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지(邊時志)
시대의 경계에 선 이름
변두리였다.
그러나 그곳에서만 들을 수 있는
바람과 흙의 숨결이 있었다.
붓을 들고,
말을 삼키고,
오랜 침묵 속에서
그는 시대를 가로질렀다.
1.토착적 모더니즘의 선구자, 변시지
2.유학과 근대적 감성의 형성
3.덕수궁 비원에서의 한국적 자연미 탐구
4.1975년, 제주 정착과 예술적 대전환
5.황토와 먹선이 직조하는 조형 세계
6.절제와 환원의 미학
7.풍토를 통한 조형 철학의 구현
8.역사와 삶의 감각을 담은 무서사적 표현
9.지역성과 보편성의 변증법적 통일
변시지(1926~2013)는 흔히 ‘폭풍의 화가’라 불립니다. 그의 그림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황토빛 바탕 위에 거칠게 휘갈긴 검은 선, 바람에 휘청이는 나무와 파도, 그리고 그 속에서 버티는 인간과 동물들. 그것은 단순한 풍경화가 아니라, 제주의 바람과 돌, 바다와 같은 풍토 자체가 살아 움직이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그의 그림이 제주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강렬한 울림을 준다는 사실입니다. 제주의 바람을 직접 맞아본 적이 없어도, 그의 화폭 앞에 서면 누구나 인간의 고독과 투쟁, 그리고 삶의 끈질긴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변시지의 예술은 ‘풍토성의 보편화’라는 독창적 성취를 보여줍니다.
세계미술사 속에서 지역성과 보편성의 결합은 늘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고흐가 아를의 해바라기를 통해 인간 내면의 격정을 드러냈고, 모네가 지베르니 정원의 빛을 통해 자연의 보편성을 탐구했듯이, 변시지는 제주라는 섬의 풍토를 통해 인간 실존의 보편성을 형상화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방식은 조금 달랐습니다. 서양의 유화 기법을 사용하면서도 동양 수묵화의 정신을 결합했고, 그 결과 황토와 흑색의 대비라는 독창적 언어를 만들어냈습니다.
그의 그림은 그래서 “제주를 그렸지만, 제주만을 그린 것이 아니다”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제주의 바람은 곧 인간이 맞서는 운명의 폭풍이 되고, 제주 바다는 삶의 무게를 상징하는 무대가 됩니다. 변시지의 화폭은 특정한 지역의 풍토에서 출발했지만, 결국은 인류 보편의 정서로 확장되는 것이죠.
오늘날 그의 작품은 제주 기당미술관은 물론,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도 전시되었습니다. 이는 변시지가 단순히 한국의 지역 화가가 아니라, 세계미술사 속에서도 독창적 위치를 차지하는 예술가임을 보여줍니다.
맺음말
변시지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우리는 한 섬의 풍토를 넘어 인간 존재의 근원적 조건과 마주하게 됩니다. 바람, 돌, 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그것은 제주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곧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변시지는 바로 이 지점에서 세계와 만났습니다.
오사카 미술학교에서의 유학 (1940년대)
변시지(Byun Shi Ji, 1926–2013)는 제주 출생으로 6세 때 일본으로 이주하여 미술 교육을 받았다. 그는 오사카 미술학교(현재 오사카예술대의 전신)에 입학하여 서양화과(유화 전공)를 졸업했는데, 1945년에 해당 학과를 마쳤다. 오사카 미술학교는 1945년 “히라노 영학숙”으로 설립되어 1957년 “오사카 미술학교(大阪美術学校)”로 개칭된 사립 미술교육 기관으로, 훗날 1960년대에 대학으로 승격되어 오사카예술대학교의 뿌리가 되었다. 당시 오사카 미술학교의 교과 과정은 도쿄미술학교 등 일본의 근대 미술교육 체계를 본받아 서양식 아카데믹 미술을 가르쳤다. 예를 들어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를 개설한 구로다 세이키는 학생들에게 사체해부학, 누드 모델 데생, 실외 사생(plein air) 등을 필수 과목으로 편성했는데, 이러한 사실주의 기초훈련과 인체 공부 전통이 오사카 미술학교에도 이어져 학생들이 엄격한 소묘와 유화 기법을 연마하도록 했다. 변시지 역시 재학 시절 이러한 아카데믹 미술 교육 환경 속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며 기초를 탄탄히 다졌다. 비록 1940년대 중반은 태평양전쟁 말기와 패전 직후의 혼란기였지만, 변시지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계속했고, 1945년 8월 일본의 패전과 조선의 광복 소식도 일본 현지에서 맞이할 정도로 전쟁기 내내 일본에 체류하며 수학했다. 졸업 직후에는 동경(東京) 아테네 프랑세에 입학하여 프랑스어를 공부하기도 했는데, 이는 서양 미술사와 미학을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한 노력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변시지의 일본 유학 시기는 일제 말기에서 전후로 이어지는 격동기에 이루어졌지만, 그는 일본 미술학교의 체계적 커리큘럼과 교사들로부터 서양화 기법을 충실히 익혀 훗날 작가로서 성장할 탄탄한 기반을 마련하였다.
유학 시절의 전시 활동과 평단의 반응 (1940~50년대)
변시지는 학생 신분이던 1940년대 후반부터 각종 공모전과 전시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47년 그는 제33회 광풍회전(光風会展, 광풍회 미술전)에서 입선하여 주목받았고, 이듬해인 1948년 제34회 광풍회전에서는 최고상(大賞)을 수상하며 "광풍회전 사상 최연소 수상자"로 기록되었다. 광풍회는 일본의 대표적 서양화가 단체로, 후지시마 다케지 등이 주도한 전람회였다. 변시지가 이끌어낸 쾌거는 일본 미술계에서도 놀라운 일이었으며, 특히 한국인 유학생이 거둔 성취로서 의미가 컸다. 실제로 그는 일본 문부성이 주최하는 미술전람회(日展)에서도 한국인 최초로 수상하여 화제가 되었다. 광복 직후이긴 하지만 여전히 일본 미술계 주류가 일본인인 상황에서, 변시지는 비(非)일본인으로서 이러한 권위 있는 미술전에서 상을 받으며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다.
