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머무는 동안,
나의 감각은 점차 하나에 머무르지 않고 서로 얽히고 이어지기시작했다.
바람의 소리가 어느 순간 색채로 느껴졌고,
태양의 온기가 향기로 번져갔다.
눈으로 본 풍경이 귀로 들렸고,
귀로 들은 소리가 마음속에서 색을 띠었다.
서울에서 감각은 분리되어 있었다.
눈은 보는 일, 귀는 듣는 일, 코는 맡는 일—
각각의 기능은 따로 작동했다.
그림을 그릴 때도 시각에만 의존했다.
정확한 그림이란 보이는 것을 보이는 그대로 옮기는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제주에서 나는
모든 감각이 하나로 이어지는 신비한 체험을 했다.
경계가 무너진 순간,
세상을 보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자연스레 공감각이 찾아온 것이다.
어느 날, 아틀리에 창가에서 바람 소리를 듣고 있을 때였다.
나는 불현듯 붓을 들었다.
그 소리가 푸르게 보였기때문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푸른색이 들려왔던 것이다.
나는 천천히 물감을 올리며
마치 소리를 색으로 번역하듯그렸다.
짙은 바람은 진한 남색으로,
온화한 바람은 옅은 하늘빛으로 표현되었다.
바람의 세기와 색의 농도가 정확히 겹쳐졌다.
그 순간 이후,
나는 더 이상 정확한 묘사를 위해 붓을 들지 않았다.
대신 감정을 번역하기 위해붓을 들었다.
보이는 것을 그리는 대신,
느껴지는 것을 그리기시작한 것이다.
그림을 그릴 때마다
나는 그 감각의 전이를 즐겼다.
손끝에 닿는 종이의 질감은 입안의 맛으로 전해졌고,
붓이 지나가는 소리는 색이 되어 화폭에 녹아들었다.
거친 종이는 쓴맛이었고,
부드러운 종이는 단맛이었다.
굵은 붓은 낮은 목소리,
가는 붓은 높은 목소리였다.
모든 것이 서로 얽히며,
하나의 거대한 교향곡을 이루어갔다.
그런 순간,
나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감각 사이를 여행하는 듯했다.
그 여행은 신비롭고 환상적이었다.
마치 다른 차원의 세계로 들어선 듯했다.
감각의 전이는
나의 예술을 더욱 깊고 풍부하게 만들었다.
하나의 감각에 갇혀서는 결코 표현할 수 없었던
미세하고 복잡한 감정의 질감이,
이제는 자유롭게 화폭 위에 펼쳐졌다.
색 안에서 음악이 들리고,
음악 속에서 향기가 피어나고,
향기 속에서 촉감이 느껴졌다.
이 모든 감각의 융합 속에서
나의 그림은 단순한 시각 예술을 넘어,
총체적 예술이 되었다.
이제 나의 그림은 더 이상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다.
오감을 통해 살아 움직이는 존재가 되었다.
감상자 또한 단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어떤 이는 내 그림에서 바다 냄새를 맡았다고 했고,
또 다른 이는 바람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의도한 바였다.
감각의 경계를 넘는 예술, 오감으로 체험하는 그림.
지금도 나는 화폭 앞에 설 때면
먼저 눈을 감고 깊이 숨을 들이쉰다.
귀로 듣고, 코로 맡고, 손끝으로 느낀 모든 것이
그림 속에서 하나로 융합되기를 기다린다.
그렇게 태어난 작품 속에서
나는 매 순간, 감각의 기적을 체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