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와 절망의 어두운 연대기
어둠 속에서 비틀린 형상들이 떠오른다. 고야는 인간의 광기와 절망을 날것 그대로 남겼다. 빛은 사라지고, 그림자만이 진실을 말한다
1819년부터 1823년까지, 청력을 잃은 고야는 마드리드 외곽 ‘귀머거리의 집’의 벽 위에 14점의 그림을 남깁니다. 그것은 더 이상 궁정의 찬란한 장식화가 아니었고, 희망을 노래하는 미술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어둠 속에서 몸부림치는 인간 영혼의 기록, 묵시록의 장면들이었습니다.
〈자식을 잡아먹는 사트루누스〉에서 피 묻은 입으로 자식을 삼키는 신의 광경은, 국가를 집어삼키는 전쟁과 정치적 폭력의 상징인 동시에, 인간이 스스로를 파괴하는 원초적 공포를 형상화한 것입니다. 그 눈빛 속에는 신의 위엄이 아니라 짐승 같은 굶주림과 광기만이 남아 있습니다.
〈아클라레 케 데 티엠포〉에서는 허공에 떠 있는 두 마녀가 어둠 속에서 속삭입니다. 그 아래로 펼쳐진 무덤들은 마치 인간의 역사가 끝내 맞이할 침묵의 풍경처럼 보입니다. 빛은 꺼져가고, 그림자는 끝없이 번져갑니다. 이 연작을 지배하는 것은 광기, 절망, 그리고 시간조차 무력하게 만드는 죽음의 기운입니다.
고야는 더 이상 이성을 믿지 않았습니다. 계몽의 빛은 꺼졌고, 남은 것은 불타버린 폐허 위의 검은 재뿐이었습니다. 그 붓질은 거칠고 원시적이며, 문명 이전의 동굴 벽화처럼 인간의 본능과 고통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이 그림들은 단순한 회화가 아니라 시대의 증언이자 예언입니다. 예술가는 시대의 가장 깊은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그 어둠을 그림으로 남겨 후대에 전합니다. 고야의 검은 그림들은 개인의 절규이면서 동시에 인류 전체가 마주한 심연의 기록입니다.
이후 표현주의와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은 고야의 그림 속에서 현대의 불안과 절망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특히 이 어두운 그림들 속에서, 고통을 해부하듯 직시하는 예술의 힘을 계승했습니다.
고야의 벽화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절망할 수 있다는 것, 끝없는 어둠 속에서 여전히 고통을 느낀다는 것, 그 자체가 살아 있음의 증거라고. 그의 ‘검은 그림들’은 인간 존재에 드리운 마지막 불빛이자, 동시에 끝내 지워지지 않는 그림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