 잠시 멈췄다가, 천천히 내쉬며 선을 그었다. 선은 내 호흡과 함께 태어났다.

이 느림 속에서, 나는 내면의 동요와 떨림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서둘러 그은 선은 금방 바랬지만, 천천히 그어진 선은 깊고 생명력으로 가득했다. 마치 나무의 나이테처럼 천천히 자랄수록 단단하고 아름답다.

선을 그으면서, 나는 시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현대인은 모든 것을 빠르게 하려 한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서두를 수 없다. 사랑, 우정, 그리고 진정한 예술은.

제주는 내게 빛을 보는 방식을 바꾸게 했다. 이제 더 이상 찬란한 찰나를 좇지 않는다. 사라져가는 빛의 자취를 따라 그림을 그린다. 어둠이 빛 뒤에 남긴 미세한 떨림, 빛보다 느리게 스며드는 선의 감각을 좇는다.

그림이란 결국, 빛과 어둠의 경계, 그 틈을 천천히 산책하는 것이었다. 그 경계에서 빛과 어둠이 만나고, 빠름과 느림이 조화를 이룬다. 바로 그곳에서, 나는 가장 아름다운 선을 발견했다.

느린 선이 하나하나 쌓여 시간이 되고, 감정이 되고, 인생의 궤적이 되었다.

이제 나는 빛보다 느린 선을 따라 그리며, 그렇게 천천히, 아주 천천히 진짜 나를 만나고 있다.

빛보다 느린 선은, 그러나 빛보다 오래 남는다. 빛은 순간이지만, 선은 영원이다. 그 영원을 향해, 나는 지금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나아가고 있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나를 그렸다."

⑨ 비의 음성

제주의 비는 특별했다. 그것은 단순한 날씨 변화가 아니라, 하나의 언어였다. 서울의 비가 소음이었다면, 제주의 비는 음악이었다. 서울의 비가 장애물이었다면, 제주의 비는 축복이었다.

서울에선 비가 오면 우산을 펴고 급히 피해 다녔다. 비는 불편했고, 귀찮았고, 하루빨리 그치길 바라는 존재였다. 하지만 제주에서 만난 비는 달랐다. 비 오는 날이면 나는 붓을 내려놓고, 창문을 열었다.

비의 소리는 때로 조용한 속삭임 같았고, 때로는 무거운 한숨처럼 들렸다. 가랑비는 수줍은 소녀의 낮은 중얼거림 같았고, 폭우는 거친 남자의 외침 같았다. 비에는 수많은 목소리가 숨어 있었다.

소나기가 바다에 내릴 때, 그 소리는 힘찬 신음 같았고,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작은 빗방울은 조용한 대화 같았다. 나는 귀를 기울여 비의 언어에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소리 하나하나에 각기 다른 의미가 있었다.

비는 계절마다, 시간마다 다른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봄비는 부드럽고 따뜻하며, 여름비는 거칠고 열정적이었다. 가을비는 슬프고 애틋했고, 겨울비는 차갑고 날카로웠다.

분명했던 풍경이 비로 인해 흐려지고, 경계가 사라질 때, 나는 오히려 더 깊은 진실을 마주했다. 비는 세상을 모호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더 맑고 투명하게 만들었다. 비에 씻긴 세상은 더 깨끗하고, 더 투명했다.

비가 내리면 모든 것이 더 부드러워졌다. 건물의 날카로운 모서리도, 바위의 거친 표면도, 사람들의 목소리조차도. 비는 세상을 포근한 담요처럼 감싸 안았다.

비가 그친 후의 풍경은 늘 달랐다. 모든 것이 깨끗하게 씻겨 나갔고, 비가 지나간 자리에 깊은 고요가 머물렀다. 공기는 맑아지고, 색은 선명해졌으며, 향은 더욱 짙어졌다.

그 고요 속에서 나는 비가 남긴 흔적을 따라 천천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비가 만든 물웅덩이의 반짝임, 젖은 잎사귀의 윤기, 빗방울이 남긴 작은 자국들 그 모든 것이 그림의 재료가 되었다.

어느 비 오는 날, 창가에 앉아 있다가 문득 나는 깨달았다. 비는 빛의 또 다른 형태라는 것을. 밝은 빛이 표면을 비춘다면, 비는 내면을 조용히 어루만진다. 빛이 드러낸다면, 비는 스며든다.

비의 소리는 조심스럽게 내 영혼을 두드렸고, 보이지 않는 내면의 깊은 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비는 마음의 먼지를 씻어내고, 영혼의 갈증을 적셔주었다.

비 오는 날 그리는 그림은 특별했다. 물감이 종이에 스며드는 모습은, 빗물이 땅에 스며드는 것 같았다. 번지고 흐르는 색은, 마치 빗물의 흐름을 닮아 있었다.

나는 비를 그리려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비의 감각을 그렸다. 비의 촉촉함, 비의 서늘함, 비의 부드러움을 색과 선으로 표현했다. 비는 형태가 없기 때문에, 감각으로만 그릴 수 있는 존재였다.

지금, 나는 비 오는 날을 기다린다. 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마음에 고인 빗방울들을 그림 속으로 옮긴다. 그림 속에서 비는 더 이상 젖음이 아니라, 따뜻한 위로가 되어 그 안에서 나는 천천히 나 자신을 스며들게 한다.

비와 함께 그림을 그리며, 나는 자연과 하나 되는 경험을 했다. 내 붓놀림은 빗방울의 리듬과 하나 되었고, 내 호흡은 비바람의 흐름과 조화를 이루었다. 그 순간, 나는 화가가 아니라, 자연의 한 조각이었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나를 그렸다."

⑩ 불완전의 미

제주에서 작업을 거듭할수록, 나는 점점 더 붓을 도중에 멈추는 일이 많아졌다.

젊은 시절, 나는 윤곽선을 빈틈없이 마무리하고 선 하나조차 오차 없이 그리기 위해 애썼다. 배운 규범에 따라, 정확함과 디테일을 최고의 가치로 믿었다.

완벽주의는 오랫동안 나를 옥죄는 강박이었다. 선이 조금만 비뚤어져도 다시 그리고, 색감에 아주 약간이라도 불만이 생기면 덧칠했다. 당시의 나에게 불완전한 그림은 곧 실패작이었고, 완성만이 정의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나는 깨닫게 되었다. 진정한 생명은 오히려 불완전 속에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완벽한 선은 단단하지만, 그 안에 숨결이 없었다. 마치 표본처럼 생명의 온도가 없었다. 오히려, 약간 떨리고, 번지고, 흔들리는 선이 살아 있었다. 그 안에는 손의 떨림, 마음의 흔들림, 사고의 숨참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다.

때때로 나는 화면 위에 내려앉은 먼지조차 털어내지 않았다. 그 미세한 입자마저도 작업 시간의 흔적이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완성하는 것”보다 “멈추는 것.” 나는 마침표의 순간보다도, 어디서 멈출지를 가늠하는 일을 더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어디서 붓을 멈추느냐는, 어디서 시작하느냐보다 훨씬 어렵다. 적절한 찰나에 멈출 줄 아는 것 그것이야말로 화가의 진짜 능력이다.

그림은 철저히 채워져야 할 대상이 아니다. 보는 이의 상상과 감정을 위해, 의도적인 여백을 남겨야 한다. 완전히 메워지지 않은 여지 속에서, 사람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발견한다.

완성된 그림이 일방적인 선언이라면, 미완의 그림은 열린 질문이다. 질문은 정답보다 더 깊은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불완전함은 곧 살아 있다는 증거다. 완벽한 존재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불완전하며, 바로 그 결핍 때문에 아름답다.

지금 내 화면 위에도 여전히 멈춰진 선과, 비워둔 공간이 존재한다.

나는 그 불완전함 속에서, 조용히, 우리 삶의 진실을 마주하고 있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나를 그렸다."