당시 일본에서는 유학생을 비롯한 조선인 미술가들의 전시 활동이 서서히 알려지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부터 많은 조선인 학생들이 도쿄나 오사카 등지의 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배웠고, 전후에도 이들 가운데 다수가 일본 미술전 등에 참여했다. 변시지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서, 조선인 특유의 감수성과 탄탄한 기법을 겸비한 작품을 선보여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얻었다. 일본 평단은 그의 작품에 담긴 남다른 색감과 기교에 주목했고, 조선 출신이라는 배경도 함께 조명되었다. 실제로 변시지는 1949년 광풍회전 심사위원으로 위촉될 정도로 일본 화단에서 인정받았으며, 동경 시세이도(資生堂)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어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1949년 도쿄 시세이도 갤러리에서 열린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1951년 동경에서 2회 개인전, 1953년 오사카 한큐 백화점 양화화랑에서 3회 개인전을 여는 등 활발한 전시 경력을 쌓았다. 이러한 전시들은 일본 미술계에서 신진 화가 변시지에 대한 관심과 기대를 보여주는 지표였다. 특히 조선인 유학생들의 그룹전이나 국제학생 교류전 등에도 변시지의 출품이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일부 남아 있는데, 이를 통해 전후 일본에서 외국인(구 식민지 출신) 미술가들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일본의 미술 평론가들은 “이국적 정서와 탄탄한 데생력이 결합된 변시지의 작품이 신선하다”는 식의 호평을 남기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1940~50년대 변시지의 전시 활동은 일본 미술계의 주류 무대에 한국인 화가가 진출한 사례로, 그의 수상 경력과 전시회들은 당시 미술 잡지와 언론에 긍정적으로 언급되며 비일본인 학생 작가들에 대한 담론을 촉발시켰다. 이는 해방 후 초기 재일 한국인 예술가들의 위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장면이라 할 수 있다.
동시대 일본 회화계의 거장들과 학풍의 영향
변시지가 유학하던 당시, 일본 미술계에는 구로다 세이키(黑田清輝)와 테라우치 만지로(寺内萬治郎)와 같은 선배 격의 거장들이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있었다. 이들은 일본의 아카데믹 서양화 전통을 세우고 발전시킨 인물들로, 변시지를 비롯한 후배 세대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구로다 세이키(1866–1924) 구로다는 일본 근대 서양화의 개척자로, 프랑스 유학을 통해 배운 외광주의와 인상주의 기법을 일본에 도입한 인물이다. 그는 “일본 근대 서양화의 아버지”로 불릴 정도로 현대 일본미술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1896년에는 도쿄미술학교에 서양화과를 창설하여 초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체계적인 서양화 교육과정을 수립했다. 구로다는 학생들에게 야외 사생과 누드 크로키, 해부학 등을 가르치며 사실적인 인체 표현과 색채 연구를 강조하였고, 이를 통해 일본 회화계에 근대적 아카데미즘을 정착시켰다. 그의 대표작인 〈호수 기슭〉이나 〈무희〉, 그리고 〈마이코〉등은 밝은 색조와 빛의 변화, 사실적 인물 표현으로 당시 일본 관객들에게 충격을 주었으며, 젊은 화가들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 구로다의 이러한 혁신은 곧 일본 미술계의 옛 보수파와 신진 세력 간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그의 밝은 팔레트와 외광 묘사 기법은 후학들에게 커다란 영감을 주었다. 변시지의 세대가 미술을 공부할 무렵에는 구로다가 이미 고인이었지만, 그가 확립한 교육 방식과 미학적 지향은 여전히 일본 미술학교의 근간을 이루고 있었다. 따라서 변시지를 가르친 교수들 역시 구로다의 제자 계열이었을 가능성이 높고, 구로다 류의 아카데믹한 사실주의와 유럽 유학파 전통이 변시지의 배움 속에 녹아 있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구로다 세이키의 서구적 기법 도입과 일본적 정취의 융합 노력은 변시지를 비롯한 동시대 유학생들에게 “동양인으로서 서양화를 하는 법”에 대한 하나의 모범이 되었다고 평가된다.
