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으로 가는 길


사내에겐 빈집이 있고 빈집이 없어서 몸 둘 데가 없는 고난은 있지 않지만, 빈집은 누구에게도 가닿을 수 없는 집이다. 집은 땅 위에 있지만 빈집은 높다란 나뭇가지 위 새집과도 같다. 인파로 뒤덮인 곳이 인간의 좋은 거처일 수는 없지만 빈집 또한 인간이 끌어안기 벅찬 곳이다.

그러한 사실은 집으로 가는 사내의 포즈에 나타나 있다. 너른 유채꽃밭 끝자락에 있는 초가집 마냥 빈집은 훤하지만, 정낭에 걸린 막대기는 실처럼 가늘어 사실상 그것의 용도가 없는 것임을 알게 해 준다.

그리고 사내의 등 뒤에서 조랑말은 어떠한 방향도 쳐다보지 않는 시선으로 따라가고 있다. 사내와 조랑말은 한집 식구일텐데, 변시지의 그림에서 두 개체는 서로 종속되지 않는 방식으로 함께 살고 있다.

빈집도 공동으로 나누어 갖고 있다. 사실, 화면에서 그 둘 사이엔 어떤 차이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