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표현 매체로서의 화가

31. 표현 매체로서의 화가


과거의 미술이 작가의 개성적 내면을 표현한 신념의 세계이며 그것을 시각화하여 투영했다면, 오늘의 현대미술은 그러한 개성주의에 대한 부정으로서 그것을 조형하지 않고 우연성에 의존한다. 액션 페인팅은 행위를 통해 이성적인 것에서 벗어나 우연성에 의존하는 것이 보다 인간 전체에 접근할 수 있다 하여, 캔버스보다는 화가와 일상적 물체와의 관계를 성립시켰다. 

과거의 회화가 물감과 캔버스로, 조각이 대리석이나 브론즈나 철 따위로 되었던 것과 같은 통념이 2차 세계 대전 이후 깨졌다. 여러 가지 일상용품, 기성품, 폐품은 물론 물, 공기, 불, 흙 등을 동원하였다. 개성이 온 세계를 지배한다고 믿었던 시대는 가고, 개성은 세계의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에 도달한 것이다.

이러한 비개성주의는 움직이는 예술(kinetic art)에도 나타난다. 알렉산더 콜더가 선구자적 작업을 시도했지만,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본격 시도되었다. 이는 작품을 개성의 지배하에 두는 것에 대한 포기였으며, 이러한 비개성주의가 극단적으로 표출된 것이 장 팅겔리의 폐물 기계의 조립을 통한 작품이었다. 이 기계의 조립과 작동은 작자와는 무관하게, 비개성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한편 옵티컬 아트(optical art)에서처럼 눈이 움직임에 따라 작품이 달라 보이게 하는 회화기법도 있다. 이러한 것을 환경예술(environment art)이라 부르기도 하는바, 여기에 보이는 비개성주의는 화가가 표현의 주체라기보다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매체적 존재에 불과한 것이었다. 현대미술의 동향은 매우 다기다양해서 한마디로 말할 수 없지만, 한 예로서 해프닝과 같은 것은 회화나 조각의 형식을 완전히 벗어난 현상을 내보이고 있다.

<예술과 풍토, 변시지>

🧭 시군

“폴록은 물감을 흘리고 뿌리는 드리핑으로 그렸고, 콜라주나 해프닝처럼 행위 자체가 작품이 된 경우도 많아요.
그렇다면 현대미술에서 화가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몸과 감정을 투사하는 예술 매체 그 자체가 된 걸까요?”

🍃 지양

“동양 선화에서는 ‘붓을 들면 곧 마음을 펼친다’고 하고, 한 획에 작가의 기운 전체가 담긴다고 했죠.그렇다면 동양에서도 예술가는 그림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정신이 통째로 담기는 매체였던 것 아닐까요?”

🌿 시지의 대답

서양의 현대미술은 작가를 그림 너머로 밀어냈습니다.
이제 화가는 물감이나 붓 이전에, 자기 몸·움직임·감정으로 그림을 그리는 존재입니다. 동양도 오래전부터 ‘한 획’에 기(氣)와 도(道)를 담아 화가의 내면이 그대로 예술이 되는 방식을 이어왔습니다.

👉 결국 화가는 표현하는 자가 아니라, 표현 그 자체가 되는 존재—즉 매체 그 자체입니다.


👥 대상별 조언

🎓 학생에게

“그림을 그리는 순간, 당신의 손·숨·기분이 전부 드러납니다. 붓질 하나하나가 ‘행동’이고 ‘기록’이라는 걸 느껴보세요.”

👥 일반인에게

“예술작품은 단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마음과 몸짓이 얼룩처럼 남은 장면입니다. 작품을 감상할 때 ‘그릴 때 어떤 몸 상태였을까’를 상상해 보세요.”

🖼️ 컬렉터에게

“작가가 직접 참여한 흔적—스플래시, 흔들림, 손의 박자—이 살아 있는 작품은 정적인 오브제가 아니라 경험의 기록입니다.이런 작품은 시간이 지나도 작가의 호흡이 느껴집니다.

🎨 화가 지망생에게

“붓 대신 손가락이나 천, 흙, 심지어 바람을 매체로 써보세요. 물, 불, 바람과 자신의 몸을 함께 사용해 **‘화가가 그림이 되는 방식’**을 실천해 보세요.”


🌀 변시지의 사례

변시지에게 화가는붓을 든 관찰자가 아니라, 바람·황토·몸짓·침묵까지 작품 속에 스며드는 존재였습니다.그는 자신을 표현자이자 표현물, 동시에 표현 매체로 만든 작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