⑪ 여백의 진실

나는 오랫동안 여백을 두려워했다. 빈 공간이 있으면 뭔가를 놓치고 있는 것 같았고, 그 자리를 색과 선으로 채워야만 안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주에서 살아가는 동안, 나는 깨달았다. 여백이란 결핍이 아니라 가능성이라는 것을.

파도가 물러난 뒤의 모래사장, 바람이 스쳐간 뒤의 맑은 하늘, 비가 지난 후의 투명한 길 그 비어 있는 순간들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음’의 위대함을 마주했다.

어느 날, 나는 캔버스에 선 하나만 그리고 붓을 내려놓았다. 그 단 하나의 선만 존재하는 공간은, 오히려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공허는 내 그림에서 가장 활발하게 작동하는 요소가 되었다.

보이는 것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 침묵이 오히려 가장 많은 말을 하듯, 여백 또한 말 없이 마음의 가장 깊은 곳을 울린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빈틈없이 화면을 채우려 하지 않는다. 그 여백의 고요함 속에서, 나는 천천히, 진짜 나 자신과 마주하고 있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나를 그렸다."

⑫ 무소유의 예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무렵, 나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싶어했다. 더 많은 물감, 더 선명한 색, 더 능숙한 기법 도구가 많을수록 그림이 좋아진다고 믿었다.

작업실은 유화, 수채화, 아크릴, 파스텔, 목탄, 수없이 많은 붓들로 가득했고, 그 모습은 마치 작은 무기고와도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나는 점점 깨닫기 시작했다. 소유는 자유가 아니라, 때로는 속박이라는 것을.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고민도 많아지고, 색이나 기법을 고르느라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비싼 물감을 아끼려는 가난한 마음, 좋은 도구를 반드시 제대로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 투자한 만큼 성과를 내야 한다는 초조함 소유가 늘어날수록 마음은 점점 좁아졌다.

제주에서 나는 축적이 아닌 해방을 배웠다. 불필요한 물감을 지우고, 불필요한 형태를 없애고, 더하기보다 빼기, 채움보다 여백을 선택했다.

도구를 하나씩 내려놓을 때마다 화면은 가벼워졌고, 그림에 숨결이 돌아왔다.

최소한의 색, 최소한의 선, 최소한의 붓질 그 안에야말로 최대의 자유가 있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만 가지고, 그 외의 것은 담담히 내려놓을 줄 아는 성숙함이다.

지금 나는 제한된 재료들을 깊이 신뢰한다. 황색은 이야기를 하고, 먹은 숨을 쉬며, 흰 여백은 무한을 열어준다.

적음은 가난함이 아니다. 그것은 집중이고, 자유이고, 해방이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나를 그렸다."

⑬ 고독의 무게

서울의 소란에서 벗어나 나는 비로소 고독의 실체를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고독은 단절이 아니라, 집중이었다. 외부의 관계를 잠시 끊자, 오히려 세상과 더 깊은 층위에서 연결되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도 아닌 선과 색에 몰입하며, 벽에 걸린 시계는 더 이상 의미를 잃었고, 나는 호흡의 리듬으로 잠에서 깨고, 그림이 나를 놓아줄 때에만 쉼을 얻었다.

고요한 고독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잃어버렸던 진짜 나를 되찾았다.

고독의 무게는 짐이 아니라 닻이었다. 세상의 소음과 풍문의 바다 속에서 나를 한 지점에 단단히 붙잡아주는 닻. 그것이 있었기에 나는 떠밀리지 않고, 중심을 지킬 수 있었다.

혼자 있음은 결핍이 아니라 충만이다 타인의 그림자에 기대지 않고, 오로지 나로서 존재하는 것.

그 순도 높은 존재감 속에서, 가장 맑고 깊은 그림이 태어났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나를 그렸다."

⑭ 은둔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나

사람들로 가득 찬 도시의 계절 속에서, 전시와 비평, 판매와 경쟁의 순환은 나에게서 천천히 생각할 힘을 앗아갔다. 명성에 대한 갈망과 창작의 순수성 사이의 갈등은 마음을 조금씩 닳게 만들었다.

제주로 이주한 뒤에야, 나는 오아시스 같은 고요함을 얻을 수 있었다.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서 벗어나, 오직 나의 절뚝이는 걸음과 호흡의 속도에 맞춰 그림을 그린다.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평온도 그 모든 것이 한 장의 그림 속 색과 선으로 스며든다.

고요는 공허가 아니다. 그 속에서 나는 가장 가볍고, 가장 깊은 나를 만난다. 침묵은 귀를 막는 것이 아니라, 여운을 듣는 능력을 열어준다.

나는 바람이 지나간 자취만을 기억하고, 고정된 형상을 풀어낸다. 진정한 사랑이 소유가 아니라 자유의 선물인 것처럼, 참된 묘사 역시 형태를 구속하지 않고, 흐름을 허락하는 데 있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나를 그렸다."

⑮ 기다림과 인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바람이 멎고, 빛이 내가 바라는 그 한 지점에 닿고, 마음이 시작할 준비를 마칠 때까지 나는 붓을 쥔 채 멈춰 서 있는다.

성급히 그은 선은 후회를 남기고, 준비되지 않은 색채는 보기엔 좋을지 몰라도 내면은 텅 빈 채로 남는다.

제주의 시간은 내게 말해주었다. “천천히 해도 충분하다.”

숨을 들이쉬고, 한 호흡을 두고, 천천히 내쉬며 선을 하나 긋는다. 그 선은 호흡과 함께 태어나, 나이테처럼 단단함과 온도를 띤다.

기다림은 수동이 아니라, 능동적인 준비다. 씨앗이 흙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을 계속하듯, 그림도 마음 깊은 곳에서 익어갈 시간을 필요로 한다.

정상만을 서둘러 오르면, 중간의 풍경을 놓치게 된다. 하지만 한 걸음씩 오르면 길가의 꽃, 바위 틈의 이끼, 나뭇잎 사이 햇살까지 보인다.

오래 기다릴수록 마음은 투명해지고, 보이지 않는 빛의 흔적은 더 깊게 남는다.

나는 빛이 사라진 후에야 붓을 들고, 사라져가는 것의 여운 속에서 “보이지 않는 빛”을 그린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조용히 기다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림을 완성해간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나를 그렸다."

⑯ 무명의 자유

한때 나는 내 이름이 사람들의 기억에 남기를 바랐다. 명성을 얻고, 찬사를 듣는 것 그것이 나의 그림의 목표였다. 신문에 이름이 오르거나, 미술관에 작품이 전시되는 것이 성공의 기준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서울의 삶은 끝없는 경쟁이었다. 누가 더 유명한가, 누가 더 비싸게 팔리는가, 누가 더 주목받는가. 그 속에서 나는 홍보가 예술보다 중요해지는 순간을 맞이했고, 진짜 나를 점점 잃어갔다.

제주에서의 긴 고독과 침묵 속에서 나는 비로소 무명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 밭을 가는 농부, 바다를 바라보는 어부, 돌담 너머의 아이들 그들은 이름 없이도, 삶 그 자체로 빛나고 있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내가 그림을 그리려 하자, 한 할머니가 물었다. “알아야 하나요?” “그럼, 어떻게 나를 그릴 건가요?” “할머니가 아니라, 할머니의 삶을 그리고 싶어요.”

나는 이름을 묻지 않았다. 그 대신 굽은 등의 각도, 손의 주름, 시선의 깊이를 그렸다. 그것은 특정한 한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얼굴이 되었다.

며칠 동안 나는 이름 없는 사람들만을 그렸다. 밭을 가는 노농, 방파제의 어부, 돌담 너머의 아이. 그들은 내 이름을 묻지 않았고, 나 역시 그들의 이름을 묻지 않았다. 그저 존재와 존재가 잠시 마주하고 조용히 헤어졌다.

