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섬의 바람은 낮게 불어와 돌담 위를 쓸고 지나간다.
그 돌담 위에 앉은 까마귀들은, 저마다 다른 모양의 깃털을 가졌지만,
거믄 음표처럼 모두 같은 높이에 앉아 있다.
섬의 사람들처럼, 이곳에서는 높고 낮음이 없다.
바람이 그들을 고르게 스치고, 햇빛이 똑같이 내려앉는다.
돌담은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파도와 비, 햇빛과 짠내를 똑같이 견디며 쌓인 돌들.
그 위에 앉은 까마귀들도 이 바람을 수없이 겪어왔을 것이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영원회귀처럼 되풀이되는 계절과 바람 속에서 까마귀와 돌담은
이름 없는 평등을 이룬다.
평등은 단순히 모두를 같은 틀에 넣는 억지스러운 평등이 아니라, 각자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같은 무게로 존재하는 상태다.
이 그림 속 까마귀들은 바로 그 상태에 있다.
어느 한 마리도 더 높이 날지 않고, 어느 한 마리도 더 낮게 앉지 않는다.
단지 그 자리에서, 같은 바람을 맞으며 존재한다.
바다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배는 어쩌면 떠나야만 하는 인간의 욕망을 상징한다. 더 나은 곳, 더 높은 곳을 향한 갈망.
하지만 돌담 위 까마귀들은 말 없는 눈으로 묻는다.
“정말 더 높이 날아야만 하는가?”
바람과 돌담, 바다와 까마귀가 이루는 평등원의 세계에서,
높낮이와 서열은 잠시 사라진다.
그들의 검은 그림자가 돌담에 드리워진다.
그것은 차별 없는 그림자, 각기 다르지만 결국 하나가 되어 바위에 겹쳐지는 그림자다.
나는 그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삶이란 어쩌면 돌담 위 까마귀들처럼,
각자 다른 날개로 같은 바람을 맞으며 버티는 것일지도 모른다.
돌담 위 까마귀들은 오늘도 나지막이 속삭인다.
“서두르지 말고, 높이를 따지지 말라. 너도 바람 속에 앉아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