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터너 – 〈비, 증기, 속도〉

시대가 바뀌는 순

증기기관차는 폭우와 안개를 가르며 돌진한다. 터너는 자연과 기술이 충돌하는 순간을 빛과 색의 소용돌이로 묘사했다. 속도는 풍경을 삼킨다

터너의 폭풍이 철교 위의 기차와 함께 근대 문명의 속도를 그려냈다면, 변시지의 바람은 제주의 황토와 하늘 속에서 존재의 근원을 불러냈습니다. 터너의 소용돌이가 증기와 빛, 기계와 자연의 충돌을 보여주었다면, 변시지의 소용돌이는 바람과 흙, 인간과 대지가 어우러지는 원초적 리듬을 드러냅니다.

터너에게 속도는 근대가 만들어낸 새로운 감각의 실험이었고, 변시지에게 바람은 고향과 존재를 꿰뚫는 영혼의 숨결이었습니다. 하나는 산업혁명의 도시 풍경에서, 다른 하나는 섬의 황토 들판에서 탄생했지만, 두 소용돌이는 결국 같은 진실을 향합니다. 인간은 자연의 한가운데에서, 거대한 힘에 휩쓸리며도 예술을 통해 그 힘을 노래한다는 것.

그래서 터너의 폭풍 앞에 서 있을 때, 우리는 동시에 변시지의 황토 위 바람을 느낍니다.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 선 두 화가가, 각자의 폭풍을 통해 같은 질문을 던지는 듯합니다.
“인간은 이 소용돌이 속에서 무엇을 남길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