테라우치 만지로(1890–1964) – 테라우치는 구로다의 뒤를 이은 일본 아카데믹 서양화의 거목으로 꼽힌다. 오사카 출신으로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에서 수학했으며 (재학 중 구로다 세이키와 후지시마 다케지 모두에게 배웠다), 졸업 후 관전에 꾸준히 출품하며 일본 미술계의 중견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나부(裸婦) 화가로 명성이 높았는데, 여성 누드상을 즐겨 그려 “나부의 테라우치”, “나부를 그리는 성자” 등의 별칭으로 불렸다. 1930년대에 사이타마현 우라와에 정착한 이후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고, 자신의 문하생들과 무사시노회라는 연구 모임을 결성하여 후진 양성에 힘쓰기도 했다. 그의 작품 세계는 온화하고 차분한 색조, 견고한 데생을 특징으로 하였으며, 고전적 안정감 속에 현대적 감각을 가미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위 그림에서 볼 수 있듯 인체를 묘사하는 뛰어난 소묘력과 은은한 살색 표현이 돋보이며, 그는 “일생 동안 파리의 벽을 사랑한 우트릴로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일본 여성의 누드에 평생 애착을 가질 것이다”라고 말할 만큼 나부 표현에 몰두했다. 테라우치는 프랑스 화가 코로(Corot)의 수수한 색감과 드랭(Derain)의 형태감에 매료되어 그런 요소들을 자기 그림에 흡수했고, 궁극적으로 건강한 피부빛의 일본 여성 누드를 차분하면서도 깊이 있게 묘사하는 자신만의 양식을 완성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전후를 통해 일본 관전(帝展/日展)과 미술원의 중심 인물로 활약하며 1950년대에도 일미전(일본미술전람회) 심사위원, 운영위원, 일본예술원 회원 등을 역임하여 일본 화단의 원로 거장으로 추앙받았다. 변시지의 유학 시기(1940년대 후반~50년대 초반)에 테라우치는 활발히 작품활동과 지도를 병행하고 있었으므로, 젊은 변시지를 비롯한 후배 서양화가들은 그의 전시에 찾아가거나 화보를 통해 누드 묘사의 대가를 접했다. 테라우치 만지로가 보여준 탄탄한 인체표현과 점잖은 색채미학은 변시지를 비롯한 동시대 서양화가들에게 기교와 품격의 모범이 되었고, "학풍(學風)"으로서도 큰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변시지는 일본 유학 후반기에 광풍회전 등에서 누드에 가까운 인물화로 수상한 바 있는데, 이는 테라우치류의 화풍과 맥이 닿아 있다. 이렇게 구로다 세이키로 대표되는 개척 세대와 테라우치 만지로로 대표되는 아카데믹 세대의 존재는 변시지의 유학 시절 배경이 되는 일본 미술계의 지형을 형성했으며, 그의 작품세계에도 직접적인 양식적·정신적 토양이 되어주었다.
서구 미술계의 시각: 1940~50년대 일본 회화와 아시아 유학생
변시지가 활약하던 1940~50년대에 서구 미술계는 일본의 아카데믹 회화에 대해 다소 복합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당시 서구의 미술 관심사는 추상미술 등의 새로운 흐름에 쏠려 있었고, 일본의 전통미술(예컨대 판화)이나 전위예술에 대한 흥미는 높았지만 일본의 서양화단에서 나온 아카데믹 회화는 독창성 면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실제 사례를 보면, 1950년대 초반 서구에서는 일본의 근대 목판화에 큰 관심을 보였는데, 이는 당시 서양화단에서 일본의 유화 작가들보다 판화가들이 더 두각을 나타낸 현상으로 확인된다. 예를 들어 일본인 판화가 사이토 키요시(斎藤清)는 1951년 제1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한 목판화 <염원의 눈>으로 상파울루 비엔날레 판화 부문 최고상을 수상하였는데, 이는 “회화 부문에서 일본 작가가 상을 받을 것”이라 예상했던 일본 미술계의 예측을 뒤엎은 결과였다. 이 일로 사이토를 비롯한 일본 창작판화(sōsaku-hanga) 작가들이 국제적으로 주목받게 되었고, 사이토는 1956년 미국 국무성과 아시아재단의 후원으로 미국과 유럽 순회전까지 열게 되었다asia.si.edu. 이러한 사례는 서구 미술계가 전통 회화 매체인 유화보다 일본적 개성이 드러나는 판화나 독자적 현대미술에 더 호의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미국 타임지 역시 1951년 사이토 키요시를 “무명에 가까운 일본 판화가”로 소개하면서 그의 목판화 작품 〈고양이〉를 컬러로 게재하였고, 전 세계에서 판화 주문이 쇄도하는 등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만큼 서구에서는 일본의 서양화가들이 그리는 유화보다는 일본 특유의 미감이나 기법이 묻어난 작품에 더 관심을 가진 것이다.
한편 일본에서 유학한 아시아 출신 화가들에 대한 서구의 시선도 존재했다. 변시지처럼 일본에서 교육받은 한국인 화가들의 경우, 1950년대 이후 자국에서 활동을 재개하며 서구 미술계와 접점을 늘려갔다. 이들은 일본식 아카데믹 수업을 받은 덕에 서구 미술언어에 능숙하면서도 동양인의 정체성을 지닌 작가로 비춰졌고, 서구 평론가들은 이들의 작품에서 동양과 서양의 혼합된 양식을 읽어내곤 했다. 다만 1950년대 당시 서구의 주요 미술 저널이나 평론에서는 일본이나 한국의 사실주의 서양화가들에 대한 언급이 많지 않았고, 오히려 1950년대 후반 들어 일본의 전위미술 그룹(예컨대 구타이(Gutai) 등)에 관심이 쏠리게 된다. 1957년 프랑스 평론가 미셸 타피에(Michel Tapié)가 직접 방일하여 일본 추상미술을 소개한 일은 서구 미술계의 관심사가 급격히 일본의 모더니즘/아방가르드로 이동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로 인해 정통 아카데믹 화풍을 걷던 일본 화가들은 상대적으로 국제 무대에서 주목도가 낮았다. 예를 들어 1952년 일본이 전후 처음 참여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도 일본관에는 주로 원로 화가들과 아카데믹 화풍의 작품들이 출품되었는데en.wikipedia.org, 서구 평단은 이를 전통 회화 위주의 보수적 출품으로 평가하며 큰 반향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1950년대 말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관에 일본 추상화가들이 나오고 나서야 서구 언론의 조명이 본격화되었다는 분석이 있다.
