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시지 미학의 존재론
1. 자화상의 오래된 질문
자화상은 미술사에서 가장 오래된 질문 중 하나다.
화가는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얼굴 속에서 한 인간의 시간과 감정을 기록한다. 네덜란드 화가 Rembrandt van Rijn은 자신의 얼굴을 통해 인간의 생애를 기록했다. 청년기의 자신감에서 노년의 피로까지, 그의 자화상은 한 인간의 시간의 연대기가 된다. Vincent van Gogh는 거울 속에서 자신의 정신을 응시했다. 그의 자화상은 격렬한 색과 선으로 흔들리는 내면을 드러낸다. Frida Kahlo는 자신의 몸을 통해 고통과 정체성을 기록했다.
이 전통에서 자화상은 한 가지 방식으로 정의된다.
자화상은 자신의 얼굴을 통해 자아를 탐구하는 회화다.
그러나 이 정의는 모든 자화상을 설명하지 못한다.
2. 자화상의 두 가지 길
미술사에서 자화상은 사실 두 가지 길로 나뉜다.
첫 번째 길은 거울 앞의 자화상이다.
화가는 자신의 얼굴을 직접 바라보고 그 모습을 기록한다. 이 경우 자화상은 일인칭 시점을 갖는다. 화가는 ‘나’를 바라본다.
두 번째 길은 풍경 속의 자화상이다.
화가는 자신의 얼굴 대신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를 그린다. 풍경은 자연의 묘사가 아니라 화가의 내면 상태를 드러낸다.
예를 들어 Vincent van Gogh의 「별이 빛나는 밤」은 실제 풍경이면서 동시에 그의 정신 상태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소용돌이치는 하늘은 그의 내면의 격동이며, 사이프러스 나무의 불꽃 같은 형상은 그의 열정을 상징한다.
이때 자화상은 더 이상 얼굴의 초상이 아니라 세계의 초상이 된다.
3. 삼인칭 자화상
그러나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는 방식이 있다.
그것은 삼인칭 자화상이다.
삼인칭 자화상에서 화가는 자신의 얼굴을 그리지 않는다. 대신 풍경 속에 등장하는 한 인물을 통해 자신을 표현한다. 화가는 자신을 직접 응시하지 않는다. 그는 풍경 속의 ‘그’를 바라본다.
이때 자화상은 거울 속의 얼굴이 아니라 세계 속에 놓인 인간의 모습이 된다.
4. 풍토라는 조건
이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풍토라는 개념이 필요하다.
일본 철학자 Watsuji Tetsuro는 인간을 단독의 개인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인간이 항상 풍토 속에서 형성된다고 말했다. 인간은 기후, 지형, 역사, 공동체와 분리될 수 없다.
이 관점에서 인간은 자연을 바라보는 관찰자가 아니다. 인간은 이미 자연 속에 놓여 있는 존재다.
따라서 인간을 이해하려면 얼굴이 아니라 그가 살고 있는 환경을 보아야 한다.
5. 변시지와 풍토적 자화상
이 철학적 관점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변시지의 회화다.
변시지는 몇 점의 얼굴 자화상을 남겼다. 그러나 그의 작품 세계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다른 인물이다. 구부정한 등을 하고 지팡이를 짚은 채 바람 속에 서 있는 사내다.
이 인물은 이름이 없고 얼굴도 없다. 그러나 그는 수천 점의 작품 속에 등장한다.
이 사내는 특정한 개인의 초상이 아니다. 동시에 화가의 분신이다. 그의 굽은 등은 인간이 세상을 견디며 살아가는 몸의 형상이며, 지팡이는 인간의 불완전한 육체를 상징한다. 그리고 그의 작은 몸은 거대한 풍경 속에서 항상 바람을 맞고 있다.
이 장면은 단순한 풍경 묘사가 아니다.
그것은 풍토 속에 놓인 인간의 존재 조건을 보여준다.
6. 마른 풀잎색의 세계
변시지의 화면은 하나의 색으로 기억된다. 흔히 그것을 황토색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 색은 단순한 황토색이 아니다.
그 색은 제주의 햇볕과 바람이 만들어 낸 마른 풀잎색이다.
강한 햇빛과 소금기 어린 공기 속에서 풀잎은 점점 색을 잃는다. 그 결과 남는 색이 바로 이 색이다. 그것은 생명의 색이면서 동시에 시간이 남긴 흔적이다.
따라서 이 색은 단순한 자연의 색이 아니라 시간의 색이다.
그 위에 서 있는 사내 역시 그 시간의 일부가 된다.
7. 거주하는 인간
독일 철학자 Martin Heidegger는 인간을 이렇게 설명했다.
인간은 세계 속에서 거주하는 존재다.
거주한다는 것은 자연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 발을 딛고 존재한다는 뜻이다. 인간은 세계의 주인이 아니라 세계의 일부다.
변시지의 사내는 풍경을 바라보는 관찰자가 아니다. 그는 바람을 맞으며 그 풍경 속에 서 있다.
그는 풍경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풍경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8. 풍토적 3인칭 자화상
이 모든 요소를 종합하면 하나의 새로운 개념이 나타난다.
그것이 바로 풍토적 3인칭 자화상이다.
풍토적 3인칭 자화상은 화가의 얼굴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화가가 형성된 풍토 전체를 통해 자아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화가는 자신의 얼굴 대신 바람과 대지, 하늘과 수평선을 그린다. 그리고 그 풍경 속에 작은 인간을 놓는다.
그 인간이 바로 화가다.
9. 열린 자화상
변시지의 사내에게는 얼굴이 없다.
그래서 그 얼굴은 비어 있다.
그 빈 자리에는 관람자의 얼굴이 들어간다. 어떤 사람은 그 사내에게서 자신의 고독을 보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기다림을 본다.
그래서 변시지의 자화상은 완성된 초상이 아니다.
그것은 보는 사람마다 새롭게 완성되는 열린 자화상이다.
결론
서양 미술에서 자화상은 얼굴을 통해 자아를 탐구하는 장르였다.
그러나 변시지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그리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를 그렸다.
바람이 불고
마른 풀잎색 대지가 펼쳐지고
수평선이 멀리 이어지는 풍경 속에
한 인간이 서 있다.
그 인간은 화가이면서 동시에 우리 자신이다.
그것이 바로 풍토적 3인칭 자화상이다.































