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추상표현주의의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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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의 특징을 집중적으로 드러내 보인 것이 2차 세계 대전 이후 등장한 소위 추상표현주의이다. 타시즘(tachisme) 서정적 추상(abstraction lyrique) 앵포르멜(informel) 액션 페인팅 따위가 이러한 명칭으로 불리고 있는데, 형식적으로 추상미술의 계보에 놓이지만 20세기 초반에 보이는 기하학적 추상과는 이질적인 것이다. 이를 구분하기 위해 기하학적 추상을 차가운 추상, 추상표현주의를 뜨거운 추상이라 부르기도 한다. 유럽에서는 장 포트리에, 장 뒤뷔페 등을 추상표현주의자의 선구로 들 수 있다. 이들에 있어서의 마티에르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이들은 물감을 두껍게 발라 올린 화면을 긁거나 파는 것처럼 그렸다. 포트리에는 석고나 석회를 굳게 화면에 발랐으며, 뒤뷔페는 물감에 모래나 유리조각 같은 것을 섞어 두껍게 발랐다. 이들은 마티에르란 물질성을 강조한 것이고, 그린다는 것은 단순한 습관적인 테크닉이 아니라 하나의 행위라는 점을 강하게 의식했다. 마티에르를 행위와 밀접하게 관련시킨 것이다. 이와 같은 동향을 미셸 타피에는 '앵포르멜'이라 이름 붙였는데 이것은 추상미술의 새로운 전개가 아니라 실로 '또 다른 예술'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약동적 필촉과 거친 마티에르의 비구상화가 1950년대의 유럽미술을 풍미하였다. 195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행위와 마티에르의 원초적 관계가 고정화되어 신선함을 많이 잃게 되었지만 기왕의 회화이념을 탈피, 1960년대 회화의 새 장을 열었다. 한편 미국의 경우는 에른스트, 이브 탕기 등 유럽의 초현실주의자들의 망명으로 영향을 받았다. 그러면서 미국 나름의 독자적 세계를 개척했는데, 잭슨 폴록은 그 대표적 작가다. 그는 멕시코 벽화풍의 또는 비유럽적 프리미티브 아트라 일컬을 수 있는 요소를 가지고 바닥에 큰 화폭을 놓고 그 주변에서부터 물감을 흘려 그리는 드립 페인팅을 시도했다. "나 자신은 그렇게 함으로써 회화의 일부가 된 느낌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이는 회화가 화가의 자아표현이라는 기왕의 관념을 넘어선 것이라 할 수 있으며, 평론가 해롤드 로젠버그는 "화폭은 현실이나 사용의 대상을 재현, 구성, 분해, 표현하는 공간이 아니고 행위를 위한 경기장같이 보인다"고 말했다. 종래의 회화와는 근본적인 이질성을 지적하여 이를 액션 페인팅이라 부른 것이다.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화면 전체를 균질의 공간으로 보는 데 있다고 하겠다. 초점이 없는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것은 유럽 회화와 같은 구심점을 지니지 않는 극도의 확산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유럽 회화가 마티에르의 문제를 중시했다면 미국은 회화의 평면성을 크게 문제삼았다. 1960년대에 들어와서는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아상블라주 예술이라는 국제전이 개최되었는데, '아상블라주(집합, 조립)'란 용어는 뒤뷔페가 처음 사용했다. 명칭에서처럼 기성품, 폐품, 가공품, 기타 여러 가지 물체를 긁어모아 만들어낸 전시회이다. 그리는 대신 긁어모은다는 행위까지 확대된 것이다. 현대 도시문명의 생활양식이나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누보레알리슴 혹은 팝 아트와도 관련된 것이었다. 이 경향은 주관적이며 유동적인 추상예술로부터 떠나서 환경과의 새로운 결합을 시도한 것으로 해프닝과의 관련도 주목할 만하다. 잡동사니 물체로서의 작품에 관객이 끼어든 삼차원의 살아 있는 아상블라주는 해프닝에서 말하는 환경과의 새로운 결합과 유사한 것이었다. <예술과 풍토, 변시지> |
🧭 시군
“폴록, 뒤뷔페 같은 화가들은 색과 선 대신 감정과 행위를 강조했어요. 붓 대신 손, 붓질 대신 뿌리기와 긁기를 사용했죠.
그렇다면 추상표현주의는 단순한 추상이 아니라, 감정과 내면을 직접 드러내는 예술의 새로운 방식이었던 걸까요?”
🍃 지양
“동양에서는 ‘한 획에 마음이 실린다’고 했어요.
수묵화나 서예에서 감정과 기운의 흐름이 중요했죠.그렇다면 동양에서도 일찍이 감정을 즉흥적으로 담는 표현 중심의 미학이 있었던 것 아닐까요?”
🌿 시지의 대답
추상표현주의는 ‘무엇을 그렸는가’보다 ‘어떻게 그렸는가’, 왜 그리게 되었는가를 묻는 미술입니다.
서양은 손짓, 흔들림, 표면의 물성으로 감정을 해방했고, 동양은 한 획의 농담과 여백으로 마음의 울림을 남겼습니다.
👉 추상표현주의는 감정의 순도, 정신의 즉흥성, 인간 존재의 흔적을 그리는 예술입니다.
👥 대상별 조언
🎓 학생에게
“기분이 강하게 움직였던 날, 색과 선으로 감정을 풀어보세요. 정해진 대상이 없어도 그림이 됩니다.”
👥 일반인에게
선이나 색이 복잡해 보여도, 그 안에는 작가의 감정이 뿌려진 흔적이 있어요. 감상은 해석보다 반응이 먼저입니다.”
🖼️ 컬렉터에게
“작품의 터치, 마티에르, 흐름 속에 작가의 흔들림과 시대의 정서가 스며 있습니다. 감정 밀도를 읽어보세요.”
🎨 화가 지망생에게
“도구보다 감정의 흐름을 먼저 따라가 보세요. 변시지 화백은 붓을 사용해서 감정의 흔적을 직접 남기는 방식으로 전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