그럼에도 일본 회화 전반에 대한 서구의 비평과 수용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 1953년에는 미국에서 “일본 회화와 조각 걸작전”이라는 대규모 순회전이 개최되어 워싱턴과 시카고 등지의 미술관에 일본 미술을 소개했는데, 이는 냉전기 문화외교의 일환으로 존 D. 록펠러 3세 등이 주도한 전시였다. 이 전시에서는 일본의 전통미술품뿐 아니라 근대 회화작품도 함께 선보여 서구 관람객들에게 일본 미술의 연속성을 알렸다. 서구 평론가들은 이 전시를 통해 일본 화단의 수준 높은 기량을 확인하면서도, 일부는 일본의 서양화가들이 여전히 유럽 미술의 모방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 미국 평론지는 “일본 화가들의 기교는 뛰어나나, 가장 흥미로운 작품은 그들이 서양 기법을 자기 문화와 융합시킬 때 나온다”는 논평을 내놓았다. 즉 서구에서는 일본과 아시아 화가들에게서 동양적 개성을 기대하면서, 순수히 유럽풍에 머무르는 작품에는 다소 인색한 평가를 내렸던 것이다. 이러한 경향 속에서 변시지를 포함한 아시아 유학생 출신 화가들이 서구 미술계에 직접 이름을 알리는 경우는 드물었으나, 이들이 모국 미술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성과를 낼 경우 간접적으로 서구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요약하면, 변시지의 유학 당시 서구의 시각은 일본의 아카데믹 회화에 대해서는 제한적이었으나,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미술 전반에 대한 호기심은 높아져 가는 추세였다. 특히 일본에서 교육받은 한국인 등 아시아 작가들은 서구에 독자적으로 소개되기보다는, 일본 미술의 일부로 묶이거나 자신들의 조국에서 열린 국제전을 통해 간접적으로 조명받았다. 하지만 1950년대 후반에 이르면 서구 미술계가 일본의 현대미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하면서, 변시지 세대가 구축한 동서양 혼합 양식도 뒤늦게 재평가의 기회를 얻게 된다. 이는 훗날 변시지의 작품 일부가 미국 스미스소니언 등에 소장되고 국제전에 초청되는 등의 성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결국 변시지의 일본 유학 시기는 동아시아 미술가들이 서구 미술을 학습하던 단계였고, 그의 활동은 일본 미술계 내부의 성취에 머물렀지만, 그 토대는 차후 한국 현대미술 발전과 국제적 접속에 기여하게 되었다고 하겠다.
인용
About Byun Shiji - jeju weekly
http://www.jejuweekly.net/news/articleView.html?idxno=6193
BYUN SHI-JI (b. 1926) | Christie's
https://www.christies.com/en/lot/lot-2442636
Modern artist Byun Shi-ji offers comfort revealing severe loneliness ...
https://www.koreaherald.com/article/2455627
Osaka University of Art - wiki34.com
https://no.wiki34.com/wiki/Universidad_de_arte_de_Osaka
https://en.wikipedia.org/wiki/Kuroda_Seiki
BYUN SHI-JI (b. 1926) - Christie's
https://www.christies.com/en/lot/lot-2442636
https://www.ganaart.com/wp-content/uploads/2020/11/Shiji-Byun_CV.pdf
https://www.ganaart.com/wp-content/uploads/2020/11/Shiji-Byun_CV.pdf
https://www.ganaart.com/wp-content/uploads/2020/11/Shiji-Byun_CV.pdf
(PDF) The Invention of Korean Modern Art: How Japan promoted Western culture in its colony
https://www.academia.edu/79009072/The_Invention_of_Korean_Modern_Art_How_Japan_promoted_Western_culture_in_its_colony
https://www.ganaart.com/wp-content/uploads/2020/11/Shiji-Byun_CV.pdf
https://www.ganaart.com/wp-content/uploads/2020/11/Shiji-Byun_CV.pdf
https://en.wikipedia.org/wiki/Kuroda_Seiki
https://en.wikipedia.org/wiki/Kuroda_Seiki
https://www.tobunken.go.jp/kuroda/gallery/english/life_e.html
https://www.tobunken.go.jp/kuroda/gallery/english/life_e.html
Maiko (apprentice geisha) - e-Museum
https://emuseum.nich.go.jp/detail?langId=en&webView=&content_base_id=100326&content_part_id=000&content_pict_id=0
https://en.wikipedia.org/wiki/Kuroda_Se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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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ja.wikipedia.org/wiki/%E5%AF%BA%E5%86%85%E8%90%AC%E6%B2%BB%E9%83%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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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de - TERAUCHI Manjiro — Google Arts &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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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TŌ Kiyoshi - National Museum of Asian Art
https://asia.si.edu/explore-art-culture/interactives/reading-japanese-prints/saito-kiyoshi/
SAITŌ Kiyoshi - National Museum of Asian Art
https://asia.si.edu/explore-art-culture/interactives/reading-japanese-prints/saito-kiyoshi/
A Letter From The Publisher: Feb. 10, 1967 | TIME
https://time.com/archive/6634900/a-letter-from-the-publisher-feb-10-1967/
[PDF] PAINTINGS EMERGED:1 THE GUTAI ART ASSOCIATION IN THE ...
https://contents.artplatform.go.jp/wp-content/uploads/2023/02/APJ_202203_Tatehata1985.pdf
https://en.wikipedia.org/wiki/Japanese_pavilion
Press Releases from 1953 |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변시지의 그림으로 가는 마흔 세 걸음』 표지 (공익재단 아트시지, 2021).