이름을 버림으로써, 본질이 드러났다. 이름은 개인의 역사에 머물지만, 무명은 인류의 역사를 비춘다. 이름은 좁히지만, 무명은 넓힌다.

무명의 축복은 결국 이름이 아니라, 진리를 지켜내는 데 있었다. 나는 이름보다 진리를 택했고, 그 길 위에서 처음으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오늘도 나는 이름 없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그린다. 그 등 뒤에 간직된 고요한 삶의 무게가 내 그림 속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난다.

이름은 시간이 지나면 잊히지만, 진리는 영원히 남는다. 나는 이름을 버리고, 진리를 선택했다. 그것이 무명의 미학이었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나를 그렸다."

⑰ 잊혀짐의 미학

잊는다는 것은 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가지치기에 가깝다. 가지를 자르는 것은 나무를 작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봄의 새싹을 더 풍성하게 틔우기 위해서다.

나는 작업 중 자주 선을 지우고, 색을 닦아낸다. 사라진 것들은 헛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뿌리로 되돌아가 영양분이 된다.

젊은 시절, 나는 기록에 집착했다. 스케치, 메모, 사진, 일기 무엇 하나 놓치지 않으려 탐욕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기억은 창고가 아니라 정원이다. 쌓는다고 풍성해지는 것이 아니라, 틈을 만들어야 숨을 쉴 수 있다.

나는 잊는 법을 배웠고, 남길 몇 가지만 남겨두었다.

망각은 잔혹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기억하는 것만이 성실한 건 아니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지켜지는 진실이 있다. 고인의 이름을 반복하는 것보다, 그들의 기척을 간직하는 것이 때로는 더 성실하다.

나는 화폭에서 설명을 덜어내고, 여운만 남겼다. 남겨진 여운은 감상자의 가슴에서 다시 이야기로 살아난다.

겨울의 밭을 걷는다. 베어낸 자리는 쓸쓸하지만, 땅속에서는 다음 계절이 준비되고 있다. 망각은 겨울이며, 봄을 위한 침묵이다. 나는 그림의 겨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곳에서만이 진짜 봄이 올 수 있으니까.


한때 나는, 내 그림과 이름이 오래 기억되기를 바랐다. 불후의 작품을 남기고, 후세에 전해지는 화가가 되고 싶었다. 영원히 기억되는 것 그것이 최고의 목표라 믿었다.

서울에서는 ‘유산’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가 중요한 주제였다. 미술사에 이름을 남기고, 교과서에 실리는 화가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제주의 바람과 바다를 마주하며, 나는 점차 망각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게 되었다. 제주의 풍경은 매일 조금씩 변화했다. 그 작은 변화들이 낡은 풍경을 천천히 지워나갔다.

처음에는 그 변화가 슬펐다. 아름다운 것이 사라지고, 소중한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그 변화야말로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것을 느꼈다. 조용한 파도 자국이 모래 위에서 스며들듯 사라지는 것처럼 그 사라짐은 슬픔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였다.

옛것이 사라져야, 새로운 것이 올 수 있다.

나의 그림도 전시가 끝나면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점 희미해졌다. 그것이 처음에는 아팠다. 그토록 공들여 그린 그림이 금방 잊혀지는 것이 괴로웠다.

그러나 나는 깨달았다 망각은 단순한 삭제가 아니라, 더 깊은 곳으로의 스며듦이라는 것을. 눈에 보이지 않아도, 누군가의 마음속 어딘가에 흔적은 남아 있는 것이다.

기억이 희미해질수록 본질은 선명해졌다. 세부는 사라져도, 핵심적인 감동은 남는다. 마치 꿈에서 깬 순간처럼 내용은 잊었지만, 감각은 선명히 남는 것처럼.

지금 나는, 잊혀지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내 그림이 기억에서 서서히 멀어져도, 언젠가 누군가의 마음 깊은 곳에서 조용히 되살아나기를 바랄 뿐이다.

망각의 순간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기억의 시작이라고 믿는다. 물이 천천히 스며들듯, 바람이 자연스럽게 불어오듯 억지로 기억시키려 하지 않고, 그저 거기 존재하는 것.

진짜 예술은 기억되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존재할 뿐이다.

꽃은 시들기 전 가장 향기롭고, 태양은 수평선에 닿을 때 가장 붉다. 사람의 눈빛은 이별의 순간에 가장 깊다.

모든 아름다운 것은 사라질 때 가장 아름답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망각의 미학을 그리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형상보다 더 깊고 조용한 흔적을 남기고 싶다.

그림에서도, 삶에서도 나는 천천히, 조용히 잊혀져 가고 있다.

“어제 있던 것이 오늘은 없다.” ‘영원’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영원하지 않은 순간’을 그리는 것.

사라지는 것이 가장 아름답고, 잊히는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망각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영원히 기억되고자 하는 욕망에서 벗어난 그 순간, 나는 진정으로 ‘지금’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 순간의 그림, 이 순간의 감동이면 충분했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나를 그렸다."

⑱ 일상의 성스러움

성스러움은 특별한 장소에만 깃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평범한 몸짓 속에 깃든다. 아침에 붓을 씻을 때 느껴지는 물의 차가움. 황토를 절구에 갈 때 들려오는 낮고 둔한 소리. 걸어놓은 커튼 섬유가 바람에 부딪혀 내는 미세한 속삭임. 찻잔 위로 피어오르는 김 나는 그러한 사소한 의식들 속에서 매일 세상의 시작을 목격하고 있다.

제주에서는 일상이 계절에 따라 미묘하게 변주된다. 겨울 바람은 문을 두드리고, 여름의 습기는 물감에 다른 시간의 리듬을 요구한다. 나는 날씨에 맞춰 하루의 습관을 바꾼다. 창작은 계획이 아니라 응답이다. 응답하는 행위인 한, 일상은 지루해지지 않는다. 세상이 묻고, 나는 대답한다. 그 문답의 왕래가 화폭을 형성해간다.

나는 “의례 없는 의례”라는 말을 좋아한다. 호화로운 예식 없이, 고요한 반복만으로 신성을 다시 불러오는 것. 나는 그림 앞에서 깊이 숨을 들이쉬고, 천천히 내쉰다. 그것만으로도 화면은 이미 바뀌어 있다. 호흡이 바뀌면, 세상의 보임도 바뀐다. 일상이란 결국, 호흡을 배우는 일이다.

사는 것이 예술을 하는 것이었다. 제주에서의 긴 시간 동안, 나는 그림을 그리는 순간뿐만 아니라 일상의 아주 작은 찰나에도 예술이 존재함을 발견했다.

밥을 지을 때 피어나는 김, 바다에서 돌아온 해녀가 젖은 머리를 털어내는 모습, 시장 골목에서 터지는 웃음소리 모든 것이 그림처럼 느껴졌다.

서울에서는 예술과 삶이 분리되어 있었다. 나는 오직 작업실에서 붓을 들 때만 화가였고, 그 외의 시간엔 그냥 ‘사람’이었다. 예술은 특별한 공간, 특별한 시간에만 일어나는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제주에서는 달랐다. 아침에 눈을 뜨고 창을 여는 순간부터 예술은 시작되었다. 바람의 냄새, 새들의 울음소리, 햇살의 따뜻함 그 모든 것이 감각의 체험이자 영감의 근원이었다.

처음엔 무엇을 그릴지 고민하며, 특별한 것만을 찾으려 했다. 아름다운 풍경, 인상적인 인물, 극적인 순간들. 하지만 제주의 시간은 삶 그 자체가 얼마나 특별한지를 조용히 가르쳐주었다.

일상 속에 숨겨진 아름다움과 진실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그것을 화폭에 담고 싶어졌다. 주전자에서 피어나는 김, 바람에 흔들리는 빨래, 담장을 걷는 고양이의 우아함.

