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각의 탄생
부서진 얼굴과 각진 몸, 시선의 방향마저 파편화된다. 피카소는 미의 규칙을 해체하며 새로운 시각의 질서를 세웠다. 형태의 파괴 속에서 오히려 본질이 드러난다
1907년, 피카소는 서구 회화 500년의 전통을 단 한 순간에 뒤엎습니다. 화면 속 다섯 명의 여인은 아프리카 가면과 이베리아 조각의 영향을 받은 기하학적 형태로 해체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얼굴은 정면과 측면이 동시에 드러나며, 전통적인 단일 시점을 완전히 거부합니다.
특히 오른쪽 두 여인의 얼굴은 아프리카 조각의 각진 형태를 직접 차용한 것으로, 이는 당시 유럽에서 ‘원시 미술’이라 불리던 비서구 예술에 대한 피카소의 깊은 관심을 드러냅니다. 배경과 인물의 경계는 흐려지고, 색채는 갈색·분홍·황토색 계열로 제한되어 형태의 구축에 집중합니다. 이 순간, 여성의 몸은 더 이상 관능의 대상이 아니라 순수한 조형적 탐구의 영역으로 전환됩니다.
이 작품은 브라크와 함께 발전시킬 입체주의의 토대를 마련합니다. 다시점, 기하학적 해체, 평면성의 강조는 20세기 모던 아트의 새로운 문법이 되었으며, 이후 현대 회화 전반을 규정하는 핵심 언어로 자리합니다.
〈아비뇽의 처녀들〉은 단순한 미적 혁신을 넘어, 서구 중심적 미술사 자체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피카소는 ‘미개하다’ 치부되던 아프리카 예술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예술의 경계와 위계를 재설정합니다. 그 순간, 회화는 더 이상 전통의 모방이 아니라, 낯선 타자와의 조우 속에서 태어나는 새로운 언어임을 증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