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앞에 선 인간
거대한 파도는 순간의 절정을 머금고, 그 뒤로 후지산은 변함없이 서 있다. 호쿠사이는 자연의 위력과 인간의 유한함을 한 장면에 압축했다
호쿠사이의 파도는 인간을 압도하는 자연의 힘을 드러냅니다. 날카롭게 휘말린 곡선 속에서 어부들은 몸을 낮추고, 그 뒤편에 고요히 솟은 후지산은 영원의 상징으로 자리합니다. 거대한 파도 앞에서 인간은 작아지지만, 그 작은 몸짓 속에 겸허함과 인내의 힘이 깃들어 있습니다.
한 세기 뒤, 터너는 템스강 위 철교에서 폭풍을 맞이하며 기차와 빛을 그렸습니다. 그는 캔버스 위에 폭우와 안개, 속도의 소용돌이를 쏟아내며 자연과 기계가 충돌하는 순간을 기록했습니다. 호쿠사이가 보여준 파도의 압도적 형식이 인간의 생존을 시험했다면, 터너의 폭풍은 근대 문명의 열차가 자연의 심연과 맞부딪히는 장면을 그려냅니다. 거기서 인간은 기술의 위엄과 동시에 불가해한 자연의 힘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20세기 후반, 변시지는 제주에서 ‘바람’을 그렸습니다. 그의 바람은 호쿠사이의 파도처럼 폭력적이지도, 터너의 폭풍처럼 기계와 충돌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고향의 흙냄새와 함께 부는 영혼의 바람, 삶과 예술을 하나로 꿰뚫는 내적 진실이었습니다. 그 바람은 때로 고독과 침묵으로, 때로 불타는 황토빛으로 나타나며, 인간이 자연과 하나 되는 순간을 증언합니다.
세 화가는 서로 다른 시대와 땅에서, 그러나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인간은 자연 앞에서 어떤 존재인가?”
호쿠사이는 겸허로, 터너는 경이와 두려움으로, 변시지는 내적 귀향으로 답했습니다.
그들의 그림을 차례로 마주할 때, 우리는 알게 됩니다. 파도와 폭풍, 그리고 바람은 서로 다른 형상으로 다가오지만, 결국 하나의 목소리로 속삭입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예술은 그 진실을 기억하게 하는 바람 같은 것이라고.
∑ 파도, 폭풍, 바람 ― 자연과 인간의 세 화가
1. 호쿠사이 ― 파도 앞의 겸허
호쿠사이의 파도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인간을 압도하는 자연의 형식 그 자체입니다. 날카롭게 휘몰아치는 곡선 속에서 작은 배에 몸을 낮춘 어부들은 자연의 힘 앞에 겸허히 순응합니다. 그 뒤편에 고요히 자리한 후지산은 인간의 삶을 넘어서는 영원의 상징으로 서 있습니다.
여기서 자연은 인간이 정복하거나 지배할 대상이 아니라, 겸허와 인내 속에서 공존해야 할 풍토로 나타납니다.
2. 터너 ― 근대 문명의 충돌
한 세기 뒤, 터너는 템스강 위 철교에서 폭풍과 열차를 그렸습니다. 그는 빗줄기와 안개, 속도의 소용돌이를 쏟아내며, 근대 문명의 기계가 자연의 심연과 부딪히는 장면을 기록했습니다.
호쿠사이가 인간의 생존을 시험하는 파도를 그렸다면, 터너는 기술과 자연이 격돌하는 근대의 풍토를 그렸습니다. 거기서 인간은 기술의 위엄에 경이로움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불가해한 자연의 심연을 두려움 속에 목격합니다.
3. 변시지 ― 내적 귀향
20세기 후반, 변시지는 제주에서 ‘바람’을 그렸습니다. 그의 바람은 호쿠사이의 파도처럼 압도적 형식으로 인간을 삼키지도 않고, 터너의 폭풍처럼 기계와 충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은 고향의 흙냄새와 함께 스며드는 영혼의 바람, 삶과 예술을 하나로 꿰뚫는 내적 진실이었습니다.
그 바람은 자신의 땅이 길러낸 풍토의 언어였고, 변시지는 그 언어 속에서 “나는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나를 그렸다”고 고백했습니다. 그의 바람은 인간이 자연과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자연의 일부임을 증언하는 풍토의 목소리였습니다.
4. 세 화가의 질문
세 화가는 서로 다른 시대와 땅에서, 그러나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인간은 자연 앞에서 어떤 존재인가?”
호쿠사이는 겸허로,
터너는 경이와 두려움으로,
변시지는 내적 귀향으로 답했습니다.
파도와 폭풍, 그리고 바람은 서로 다른 형상으로 다가오지만, 결국 하나의 목소리로 속삭입니다.
―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예술은 그 진실을 기억하게 하는 바람 같은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