어느 아침, 커피를 내리다가 문득 깨달았다 이 순간 자체가 하나의 공연이라는 것을. 물이 끓는 소리, 커피 향기, 손안에 따뜻하게 감기는 잔의 감촉.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종합예술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일상의 모든 행동을 의식적으로 수행하게 되었다. 식사 시간에는 음식의 색과 질감에 집중하고, 걷는 동안엔 막걸리를 들고 뒤뚱거리는 걸음의 리듬을 느끼고, 잠자리에 들 땐 그것을 하루의 마무리 의식으로 여겼다.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날들이 내 인생을 만들고, 그 인생이 나의 그림이 되었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는 날조차, 이미 그림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제주의 돌담길, 조용히 출렁이는 바다, 서서히 떠오르는 태양 그 모든 것이 나의 팔레트였다.

삶과 예술의 경계가 사라졌을 때, 나는 더 깊고 풍요로운 체험을 할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릴 때뿐 아니라, 삶의 모든 순간에 나는 화가였다. 숨 쉬고, 바라보고, 느끼는 그 모든 행위가 예술이었다.

결국 나는 깨달았다 좋은 그림은 기술이나 기교에서가 아니라, 삶의 깊이와 진실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서툴더라도, 삶의 진실이 담긴 그림은 기술적으로 완벽한 그림보다 훨씬 더 감동적이었다. 정직한 감정은 화려한 색채보다 오래 기억되었고, 성실한 표현은 정교한 묘사보다 오래 남았다.

이제 나는 삶을 그대로 캔버스에 옮긴다. 숨기지 않고, 그대로의 나를 정직하게 표현한다. 그리하여 나의 그림은 삶이 되고, 삶은 다시 그림이 된다.

제주에서 나는 마침내 깨달았다 인생의 미학은 결국, 가장 평범한 순간에 존재한다는 것을. 특별해지려 하지 않고, 평범을 받아들였을 때, 비로소 진정한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나를 그렸다."

⑲ 서민의 풍경

제주의 골목길을 걷다 보면, 나는 종종 걸음을 멈추곤 했다. 그곳에는 도시의 화려함 대신, 소박하고 조용한 삶의 흔적이 있었다. 시장 한켠에서 고무장화를 고르는 할머니, 노을 진 밭에서 땀을 닦는 농부, 바다에서 돌아온 해녀의 조용한 미소 — 그 모든 것이 내게는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서울에서는 그림의 소재가 늘 화려한 경치나 유명한 장소였다. 주목을 끄는 것이 우선되었다. 서민의 삶은 “보기 좋지 않다”, “예술이 될 수 없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제주에서 만난 서민들의 모습은 달랐다. 그들의 얼굴과 몸짓에는 꾸밈 없는 진실이 담겨 있었다. 연출도 없고, 계산도 없이, 다만 삶의 무게와 시간이 새긴 주름이 깊게 각인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부유하지 않았지만 진실했다. 유명하지 않았지만 존재감이 있었다. 화려하지 않았지만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 아름다움은 겉모습이 아니라, 삶을 통해 얻은 지혜와 인내의 내면적 아름다움이었다.

그들의 모습을 화폭에 옮길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과연 나는 얼마나 진실되게 살고 있는가? 내 그림에는 얼마나 삶의 진리가 담겨 있는가? 그들의 삶은 나에게 거울이 되었다.

어느 날, 바닷가에서 우연히 마주친 노인의 얼굴은 나에게 하나의 풍경이었다. 태양에 그을리고, 바람에 마른 그 얼굴에는 삶이라는 거대한 산맥이 펼쳐져 있었다.

그 눈동자 안에서 나는 오래된 바다의 깊이를 보았고, 그 주름 사이에서 제주의 돌담과 바람의 흔적을 읽었다. 한 사람의 얼굴이 곧 지도였다. 살아온 세월의 지도, 견뎌온 고난의 지도, 쌓아온 지혜의 지도.

그 손은 거칠었지만 따뜻했다. 평생을 바다와 밭에서 일해온 손. 그 손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이야기가 새겨져 있었다. 성공이나 실패라는 잣대로는 재단할 수 없는, 그저 정직하게 살아온 시간의 이야기가.

서민의 삶을 통해, 나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들의 일상의 순간, 말없이 견디며 살아온 시간 속에서 나는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명예나 부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다는 것은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아니라, 나 자신이 더욱 정직하게 살아가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들을 그리는 일은 곧 삶의 진정한 의미를 배우는 일이었다.

그들은 가진 것이 많지 않았지만, 잃을 것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더 자유로웠다. 남의 시선을 그리 신경 쓰지 않고, 자신만의 리듬으로 살아갔다. 나는 그 자유로움이 부러웠다.

이제 내 화폭에는 특별한 인물이나 화려한 장면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생활, 서민적인 풍경이 담겨 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평생 추구해야 할 진정한 예술의 길이었다.

서민의 풍경을 그리면서 나는 진짜 민주주의를 배웠다. 모든 사람의 삶이 동등하게 소중하고, 모든 얼굴이 동등하게 아름답다는 것. 예술은 특권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이들의 공동 자산이라는 것.

화려한 것보다 소박한 것이 더 깊은 감동을 주고, 웅대한 것보다 일상적인 것이 더 오래 남는다는 것을 — 나는 그것을 제주의 서민들에게서 배웠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나를 그렸다."

⑳ 시대의 그림자

오랜 세월 그림과 함께 살아오며, 나는 언제나 시대의 얼굴을 화폭에 담으려 했다. 그림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시대의 숨결과 변화를 읽고 이해하는 방식이었다.

도쿄와 서울에서 ‘시대를 읽는다’는 것은 대체로 유행을 따르는 것을 의미했다. 유행하는 기법, 인기 있는 소재, 주목을 끄는 기술을 빠르게 익히고 적용하는 것이 곧 시대 정신을 반영하는 일이라 믿었다.

그러나 시대의 진짜 초상은 그런 표면적 유행이 아니라, 깊은 층위의 진실 속에 있었다. 화려한 네온사인 뒤에 숨은 고독, 급격한 발전의 이면에 감춰진 상실감, 물질적 풍요 속의 정신적 빈곤 —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사는 시대의 진짜 얼굴이었다.

제주에서 보낸 세월 동안, 나는 그곳 사람들의 삶 속에서 시대의 미묘한 변화를 느꼈다. 거센 바람과 함께 살아가는 해녀들의 고집스러운 모습, 무거운 일상 속에서 묵묵히 땅을 가는 농부의 손 — 그 모든 것이 시대의 거울이었다.

그들의 삶에는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대한 적응과 저항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전통을 지키려는 의지와 변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 사이의 갈등 —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시대 초상이었다.

어느 날, 〈검은 바다〉를 그리면서 나는 내내 울고 있었다. 먹을 흘릴 때마다, 화폭에 스며든 말 없는 슬픔과 희생이 그대로 내 가슴에 전해졌다.

그 검은 바다는 단순한 자연이 아니었다. 역사의 고통이 스며든 바다, 수많은 사람의 눈물이 섞인 바다, 침묵 속에 감춰진 진실이 잠든 바다. 나는 그 모든 것을 한 장의 그림에 담고자 했다.

그날 나는 선명하게 깨달았다 — 예술은 시대의 고통을 대변하고 기록하는 일임을. 화가는 단순히 아름다움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시대의 증인이어야 한다.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까지 그려내야 한다.

나는 자주 자문했다 — 화가는 시대의 거울인가, 아니면 시대의 등불인가? 시간이 흐른 뒤 깨달았다 — 화가는 동시에 거울이자 등불이어야 한다. 현실을 비추고, 미래를 밝히는 존재로.

아마 둘 다일 것이다. 나는 화폭 위에 시대의 명암(明暗)을 함께 기록했다. 밝고 화려한 순간뿐 아니라, 어둡고 고통스러운 순간까지도. 역사는 승자만의 것이 아니며, 모든 사람의 것이기 때문이다.

