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바다에서 불어온 바람이 도쿄의 골목을 거쳐 서울 한복판까지 이어집니다. 화가는 이 바람을 붓끝에 담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완벽하게 포착할 수는 없었겠지만, 그 흔적만이라도 남기고 싶었던 마음이 작품들 사이로 스며 나옵니다.
라는 말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믿음이 그의 예술관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던 듯합니다.
변시지의 제주 시기 색채 환원은 단순한 양식적 변화를 넘어 황토색 하나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고 깨달은 것으로, 세상의 본질이 화려함이 아니라 근원적 단순함에 있다는 새로운 인식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하이데거가 『예술작품의 근원』에서 말한 "진리의 비은폐성(Unverborgenheit)"처럼, 변시지는 색을 비워냄으로써 화려한 색들에 가려져 있던 제주의 진짜 모습을 드러냈다.
황토색 단일 색조는 **원초적 대지성(primordial earthliness)**을 상징한다. 이는 메를로-퐁티가 말한 "살아있는 신체와 세계의 교차"를 시각화한 것으로, 제주 대지와 예술가의 신체가 하나로 융합되는 지점을 보여준다. 화려한 색채를 버림으로써 역설적으로 더 깊은 차원의 색채 경험 - 즉 "색 이전의 색", "모든 색을 품은 무색"에 도달한 것이다.
변시지의 황토빛 여백은 동양철학의 **허(虛)**와 **공(空)**의 개념을 회화적으로 구현한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동양화의 모방이 아니라, 서양화 재료로 동양적 사유를 체현한 독창적 시도다.
"황갈색이 여백으로 이해될 때 무한한 공간에 무한한 이야기와 꿈을 상상할 수 있다"는 작가의 언급은 레비나스의 무한의 관념과 공명한다. 여백은 비어있음이 아니라 잠재성의 충만함이며, 관객의 상상력을 초대하는 열린 공간이다.
변시지의 '구상적 단색화'는 구상/추상의 이분법을 넘어선 제3의 길을 제시한다. 이는 헤겔의 변증법적 지양(Aufhebung)처럼, 구상성을 보존하면서도 추상의 정신성을 획득한 독특한 경지다.
검은 선으로 그려진 최소한의 형상들은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사물의 본질만을 드러낸다. 구부정한 남성, 까마귀, 초가집 등은 개별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보편적 상징이 되어, 구체성과 추상성의 경계에서 진동한다.
변시지의 작업은 동시대 한국 추상 단색화와 표면적 유사성을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미학적 지향을 갖는다:
물성 vs 정신성: 단색화가 물질 자체의 본성을 탐구했다면, 변시지는 물질을 통해 정신적 서사를 구현했다.
무심(無心) vs 유정(有情): 단색화의 차가운 중립성과 달리, 변시지의 화면은 뜨거운 한(恨)의 정서로 충만하다.
과정 vs 결과: 단색화가 반복적 행위의 수행성을 중시했다면, 변시지는 완결된 이미지의 시적 울림을 추구했다.
1970년대 일본의 모노하 운동과 비교할 때, 변시지의 작업은 물질과 장소의 관계를 다르게 접근한다. 모노하가 물질의 즉물성을 강조했다면, 변시지는 풍토적 물질성을 탐구했다. 황토색은 단순한 색이 아니라 제주 대지의 육화(incarnation)이며, 검은 선은 바람의 궤적이다.
변시지의 "유화로 그린 수묵화"는 중국의 실험수묵 운동과 흥미로운 평행선을 그린다. 그러나 중국 작가들이 전통 매체의 현대적 변용을 시도했다면, 변시지는 서양 매체로 동양정신을 역번역했다. 이는 문화적 혼종성(hybridity)의 독특한 사례로, 탈식민주의 미학의 관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50세의 귀향은 단순한 물리적 이동이 아니라 심리적 퇴행과 재탄생의 과정이었다. 프로이트의 관점에서 보면, 고향 제주는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원초적 공간이며, 색채의 포기는 상징계에서 상상계로의 퇴행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퇴행은 병리적이 아니라 치유적이다. 화려한 서울 시절의 색채가 타자의 욕망에 부응하는 가면이었다면, 제주의 황토색은 **진정한 자기(true self)**의 발견이다. 위니컷의 용어로 말하면, "거짓 자기"에서 "참 자기"로의 이행이다.
색을 버리는 행위는 정신분석학적으로 **애도(mourning)**의 과정으로 읽힌다. 변시지는 무엇을 애도했는가? 아마도 근대화 과정에서 상실된 고향, 전통, 그리고 순수한 자아일 것이다.
멜라니 클라인의 이론을 적용하면, 황토색 단색조는 우울적 포지션의 시각화다. 그러나 이는 병적 우울이 아니라 성숙한 우울, 즉 상실을 받아들이고 통합하는 창조적 우울이다. 검은 선의 강렬함은 이러한 우울을 뚫고 나오는 생명력의 표현이다.
융의 관점에서 변시지의 제주 그림들은 집단무의식의 원형을 형상화한다. 구부정한 남성은 '늙은 현자', 까마귀는 '그림자', 바다는 '위대한 어머니'의 원형이다.
황토색 배경은 집단무의식의 바다이며, 검은 선으로 그려진 형상들은 그 바다에서 떠오른 원형적 이미지들이다. 이는 개인적 기억을 넘어 제주 공동체의 집단적 기억을 시각화한 것이다.