- 출판 정보: 황학주 시인의 예술산문집 **『변시지의 그림으로 가는 마흔 세 걸음』**은 2021년 공익재단 아트시지(Art Shiji)에서 초판 발행되었다. 43편의 산문과 변시지 화백의 그림을 수록한 93쪽 분량의 아트북 형식으로 제작되었으며, 2022년 1월 PDF 전자책으로도 출간되었다 (ISBN: 979-11-976286-0-3 / 979-11-976286-1-0(전자책))
- 작품 개요 및 주요 내용: 이 책은 제주 출신 변시지(1926~2013) 화백의 그림 43점을 보고 황학주 시인이 느낀 바를 글로 풀어낸 산문 모음집이다. 각 산문의 제목이 곧 해당 그림의 제목으로, 기다림, 태풍, 제주 해녀, 절망, 서귀포 등 제주의 자연 풍광과 삶을 담은 작품들이 망라되어 있다. 황학주는 그림 한 점 한 점에서 포착한 정서를 섬세한 언어로 형상화하며, 때로는 철학적인 메시지로 확장한다. 예를 들어 1985년 작 그림「기다림」을 보고 쓴 글에서는 “삶의 첫번째 원칙은 기다림이며 기다림은 기다림 다음에도 기다림”이라는 통찰을 끌어내어 기다림의 의미를 사색한다. 이처럼 그림이 전하는 이야기와 분위기를 시인의 시각에서 재해석한 것이 이 책의 주요 내용이다.
- 문학적 형식과 구성: 형식적으로는 운문 시가 아닌 산문 형식의 글들이며, 그림과 글이 짝을 이루는 예술 산문집이다. 작가는 서문에서 이 책을 ‘산문화집’이라고 칭하며, 산문(散文)과 화집(畫集)의 결합이라는 성격을 강조했다. 전체 구성은 43편의 산문을 하나의 작품집으로 묶은 것이며, 각 산문은 독립적이면서도 모두 변시지의 그림에 대응되는 짧은 글이다. 목차에서 보이듯 각 글의 제목이 곧 그림 제목이므로 그림 감상의 순서를 따라 글이 배열되어 있다. 한 편 한 편이 산문시적 성격을 띠고 있어서 비록 형식은 에세이 같지만, 내면에는 시적인 운율과 울림이 살아있는 구성을 보인다.
- 변시지와의 관계: 이 산문집 자체가 변시지 화백에 대한 헌정이라 할 수 있다. 황학주 시인은 변시지의 작품 한 점 한 점에서 받은 영감과 정서를 글로 옮기는 방식으로 화가와 교감을 시도했다. 실제로 황학주는 제주 이주 후 기당미술관의 변시지 상설전시관을 자주 찾고 손님들에게도 소개할 정도로 변 화백의 그림에 친숙했으며, 이러한 개인적 애호가 결국 창작으로 이어진 것이다. 책 속 모든 글은 변시지의 그림이 매개인 만큼 화가의 삶과 예술혼이 배어 있다. 예컨대 화가의 1985년 작 「기다림」이 전하는 고독과 인내를 시인은 “삶의 첫번째 원칙은 기다림”이라는 문장으로 응축했고, 1993년 작「위로」를 보고는 “죽을 것 같을 때 위로를 받을 수 있으면 죽지 않을 수 있다”는 깨달음으로 화답했다. 이렇듯 황학주의 글은 변시지의 그림에 담긴 정서와 메시지를 거울처럼 비춰주며, 화가의 작품 세계와 시인의 사유가 맞닿는 지점을 보여준다.
- 시적·미학적 특징: 황학주의 문장은 회화적 이미지와 시적 언어가 어우러진 점이 특징이다. 변시지 특유의 황톳빛 색감과 거친 풍경, 폭풍과 바다, 그리고 폭풍 앞에 서 있는 삐쩍 마른 고독한 남자의 형상이 글 속에 그대로 되살아난다. 예를 들어 “노란색 화풍”과 “폭풍 앞에 서 있는 남자”와 같은 그림의 인상적인 소재들이 시인의 비유와 묘사로 재현되고, 돌담 위의 까마귀나 해녀 같은 제주적인 상징들이 자주 등장한다. 전반적인 정서는 쓸쓸함과 고독, 허무의 정조가 짙게 깔려 있으면서도, 그 속에서 아름다움과 희망을 포착하는 서정성이 돋보인다. 한 평론가는 황학주의 시 세계를 두고 “미학주의와 허무주의의 찬란한 융합”이며 “독거(獨居)의 아름다운 높이와 깊이”를 보여준다고 평했는데, 실제로 이 산문집에서도 황량한 풍경 속에 녹아있는 깊은 고독을 아름답게 승화하는 시인의 미학을 확인할 수 있다. 문체는 대체로 담담하고 명징한 서술 속에 간결한 철학적 어구를 담는 심플하면서도 울림 있는 스타일로, 때때로 같은 어구를 반복하거나 대비시키며 여운을 남긴다 (앞서 인용한 “기다림”이라는 단어의 반복 등). 이러한 언어적 절제와 함축을 통해 그림이 전하는 여운을 글로서 효과적으로 구현한 점이 돋보인다.
- 감상 포인트 및 문학·예술적 의의: 그림과 문학의 만남 자체가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독자는 책에 실린 변시지의 그림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그에 대응하는 황학주의 글을 읽음으로써, 시각예술과 언어예술의 시너지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 특히 그림이 품은 색감과 분위기를 시인의 언어가 섬세하게 풀어주기 때문에, 그림을 찬찬히 감상한 뒤 글을 읽거나 혹은 글을 먼저 읽고 그림을 보면 서로의 의미가 배가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이 책은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시인이 원로 화가의 예술혼에 화답했다는 점에서 문학과 미술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도 평가된다. 황학주 시인의 통찰은 그림이 담지한 정서를 새로운 각도로 해석하여 독자에게 전달하고, 그 과정에서 예술적 위로와 치유의 힘을 보여준다. 실제로 황학주의 글에서 비롯된 “죽을 것 같을 때 위로를 받으면 죽지 않는다”와 같은 문장은 변시지 화백 추모 행사에서 힐링과 위로의 메시지로 인용되기도 했다. 이처럼 *『변시지의 그림으로 가는 마흔 세 걸음』*은 단순한 그림 해설을 넘어, 예술 간의 소통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작품으로서 문학적·예술적 의의를 지닌다.