시대를 그린다는 것은 객관적 기록이 아니라 주관적 해석이었다. 같은 시대를 살아도, 사람마다 다른 시간을 경험한다. 나는 내가 본 시대, 내가 느낀 시대를 그렸다. 그것이 나의 한계이자, 동시에 나의 고유성이었다.

제주에서의 시간은 내게 시대를 보는 새로운 눈을 주었다. 중심이 아닌 주변에서, 도시가 아닌 섬에서 바라본 시대의 모습은 전혀 달랐다 — 더 느리고, 더 깊고, 더 인간적이었다.

이제 나의 그림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좇지 않는다. 내가 만난 시대, 내가 살아낸 현실, 그 속에서 버티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그것이 내가 그림을 통해 세상에 남기고 싶은 진짜 시대의 초상이다.

시대는 흐르지만,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 불변의 본질을 담아내는 것 — 그것이야말로 참된 시대의 초상이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나를 그렸다."

㉑ 감각의 전이

제주에 머무는 동안, 나의 감각은 점차 하나에 머무르지 않고 서로 얽히고 이어지기 시작했다. 바람의 소리가 어느 순간 색채로 느껴졌고, 태양의 온기가 향기로 번져갔다. 눈으로 본 풍경이 귀로 들렸고, 귀로 들은 소리가 마음속에서 색을 띠었다.

서울에서 감각은 분리되어 있었다. 눈은 보는 일, 귀는 듣는 일, 코는 맡는 일 — 각각의 기능은 따로 작동했다. 그림을 그릴 때도 시각에만 의존했다. 정확한 그림이란 보이는 것을 보이는 그대로 옮기는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제주에서 나는 모든 감각이 하나로 이어지는 신비를 체험했다. 경계가 무너진 순간, 세상을 보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자연스레 공감각이 찾아온 것이다.

어느 날, 아틀리에 창가에서 바람 소리를 듣고 있을 때였다. 나는 불현듯 붓을 들었다. 그 소리가 푸르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 푸른색이 들려왔다.

나는 천천히 물감을 올리며, 마치 소리를 색으로 번역하듯 그렸다. 짙은 바람은 진한 남색으로, 온화한 바람은 옅은 하늘빛으로 표현되었다. 바람의 세기와 색의 농도가 정확히 겹쳐졌다.

그 순간 이후, 나는 더 이상 정확한 묘사를 위해 붓을 들지 않았다. 대신 감정을 번역하기 위해 붓을 들었다. 보이는 것을 그리는 대신, 느껴지는 것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림을 그릴 때마다 나는 그 감각의 전이를 즐겼다. 손끝에 닿는 종이의 질감은 입안의 맛으로 전해졌고, 붓이 지나가는 소리는 색이 되어 화폭에 녹아들었다.

거친 종이는 쓴맛이었고, 부드러운 종이는 단맛이었다. 굵은 붓은 낮은 목소리, 가는 붓은 높은 목소리였다. 모든 것이 서로 얽히며, 하나의 거대한 교향곡을 이루어갔다.

그런 순간, 나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감각 사이를 여행하는 듯했다. 그 여행은 신비롭고 환상적이었다. 마치 다른 차원의 세계로 들어선 듯했다.

감각의 융합은 나의 예술을 더욱 깊고 풍부하게 만들었다. 하나의 감각에 갇혀서는 결코 표현할 수 없었던 미세하고 복잡한 감정의 질감이, 이제는 자유롭게 화폭 위에 펼쳐졌다.

색 안에서 음악이 들리고, 음악 속에서 향기가 피어나고, 향기 속에서 촉감이 느껴졌다. 이 모든 감각의 융합 속에서 나의 그림은 단순한 시각 예술을 넘어, 총체적 예술이 되었다.

이제 나의 그림은 더 이상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다. 오감을 통해 살아 움직이는 존재가 되었다. 감상자 또한 단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느낀다. 어떤 이는 내 그림에서 바다 냄새를 맡았다고 했고, 또 다른 이는 바람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의도한 바였다 — 감각의 경계를 넘는 예술, 오감으로 체험하는 그림.

지금도 나는 화폭 앞에 설 때면 먼저 눈을 감고 깊이 숨을 들이쉰다. 귀로 듣고, 코로 맡고, 손끝으로 느낀 모든 것이 그림 속에서 하나로 융합되기를 기다린다. 그렇게 태어난 작품 속에서 나는 매 순간, 감각의 기적을 체험한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나를 그렸다."

㉒ 자연과의 교감

제주에서 살아가며, 나는 자연과 깊이 대화하는 법을 배웠다. 나무와 바다, 바람과 바위 — 그 모든 것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날마다 걸음을 멈추고, 귀 기울이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에서 자연은 그저 배경이었다. 그림의 소재로는 쓸모가 있어도, 대화의 상대는 아니었다. 나는 자연을 보고, 관찰하고, 모사했을 뿐이다. 주체는 나였고, 자연은 객체였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자연을 정복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제주에서 자연은 동반자가 되었다. 나와 자연 사이에는 위계가 아닌 수평의 관계가 세워졌다. 나는 자연을 지배하려 하지 않았고, 자연 또한 나를 거부하지 않았다.

어느 아침, 바닷가를 걷다가 작은 새의 울음을 들었다. 그 소리가 조용히 내 마음에 스며들었고, 그 순간 나는 붓을 들었다. 붓은 느릿하게 움직이며, 마치 자연이 건넨 말을 번역하듯 움직였다.

새의 노래는 내 손을 거쳐 선과 색이 되었다. 높은 음은 가느다란 선으로, 낮은 음은 굵은 선으로. 빠른 멜로디는 역동적인 필치로, 느린 멜로디는 부드러운 터치로 나타났다.

그날 아침의 공기와 새소리는 모든 색과 선 안에 완벽히 담겨 있었다. 이것은 모방이 아니라, 번역이었다. 자연의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옮기는 일이었다.

자연은 말없이 수많은 이야기를 내게 전했다. 가지 끝에 흔들리는 한 장의 잎, 천천히 움직이는 파도의 리듬, 비 오는 날 젖은 흙의 냄새 —— 그 모든 것이 내 마음을 열고 감정을 일깨웠다.

나는 그들과 대화하듯 천천히 그렸다. 서두르지 않고, 기다렸다. 자연이 내게 말을 걸 때까지, 그리고 내가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렸다.

그 대화는 일방적이지 않았다. 내가 자연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자연 또한 내 그림을 지켜보는 듯했다. 바람이 내 캔버스를 스치고, 태양이 물감을 말려주고, 새들이 내 작업을 지켜보고 있었다.

때때로 나는 자연 앞에서 붓을 내려놓았다. 그리지 않고, 그저 바라보고 느끼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 순간 나는 자연의 일부가 되었고, 내 영혼은 고요히 자연과 섞여들었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예술의 가장 진실한 본질을 발견했다.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하나 되는 것. 자연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되는 것.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자연은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봄의 새싹은 희망의 초록으로, 여름의 태양은 열정의 주황으로, 가을의 낙엽은 성숙의 갈색으로, 겨울의 바람은 정화의 흰색으로 내 그림 속에 스며들었다.

지금 나는 자연과의 대화 속에서 그린다. 자연이 가르쳐준 것을 화폭에 담으며, 나는 매 순간 자연과 내가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느낀다. 그렇게 완성된 그림은 더 이상 단순한 작품이 아니다. 자연과 내가 함께 창조한, 살아 숨쉬는 존재가 된다.

자연과의 대화는 내게 겸손을 가르쳐주었다. 인간은 자연의 주인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라는 것. 우리는 자연에서 와서, 결국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나를 그렸다."

