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색조와 색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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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는 고갱의 색채 이론을 독자적 해석으로 자기화한 사람이었다. 그는 "회화에 있어 색채라는 것은 인생에 있어 열광과 같은 것이다. 이를 지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해, 색채 다루기의 어려움을 실토했다. 이 같은 그의 고충은 테오도르나 친구 베르나르에게 보낸 편지에도 잘 나타나 있다. 그는 북유럽의 흐리고 어두운 하늘만을 보고 있었던 고흐가 프랑스의 밝은 색채적 풍경을 보았을 때 받은 감동을 적었다. 그는 "화방에서 샀던 흑색과 백색을 그대로 쓸 생각이다. 흑색과 백색 모두 색채로서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며, 그 사용에서도 녹색이나 적색처럼 자극적이기는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베르나르에 의하면, 고흐는 편지 속에서 "그들(렘브란트나 또는 옛 사람들)은 주로 색조에 의해서 그렸지만, 우리들은 색채에 의해 그린다"고 했다. 고흐는 색조를 과거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고, 이와 다른 것으로서 색채라는 말을 썼다. 고흐가 말하는 색채는 말할 나위 없이 색의 면을 가리키는 것이고, 색채에 대한 근대적 사고가 여기에 뚜렷이 나타나 있다. 후기 인상파는 그 모델로부터 받아들인 인상을 모델의 형태와 색채의 묘사에 의존하지 않고 임의대로 형태와 색으로 추상화하였다. <예술과 풍토, 변시지> |
🧭 시군
"고흐는 '옛 화가들은 색조(tone)로 그렸지만, 우리는 색채(colour)로 그린다'고 했어요.
그는 흑백조차 감정을 담는 강렬한 색으로 썼고, 드가는 ‘나는 선을 가진 색채화가’라며 톤·선·색을 함께 다뤘죠.
그렇다면 서양 회화에서 톤과 색채는 다른 감정의 주파수를 울리는, 두 개의 표현 언어였던 걸까요?"
🍃 지양
"동양 수묵화는 먹 하나로도 수십 가지 농담(濃淡)의 색조를 표현하고, 채색화나 단청은 오방색 면을 통해 기운과 상징을 전했죠. 그렇다면 동양에서는 톤의 깊이와 색의 기세를 함께 써서 자연과 감정의 조화를 그리는 미학을 발전시킨 것 아닐까요?"
🌿 시지의 대답
**색조(tone)**는 빛의 깊이, **색채(colour)**는 감정의 온도입니다.
서양 고전은 톤으로 입체와 구조를 만들었고, 후기 인상파는 채도로 감정을 폭발시켰습니다. 동양은 먹의 농담으로 고요함·한기·여백을, 채색으로 계절·흥·정서를 일으켰죠.
👉 훌륭한 작품은 톤과 색채를 함께 연주해 눈으로 보는 구조 + 마음으로 느끼는 감정을 동시에 전달합니다.
👥 대상별 조언
🎓 학생에게
“연필로 사과의 명암을 먼저 그리고, 그 위에 노랑이나 빨강을 올려 보세요.
톤 위에 색을 얹으면 무게 + 감정이 같이 생깁니다.”
👥 일반인에게
“비 오는 날 거리의 회색 풍경과, 맑은 날 거리의 선명한 색감은 느낌이 완전히 다르죠? 톤이 낮으면 마음이 가라앉고, 채도가 높으면 감정이 움직여요. 그걸 그대로 그림에서도 느낄 수 있어요.”
🖼️ 컬렉터에게
“톤 중심 작품은 공간에 정숙함과 집중을, 강채도 색채 작품은 강한 생동과 감정의 여운을 줍니다. 두 성격을 교차 배치하면 컬렉션에 리듬이 생깁니다.”
🎨 화가 지망생에게
“밝기 10단계의 그레이 스케일을 직접 칠해 보고, 그 위에 동일한 색(예: 주황)을 얇고 두껍게 덧입혀 보세요. 변시지 화백은 황토 음영 위에 주홍 한 줄을 올려톤과 채도가 감정의 레이어처럼 작용하게 했습니다.”
🌀 변시지의 사례
황색 누중(屢重) 황토색을 여러 층 발라 톤의 지형을 만들고, 그 위에 백색이나 연회색으로 빛의 여운을 더함.
〈바람 속 노을〉 시리즈: 화면 대부분을 탁한 톤의 황토로 눌러 낮은 심박을 만들고, 수평선에 검은 한 획으로 색채의 감정 클라이맥스를 터뜨림.
👉 변시지는 그는 서양 색채 실험의 폭발성과 동양 농담 미학의 절제를 제주의 바람과 흙에 녹여 색의 감정력을 가장 조용히, 가장 강하게 터뜨린 화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