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와 밥상

 

얼마나 많은 밥상이 차려지고 치워졌을까. 새벽부터 저녁까지,
그 시절 여인들의 손끝에서 피어난 것은 사랑의 언어였고, 기도였고, 때로는 절망이었다.

그녀는 매일 새벽 4시 어둠 속에서 불을 켜고 밥상을 팔레트 삼아 그림을 그렸다.

노란 단무지 빨간 고추장
하얀 쌀밥 검은 미역국

색채의 조화를 나보다 먼저 알고 있던 손들,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면서 365일 작품을 완성했다.

어머니의 밥상 앞에 누나의 정성 앞에 아내의 사랑 앞에,
내가 그린 것은 그림자였고 그들이 차린 것이 진짜 작품이었다.

<처녀와 밥상>, 변시지, 1958년 서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