㉓ 풍토의 숨결

제주에 살면서, 나는 이 섬만의 특유한 숨결을 느끼기 시작했다. 섬의 땅과 바람, 바다와 하늘이 어우러져 이루는 고요한 균형 속에서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풍토란 단순한 기후나 지형이 아니다. 천 년의 시간이 빚어낸 고유한 정신이다. 제주의 풍토는 화산의 격렬함과 바다의 포용력, 바람의 자유와 돌의 단단함이 뒤엉켜 있는 복합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서울에서는 풍토를 느끼기 어려웠다. 너무 많은 것이 인공적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자연의 원초적 모습을 발견하기 힘들었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덮인 땅 위에서는 흙의 숨결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제주는 달랐다.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대지의 숨결이 발바닥을 타고 전신에 스며들었다.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땅은 거칠었지만, 따뜻했다. 화산의 기억을 간직한 돌들은 여전히 지구 깊은 곳의 에너지를 품고 있었다.

어느 날, 오름 정상에 앉아 바람을 맞이했다. 바람은 나를 부드럽게 안아주면서 동시에 힘있게 밀어냈다. 그 바람 속에서, 나는 제주의 대지의 숨결을 느꼈다.

대지에서 피어오르는 따뜻한 기운이 바다에서 불어온 짭조름한 바람과 섞여 섬의 호흡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호흡은 곧 생명의 리듬이었다. 들이쉬고 내쉬는 숨결, 오르고 내리는 물결, 밀려왔다가 물러가는 파도 — 영원의 순환이 이어지고 있었다.

돌담길을 걸을 때면, 제주의 역사가 손끝에 닿는 듯했다. 무수한 사람들의 손으로 쌓아 올린 돌담은 거친 바람과 파도에도 무너지지 않고 굳건히 서 있었다. 그 돌담을 화폭에 옮길 때마다, 나는 섬의 깊은 역사를 함께 기록하려 했다.

돌 하나하나에도 저마다의 역사가 있었다. 어떤 돌은 바다에서 굴러왔고, 어떤 돌은 산에서 떨어졌으며, 어떤 돌은 화산이 뿜어낸 것이었다. 그 모든 돌들이 모여 하나의 담을 이루고, 하나의 이야기를 창조하고 있었다.

풍토는 사람 또한 빚어내고 있었다. 제주 사람들의 완고한 기질과 넓은 마음은 이 섬의 풍토가 길러낸 것이었다. 거센 바람과 파도에 맞서며 견딘 강인함, 넓은 바다와 높은 하늘을 바라보며 키운 포용력 — 그것이 그들의 성격이 되었다.

해녀들의 용기, 농부들의 끈기, 어부들의 인내 — 모두가 이 섬의 풍토가 길러낸 덕성이었다. 제주에서 나는 깨달았다. 인간이 환경을 만들지만, 환경 또한 인간을 만든다는 것을.

풍토는 나의 그림 속에서도 숨 쉬고 있었다. 내가 표현한 것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그 안에 흐르는 호흡 그 자체였다. 흙과 바람, 돌과 물 — 그 모든 것이 융합해 빚어낸 섬의 에너지를 나는 천천히 화폭에 담아냈다.

그림을 그리며, 나는 풍토와의 일체화를 경험했다. 나의 필치는 바람의 흐름을 따르고, 나의 색채는 흙의 질감을 닮았으며, 나의 선은 돌담의 곡선을 닮아갔다. 나는 더 이상 외부의 관찰자가 아니라, 풍토 그 자체의 일부가 되었다.

지금, 제주의 풍토를 그리면서 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있다. 그림 속에서 나와 자연은 서로의 숨결을 나누고, 그렇게 완성된 작품은 곧 나의 일부가 되며, 이 섬의 숨결이 된다.

풍토는 시간을 담는 그릇이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 — 그 모든 것이 그 안에 공존하고 있었다. 나는 그 시간의 흐름을 화폭에 담으려 했다. 영원히 변치 않는 것과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 만나는 지점에서.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나를 그렸다."

㉔ 하나의 진실

그림을 그리며, 나는 언제나 단 하나의 대상만을 선택했다. 캔버스에는 오직 까마귀 한 마리, 노인 한 사람, 외로운 소나무 한 그루, 바다를 가르는 작은 배 한 척만이 나타났다. 이것은 단순한 미학적 선택 때문만은 아니었다.

서울에서는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담으려 했다. 복잡한 구도, 다양한 인물, 화려한 배경 —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믿었다. 풍부한 그림이 좋은 그림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런 그림은 결국 초점을 잃고 말았다.

대상이 둘 이상일 때, 그들은 서로 대화하며 나를 배제했다. 여러 인물이 있는 그림 속에서 나는 그저 관객에 불과했다. 그들에겐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었고, 나는 그 속에 개입할 수 없었다.

하지만 대상이 오직 하나일 때,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 대상과 나 사이에 직접적이고 친밀한 관계가 맺어졌다. 방해받지 않는 순수한 대화가 가능해졌다.

제주에서 보낸 긴 시간 동안, 나는 그림 속 단 하나의 대상과 깊이 마주했다. 그 대상은 나와 직접 대화하며, 숨겨둔 감정과 생각을 천천히 드러내주었다.

까마귀 한 마리는 마치 내 고독을 대신 표현하듯 조용히 캔버스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검은 눈 속에서 나는 내 자신을 보았다 — 고독하지만 자유로운, 소외되었으나 독립된 존재. 까마귀는 말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는 듯했다.

외로운 소나무 한 그루는 바람과 싸우며 홀로 서 있는 내 모습을 비췄다. 대지에 뿌리를 깊이 내리면서도,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는 모습 — 땅 위에 서 있지만, 하늘을 꿈꾸는 존재.

대상이 하나일 때, 나는 그 안에서 무한한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캔버스 속 대상과 나는 서로의 내면 세계를 깊이 들여다보며 대화했다. 고요한 바다 위 작은 배 한 척이 나의 꿈과 불안을 함께 실어 나르고 있었다.

그 작은 배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어디에서 온 것일까? 누가 타고 있는 것일까? 수많은 의문이 떠올랐지만, 답은 중요하지 않았다. 배가 떠 있다는 그 사실 자체가 중요했다. 존재한다는 것 — 그것으로 충분했다.

노인 한 사람은 삶의 깊은 지혜와 내가 지나온 세월을 조용히 들려주었다. 주름진 얼굴에는 시간이 새겨져 있었다. 기쁨의 주름, 슬픔의 주름, 웃음의 주름, 눈물의 주름 — 모든 감정이 그 얼굴에 각인되어 있었다.

하나의 대상을 깊이 바라보는 일은 명상과 닮아 있었다. 시간이 멈추고, 세상이 고요해졌다. 오직 나와 그 대상만이 존재하는 순수한 공간이 생겨났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캔버스를 복잡하게 채우려 하지 않는다. 하나의 대상을 천천히 열어가며 그 깊이와 진실에 집중한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대상의 가장 본질적인 진실과 내 안의 가장 정직한 깊이를 발견한다.

하나의 대상이야말로 내 그림에서 가장 완전한 표현이었다. 그것이 나의 예술이 지향하는 진실이며, 그 하나의 대상 속에서 나는 마침내 진짜 나 자신을 만난다.

하나는 곧 전체이고, 전체는 곧 하나다. 이것이 제주에서 내가 깨달은 가장 큰 진리였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나를 그렸다."

㉕ 무명(無名)의 의미(意味)

이름은 편리하다. 부르기 위한 노크, 거래를 위한 인장, 기억을 위한 인덱스. 그러나 이름은 종종 세계를 고정시키고 닫아버린다. 나는 오랫동안 서명이라는 틀 안에서만 숨을 쉴 수 있었다.

제주에서 나는 이름 없는 것의 힘을 마주했다. 돌담에는 만든 이의 이름이 없었고, 바다는 파도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바람조차 자신을 명명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것들은 확실히 존재하며, 깊이 작용했다.

무명은 부재가 아니다. 과도한 자기주장을 거두고, 존재 자체에 자리를 내어주는 태도다.

