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샤갈 – 〈나와 마을〉

기억이 만든 꿈의 세계

공중에 떠 있는 기억, 뒤섞인 시선, 농부와 양, 꿈과 현실이 서로를 비춘다. 샤갈의 세계에서는 중력마저 시의 일부다

고향 비테프스크의 기억이 환상적인 형태로 재구성된 이 작품에서, 샤갈은 유년의 추억과 러시아 민속문화를 초현실적 화법으로 풀어냅니다. 화면을 나누어 차지한 두 개의 얼굴 ― 하나는 화가 자신이고, 다른 하나는 양 혹은 소의 얼굴 ― 은 인간과 자연, 현실과 꿈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중적 정체성을 상징합니다.

그 사이에는 거꾸로 선 농부, 공중에 떠 있는 교회와 집들이 나타나, 꿈의 논리를 따르듯 기묘한 질서를 만들어냅니다. 초록빛 얼굴을 한 화가는 작은 나무를 손에 들고 있는데, 그것은 생명과 창조의 상징으로 피어난 희망의 은유입니다. 동물의 얼굴 안에 다시 작은 동물이 숨어 있는 구조는, 마치 러시아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무한히 이어지는 세계의 반복과 생명의 연속성을 암시합니다.

배경에 자리한 교회와 집들은 러시아 농촌의 풍경을 닮았지만, 현실과는 다른 빛을 띱니다. 비현실적 색채와 기묘한 배치는 러시아 민속 동화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며, 고향의 기억을 꿈결처럼 불러옵니다.

샤갈의 색채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감정과 상징의 언어입니다. 초록은 삶과 재생, 붉음은 열정과 고통, 파랑은 그리움과 영혼의 울림, 노랑은 빛과 희망을 의미합니다. 색은 서로 부딪히며 섞이고 흩어지지만, 결국 하나의 노래처럼 조화를 이룹니다.

이 작품은 파리에서 제작되었으나, 그 심장은 온통 고향 비테프스크에 머물러 있습니다. 평생을 유랑하며 살았던 샤갈은, 캔버스 위에서만큼은 끊임없이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고향은 그의 기억 속에서 현실을 초월한 신화가 되었고, 예술을 통해 영원히 살아 있는 고향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큐비즘의 해체적 기법이 더해진 화면은 러시아 민속 문화의 환상성과 결합하여, 샤갈 특유의 시적 현실주의를 만들어냅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화가가 평생 추구한 주제를 다시금 만나게 됩니다. ― 유랑 속의 귀향, 현실 속의 꿈, 인간과 자연, 그리고 사랑.

샤갈의 그림 앞에 서면,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예술은 떠나온 자를 영원히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길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