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순수함을 찾아서
이국의 빛과 색, 그리고 원초적인 시선. 고갱은 문명 이전의 평온함과 감각의 생생함을 포착했다. 그러나 그 평온 속에는 서구인의 갈망과 상실이 겹쳐져 있다
1. 타히티, 잃어버린 낙원을 찾아서
타히티의 해변에서 고갱이 마주한 것은 서구 문명이 잃어버린 원시의 순수함이었습니다. 남태평양의 강렬한 햇살 아래, 원주민 여인들은 꾸밈없는 몸짓으로 삶을 살아갔습니다. 고갱의 붓은 황토와 번트 시에나, 울트라마린으로 그들의 피부와 그림자를 빚어내며, 서구 회화가 오랫동안 고정해온 단일한 ‘살색’ 개념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러나 그 풍경은 실재의 타히티가 아니라, 서구인이 꿈꾸어온 이상향의 환영이었습니다. 고갱의 눈에 타히티는 문명이 상실한 낙원의 대체물로, 타자에 대한 로망이자 투영이었습니다.
2. 타자의 침묵, 해석되지 않는 타자성
여인들의 표정은 깊은 침묵을 간직했습니다. 그 침묵은 고갱의 언어로 번역되지 않는 타자성의 울림이었습니다. 그는 일본 우키요에의 평면적 구성을 차용하며 원시 미술의 본능적 힘을 추구했지만, 타자의 삶은 결국 그의 붓끝에서 하나의 상징, 하나의 장식으로만 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갱의 타히티는 그 자신이 지닌 문명 비판의 욕망을 투영한 **‘타자의 풍토’**였던 것입니다.
3. 변시지, 나의 땅에서 피어난 풍토미학
이에 비해 변시지는 자기 풍토 안에서 근원의 예술을 찾았습니다. 그는 제주 황토빛 바람, 비원의 계절빛, 해녀들의 숨비소리 속에서 그림을 길어 올렸습니다. 변시지에게 예술은 타자의 낙원을 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발 딛고 선 땅과 기후, 바람과 빛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나를 그렸다.”
그의 그림은 ‘나의 그림’이 아니라 ‘풍토가 그린 나의 초상’이었으며, 땅과 인간, 빛과 계절이 한 몸처럼 융합된 흔적이었습니다.
4. 두 시선의 갈림길
고갱은 타자의 땅에서 잃어버린 원시성을 갈망했지만, 변시지는 자기 땅의 풍토 안에서 이미 존재하는 근원적 미학을 발견했습니다.
고갱의 타히티 연작이 근대인의 문명 비판과 타자에 대한 욕망을 드러냈다면, 변시지의 풍토미학은 타자를 욕망하지 않고 자기 땅에서 충만한 예술의 근거를 찾는 길이었습니다.
5. 결론 ― 풍토와 인간의 관계
예술은 결국 타자의 땅에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풍토를 새롭게 발견하는 일입니다. 고갱의 붓은 타자의 침묵 앞에서 멈췄지만, 변시지의 붓은 바람과 흙, 계절의 빛 속에서 끊임없이 말을 걸었습니다. 두 시선은 다르지만, 우리에게 남긴 질문은 같습니다.
― 예술은 어디에서 태어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