- 시인의 인터뷰 및 비평적 해석: 황학주 시인은 그림 수집이 자신의 삶에 위안이 되었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제주 정착 후 열린 한 전시회의 초대 글에서 그는 “그림 수집은 마음이 흔들렸던 순간의 기억”이라고 말하며, 어려운 시절마다 한 점씩 그림을 구해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이러한 언급은 그가 왜 변시지의 그림들에 깊이 매료되었는지 짐작하게 하며, 본 산문집이 탄생한 배경에도 작용했을 것이다. 한편 문단의 비평적 시각에서 볼 때, 황학주의 작품은 오래전부터 독특한 예술세계로 인정받아 왔다. 이광호 평론가는 그의 시에 대해“애매성의 매혹”이 있다고 평했고, 박덕규는 “서정적 서사시의 개척자”라 불렀으며, 이숭원은 “미학주의와 허무주의의 찬란한 융합”과 “독거의 아름다운 높이와 깊이”를 갖춘 시인이라 평했다. 이러한 비평들은 황학주 시인의 전반적인 문학세계를 향한 것이지만, 변시지의 그림을 다룬 이 산문집 역시 그의 서정성과 서사성, 미학적 탐구가 유감없이 발휘된 결과물로서 이러한 평가와 맥을 같이한다. 요컨대, 황학주 본인의 말과 평단의 해석 모두에서, 그의 작품이 지닌 위안과 미학적 깊이가 강조되고 있으며,『변시지의 그림으로 가는 마흔 세 걸음』은 그 연장선상에서 탄생한 의미 있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변시지를 다룬 또는 변시지에게서 영감을 받은 문학작품 목록
- 《변시지: 폭풍의 화가》 – 서종택 (열화당 초판 2000년, 개정판 2017년, 평전/전기문학)
- 내용 요약: 제주 출신 서양화가 변시지의 일생과 예술세계를 다룬 작가 평전이다. 어린 시절 제주 자연과 일본 유학 시절, 광풍회전 최고상 수상 등 화가로서의 여정부터 말년 제주 귀향까지를 촘촘히 그렸다. 책은 변시지의 그림 속 풍경(황톳빛 땅, 거센 바람, 외로운 사내 등)에 깃든 비애와 고독을 섬세하게 묘사하며 그의 삶과 예술혼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 변시지와의 연관성: 변시지 본인의 생애를 소재로 한 공식 평전으로, 화가의 예술 철학과 미학을 깊이 있게 해설한다. 저자 서종택은 제주-오사카-서울-제주로 이어지는 변시지의 귀향과 예술적 순례 과정을 추적하여, 전통과 현대, 지역성과 세계성이 교차하는 그의 예술세계를 분석한다. 예를 들어 변시지 작품에 단골로 등장하는 까마귀, 바람, 초가집, 조랑말 등의 상징이 화가 자신의 운명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설명하고 있다.
- 문학적 특징/감상 포인트: 학술적 평전이면서도 문학적 필치가 살아있다. 황토색과 먹색으로 대자연의 율동을 그려낸 그림들을 언어로 옮기며, 시적인 이미지와 미학적 통찰을 결합했다. “예술과 풍토, 지역성과 세계성, 동양과 서양이 함께 만나는 희귀하고도 소중한 사례”라는 결론처럼, 변시지의 예술혼을 철학적으로 성찰하는 대목들이 인상적이다. (초판 출간 당시 제목은 **《변시지: 폭풍의 화가》**로 2000년에 간행되었으며, 이후 내용 보완과 작품 이미지 교체를 거쳐 2017년에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 《난무: 폭풍의 화가 변시지》 – 김호경·김미숙 공저 (2019년, 전기소설)
- 내용 요약: 변시지의 파란만장한 삶을 소설화한 장편 전기소설이다. 일제강점기 제주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간 변시지가 식민지 조선인 화가로서 겪은 온갖 시련과 영광, 그리고 귀국 후 제주 자연을 배경으로 독자적 화풍(일명 ‘제주화’)을 완성하기까지의 내면 세계를 극적으로 그려냈다. 예컨대 학교 씨름 대회 부상으로 한쪽 다리를 평생 저는 장애를 안게 된 일, 일본 미술계에서 조선인 최초로 최고상을 수상하지만 보이지 않는 차별에 부딪힌 일, 귀국 후에는 분단 시대의 혼란과 실명 위기까지 겪는 모습 등이 펼쳐진다. 그러한 역경 속에서도 예술혼을 불태우며 황토색 폭풍의 바다를 그려낸 그의 삶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로 묘사된다.
- 변시지와의 연관성: 제목 ‘난무’는 변시지의 대표작 <난무>(폭풍 속 춤추는 파도 그림)을 가리키며, 소설은 변시지 화백 본인의 생애를 줄거리로 삼고 있다. 실제 존재 인물들의 대화와 에피소드가 소설적으로 재구성되었고, 변시지의 예술 철학(“미술은 시각적인 것이고, 예술은 정신적인 것”)이나 제주 풍토에 대한 애정이 이야기 속에 녹아있다. 특히 제주 자연(태풍 몰아치는 바다, 검은 현무암 해안 등)이 주인공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처럼 그려져, 그의 대표작들이 탄생한 배경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 문학적 특징/감상 포인트: 두 명의 작가가 공저한 만큼 취재 기반의 사실성과 문학적 상상력이 조화를 이룬다. 시대극 소설의 형태로, 변시지의 일대기를 읽는 재미와 더불어 예술가의 고뇌를 심리적으로 파고드는 서사가 돋보인다. 문장도 역동적이며 감정이 입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이는 주인공이 평생 “폭풍 같은 에너지”를 좇아 거친 삶을 살았다는 설정과 맞물려 독자에게 큰 감동을 준다. 변시지의 실제 명언이나 화폭에 대한 묘사가 간간이 인용되어 현실감을 높이고, 예술가 소설로서의 몰입도를 높이는 점도 감상 포인트이다.
