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마크 로스코 – 〈붉은 습작〉

침묵 속에서 울리는 색채의 기도

두세 개의 색면이 무심히 놓였지만, 그 사이의 공기가 무겁다. 로스코는 색을 통해 침묵과 영혼의 무게를 표현했다

거대한 캔버스를 가득 채운 붉은 직사각형의 색면. 그러나 그 붉음은 단순한 색채가 아닙니다. 경계는 날카롭게 닫히지 않고, 안개처럼 번지며 호흡하듯 미묘하게 흔들립니다. 마치 화면이 하나의 생명체가 되어, 보는 이와 함께 숨 쉬는 듯합니다.

로스코는 1950년대 이후 일관되게 이 길을 걸었습니다. 색채가 단순한 시각적 요소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여는 문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처음 마주할 때는 평범한 색의 배치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오래 머물수록 색은 살아 움직이고, 서로 속삭이며, 우리 마음속에 묘한 울림을 던집니다. 위쪽의 밝은 붉음과 아래쪽의 어두운 적갈색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대화가 흐릅니다. 그 대화는 생과 사, 열정과 고통, 황홀과 파멸의 간극에서 피어오릅니다.

“나는 색채 자체에 관심이 없다. 오직 인간의 근원적 감정에만 관심이 있다.”
로스코가 남긴 이 말은 그의 붉은 화면을 해독하는 열쇠입니다. 붉음은 피와 불, 생명의 맥박과 죽음의 침묵을 동시에 품은 색. 그것은 원초적이며 동시에 종교적인 힘을 갖습니다.

그의 색채를 보고 있으면 문득 우리 전통의 단청 기둥이나 불화의 붉은 배경이 겹쳐 떠오릅니다. 색 그 자체가 신성한 기운을 발하는 순간들. 로스코 역시 그러한 원초적 색의 힘을 끝없이 탐구했습니다.

그는 관객이 멀찍이 서서 감상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가까이 다가와, 색의 심연 속에 몸을 맡기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늘 거대했습니다. 보는 이는 어느새 색채의 바다 속에 잠기고, 현실의 소음은 잦아들며, 자기 존재의 깊은 곳에서만 울려 나오는 파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 지향은 텍사스 휴스턴의 ‘로스코 채플’에서 완성됩니다. 종교를 초월한 명상과 침묵의 공간. 14점의 어두운 색면이 사방을 감싸며, 관객은 오직 자기 자신과 색채, 그리고 깊은 고요만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색채는 결국 어둠으로 침잠했습니다. 후기 작품은 점점 검고 무겁게 가라앉았고, 1970년, 그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색면들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그것들은 단순한 추상이 아니라, 20세기 예술이 도달한 가장 순수하고 영적인 성취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그 앞에 서면, 마음은 고요히 가라앉습니다. 세상의 소음은 사라지고, 남는 것은 오직 색과 나. 로스코가 바랐던 것 역시 바로 이 단순하면서도 심연 깊은 체험, 예술이 줄 수 있는 가장 순수한 형식의 황홀함이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