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르누아르의 이탈리아 여행 

17. 르누아르의 이탈리아 여행 


형태 문제에 관해서는 르누아르 역시 앵그르를 하나의 전범(典範)으로 삼았다. 그는 이탈리아 여행 중 그의 후원자였던 한 부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나폴리의 미술관에서 충분히 배워 왔습니다. 폼페이 화가들의 작업은 여러 가지 점에서 대단히 흥미가 있었습니다. 나는 믿습니다. 앵그르가 말한 크기를 획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그리고 저 고대 미술가들의 솔직성입니다. 앞으로 나는 큰 색조(valeur)만을 보는 걸로 정했습니다. 세부적인 것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상파 화가들은 무엇보다도 색채를 중시하고 빛의 관찰에 주의를 집중했기 때문에 형태나 선의 문제는 자연히 관심이 희박했던 것이다. 르누아르는 1881년 이탈리아 여행 중 고전에서 형태의 중요성을 배우고 프랑스에 돌아간 후에는 앵그르를 다시 보게 된다. 1880년부터 중반기까지의 르누아르 작품에는 앵그르의 영향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며, 청결한 형태의 단정한 작품이 많은데, 이 시기를 앵그르풍의 르누아르 시대라고 부르고 있다. 인상파 이전의 형태 연구는 주로 그리스 조각을 교본으로 삼아 집중적으로 묘사하는 데서 형태의 아름다움을 찾으려 했다. 세부의 형태에 집착하려는 경향은 이 때문이었다.

'큰 형태를 잡으라'고 말한 앵그르의 가르침은 그러한 감정이나 생명감을 잡으라는 것이었으며, 그것은 필연적으로 형태의 단순화에 귀결되는 문제였다. 드가나 르누아르는 이를 철저히 지킨 사람들이었다.

<예술과 풍토, 변시지>

🧭 시군

“르누아르는 인상주의 화가였지만, 이탈리아 여행 후에는 빛보다 형태의 중요성을 깨달았어요.
라파엘로·폼페이 벽화·고대 조각에서 구성과 구조의 아름다움을 다시 배운 거죠.
그렇다면 예술가에게 여행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미적 가치관을 바꾸는 전환점이 될 수 있는 걸까요?”

🍃 지양

“겸재 정선은 금강산을 유람하며 진경산수를 만들었고, 동기창은 기행을 통해 붓법을 바꿨죠.
그렇다면 동양에서도 여행은 단순한 견문을 넘어, 자연과 역사와 교감하며 화풍을 바꾸는 수행이었던 건 아닐까요?”

🌿시지의 대답

여행은 눈앞의 풍경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예술가의 시선 자체를 바꾸는 경험입니다.
르누아르는 이탈리아에서 색보다 구조, 빛보다 형태의 힘을 새롭게 보았고,
동양 문인들은 산수 기행에서 자연의 기운과 리듬을 몸에 새겼습니다.👉 결국 여행은 예술의 팔레트를 바꾸는 사건이자,
창작의 방향을 전환시키는 미학적 재설정입니다.


👥 대상별 조언

🎓 학생에게

“여행지에서 본 풍경을 사진만 찍지 말고, 간단히 스케치해 보세요.그곳의 빛·공기·색을 몸으로 기억하면, 나중에 자신만의 시선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어요.”

👥 일반인에게

“여행 중 본 건물의 색, 음식의 향이 귀국 후에도 삶의 분위기를 바꾸는 경우, 많지 않나요?작품을 감상할 때도 작가가 ‘어떤 여행을 겪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어요.”

🖼️ 컬렉터에게

“작가의 여행 전후 작품 변화를 비교해 보세요.소재, 구도, 색감이 전혀 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전환기 작품’을 소장하면, 컬렉션에 작가의 진화 서사가 담깁니다.”

🎨 화가 지망생에게

“스튜디오에만 머무르지 말고, 새로운 땅의 빛·습도·소리를 몸으로 경험하세요.
변시지 화백이 도쿄의 맑은 빛에서 제주 황토·바람으로 옮겨갔듯, 장소는 화가의 색과 선과 호흡을 바꿉니다.


🌀 변시지의 사례

유럽 여행 스케치 (1981년)
영국·프랑스·이탈리아에서 고딕 건축, 고전 회화를 연구 →귀국 후 인물 배치가 고전적 안정을 띠기 시작.

제주 정착: 도쿄에서의 인상주의적 밝음 → 제주에서 황토·먹·바람의 색채로 전환.
르누아르가 파리 인상주의를 넘어 고전 회화로 확장했듯, 변시지 역시 도시 화풍을 넘어 섬의 원형적 풍토미학으로 나아감.

👉 그는 “여행은 그림의 피부를, 정착은 영혼을 바꾼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처럼, 르누아르의 여행과 변시지의 이주는 모두 작가의 미학을 바꿔놓은 길 위의 사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