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세잔 – 〈사과가 있는 정물〉

형태 속에 숨겨진 산맥을 찾다

사과는 단순한 과일이 아니라, 형태와 색의 탐구 대상이다. 세잔은 대상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며,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구조를 드러낸다. 사과 속에는 산맥이 있고, 색 속에는 시간의 두께가 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사과들은 결코 완벽한 원형이 아닙니다. 세잔의 눈에 비친 사과는 단순한 과실이 아니라, 수많은 색면이 중첩된 살아 있는 형태입니다. 빛과 그림자의 흐름에 따라 그 모습은 끊임없이 변주되며, 고정된 관찰 시점을 거부합니다.

세잔은 한 방향에서 바라본 이미지를 재현하지 않습니다. 그는 여러 각도에서 관찰한 시선들을 화면 위에 종합하여, 사과를 끊임없이 생성되는 존재로 그려냅니다. 사과의 붉은빛은 단순한 빨강이 아니라, 노랑과 주황, 보라가 스며든 복합적 색채로 살아 움직입니다.

테이블보의 주름과 기울어진 과일 접시는 전통적 원근법을 거부하며, 화면 구성의 새로운 질서를 제안합니다. 세잔이 말한 “자연을 원통, 구, 원뿔로 다루라”는 언명은 단순한 기하학적 환원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그의 실제 작업은 단순화가 아니라, 복잡성과 유기적 리듬을 향한 탐구였습니다.

각각의 붓터치는 색채이면서 동시에 형태이며, 평면 위에서 공간을 구축하는 하나의 벽돌처럼 쌓여갑니다. 이 정물화의 사과는 더 이상 단순한 과실이 아니라, 근대 회화의 언어가 태동하는 씨앗이 됩니다.

세잔의 “작은 감각”들이 모여 만들어낸 이 화면은, 피카소와 브라크가 입체주의로 이어갈 혁신의 문을 이미 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의 사과는 정물의 외형을 넘어, 회화의 본질과 가능성을 증언하는 예술적 선언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