- 《변시지, 바람이 전하는 말》 – 황인선 글, 변시지 그림 (2022년, 오브제텔링 픽처북)
- 내용 요약: 변시지의 회화 작품에 문학적 상상력을 입힌 신개념 픽처북이다. 화가의 생애 전반에 걸친 명작 80여 점을 선별하여, 그 그림 속에 등장하는"주요 오브제(대상)"들을 의인화한 짧은 이야기들로 구성했다. 예를 들어 변시지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까마귀, 바람, 외로운 사내(화가 자신), 어린 해녀, 이어도와 뱃길 등이 화자가 되어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다. 독자는 각 작품 속 사물의 목소리를 통해, 폭풍을 닮은 그의 그림들이 품은 외로움과 기다림, 희망의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다. 제주 신화와 자연풍광도 이야기 안에 녹아 있어 한편의 서정적 동화 혹은 시를 읽는 느낌을 준다.
- 변시지와의 연관성: 이 책은 변시지 그림 그 자체를 텍스트 삼아 창작된 문학작품이다. 화가의 실제 작품 세계를 문학적 모티프로 삼았다는 점에서, 변시지 미학에 대한 경의와 오마주라 할 수 있다. 각 장마다 대응되는 그림이 실려 있고, 해당 그림이 갖는 상징 – 예컨대 영원한 동반자처럼 그림 속 화가 곁을 지키는 까마귀(변시지 자신의 분신), 혹은 전설의 섬 이어도 등 – 을 통해 화가가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상상력으로 풀어낸다. 결국 책 제목처럼 “바람이 전하는 말”은 곧 변시지 예술이 전하는 말이다.
- 문학적 특징/감상 포인트: 오브제텔링이라는 독특한 기법이 돋보인다. 이는 그림 속 사물에 서사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독자는 마치 그림과 대화하듯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그림과 글이 긴밀히 어우러져 있기 때문에 미술 감상과 문학 읽기의 융합을 체험할 수 있다. 또한 이 작품은 단순 화집이 아니라 창의적 스토리텔링 아트북으로서, 예술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평을 받는다. 변시지의 황갈색 폭풍 풍경을 배경으로 의인화된 존재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그의 작품이 지닌 철학적 여운을 독자들이 더욱 친근하게 느끼도록 해준다.
- 《時志, 시대의 빛과 바람에 뜻을 새기다》 – 문상금 (2023년, 시집/시화집)
- 내용 요약: 제주 출신 문상금 시인이 변시지 화백의 타계 10주기를 추모하여 펴낸 시집이다. 변시지의 그림 45점에 각각 대응하는 총 45편의 시를 4부로 나누어 실었고, 시의 정서에 맞춰 해당 그림들도 함께 배치된 시화집 형태다. 1부 〈사내는 까마귀에게 묻는다〉, 2부 〈목숨같은 점 하나〉, 3부 〈천 개의 붓 끝에 이는 바람〉, 4부 〈다들 집으로 간다〉 등 부제에서도 드러나듯, 화가의 작품 모티프인 외로운 사내와 까마귀, 원초적 바람, 점과 빛 등의 이미지가 시어(詩語)로 승화되어 있다. 각 작품을 감상하며 떠오른 화두를 시인은 때로는 서정적으로, 때로는 폭풍 같은 격정으로 노래한다.
- 변시지와의 연관성: 변시지의 예술세계에 직접 영감을 받아 창작된 순수시 모음이다. 특히 시인은 생전에 변시지 화백과 인연이 있었고, 그의 화실을 찾아가 황토빛 회오리 같은 그림에 매료되었던 개인적 체험까지 바탕에 두고 있다. 그만큼 변시지의 상징물들이 시 곳곳에 등장하는데, 예를 들면 변시지 스스로를 은유하는 “한 다리로 절룩이는 까마귀”의 이미지가 반복되어, 예술가의 고독과 혼을 대변한다. 이처럼 그림 속 소재를 통해 화가의 영혼과 시대정신을 시로 형상화한 점에서 변시지에 대한 문학적 헌사라 할 수 있다. (시집 제목의 ‘時志’ 역시 화가의 이름(時志)을 빌려와 시대정신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
- 문학적 특징/감상 포인트: 시와 그림의 교감이 돋보이는 예술 시집이다. 한 편 한 편의 시는 대응되는 그림의 색채와 분위기를 언어로 포착해내어, 마치 그림에 달린 시적인 캡션처럼 읽힌다. 그러나 단순 묘사에 그치지 않고, 폭풍과 빛과 바람 같은 자연의 이미지를 통해 인간 존재와 예술 혼을 성찰하는 깊이를 갖추고 있어 감동을 준다. 문상금 시인은 변시지 작품을 보고 느낀 바를 오랫동안 “한 편 두 편 써두었다”고 밝히는데, 이러한 경건한 헌정시들이 모여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된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독자는 이 시집을 통해 “세상의 모든 폭풍들이 뚫고 지나갈 바람의 통로를 화폭에 그려낸” 화가의 정신세계와 마주하면서, 시인이 빚어낸 언어의 잔잔한 위로와 울림을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출판 정보
- 저자: 변시지
- 장르: 예술수필·미학노트
- 집필 시기: 1970~1990년대에 걸쳐 메모·원고로 작성, 사후에 유족과 재단이 정리
- 출판: 열화당 (정식 단행본 여부는 시기마다 다름, 일부는 전시도록·재단 자료집에 수록)
- 분량: 총 35개의 주제별 노트 형식 (예: 고갱의 선, 색채의 혼합, 빛과 그림자, 예술과 비예술 등)
- 작품 개요 및 주요 내용
- 변시지가 생전 직접 기록한 예술·미학적 단상들을 묶은 노트.