어느 날 저녁, 나는 서명을 하지 않았다. 화면 구석에 놓아야 할 세 글자를 과감히 생략했다. 두려움이 있었다 —— 이 작품이 내 것임을 증명하지 못할까 봐. 그러나 곧 알았다. 그 두려움 너머에 자유가 있다는 것을.

이름을 내려놓자, 작품은 내 소유물이기를 멈추고 세상의 일부가 되었다. 사람들은 작가의 이력이 아니라 화면 자체의 호흡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무명은 책임을 피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큰 책임이다. 이름에 기대지 않고, 화면 그 자체에 모든 것을 맡기는 용기. 서명을 멈춘 순간, 나는 더 신중하고 더 정직하게 그렸다. 더 이상 변명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름은 보증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무명은, 아무런 보증 없이도 신뢰를 요구한다. 그리고 나는 그 긴장감을 사랑하게 되었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나를 그렸다."

㉖ 증여로서의 그림

작품은 소유물이 아니라 선물이다. 나는 오랫동안 ‘완성’이란 나의 내적 해답을 화면에 고정하는 것이라 믿어왔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그림은 내 손을 떠날 때 비로소 세상에 닿아 완성된다.

받는 이의 호흡, 기억, 고통, 기도 속에서만 그림은 자기의 진정한 얼굴을 드러낸다.

증여란 일방의 내어줌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해설을 붙이지 않고, 그저 내어놓는다.

서명을 삼가는 것, 화면을 끝까지 메우지 않는 것, 해설을 최소화하는 것 —— 그 모든 행위는 증여의 예법이다.

나는 다만 건넌방의 뱃사공처럼 작품이 저쪽 언덕에 닿을 때까지 조용히 지켜본다.

그리고 그 언덕은 언제나 내가 알 수 없는 곳에 있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나를 그렸다."

㉗ 선(線)의 계율

선은 칼이자 다리, 그리고 기도이다. 한 줄기 선에는, 그린 이의 계율이 새겨진다.

나는 남용을 두려워한다. 편의를 위해 선을 긋는다면, 세계는 쉽게 단절된다. 게으름으로 선을 긋지 않는다면, 세계는 모호 속에 가라앉는다. 둘 다 폭력이다.

그래서 나는 선에 세 가지 계율을 주었다.
첫째, 필요할 때만 긋는다.
둘째, 그은 선의 책임을 진다.
셋째, 지워야 할 때는 주저 없이 지운다.

선이 많은 그림은 종종 설명으로 무너지고, 선이 적은 그림은 종종 침묵에 잠긴다. 설명과 침묵의 사이, 그 중용 속에 좋은 선은 존재한다.

어느 날, 나는 산의 능선을 한 줄로 그었다. 망설임이 사라지고, 호흡과 하나가 된 선이 종이를 달렸다. 선이 끝난 순간, 나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한 줄기 선 안에 나의 삶 전체가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나를 그렸다."

㉘ 색(色)의 침묵(沈黙)

색은 말하기 전에 먼저 침묵한다. 세상을 밝히는 것은 강렬한 색만이 아니다. 침묵하는 색이야말로 깊이를 만든다.

황색은 외치지 않는다. 그러나 가장 멀리까지 스며든다. 먹색은 단순한 검정이 아니다. 빛을 삼키고, 무수한 계조로 흩어진다.

나는 두 가지 푸름을 배웠다. 칠해진 푸름과 칠해지지 않은 푸름. 뒤의 것은 구름의 그늘, 바다의 심층, 시야의 끝에서 천천히 호흡하는 푸름이다.

색과 색 사이가 정돈될수록 보이지 않는 푸름은 더욱 명확해진다.

그래서 나는 배색을 덧셈이 아니라 배치로 생각한다. 색과 색 사이의 거리, 침묵과 침묵 사이의 거리 — 그 설계가 곧 화면의 룰을 정한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나를 그렸다."

㉙ 경계의 미학 노을

경계는 단절이 아니다. 경계는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부딪히며 새로운 세계를 탄생시키는 자리다. 태양과 바다가 만나는 지평선 위에서, 빛과 어둠은 서로를 밀어내면서도 동시에 끌어안는다. 그 순간 탄생하는 것이 노을이다.

노을은 태양의 마지막 발화이자, 어둠의 첫 고백이다. 찬란함이 스러지는 동시에 고요가 시작된다. 하나가 끝나는 자리에서 다른 하나가 태어난다. 노을은 소멸과 탄생이 동시에 일어나는 드문 풍경이다.

경계란 늘 모호하다. 그것은 “여기”와 “저기”를 구분하는 선이 아니라, 겹쳐지는 순간이다. 낮과 밤이 맞닿는 자리에서 우리는 시간의 이행을, 삶과 죽음이 접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존재의 연속성을 체험한다. 경계는 분리의 선이 아니라, 두 세계가 서로를 통과하며 새로운 빛깔을 만들어내는 심연의 틈새다.

노을을 바라볼 때, 우리는 단순한 자연 현상을 넘어 존재의 본질을 목격한다. 태양은 바다 위에 붉은 길을 열어주고, 바다는 그 빛을 받아 어둠 속으로 천천히 이행한다. 이 주고받음의 과정 속에서 경계는 다리가 되고, 단절은 화해로 변한다.

노을은 늘 짧다. 그러나 그 짧음 속에서 우리는 무상의 아름다움을 본다. 오래 머물 수 없기에 더 강렬하고, 곧 사라지기에 더 진실하다. 노을은 말한다. 모든 경계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예고편이라고.

경계에서만 가능한 탄생 —— 그것이 노을의 미학이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나를 그렸다."

㉚ 손의 기억

손은 머리보다 먼저 안다.

손끝은 즉각적으로 감지한다. 종이 섬유의 결, 황토의 습기, 먹의 점성과 무게를.

나는 오래도록 생각으로 그리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손에 맡긴다.

손은 어제의 실패를 기억하고, 오늘의 망설임을 넘어, 내일의 선이 닿을 깊이를 준비한다.

붓을 대는 각도, 붓을 먹에 담그는 압력 — 그 모든 자잘한 동작은 누구도 보지 못하지만, 화면의 호흡을 바꾼다.

손바닥에 각인된 반복의 기억이, 한 장 한 장의 그림을 조용히 떠받친다.

사유(思惟)는 언어를 요구한다. 그러나 손의 기억은 무언의 지혜다. 그 무언에 귀를 기울일수록, 그림은 맑아진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나를 그렸다."

㉛ 해녀의 눈빛

겨울의 포구에서, 나는 그녀를 기다렸다. 바다는 거칠었고, 하늘은 낮게 드리웠으며, 바람은 뼈마디를 때렸다.

마침내 해녀가 바위 그늘에서 나타났다. 젖은 머리카락을 묶고, 말없이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나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그저 그녀와 함께 같은 바다를 응시했다.

그녀의 허리에 묶은 납 덩어리, 손가락 끝의 갈라진 자국, 어깨의 미세한 떨림 — 그것들은 설명이나 서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이었다.

나는 얼굴을 그리지 않았다. 대신 차갑게 내뿜는 숨결을 그렸다. 나는 윤곽을 그리지 않았다. 대신 바다에서 피어오르는 김처럼, 사라지는 기운의 여운을 남겼다.

눈가의 주름 한 줄은 백 권의 기록보다 많은 것을 말했다. 화면의 여백은 그녀의 침묵을 떠받치고, 침묵은 그 여백을 데우고 있었다.

그림을 마쳤을 때, 그녀는 단 한 번 나를 바라보았다.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 우리는 같은 바다를 함께 보고 있었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나를 그렸다."

㉜ 풍토의 법칙

섬의 공기는 습기를 머금고, 소금을 실어 나르며, 바람은 날마다 다른 길을 따라 흐른다. 풍토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창작의 윤리를 빚어내는 힘이다. 메마른 땅에서는 빠른 선이 어울리지만, 이곳에서는 느린 선이 맞다. 건조한 물감은 주장을 강화하지만, 이곳에서는 번짐이 진실을 드러낸다. 나는 풍토에 거슬러 그리지 않고, 주어진 리듬에 나를 맞춘다.