와쓰지 데쓰로의 풍토론을 확장하면, 변시지의 색채 변화는 풍토적 각성의 결과다. 제주의 강렬한 햇빛, 거센 바람, 검은 현무암은 단순한 자연환경이 아니라 존재방식을 규정하는 풍토다.
"아열대 태양 빛의 신선한 농도가 극한에 이르면 흰빛도 하얗다 못해 누릿한 황토빛으로 승화된다"는 작가의 증언은 지각의 현상학적 변용을 보여준다. 제주의 빛은 물리적 빛이 아니라 현상학적 빛이며, 이는 세계를 다르게 보게 만든다.
메를로-퐁티의 신체현상학으로 보면, 변시지의 붓질은 **신체와 세계의 교감(chiasme)**을 구현한다. 거칠고 활달한 검은 선은 제주 바람의 신체화이며, 황토색 배경은 대지와 하나 된 화가의 살(flesh)이다.
일필휘지의 붓질은 의식적 통제를 넘어선 전반성적(pre-reflective) 표현이다. 이는 사유 이전의 신체적 앎, 즉 제주 풍토가 화가의 신체를 통해 직접 말하는 것이다.
변시지의 여백은 후설이 말한 **생생한 현재(living present)**의 시각화다. 황토색 배경은 과거(기억)와 미래(기대)가 공존하는 시간의 두께를 담고 있다.
검은 선으로 그려진 형상들은 순간이면서 영원이다. 이들은 시간 속에 있으면서도 시간을 초월하며, 제주의 신화적 시간과 역사적 시간을 동시에 체현한다.
변시지의 '구상적 단색화'는 단순한 양식 실험이 아니라 존재론적, 미학적, 심리적, 현상학적 차원이 교직된 복합적 예술 현상이다.
그의 색채 환원은:
을 의미한다. 이는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독보적 성취일 뿐 아니라, 보편적 예술사의 맥락에서도 주목할 만한 사례다. 특히 포스트모던 시대에 진정성과 장소성을 추구한 그의 예술은 오늘날 더욱 큰 울림을 갖는다.
Wind and Line Poetry
변시지 화가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보면,
바람과 선이라는 두 요소가 조용히 흐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들은 화려한 수사나 거창한 선언 없이, 그저 자연스럽게 화폭 위에서 숨 쉬고 있습니다.
제주 바다에서 불어온 바람이 도쿄의 골목을 거쳐 서울 한복판까지 이어집니다. 화가는 이 바람을 붓끝에 담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완벽하게 포착할 수는 없었겠지만, 그 흔적만이라도 남기고 싶었던 마음이 작품들 사이로 스며 나옵니다.
라는 말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믿음이 그의 예술관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던 듯합니다.
처음에는 굵고 확실한 선들이었을 겁니다. 무언가를 확실히 그리고 싶은 젊은 화가의 의지가 담겨 있었겠지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선은 점점 가늘어지고, 때로는 끊어지기도 하며, 마침내 점 하나로 수렴해 갑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우리는 하나의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과연 무엇이 더 많은 것을 말할 수 있을까요? 복잡한 형태일까요, 아니면 단순한 여백일까요?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개인의 목소리와 시대의 요구 사이에서 화가는 늘 고민했을 것입니다. 명확한 답을 찾기보다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자신만의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작품들 속에 스며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태도가 어쩌면 그의 예술이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말을 거는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그의 후기 작품들을 보면 점점 비워지는 화면과 마주하게 됩니다. 무언가를 더 그리지 않은 것이 아니라, 더 그리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말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서명조차 작아지고, 색채도 절제되어 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한 화가가 평생에 걸쳐 도달한 깨달음의 편린을 엿보게 됩니다.
그림의 언어
예술은 때로 언어를 초월하여 우리에게 말을 건넵니다.
변시지의 예술 세계는 바로 그러한 초월적 언어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그의 화폭에 펼쳐진 빛과 색, 그리고 선은 단순한 시각적 요소를 넘어 보이지 않는 감정과 기억, 정신적 풍경을 독창적으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변시지의 예술적 여정은 동서양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창조적 도전이었습니다. 일본 오사카에서의 서양화 수학으로 시작된 그의 여정은 한국의 전통미와 만나 독자적인 미학 언어로 승화되었습니다.
1975년, 그가 50세의 나이로 선택한 제주도로의 귀향은 그의 예술 세계에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거친 바람이 휘몰아치는 섬의 풍경, 하늘을 가르는 까마귀의 날갯짓, 제주의 땅을 달리는 말들... 이러한 자연의 모습들은 그의 붓끝에서 인간 존재의 근원적 이야기로 되살아났습니다.
변시지의 그림 속 자연은 더 이상 단순한 풍경화가 아닌, 우리 모두의 희망과 고뇌, 그리고 삶의 진실을 담아내는 상징적 언어가 되었습니다.
그의 예술이 지닌 가장 큰 특징은 자연의 본질을 탐구하며 인간 내면의 보편적 정서를 담아낸 점입니다. 그는 자연에서 발견한 순수한 아름다움을 자신만의 예술적 언어로 재창조했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보는 이마다 각기 다른 감동과 의미를 발견하게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고향의 추억으로, 또 다른 이에게는 인생의 큰 깨달음으로 다가가는 것입니다.
이 글은 독자 여러분을 변시지의 예술 세계로 초대하고자 합니다. 그의 붓질 하나하나에 깃든 철학적 사유와 미학적 성찰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예술혼을 불태웠던 그의 열정은, 오늘날 우리에게 예술과 삶의 본질적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그의 화폭에 담긴 자연과 인간, 그리고 예술에 대한 깊은 통찰이 독자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새로운 감동으로 피어나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