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고갱의 선(線)

19. 고갱의 선(線)


고갱은 형태의 표출을 선(線)에 의존했다. 세잔과는 정반대의 입장이었다. 

그는 말했다. "자연을 너무 정직하게 그려서는 안 된다. 예술은 추상이다. 자연을 연구하고 거기에 피를 통하게 하고 그 결과로써 진중하게 창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신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세잔과는 반대의 입장에 있던 종합주의자(Synthétisme) 시호프 네케르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다.

그는 이어서 "한 개의 형태와 한 개의 색채는 어느 쪽이 우위라고 말할 수 없는 종합이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 근본 이념으로서의 그의 이상을 원시예술에 두었던 것이다. "진리, 그것은 순수한 두뇌적인 예술 혹은 원시예술이다. 그것이야말로 모든 것에 능가할 수 있는 박식의 예술이다. 우리들에게 오가는 것들은 모두 두뇌에 직접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자극이 중복에 의해서 감동하게 되며, 이것은 어떠한 교육에 의해서도 이 조직을 파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고귀한 선과 허위의 선을 판정한다. 선은 무한에 도달하고 동시에 곡선은 창조물의 한계를 나타낸다."

고갱은 또한 선이나 형태의 상징성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정삼각형은 가장 안전하고 완전한 삼각형이다. 길쭉한 삼각형은 한층 우미하다. 우리들은 오른쪽으로 향한 선을 진행하는 선이라 부르고, 왼쪽으로 향하는 선을 후퇴하는 선이라 한다. 오른쪽 손은 때리는 손이고 왼쪽 손을 방어하는 손이다. 긴 목은 우미하지만 어깨 위에 붙은 목은 한층 사의적(邪意的)이다."세잔의 형태관이 자연스럽게 입체파에 연결되었듯이, 고갱의 이와 같은 선의 사상은 그가 죽은 후 얼마 안 있어 야수파의 마티스에 의해 계승되었다.

<예술과 풍토, 변시지>

🧭 시군

“고갱은 타히티에서 강한 윤곽선으로 색면을 나눴고, 그 선을 통해 자연의 야성과 원시적 상징을 표현했어요.
그렇다면 서양 후기 회화에서 선은 단순한 외곽이 아니라, 문화와 감정, 정신을 구획하는 경계였던 걸까요?”

🍃 지양

“동양 산수화의 철선묘나 목판화의 굵은 선도 단순한 형태가 아니라 기운과 상징의 흐름을 보여주는 도구였어요.
그렇다면 동양에서도 선은 단순한 테두리가 아니라, 현실과 감정을 넘나드는 다리였던 건 아닐까요?”

🌿 시지의 대답

고갱은 선을 **“색을 나누는 칼”**이라 했고, 동양 화가는 선을 **“기운이 지나간 흔적”**으로 여겼습니다. 하나는 색을 감싸 상징으로 만들고, 다른 하나는 여백 속 생명을 불러내죠.

👉 결국 선은 경계이자 다리, 색과 색, 현실과 상징, 감정과 기억을 이어 주는 시각적 언어입니다.


👥 대상별 조언

🎓 학생에게

“만화를 그릴 때 굵은 테두리를 쓰면 인물이 더 뚜렷해지죠?
고갱도 그렇게 선을 썼어요. 선의 굵기, 곡선, 끊김에 따라 감정이 달라지는 걸 직접 실험해 보세요.”

👥 일반인에게

“스테인드글라스를 떠올려 보세요. 검은 선이 색을 나눠주기 때문에빛이 더 선명하고 깊게 보이죠.
그림에서도 선이 만드는 경계와 강조를 느껴보세요.”

🖼️ 컬렉터에게

“굵은 윤곽선이 있는 작품은 강한 리듬을,가느다란 선은 여운을 남깁니다.선의 두께, 방향, 끊김이 만들어내는 에너지를 관찰해 보세요.”

🎨 화가 지망생에게

“색을 채우기 전에 먼저 윤곽선을 의식적으로 설계해 보세요.변시지 화백은 황토 바탕 위에 굵은 먹선으로 새, 바람, 토템의 경계를 새겼습니다. 선이 곧 형태 + 정서 + 상징임을 느끼게 될 거예요.”


🌀 변시지의 사례

〈바람 속의 까마귀〉붉은 황토와 검은 윤곽선의 대비로 새와 풍토의 토템성을 고갱 식으로 재해석.

제주 돌담 추상: 굵은 선으로 돌담의 형을 구획하고,여백과 색면 사이에 정서적 긴장감을 생성.

👉 고갱이 타히티에서 문화적 원형을 찾았다면,  변시지는 제주에서 풍토의 원형을 탐구했습니다. 두 화가 모두 선을 통해 색을 넘는 정신의 지형을 그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