- 주제는 서양미술사(들라크루아, 고갱, 입체파, 마티스 등), 동양미학(노자, 풍토론), 색채와 선, 빛과 그림자, 표현매체의 본질, 예술과 비예술 등으로 폭넓다.
- 내용은 개념 정의 → 작가·사조 분석 → 자신의 견해 순으로 전개되며, 마지막에는 종종 자신의 그림과 ‘제주’라는 풍토를 연결하는 결론을 내린다.
- 예를 들어 ‘빛과 그림자’ 장에서는 인상파의 빛 개념과 동양화의 여백미를 비교하고, 제주 바람과 빛의 색감을 본인의 채색법과 연결한다.
- 문학적 형식과 구성
- 산문과 단문 메모가 혼합된 형식.
- 학술논문처럼 체계적이진 않지만, 각 장이 독립된 미학 에세이로 읽힌다.
- 예술철학서·미술평론의 어조와, 작가수필의 감성이 공존한다.
- 문장은 간결하고 명료하며, 시적인 은유보다는 분석과 비유를 통한 논증이 많다.
- 변시지와의 관계
- 변시지 본인의 사유를 담은 직접 발화 자료.
- 작품의 형식적 특징(황토색, 강한 바람 묘사, 거친 붓질)이 단순한 기법이 아니라 "풍토론(風土論)"의 연장선임을 밝힌다.
- ‘제주화(濟州畵)’라는 개념을 정립하는 데 중요한 이론적 토대.
- 예술가로서의 자전적 고백도 간간이 스며 있어, 그의 인생 여정과 철학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 시적·미학적 특징
- 서양·동양의 미학을 비교하며 자신의 위치를 설정.
- ‘풍토’라는 키워드로 자연환경이 예술 형식과 색채에 미치는 영향을 지속적으로 탐구.
- 단순한 미술사 해설이 아니라, 개인 창작론과 직결된 철학적 글쓰기.
- 예: “서양의 기하학적 원근은 인간의 시각을 지배하지만, 동양의 산수는 인간을 풍경 속에 놓아준다.”
- 색채에 대해서는 “색은 대상의 표면이 아니라, 그 속을 흐르는 바람과 빛의 기운”이라고 정의.
- 감상 포인트 및 예술·문학적 의의
- 변시지의 회화를 이해하기 위한 열쇠 텍스트.
- 제주 바람·빛·토양이 그의 색채와 구도를 결정지었다는 사실을 직접 증언.
- 독자는 이 책을 통해, 그의 그림에서 왜 황토색과 검은 선, 비스듬히 휘는 구도가 반복되는지 이유를 알 수 있다.
- 또한 변시지가 ‘지역성과 보편성’을 어떻게 통합했는지, 서양 모더니즘과 한국적 미학의 교차점을 어떻게 찾았는지 엿볼 수 있다.
- 비평 및 평가
- 미술평론가들은 『예술과 풍토』를 두고 “변시지 예술의 철학적 설계도”라고 평가.
- 일부 평론은 이를 ‘화가의 자서전이자 선언문’으로 보고, 회화작품과 병행해 읽을 것을 권한다.
- 특히 현대 한국미술에서 ‘풍토’ 개념을 체계적으로 미학에 끌어들인 드문 사례로서 학술적 가치가 있다.
하위 카테고리
그림의 언어
그림의 언어
예술은 때로 언어를 초월하여 우리에게 말을 건넵니다.
변시지의 예술 세계는 바로 그러한 초월적 언어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그의 화폭에 펼쳐진 빛과 색, 그리고 선은 단순한 시각적 요소를 넘어 보이지 않는 감정과 기억, 정신적 풍경을 독창적으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변시지의 예술적 여정은 동서양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창조적 도전이었습니다. 일본 오사카에서의 서양화 수학으로 시작된 그의 여정은 한국의 전통미와 만나 독자적인 미학 언어로 승화되었습니다.
1975년, 그가 50세의 나이로 선택한 제주도로의 귀향은 그의 예술 세계에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거친 바람이 휘몰아치는 섬의 풍경, 하늘을 가르는 까마귀의 날갯짓, 제주의 땅을 달리는 말들... 이러한 자연의 모습들은 그의 붓끝에서 인간 존재의 근원적 이야기로 되살아났습니다.
변시지의 그림 속 자연은 더 이상 단순한 풍경화가 아닌, 우리 모두의 희망과 고뇌, 그리고 삶의 진실을 담아내는 상징적 언어가 되었습니다.
그의 예술이 지닌 가장 큰 특징은 자연의 본질을 탐구하며 인간 내면의 보편적 정서를 담아낸 점입니다. 그는 자연에서 발견한 순수한 아름다움을 자신만의 예술적 언어로 재창조했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보는 이마다 각기 다른 감동과 의미를 발견하게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고향의 추억으로, 또 다른 이에게는 인생의 큰 깨달음으로 다가가는 것입니다.
이 글은 독자 여러분을 변시지의 예술 세계로 초대하고자 합니다. 그의 붓질 하나하나에 깃든 철학적 사유와 미학적 성찰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예술혼을 불태웠던 그의 열정은, 오늘날 우리에게 예술과 삶의 본질적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그의 화폭에 담긴 자연과 인간, 그리고 예술에 대한 깊은 통찰이 독자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새로운 감동으로 피어나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