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로 연주하는 내면의 교향곡
색과 선은 구속에서 풀려나 음악처럼 흐른다. 칸딘스키는 감정을 색으로, 울림을 형태로 번역했다
1913년에 탄생한 이 추상화에서 칸딘스키는 구체적 형상을 거의 지워내고, 오직 색과 선만으로 하나의 세계를 구성합니다. 그의 ‘즉흥’ 연작은 마치 연주자가 피아노 앞에 앉아 마음 가는 대로 건반을 두드리듯, 무의식의 충동이 색채의 언어로 흘러나온 작품들입니다.
그림 앞에 서면 눈이 아니라 귀가 먼저 깨어나는 듯합니다. 파랑은 깊은 첼로의 음처럼 내면을 울리고, 노랑은 황금빛 트럼펫 소리처럼 바깥세계를 향해 퍼져나갑니다. 두 색은 서로 다른 길에서 출발하지만, 만나서 부딪히며 새로운 화음을 만들어냅니다.
검은 선들은 바이올린의 현을 타고 흐르는 선율처럼 화면을 가로지릅니다. 그것은 단순한 선이 아니라, 살아 있는 리듬이자 호흡입니다. 선과 색이 뒤엉키며 울림을 이루는 순간, 화면 전체는 하나의 교향곡처럼 고동칩니다. 이는 우리 서예의 먹선이 품고 있는 기운생동과도 닮아 있습니다.
칸딘스키는 색채와 음향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공감각의 세계를 믿었습니다. 그에게 추상화란 장식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을 흔드는 하나의 음악이자 기도였습니다.
세계가 전쟁과 혼돈으로 흔들리던 시기에 그는 예술을 영혼의 정화와 각성의 길로 삼았습니다. 청기사파의 동료들과 함께 그는 새로운 미술의 언어를 열었고, 바우하우스에서는 그 언어를 이론으로 정리했습니다. 《예술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는 그가 남긴 악보이자, 추상미술의 성서 같은 책이 되었습니다.
이 작품 앞에 서면 우리는 소리 없는 음악 속에 잠기게 됩니다. 눈은 색을 보고, 마음은 울림을 듣습니다. 구체적인 대상을 그리지 않고도, 순수한 색과 선만으로 영혼 깊은 곳을 흔드는 이 경험. 그것이 칸딘스키가 남긴 위대한 교향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