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히에로니무스 보스 – 〈쾌락의 정원〉

욕망의 천국과 지옥

환상과 악몽, 쾌락과 파멸이 한 화면에서 얽힌다. 보스는 인간의 욕망을 화려하게, 그러나 차갑게 기록했다

세 폭 제단화로 구성된 이 작품 앞에 서면, 시선이 어디에 머물러야 할지 모를 만큼 복잡하고 기괴한 이미지들이 쏟아집니다. 왼쪽 패널의 에덴동산에서는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중앙 패널에서는 알몸의 남녀들이 환상적인 쾌락에 탐닉합니다. 오른쪽 패널의 지옥에서는 끔찍한 형벌이 기다립니다.

중앙 패널의 〈쾌락의 정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상상력의 기묘함에 압도됩니다. 수많은 알몸의 인간들이 거대한 딸기와 체리를 먹고, 기이한 형태의 분수와 건축물 사이를 떠돌며, 인간·동물·식물이 서로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자연의 질서가 완전히 뒤집힌 세계입니다.

이런 환상적 이미지를 보면 우리 민담 속 상상력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도깨비들이 벌이는 장난, 용궁에서 펼쳐지는 신비한 광경처럼. 그러나 보스의 상상력에는 중세 말기의 종말론적 불안과 도덕적 위기의식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

보스는 연금술, 점성술, 민속 전설, 기독교 신학을 자유롭게 결합했습니다. 세부는 온통 상징으로 가득하지만, 그 의미는 종종 모호하고 다층적입니다. 새와 물고기는 인간보다 거대해지고, 과일은 집보다 커지며, 음악 악기들은 고문 도구로 변합니다.

500년 전에 그려진 이 그림이 20세기 초현실주의자들에게 깊은 영감을 준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달리와 마그리트는 보스에게서 무의식을 시각화하는 방법을 배웠으며, 융은 그의 그림 속에서 집단 무의식의 원형들을 발견했습니다.

보스는 쾌락 추구 자체를 단순히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절제 없는 욕망이 불러올 결과를 기묘하고 풍부한 알레고리로 제시했습니다. 오른쪽 지옥 패널에서 음악 악기들이 고문 도구로 변한 장면은, 예술조차 욕망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경고처럼 다가옵니다.

50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작품은 여전히 수수께끼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전하는 물음이 있습니다. 인간의 욕망은 어떻게 낙원을 꿈꾸면서 동시에 지옥을 만들어내는가. 보스의 제단화는 인간 문명의 취약성과 욕망의 모순에 대한 영원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