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모나리자의 손
|
화가가 그리는 자연은 풍경이나 정물은 물론 인간과 동물 모두를 포함한다. 자연을 사생한다는 것은 단순한 색채나 형태의 시각적 성질을 본뜨는 것이 아니라, 묘사하고자 하는 대상의 본질적 의미나 아름다움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형태의 아름다움과 자연물의 의미를 동시에 관조한다는 것은 아는 것과 보는 것에 관여한다. 벽에 걸린 모나리자의 손이 매혹적인 것은 그것이 아름다운 부인의 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대상에 관한 지식은 많으므로 그 대상을 직접 보고 느낄 때는 연상이 따른다. 그래서 그 지식에서 오는 흥미가 보충되는 경우가 많다. 모나리자의 '미소'에 관한 한두 가지 일화가 있다. 그녀를 그릴 때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항상 웃기는 제스처를 해 보였다는 얘기가 있고, 또 그림을 그리는 동안은 악사를 불러서 연주함으로써 그녀를 즐겁게 해주었다는 얘기도 있다. 그림을 보는 사람은 이와 같은 정보로써 그림을 보는 이상의 흥미를 느낄 수 있지만, 그러나 이는 진실로 그림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며 작품의 본질과도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석조 건물은 무한한 중량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우리 눈에 보이게 되는 것은 그것이 돌이라는 선입감 때문일까. 그렇다면 딱딱하고 차가운 대리석의 나체상은 어째서 어떠한 지식으로 인하여 부드러운 육체로 보이는 것일까. 그것은 선의 방향이나 표면의 넓이 등에 의한 시각적 성질 때문일 것이다.석조 건물의 돌은 물론 눈에 보이는 중량이지 현재 손에서 경험한 것과 같은 중량은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시각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떠한 돌의 중량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석조 건물의 중량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벼운 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근원으로 하여 대건축의 중량을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형태의 아름다움과 자연물의 의미를 동시에 관조한다는 것은 아는 것과 보는 것에 관여한다. 벽에 걸린 모나리자의 손이 매혹적인 것은 그것이 아름다운 부인의 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과 풍토, 변시지> |
🧭 시군
“다빈치는 손의 구조와 빛을 아주 정밀하게 묘사했죠. 그럼 정말 ‘손의 아름다움’이란 완벽한 외형을 재현했을 때만 생기는 걸까요?”
🍃 지양
“동양에서는 겉모습보다 기운과 느낌을 담는 걸 더 중요하게 여겨요. 그렇다면 진짜 아름다운 손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을 표현했을 때 완성되는 건 아닐까요?”
🌿 시지의 대답
서양은 손의 형태와 빛으로 아름다움을 찾고, 동양은 선 하나에 생명과 감정을 담습니다. 결국 손의 아름다움은 **‘정확함’과 ‘느낌’**이 함께 할 때 완성됩니다. 보는 것과 느끼는 것이 만나는 그 지점에 진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 대상별 조언
🎓 학생에게
“손을 그릴 때 뼈와 근육을 먼저 공부하고, 그 다음엔 눈을 감고 친구의 손이 주는 따뜻함을 떠올리며 다시 그려보세요. 형태와 감정이 함께 담긴 손이 나올 거예요.”
👥 일반인에게
“누군가의 손을 잡았던 기억이 있다면, 그 감촉과 감정이 함께 떠오르죠. 그림 속 손도 마찬가지예요—그저 보는 게 아니라 느껴야 합니다.”
🖼️ 컬렉터에게
“좋은 초상화는 손의 정확한 구조와 함께, 그 안에 스며든 감정과 숨결까지 담아냅니다. 손끝의 생명감을 읽을 줄 아는 안목이 컬렉션의 깊이를 결정합니다.”
🎨 화가 지망생에게
“손의 구조를 먼저 파악한 후, 단 한 줄의 선으로 기운과 감정을 담아보세요. 변시지 화백도 인물화에서 손의 윤곽보다 바람과 노동의 떨림을 먼저 그렸습니다.”
🌀 변시지의 사례
변시지 화백은 여인의 손을 정밀하게 묘사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거친 붓질과 황토 번짐만으로 노동, 바람, 삶의 기운을 표현했죠. 손은 단순한 형태가 아니라, 살아 있는 이야기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서양의 외형적 정확성과 동양의 내면적 기운을 연결한 실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