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살바도르 달리 – 〈기억의 지속〉

녹아내리는 시간의 초현

녹아내린 시계들은 시간의 절대성을 부정한다. 달리는 무의식의 유연함과 현실의 불안을 병치시켰다. 시간은 녹아 사라지고, 풍경만이 남는다

카탈루냐의 포르트리가트 해안 위로, 마치 치즈처럼 부드럽게 녹아내린 시계들이 바위와 나무에 걸려 있습니다. 이 기묘한 풍경 앞에 선 사람들은 누구나 꿈속에 들어온 듯한 혼란을 느낍니다. 달리는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에 깊이 매료되었으며, 이 작품에서 무의식의 세계가 경험하는 시간의 상대성을 시각화하였습니다.

꿈속에서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어떤 순간은 영원처럼 늘어지고, 긴 시간은 한순간에 압축되기도 합니다. 달리의 녹아내린 시계들은 바로 그 심리적 시간을 드러냅니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을 때의 시간과 지루한 강의를 들을 때의 시간이 전혀 다르게 체험되는 것처럼, 시간은 언제나 주관적이고 가변적입니다.

그림 중앙의 주황색 덩어리는 달리 자신의 옆얼굴을 기형적으로 변형한 형상입니다. 긴 속눈썹은 잠든 눈꺼풀처럼 드리워져 있고, 코는 땅에 닿을 듯 길게 늘어져 있습니다. 이는 잠들어 있는 의식의 상태를 나타냄과 동시에 예술가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꿈속에서는 자아의 경계조차 흐려지며, 현실의 정체성은 녹아내린 시계처럼 불분명해집니다.

왼쪽의 메마른 나무는 기억의 상징으로 서 있습니다. 그 가지에 걸린 시계는 과거의 시간이 단단히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재구성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또 다른 주황색 시계 위에 들끓는 개미떼는 달리가 평생 품었던 죽음의 공포를 상징합니다. 죽음은 시간의 종말이지만, 동시에 시간으로부터의 해방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시간의 다층성’을 예술적으로 구현합니다. 물리적 시간과 심리적 시간, 개인의 시간과 우주의 시간이 서로 얽히며, 인간의 실제 경험 속에서 복합적으로 드러납니다. 우리가 체험하는 세계는 결코 단일한 시간이 아니라, 겹겹이 흐르는 다중적 시간의 장입니다.

배경의 절벽은 달리의 고향 카탈루냐 해안 풍경에서 따온 것이지만, 초현실적으로 변형되어 있습니다. 익숙한 것과 낯선 것이, 현실적인 것과 환상적인 것이 공존하며 묘한 불안을 자아냅니다. 달리의 편집광적 비판 방법은 일상의 사물을 낯선 맥락에 배치하여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기법이었고, 바로 이 작품이 그 대표적 성과입니다.

한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시간과 공간의 절대성을 해체하던 시대적 배경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과학과 예술이 서로를 비추며 새로운 현실 인식을 열어가던 20세기, 달리는 그 흐름 속에서 시간을 해체하고 재구성한 시각적 언어를 창조하였습니다.

〈기억의 지속〉은 단순히 초현실주의 회화의 걸작이 아니라, 인간 존재가 시간 속에서 어떻게 흔들리고 녹아내리는지를 드러낸 비전의 기록으로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