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의 공기는 습기를 머금고, 소금을 실어 나르며, 바람은 날마다 다른 길을 따라 흐른다. 풍토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창작의 윤리를 빚어내는 힘이다. 메마른 땅에서는 빠른 선이 어울리지만, 이곳에서는 느린 선이 맞다. 건조한 물감은 주장을 강화하지만, 이곳에서는 번짐이 진실을 드러낸다. 나는 풍토에 거슬러 그리지 않고, 주어진 리듬에 나를 맞춘다.
풍토의 윤리는 요컨대 **‘빼앗지 않는 것’**이다. 색을 빼앗지 않고, 빛을 빼앗지 않고, 이야기를 빼앗지 않고, 단지 그것들이 드러날 자리를 남겨 두는 것. 지나치게 취하지 않는 붓놀림, 지나치게 말하지 않는 해설, 지나치게 드러내지 않는 표현——모두 풍토가 가르쳐 준 절제의 방식이다.
나는 제주 돌담에서 그것을 배웠다. 돌담은 바람을 막지 않는다. 완전히 닫지 않고, 완전히 열지도 않으며, 그저 적당한 틈을 남겨둔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보는 이의 시선을 완전히 차단하지 않고, 완전히 드러내지도 않으며, 숨 쉴 틈을 남긴다.
이 섬에서 나는 ‘빌려 쓰는 법’을 알게 되었다. 색을 빌려 쓰고, 형태를 빌려 쓰고, 빛을 빌려 쓰며, 다 쓰고 나면 다시 자연에 돌려준다. 그것은 소유가 아니라 사용이며, 정복이 아니라 공생이다. 내 그림은 제주로부터 빌려 온 것이며, 언젠가는 제주에 되돌려야 할 것이다.
풍토는 인내를 가르친다. 서두르지 않고, 조급해하지 않고, 자연의 호흡에 나를 맡기는 법. 태풍의 계절에는 붓을 내려놓고, 고요한 날에는 조심스럽게 선을 긋는다. 억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려지도록 기다린다. 이 수동 속의 능동이야말로 풍토의 윤리의 핵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