풍토의 윤리는 요컨대 ‘빼앗지 않는 것’이다. 색을 빼앗지 않고, 빛을 빼앗지 않고, 이야기를 빼앗지 않고, 단지 그것들이 드러날 자리를 남겨 두는 것. 지나치게 취하지 않는 붓놀림, 지나치게 말하지 않는 해설, 지나치게 드러내지 않는 표현 —— 모두 풍토가 가르쳐 준 절제의 방식이다.

나는 제주 돌담에서 그것을 배웠다. 돌담은 바람을 막지 않는다. 완전히 닫지 않고, 완전히 열지도 않으며, 그저 적당한 틈을 남겨둔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보는 이의 시선을 완전히 차단하지 않고, 완전히 드러내지도 않으며, 숨 쉴 틈을 남긴다.

이 섬에서 나는 ‘빌려 쓰는 법’을 알게 되었다. 색을 빌려 쓰고, 형태를 빌려 쓰고, 빛을 빌려 쓰며, 다 쓰고 나면 다시 자연에 돌려준다. 그것은 소유가 아니라 사용이며, 정복이 아니라 공생이다. 내 그림은 제주로부터 빌려 온 것이며, 언젠가는 제주에 되돌려야 할 것이다.

풍토는 인내를 가르친다. 서두르지 않고, 조급해하지 않고, 자연의 호흡에 나를 맡기는 법. 태풍의 계절에는 붓을 내려놓고, 고요한 날에는 조심스럽게 선을 긋는다. 억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려지도록 기다린다. 이 수동 속의 능동이야말로 풍토의 윤리의 핵심이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나를 그렸다."

㉝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너희가 화가가 되지 않는다 해도, 여백을 배우길 바란다. 여백은 물러섬이자, 기다림이자, 믿음이다.

서둘러 결론을 그리지 말고, 먼저 공간을 내어 주어라. 그 공간에 세계와 타인과 미래가 들어온다.

완성을 두려워하지 말고, 완벽을 두려워하라. 완벽은 닫히지만, 불완전은 열린다.

선을 적게 하고, 호흡을 깊게 하여라. 강한 색을 고르기 전에, 침묵의 색을 먼저 확인하라.

이름은 마지막에 두어라. 서명으로 작품을 지키려 하지 말고, 작품이 스스로 서는 여백을 지켜라.

만약 길을 잃었다면, 바람에게 물어라. 바람은 억누르지 않고, 다만 스쳐 지나간다.

좋은 그림도 그러하다. 그림은 보는 이의 마음을 스쳐 지나가 흔적이 되고, 그 흔적이 오래 남는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나를 그렸다."

㉞ 나는 나를 그렸다

오랜 세월 그림을 그리며, 나는 언제나 하나의 물음과 마주했다. “나는 무엇을 그리고 있는가?”

제주의 고요와 고독 속에서, 그 물음의 답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결국 나는 세상을 그린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그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세계가 원하는 나의 얼굴을 그리고자 했다. 인정받고, 기억되고, 팔리고, 명성을 얻게 되는 그림을 그리려 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가면이었다. 그 안에는 진짜 내가 없었고, 오히려 남이 바라는 모습만 남았다.

세월이 흐른 뒤에야 알았다. 세속적 평가는 바람처럼 바뀌고, 사람들의 관심은 물처럼 흘러간다. 영원처럼 보였던 명성은 한순간의 환영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나는 세상의 시선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그린다. 그림은 내 고백이 되었고, 내 기도가 되었으며, 내 명상이 되었다.

화폭 위의 모든 선과 모든 색은 내 삶의 흔적이며, 내 감정과 기억, 그리고 바람이 스쳐간 자리다. 어떤 선은 기쁨이었고, 어떤 선은 슬픔이었다. 어떤 색은 희망이었고, 어떤 색은 절망이었다. 그 모든 것이 나였고, 나는 그 모든 것이었다.

제주의 바람은 나를 풀어주었다. 서울의 소음을 떠나, 섬의 침묵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내 안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 목소리에 따라 그림을 그렸고, 그 그림이 곧 나 자신이었다.

마지막 그림 앞에서 나는 조용히 붓을 내려놓는다. 그 안에는 내가 살아온 모든 시간이 숨 쉬고 있다. 고통과 기쁨, 방황과 확신, 사랑과 고독 — 그 모든 순간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불완전하지만 진실하고, 무명이지만 자유로우며, 화려하진 않지만 깊다. 이것이 내가 평생을 걸쳐 그려 온 진정한 자화상이었다.

나는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나의 삶 자체가 그림이 되었고, 그 그림 속에서 나는 영원히 숨 쉬고 있다. 나는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그린 것이다. 그것이 내 예술이자, 내 삶이었다.

결국 모든 화가는 자화상을 그린다. 산을 그리면 그 산은 화가의 마음이고, 바다를 그리면 그 바다는 화가의 영혼이다. 이 진리를 나는 제주에서 깨달았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이었다. 긴 항해 끝에 나는 마침내 “나”라는 이름의 섬에 닿았다. 그리고 나는 그 섬에서 평생 머물고 싶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나를 그렸다."

㉟ 백년 후에

백년 후, 나의 이름은 바람 속에 아직도 흔들리고 있고, 내가 남긴 황토의 온기는 그때도 따스할까.

백년이라는 시간은 모든 인간관계를 풍화시키고, 이해관계를 지워버릴 것이다. 나를 알던 이도, 미워하던 이도, 사랑하던 이도 모두 흙으로 돌아간다. 그때 비로소 순수한 눈길이 나의 그림과 마주할 것이다. 명성도, 편견도, 기대도, 실망도 모두 벗겨진 뒤에 남는 단 하나의 진실 — 그것은 그림 그 자체다. 그 객관적 침묵 속에서 나는 마침내 진정한 모습으로 되살아날 것이다.

누군가 전시실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하얀 여백 앞에서 천천히 숨을 들이쉰다. 그 호흡이 나의 호흡과 포개지는 순간, 나는 다시 태어난다. 작가는 불필요하다. 필요한 것은 다만 호흡의 왕복이다.

나는 될 수 있으면 많은 것을 남기지 않고, 될 수 있으면 많은 것을 비워두고 가고 싶다. 이야기는 절반만 말하고, 선은 절반만 긋고, 색은 절반만 남긴다. 나머지 절반은 아직 만나지 못한 누군가의 가슴 속에서 완성될 것이다. 예술은 멀리 있는 수신인을 향해 던지는 편지다. 나는 수신인을 적지 않는다. 바람이 대신 전해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단 한 번, 말을 남긴다. 나는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다. 나는 바람을 들이마시고, 여백을 섬기며, 세계가 스스로 드러나는 자리를 마련했을 뿐이다. 내일도 다시, 침묵 앞에서 깊게 숨을 쉰 후, 첫 점을 놓을 것이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나를 그렸다."

맺음 ― 바람을 삼키며

나는 오랫동안 빛을 좇았고, 마침내 바람을 따르는 법을 배웠다. 색을 추적하다가, 색이 없는 곳에서 가장 깊은 색을 보았다. 그리려 애쓰다가, 그리지 않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것을 만났다. 이름으로 나를 증명하려다가, 이름 없는 자유를 알았다.

여백은 공허가 아니다. 가장 활동적인 무대다.
침묵은 무언이 아니다. 가장 웅변적인 언어다.
망각은 상실이 아니다. 가장 깊은 기억이다.
일상은 평범이 아니다. 물음표이자 마침표이다.

내일도 다시, 붓을 들기 전에 여백을 바라본다. 바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이름을 두지 않고, 설명을 덜어내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서만 나의 그림은 시작된다.
그곳에서만 세계는 새롭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